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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1

    미니 사신 정원, 핫초코의 바다 위를 둥실둥실 떠다니는 과자집.

    콰드득콰드득.

    그 과자집에서 뭔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 정체를 밝혀주세요!>

    그 소리를 듣고 푸른 사신들은 깜짝 놀라서 탐색 마법을 사용했지만, 오히려 더 큰 절망을 안겨줄 뿐이었다.

    핫초코의 바닷속에서 더듬이만 내놓고 있는 ‘회색 사신 상어’가 과자집을 마구잡이로 물어뜯고 있었다.

    원한을 잊지 않은 회색 사신의 눈은 복수에 대한 집념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첨벙. 첨벙.

    어느새 과자집 바닥에는 구멍이 뚫렸고, 그 짙은 핫초코 색 바다를 뚫고 노랗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 시선은 마시멜로 망치를 휘둘렀던, 푸른 사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찾았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 엄마.>

    울상을 짓는 푸른 사신을 향해 핫초코의 바다를 뚫고 회색 손이 불쑥 튀어나와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천천히 다가오는 손을 바라보며, 푸른 사신들은 뭉쳐서 오들오들 떨 수밖에 없었다.

    마치 그 공포를 즐기는 것처럼 천천히 다가오던 손아귀는 목표로 하던 푸른 사신을 붙잡았다.

    붙잡힌 푸른 사신은 손아귀 안에서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곧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공포에 젖어 들어갔다.

    그런 푸른 사신을 향해, 창조주의 의지가 들려왔다.

    ‘그러면 황금 사신처럼 세탁기에 넣어볼까?’

    푸른 사신은 그 말을 듣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분명 팔다리가 부러지고 심하게 다칠 테니까.

    아니, 다치는 데 그치지 않고 죽을 수도 있었다.

    그것도 천천히 고통스럽게.

    회색 사신은 더욱더 심하게 떠는 푸른 사신을 보면서 씨익 웃더니 의지를 전달했다.

    ‘역시 세탁기에 넣으면 심하게 다칠 테니 공평하지 못하겠지?’

    그 말을 듣고 푸른 사신은 살짝 안도하며 ‘역시 엄마는 상냥해.’ 라고 생각했다.

    ‘그럼, 모자 1시간 압수!’

    그 안도한 표정을 보면서 사악한 미소를 지은 회색 사신은 모자를 강탈한 뒤, 미국으로 도망가 버렸다.

    푸른 사신은 모자가 사라져 버린 머리 위를 손으로 더듬었지만, 그곳에는 언제나 위안을 주던 모자가 없었다.

    애착 모자가 없으면 제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푸른 사신은 1시간이나 되는 압수 시간에 절망했다.

    모자를 잃어버린 푸른 사신 주변으로 다른 푸른 사신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몰려와서 주변을 가려주었지만, 푸른 사신의 공허함과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 엄마….>

    푸른 사신은 엄마를 애타게 찾으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자신의 전용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방호복을 입은 제임스는 장벽 내부의 조사를 이끌고 있었다.

    제일 먼저 한 것은 장벽 내부에 흩어진 온갖 유물의 분류와 정리였다.

    ‘정말 엄청난 양의 유물들이군. 디자인이랑 양식이 0호 유물들과 비슷한 것들도 꽤 많고 말이야.’

    제임스는 날카롭게 잘린, 한 두꺼운 책을 들어 올리면서 생각했다.

    제임스가 가진 0호 유물과 거의 동일하게 생긴 서적이었다. 

    날카롭게 잘린 점만 제외하면 지금 발견된 서적이 좀 더 세월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제임스가 가진 서적과 달리 금속으로 된 장식이나 세세한 무늬가 세월에 무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제임스. 여기도 똑같은 양식의 패턴이 보여. 와서 확인해 봐.]

    방호복 내부에서 울리는 무전을 듣고, 자리를 옮기자 특이한 문양이 그려진 거대한 돌덩어리가 보였다.

    어른 몸통만 한 그 거대한 돌덩어리는 어떤 건물의 일부였거나 비석의 일부로 보였는데, 푸른 소녀가 그려진 책과 같은 패턴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제임스는 유물로 보이는 돌덩어리들을 최대한 보존하도록 명령하면서 비서에게 명령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연구소로 고고학자들을 불러야겠어. 누군가 뼈대를 잡고 분류를 해줘야 해. 우리가 해봐야 주먹구구식이 될 뿐이야.]

    [그럼, 바로 고고학자 채용 공고를 내겠습니다. 채용 시점은 제임스 시티가 재건되는 6개월 정도 뒤면 될까요?]

    [아니, 지금 당장. 멸망이 다가오고 있는데, 그렇게 시간을 허투루 쓸 수는 없지. 쓸만한 건물들이 남아있으니까, 충분해.]

    제임스의 말에 비서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제임스 시티 붕괴 때문인지, 일거리가 쉬지 않고 몰려오고 있었다.

    제임스는 너무 오래 깨어있어서 침침한 눈을 감았다 뜨면서 물었다.

    [이번에는 뭐지? 예산 관련은 아닐 테고…?]

    [‘미니 달 관측 계획’에서 온 연락입니다. 예상외의 변화가 관측되었다는 연락입니다.]

    예상외의 변화라.

    남색 달이 생긴 것 말고 다른 변화가 있단 건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보이는 것은 창백한 빛의 커다란 달 하나, 그리고 붉은 달과 푸른 달과 남색 달.

    그렇군. 확실히 바뀌었다.

    [변화를 관측했다고 전해줘. 나도 0호 유물들을 뒤져서 비슷한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지 찾아보도록 하지.]

    떠나가는 사람을 보며, 제임스는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제임스 눈에는 커다랗지만, 창백한.

    아니, ‘회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달이 빛을 내리쬐고 있었다.

    ***

    유리 플라밍고의 파괴 보고나 신규 오브젝트 수용 관련 서류 작업을 마무리 짓고, 나는 부소장실을 나섰다.

    목적지는 ‘남색 새싹 사신’의 격리실.

    수면실에 놓여있던 ‘남색 새싹 사신’의 화분은 너무 뒤늦게 옮겨졌다.

    오브젝트 연구소 소속 연구원이라는 작자들이 이상 발생한 오브젝트의 보고를 누락하다니!

    만약 내가 수면실이 소란스러운 것을 보고 찾아가지 않았다면, 새싹 사신은 계속 수면실에 있었겠지.

    새싹 사신의 존재를 아는 자들이 귀여우니까 괜찮다는 둥, 새싹이가 있으니까 잠이 더 잘 온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은닉한 것이다.

    회색 사신이의 다른 파생 오브젝트들은 하나같이 격리가 곤란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새싹 사신은 얌전해서 격리할 수 있어 보이니 당연히 격리해야 정상 아닌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별사탕 하나를 황금 사신이에게 먹였다.

    오도독. 

    황금 사신이는 맛있는 소리를 내면서 별사탕을 갉아먹었다.

    새싹 사신이가 갇힌 격리실에 도착하자, 예상과는 다른 풍경이 나를 반겨줬다.

    화분 주위는 흙투성이가 되어있었고, 새싹 사신이는 화분 밖으로 나와 탁자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널브러진 새싹 사신이는 뭔가 푸석푸석했고, 머리 위의 새싹도 기운이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새싹 사신이를 들어서 화분 속에 다시 묻어줬다.

    이제 괜찮아지겠지?

    황금 사신이도 어깨 위에서 내려와, 화분 속에 묻힌 새싹 사신이를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힘이 없어 보이는 새싹 사신이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먹던 별사탕을 새싹 사신이의 입 근처로 밀어 넣었다.

    할짝할짝.

    그러자 새싹 사신이가 작은 혀를 내밀면서 조금씩 별사탕을 핥아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어서 자료로 남겼다. 

    사심이 아니라, 자료. 

    제목은 <새싹 사신의 생태.>.

    나는 작은 혀가 튀어나온 귀여운 사진을 보면서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

    <엄마, 역시 상냥해.>

    모자를 돌려주자, 푸른 사신의 생기가 돌아왔다.

    사실 1시간이라고 한 뒤에 까먹은 척하고 하루 정도 내버려 두려고 했는데, 푸른 사신이 너무 서글프게 울어서 1시간도 되기 전에 모자를 돌려줬다.

    푸른 사신이 너무 약해서 그런지, 장난도 심하게 치기가 좀 힘들었다.

    차별은 좋지 않은 건데 말이야.

    내 손바닥 위에 다소곳이 앉아서 나를 올려다보며 생글생글 웃는 푸른 사신을 내려다보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내 격리실처럼 어수선한 호텔 내부가 보였다.

    이불을 걷어차 버리고, 대신 황금 사신을 잔뜩 끌어안고 자는 예린이.

    바닥에 잔뜩 널브러진 채, 잠든 황금 사신들.

    그리고 탁자 위에 앉아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미니 아귀.

    미니 아귀의 배를 꾹 누르자, ‘뀨’하는 소리가 났다.

    점점 밝아져 오는 창밖을 보자,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장난 성분이 부족하니까, 다른 장난을 쳐야지.

    나는 하얀 아귀를 내려다보면서 웃었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 보이는 푸른 사신에게 부탁했다.

    ‘여기를 파티장처럼 꾸며줘.’

    ***

    잠에서 깨어나니, 호텔 방의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물로 만든 온갖 장식들.

    물로 만든 트리.

    호텔 방은 마치 물로 만들어진 파티장처럼 꾸며져 있었다.

    그런 공간 속에서 사신이는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각각 쥐고 식탁 위에 앉아 있었다.

    식탁 위에도 온갖 식기들이 꺼내져 있었고, 사신이의 자리 앞과 내 자리로 보이는 자리 앞에는 커다란 그릇이 놓여있었다.

    그릇의 내용물은 돔형 뚜껑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는데, 가끔 덜컹 소리를 내면서 움직였다.

    설마, 황금 사신이를 집어넣은 건 아니겠지?

    사신이가 할법한 장난을 떠올리며 자리에 앉아서 뚜껑을 열어보자, 아귀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신이는 ‘하얀 아귀’랑 ‘귀여운 강아지’로 장난을 자주 치네.

    뭔가 밉보인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사신이는 무표정했지만,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뀨”

    아귀는 사신이의 포크와 나이프에 썰리면서 애처롭게 울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메리 크리스마스!

    모두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삽화가 2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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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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