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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0

   처음 약탈을 시작했을 적에 난 다른 학생들에게 적의를 살 것을 예상했다.

   

   평소 내 이미지도 이미지고, 약탈이라는 게 그리 깨끗한 행동도 아니니까.

   

   아무리 아카데미 측에서 허용한 일이라 해도 결국 그걸 실행한 건 나잖아. 당연히 저 나쁜 년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지.

   

   그런데 있잖아. 약탈을 하다 보니 사람들의 적의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단 게 느껴지더라.

   

   나한테 약탈을 당할 때 몇몇 애들은 진짜 살의를 담아서 날 노려봤다니까?

   

   내가 농담하듯이 평판 따위 내다버린 지 오래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게 모든 사람들의 욕받이가 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기껏 멍청한 썅년에서 유능한 썅년이 됐는데 유능하지만 재수 없고 성격 더럽고 언젠가 복수해야 할 썅년으로 진화할 순 없잖아!

   

   난 멘탈이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라고! 내가 지나갈 때마다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혀를 차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걸 또 경험하고 싶진 않아!

   

   이대로 가면 아카데미 공공의 적이 될 것을 확신한 나는 이 상황을 어찌 해결하면 좋을 지에 대해 고민하다 한 가지 계획을 짜냈다.

   

   이 세상이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 텍스트를 읊는 것이 아니기에 가능한 계획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계획을 짠 건 아니지.

   

   대충 이런 식의 일을 해보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라고 할배에게 물었더니 할배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대본을 만들어 줬으니까.

   

   거대한 전쟁의 지휘관으로 일했던 사람이자 고위 귀족이자 성기사로써 여기저기 일을 했던 사람의 머리회전은 장난이 아니더라.

   

   할배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늘어놓는 걸 들을 때는 진짜 머리가 멍했어. 언젠가는 나도 저런 걸 비슷하게 따라할 수 있으려나.

   

   어쨌든 이 계획의 골조는 간단했다. 나에게로 향하는 여러 감정들을 다른 이들에게로 돌려버리는 것.

   

   내가 약탈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나쁜 감정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물건을 빼앗겼는데 어떻게 화가 안 나겠는가. 허나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악감정을 내가 반드시 짊어질 필요는 없다.

   

   감정의 방향은 상황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거니까.

   

   나는 그 희생양을 아카데미의 교수로 선택했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분노라는 감정을 약자에게 보내는 것보다 강자에게 보내는 게 편리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수를 향해 책임을 돌리면 좋은 결말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결국 이 현장학습의 책임자는 교수들이잖아?

   

   그 사람들의 잘못으로 학생들이 피해를 입어서 분노한다면 응당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지 않겠어?

   

   이런 나의 생각을 속으로 이야기했더니 할배가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며 그 위에 조언을 몇 개 올려줬다.

   

   <교수들이 난입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혼란을 만들어라. 저 쪽에서 잘못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은. 그래. 네 축복을 활용해 책임자처럼 보이는 이의 감정을 뒤흔드는 걸로 마무리하면 되겠구나.>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까지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어떻게든 나한테 한 번 엿을 먹이고 팠던 아서가 필사적으로 사람을 끌어 모은 게 아니었더라면 이 정도로 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걸.

   

   아서 덕에 계획이 완벽해 진 걸 생각해보면 나중에 아서한테 선물이라도 하나 줘야 겠네. 뭐가 좋으려나.

   

   자신의 실언을 깨닫고 입을 다문 제슬의 얼굴을 살핀다.

   

   아직 스물 후반밖에 되지 않았는데 소울 아카데미 교수 자리에 오른 그녀다. 당연하게도 유능하고 머리의 회전도 빠르다.

   

   방금 전까지야 내 도발 때문에 이성이 날아간 상태라 입을 나불거렸지만 아서의 말을 듣고 이성을 되찾은 지금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깨달았겠지.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되돌릴 수는 없잖아?

   

   “지금 본인은 저들을 이끄는 입장이라서 다시 한 번 물어봐야만 할 것 같군. 방금 전 그대가 했던 말이 사실이라면 교수의 판단 때문에 현장학습에서 낙제하게 된 이들이 여럿 생긴단 소리니까.”

   “저어. 그건.”

   

   이 정도면 내 할 일은 다 한 거지? 나머지는 아서가 알아서 처리를 하겠지.

   

   말 잘하고 머리 잘 굴러가고 지위까지 높은 녀석이니까.

   

   판을 다 깔아줬는데 저걸 못 먹겠어?

   

   나는 이제 쉬러 갈 거야. 며칠 동안 잠 한숨 안 자고 움직였더니 피곤하단 말이야.

   

   역시 지휘, 전투, 야영 준비, 경계 같은 걸 모두 혼자 하는 건 좀 힘드네. 응.

   

   *

   

   “우리에게 피해가 생겼음을 그대가 인정하지 않았나. 어떻게 보상할 텐가.”

   “맞습니다. 저희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 일 때문에 낙제를 피하지 못하게 된 학생들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안톤이 저지른 기행 때문에 쓰러져 있던 학생들이 하나 둘 몸을 일으키며 제슬에게 향하는 항의의 정도가 심해졌다.

   

   제슬은 그들에게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을 했지만 그는 먹히지 않았다. 지금 명분은 학생들에게 있었으니까.

   

   문제는 하나였다. 방금 전 제슬이 자신의 입으로 학생들이 피해 입었을 가능성을 언급한 것.

   

   그를 인정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상황은 모르겠고 학생들의 안전만을 신경 썼다 그랬더라면 저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허나 제슬은 루시 알른의 깐족거림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입으로 명분을 만들어줘 버렸다.

   

   난 방금 전에 왜 그랬던 거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귀족 가문의 아이들이 무어라 그러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잖아.

   

   근데 대체 왜.

   

   “제슬 교수? 대답해 주겠나?”

   

   아서의 물음에 제슬이 손가락에 힘을 더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지?

   

   “그건 제가 대신 대답하겠습니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제슬이 망설이던 중 그 옆에 서 있던 안톤이 그녀의 머리를 꾹하고 누르며 앞으로 나섰다.

   

   “이번 일은 저희 교수 측의 실수가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왕자님.”

   “그건 됐네. 그래서 어찌 대처할 생각인가?”

   “이번 현장학습에 참여한 사람 중에 낙제는 없을 겁니다. 물론 전리품을 모은 개수에 따라 주어지는 보상은 별개지만요.”

   “네?!”

   

   안톤의 파격적인 발언에 누구보다 놀란 것은 제슬이었다. 현장학습에 낙제자가 아무도 없을 거라니!

   

   “교수님. 그건!”

   “걱정 마라. 아무런 문제도 없을 테니.”

   

   다급히 고갤 돌려 눈으로 물음을 던지는 제슬에게 안톤은 웃으며 그리 대답했다.

   

   거기에 제슬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죄송함에 고개 숙인 제슬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쓰다듬어 준 안톤은 아서 쪽으로 고갤 돌렸다.

   

   “이 정도면 왕자님께서도 만족하실는지요?”

   “충분히. 관대한 결정에 감사하겠네.”

   

   안톤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넨 아서는 등을 돌리고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

   

   루시 알른. 그대는 이 모든 걸 예상한 것인가?

   

   첫 날 밤. 여러 학생들을 습격했던 그 때부터 이 순간을 노린 것이냐?

   

   아서는 루시 알른에게 이를 물어보지 않았지만 어째선지 그 대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분명 모든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자신에게 악의를 지닐 것도.

   

   그를 이용해 아서가 사람들을 규합할 거라는 것도.

   

   그로 인해 생길 혼란도.

   

   그리고 그를 막기 위해 교수들이 개입할 거라는 것마저도.

   

   ‘왕자님. 알른 영애께서는 이 상황을 유도하셨습니다.’

   ‘빨리 영애가 교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곳으로 가보세요. 그 곳에서 왕자님께 도움이 될 말이 나올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안톤이 혼란을 진압하기 무섭게 조이가 찾아와 그런 말을 전해줬을 리가 없으니까.

   

   하하. 당했군. 당했어.

   

   루시 알른이 저지른 실수를 가지고 그녀를 위협할 셈이었거늘. 알고 보니 본인은 어느 샌가 루시 알른의 손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던 건가.

   

   빌어먹을. 루시 알른. 그대가 이런 것에까지 능하다는 걸 보이면 본인 보고 대체 어쩌라는 것이냐.

   

   “나중에 감사인사를 하긴 해야겠군.”

   

   본래라면 이번 루시 알른 토벌이 실패함에 따라 학생들의 지탄을 받아야 했을 터이나 모두가 현장 학습을 통과하게 되면서 그럴 이유가 사라졌으니까.

   

   “그리고 이번 일이 모두 다 루시 알른의 덕이라는 것도 밝혀야 할 터이고.”

   

   루시 알른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들이 어찌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적의를 최대한 걷어내 주어야지.

   

   아서의 잘못을 루시가 수습해주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

   

   현장학습이 끝나 아카데미로 돌아오고서 다음 날.

   

   인벤토리에 담겨 있던 짐을 하나하나 꺼내어 점검을 하던 나는 수많은 짐 중 하나에 결코 들어서 있어서는 안 될 생명체를 확인하고 입술을 굳혔다.

   

   현장학습 과정에서 꺼냈다 다시 인벤토리에 넣었던 짐 중 하나에 얼빠여우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변태는 가방이 열리자마자 뛰어 올라 내 얼굴에 달라붙으려 했지만 난 초인적인 반사신경으로 얼빠여우의 목덜미를 붙잡아 그를 막아냈다.

   

   ‘왜 여기에 들어가계셨던 거죠?’

   “야. 변태 여우. 이게 뭐하는 짓거리야?”

   

   “현장학습이 끝나 그대처럼 아름다운 이를 볼 수 없게 된단 사실이 너무 아쉬워서 말이다! 분체를 몰래 숨겨두었지!”

   

   그러니까 자기 마음에 든 사람이 떠나가는 게 아쉬워서 스토킹을 하셨다?

   

   숲의 주인이라는 분이?

   

   돌아버리겠네 진짜.

   

   ‘할아버지. 왜 감지를 못하신 건가요!’

   

   할배에몽! 왜 당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거야!

   

   이런 걸 알아차리고 방지하는 게 당신이 할 일이잖아!

   

   <할 말이 없구나. 숲의 주인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인지는 몰라도 본인이 감지하지 못했어.>

   ‘어떡할 거에요! 이 변태가 여기까지 따라왔잖아요!’

   

   갸아아악!

   

   숲에서 빠져 나오면서 다시는 얼빠 여우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단 생각에 기뻐했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사이틸 숲에는 들어가지 않을 거라 다짐 했었는데에에에!

   

   왜! 대체 왜!

   

   <그. 여아야. 어쨌든 그대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는 아니지 않나. 약간 역겨운 것만 참으면.>

   ‘약간이요?! 할아버지는 볼 거 안 볼고 다 보고도 약간이라는 소리가 나와요!?’

   

   할배. 요즘에 편했지? 어?!

   

   화장실 물에 처박히는 걸로는 부족하다 그거야?!

   

   알겠어! 할배의 의향을 받아들이도록 할게! 소울 아카데미 거리에 가게들이 참 많거든?! 어디 한 번 짬통 투어 좀 해볼까?!

   

   “걱정하지 말거라! 딱히 그대를 괴롭힐 생각은 없으니! 본인은 그대를 감상하는 걸로 만족한다!”

   

   얼빠 여우 이 변태년은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냥 네 존재 자체가 스트레스라고 이 빌어먹을 새꺄!

   

   “그냥 꺼져 줄래?♡ 꾸질꾸질한 모피를 지닌 변태여우?♡”

   

   돌아가! 숲으로 꺼져버려! 제발!

   

   “본녀를 쫓아낼 생각이더냐?”

   “당연하지♡ 내가 왜 너처럼 역겨운 변태를 참아야 해?♡”

   “잘 생각해 보거라. 그대가 쫓아낸다 하더라도 본녀가 순순히 물러서겠느냐?”

   

   …아니. 절대 그럴 리가 없지.

   

   메스가키 스킬의 도발조차 헤으응거리면서 좀 더 해달라고 부탁하는 미친년인 걸.

   

   방에서 쫓아낸다 해서 포기할 녀석이었으면 여기까지 따라오지도 않았겠지.

   

   “그대가 본녀를 쫓아낸다 하더라도 본녀는 언제나 그대의 곁을 돌아다닐 것이다.”

   

   저기 죄송한데 무친련 씨. 스토킹은 범죄거든요?

   

   왜 자신이 범죄를 저지를 거라는 걸 당당히 설명하시는 건가요?

   

   “그럴 바에야 옆에 두고서 감시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하아. 진짜 싫다.

   

   얼빠 여우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혼을 나가게 만드는 느낌이야.

   

   근데 더 열 받는 게 뭔지 알아?

   

   저 녀석이 지껄이는 소리에 설득력이 있단 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빠여우는 스토킹 여우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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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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