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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0

   그렇게 하링과의 대화가 끝난 후.

   샬롯이 나오기 전까지 기다리던 크라슈는 왜인지 아스트리아에게 핀잔을 듣고 있었다.

     

   “내가 치료해준 게 얼마 전인데 당신은 또 그런 데를 가겠다는 거야?”

   “앞에서 이미 이유를 말했잖냐.”

   “당신 또 무리할 거잖아. 아가레스 때랑 같은 꼴로 나타나면 이번에는 나라도 치료가 힘들지도 몰라.”

     

   그건 아닐 거라 보는데.

   아스트리아의 치료 능력을 잘 아는 크라슈는 그녀가 더 무리한 상태도 치료할 수 있음을 알지만 지금 이야기가 걱정해서 하는 말인 건 잘 알았다.

     

   그러니 그녀를 조금 안심 시켜 주기로 했다.

     

   “나라고 맨날 그렇게 될 생각 없어. 게다가 이번에는 나 혼자 무턱대고 움직일 일도 아니고.”

     

   제국은 일단 표면적으로 독왕을 상처 입힌 세계 침식자를 쫓고 있는 척하지만 그 실상은 다르다.

   분명 다른 진실이 있을 터.

     

   크라슈는 그걸 밝혀내기 위해 하덴하르츠로 가려는 것뿐이다.

     

   ‘이 부분은 에벨아스크 녀석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고.’

     

   그 녀석도 제국은 물론 스타론에게까지 쫓겨 죽고 싶지는 않을 테니.

   이래저래 협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리할 일도 없을 거다.”

     

   아스트리아는 미심쩍은 눈으로 봤다.

     

   “약속해.”

     

   그러고는 대뜸 새끼손가락을 크라슈의 앞에 내밀었다.

   이런 구두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긴 하지만.

     

   크라슈는 하는 수 없이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자기 손가락을 걸어 주었다.

     

   “너무 과하게 걱정하는 거 아니냐.”

   “누가 당신 걱정했다고 그래. 나도 치료하면 힘드니까 약속하는 거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꾹하니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아카데미 밖으로 독단적으로 못 움직이니까.”

     

   그녀는 따라오고픈 마음이 굴뚝 같아 보였지만.

   아직 신성 왕국의 일을 전부 정리한 상태가 아니었다.

     

   라헬른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는 것도 신성 왕국과 한바탕 한 결과.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거나 하는 독단 행동하면 신성 왕국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약속해달라는 거였다.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 와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말이야 당신…….”

     

   아스트리아는 하링 쪽을 힐끗 보며 더 할 말이 있는지 주억거리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몇 번이나 쉬는 거냐.”

   “다 당신 때문이잖아.”

     

   아스트리아는 불만이 잔뜩 섞인 눈으로 크라슈를 쏘아 보았다.

     

   “……나한테만 그러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약혼자가 있다는 자각은 있어?”

     

   그야, 자각이 없을 리가 있나.

     

   “못됐어.”

     

   크라슈가 멀뚱히 보고 있자 아스트리아는 흥하고 콧방귀를 내쉬더니 안으로 걸어가 버렸다.

   그 모습은 크라슈가 종종 봤던 아스트리아의 삐진 모습이었다.

     

   [ 마음 있는 놈이 눈앞에서 다른 여자 꼬시고 있는데 안 삐지겠느냐. ]

     

   꼬신다니, 말을 해도 참…….

   이쪽도 그런 의도가 아님은 다 알면서 말이다.

     

   “성녀님이랑 친하네.”

     

   그러는 사이, 하링은 크라슈를 조금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크라슈의 눈에야 아스트리아가 평범한 사람이지만 타인의 눈에는 신의 선택을 받은 여성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는 순간 때마침 여자 기숙사 쪽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재빨리 자리를 피하는 게 보였다.

     

   그걸 본 크라슈는 누가 등장했는지 금방 눈치챘다.

     

   “한 명 더 늘었네.”

     

   그녀는 다름 아닌 샬롯이었다.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집중시키는 그녀는 하링 쪽을 힐끗 보다가 몸을 돌렸다.

     

   “따라와.”

     

   단 가입 건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하자는 거겠지.

   크라슈가 하링에게 눈짓하자 그녀는 바로 크라슈와 함께 샬롯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샬롯은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것만 보아도 샬롯이 라헬른 아카데미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크라슈는 새삼 체감했다.

     

   그렇게 샬롯을 따라 한참을 걸어간 크라슈는 무학 본관에 구비된 교실 하나에 도착했다.

   교실의 문 앞에는 사자 문양이 하나 걸려 있었다.

     

   사자단.

   샬롯을 중심으로 모인 단이었다.

     

   샬롯이 노크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안쪽에 있던 인원 몇 명이 서류를 정리하다 샬롯의 등장에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단장님, 오셨어요?”

     

   그중에서 한 명 안경을 치켜 쓴 남성 한 명이 샬롯을 반겼다.

   문학 출신을 풀풀 풍기는 그는 스타론 재상의 아들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샬롯이 치는 사고를 정리하던 그는 샬롯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샬롯에게는 유일한 지인 사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샬롯을 따라 사자단에 속한 모양이었다.

     

   “델론, 안쪽에 있는 회의실 쓸 거니까 준비해.”

   “아, 마침, 회의실에 손님이 와 계십니다.”

     

   손님이라는 말에 샬롯이 눈을 살짝 치켜떴다.

     

   “손님?”

     

   그도 그럴 게 샬롯에게 손님이라는 말을 쓸 이가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년 사이에 샬롯은 자신을 찾아오는 이를 거의 다 파괴 시켜 놓다시피 했으니.

   이제 와서 손님이라고 할만한 이가 있을 리도 없었다.

     

   그녀는 크라슈 쪽을 힐끗 돌아보곤 안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이번에도 노크 없이 문을 열어 젖혔다.

     

   그녀는 회의실 안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크라슈.”

     

   그러더니 크라슈를 불러들였다.

   그 부름을 들은 크라슈가 회의실 앞으로 걸어오자 거기에는 크라슈도 아는 얼굴이 두 사람 있었다.

     

   “……시즐리?”

   “에파니아 제국의 4황녀님을 뵙습니다.”

     

   뒤따라 왔던 하링도 조금 놀란 기색으로 인사했다.

   정작 그 인사를 받은 소녀는 무척이나 느긋한 태도였다.

     

   “늦는구나. 기다린 지 꽤 오래 됐건만.”

   

   

   

   

     

   회의실 안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4황녀 시즐리 에파니아.

   그리고 그녀의 호위 기사인 세라 베탈라였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크라슈가 황당한 표정으로 묻자 시즐리는 잔망스러운 눈웃음을 지었다.

     

   “그야, 세상 돌아가는 느낌상 이쪽으로 오겠구나 싶었지.”

     

   그녀는 무척이나 느긋하게 찻잔을 한 모금 했다.

   시즐리는 제국의 황녀다.

     

   분명 그녀에게 정보를 전해주는 귀도 있을 터.

   그 정보를 통해 이번 일의 진실을 알고 자기 머리를 이용해 여기까지 도달해온 것이었다.

     

   그것도 크라슈라면 반드시 사자단을 찾을 거라는 결론과 함께 말이다.

     

   크라슈의 눈이 살짝 게슴츠레 떠졌다.

   이 말괄량이 황녀가 또 무슨 짓을 하려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거라. 이래 보여도 이번 일에 관해서는 도우려고 온 거니까.”

   “도우러 왔다는 건.”

   “그쪽에도 나름 목숨을 빚지지 않았느냐.”

     

   크라슈는 시즐리가 목숨을 빚진 상대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눈치챘다.

   다름 아닌 전 밤 까마귀 단, 에벨아스크 베나포치다.

     

   에벨아스크는 시즐리에게 딱히 빚을 지게 할 마음은 없었겠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그녀를 도운 셈이었으니까.

     

   그걸 돕겠다고 시즐리는 여기에 온 것이었다.

     

   “그리고 명분상으로도 내가 있는 편이 훨씬 더 도움 되겠지. 무려 에파니아의 황녀와 발하임 직계가 함께 있으면 화합의 증거로서 최고치 않느냐.”

     

   그리고 시즐리는 크라슈가 생각한 계획까지도 다 꿰고 있었다.

   하여튼 방심할 수가 없게 만드는 그녀였다.

     

   자신이 여기 있을 만한 이유는 다 설명한 것 같다며 그녀가 크라슈를 돌아보았다.

   크라슈는 짧게 혀를 찼다.

     

   그녀 말마따나 그녀가 있으면 제국이 더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막을 수 있었다.

     

   “크라슈.”

     

   그러는 순간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샬롯이 크라슈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은 평소와 같이 생기가 전혀 없었지만 어째서인가 살짝 언짢은 기색을 담고 있었다.

     

   “제대로 설명해.”

     

   자기가 만든 단에 들어오는 줄 알았더니.

   다른 이유가 있었음을 눈치챈 샬롯의 삔또가 살짝 상했다.

     

     

   * * *

     

     

   에벨아스크만 제외한 이야기를 전부 들은 샬롯은 팔짱을 낀 채 앉아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전부 샬롯의 허락이 없으면 이번 일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도 그럴 게 이번 일은 샬롯의 사자단이 하덴하르츠에서 주어진 임무를 간다는 가정 하에 가능한 계획이었으니까.

   크라슈의 이야기를 정리하듯 한참을 듣고 있던 샬롯은 이내 팔짱 낀 손을 풀었다.

     

   대신 샬롯은 크라슈를 돌아보았다.

     

   “이야기는 이해했어. 동생이 처음으로 한 부탁이니까. 들어 주는 거야 어렵지는 않아.”

     

   크라슈는 기다랗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나 샬롯이 거절할까 봐 노심초사했기 때문이었다.

     

   크라슈가 유일하게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 샬롯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오직 자신이 원할 때만 움직이니까.

     

   그러니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일을 설명한다 한들 그녀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이런 샬롯이니까 더더욱 도움이 필요해.’

     

   지금 아서와 시그린은 샬롯을 의심하고 있다.

     

   그 의심을 적극적으로 키우려면 샬롯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다 많이 비춰야만 했다.

   그러니 크라슈가 선뜻 샬롯을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을 하기에는 문제가 있어.”

     

   그러는 순간 샬롯이 또 다른 문제를 언급해 왔다.

     

   “라헬른 아카데미에서는 하덴하르츠 쪽에서 내려온 임무가 없어. 무엇보다 이번 일은 세계 침식자니까. 아카데미가 임무를 허락할 리가 없겠지.”

     

   아무리 라헬른 아카데미 일원이라도 결국 후기지수다.

   세계 침식자는 후기지수로는 어쩔 수가 없는 괴물들이다.

     

   당연히 그런 세계 침식자를 상대해야 하는 마당에 전력으로 후기지수를 부를 리가 없었다.

     

   “임무야 하덴하르츠 쪽에 연락을 넣으면 만들 수 있습니다.”

     

   크라슈는 하덴하르츠와 약혼 관계를 맺은 상태다.

   크라슈와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하덴하르츠이니 연락만 한다면 임무를 내려줄 터.

     

   문제는 라헬른 아카데미에서 1차 수령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하지만 그 건은 라헬른 아카데미의 특이한 규칙에 따라 강제로 통과시킬 방법이 하나 있다.

     

   “총장에게 의견 투고하는 걸 말하는 거구나.”

     

   샬롯이 눈치 빠르게 크라슈의 뜻을 알아차렸다.

     

   총장 전 투황, 듀란달.

   라헬른 아카데미에만 있는 이 특이한 규칙은 학교에 의견을 건의 할 때 총장과 맞붙으라는 말도 안 되는 의견 수렴 방식이었다.

     

   즉, 조건만 채운다면 세계 침식자 건 임무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 건이라면 문학과인 내가 이미 넣어 놨긴 했다만은.”

     

   그러자 시즐리가 자신이 미리 의견을 투고 해놨음을 알려왔다.

     

   다른 과들과 달리 문학과는 힘으로 맞붙는 게 아니라 작문하여 의견을 제시한다.

   문학과의 힘은 두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라슈는 물론 시즐리 또한 그것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문학 쪽 의견 투고는 수렴까지 너무 오래 걸려.”

   “으음, 그게 문제이지.”

     

   크라슈가 반박하자 시즐리도 아쉬운 반응을 보였다.

     

   문학과의 의견 투고는 중간 절차를 상세히 걸친다.

     

   그렇다 보니 정작 총장에게 의견이 들어갈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인 만큼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의견을 수렴시키려면 총장에게 맞붙어 결과를 내는 것이 가장 빨랐다.

     

   “나는 더 이상 총장님이랑 못 붙어.”

     

   그러자 샬롯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녀는 이미 의견 투고에 성공하여 특급과라는 새로운 의견을 만들어 총장에게 제시했다.

     

   의견 투고는 제한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그 의견 투고를 받아 주는 것은 단 한 번뿐.

     

   그 말은 즉, 샬롯은 의견 투고에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소리와 같았다.

   하지만 그 사실은 크라슈도 진작 알고 있었다.

     

   과거 의견 수렴은 단 한 번도 승인이 나지 않았을 정도로 듀란달은 무척이나 까다롭게 힘을 따진다.

   말 그대로 샬롯 정도의 재능이 아니고서야 문학과를 제외하면 의견 수렴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링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녀도 자신 수준으로는 의견 수렴까지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딱 한 명.

   한 명만큼은 확신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모두가 고민하는 사이, 입을 뗀 크라슈가 푸르른 눈을 빛냈다.

     

   “그건 제가 하겠습니다.”

     

   세계 침식자 사냥 지원 임무.

   그 의견을 수렴 시키기 위해.

     

   크라슈는 전 투황, 듀란달에게 힘을 증명해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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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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