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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1

    <141 – 불길한 예감>

     

    강력한 NPC는 등장만으로도 위압감이 드러난다.

    981기 최강의 NPC로 손꼽히는 용사 이슈타르의 등장이라면 두말 할 것도 없다.

    솜털이 곤두서고 손등이 찌릿찌릿 울린다.

    시선이 닿는 부위의 피부가 마치 불에 그슬린 것처럼 열기가 느껴지고 한판 붙어보고 싶다는 호승심이 가슴 깊이 활활 타오른다.

    하지만 알고 있다.

    초기스펙으로 용사와 싸우기는 무리라는 것쯤은.

    지금도 근력 하나는 나름 상급반에서 비벼볼만해도 다른 능력치로는 빵빵한 스텟을 지닌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에 비견되기 어렵다.

    그래서 웃는 낯으로 돌아보았다.

     

    “용사언니.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

     

    딴에는 경계심을 낮추겠다고 사근사근 건넨 인사말이었는데 이슈타르의 표정이 굳었다.

     

    “역시… 이 정도 위압감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살기저항훈련을 했나보네. 암살자는 실전에서 몸이 굳으면 안 되니까.”

    “음… 머 비슷한 이유로 적응이 되기는 했죠!”

     

    쉽지 않네.

    경계가 풀리기는커녕 높아졌다.

    왜 저러지?

    이슈타르랑 딱히 나쁜 인연을 쌓은 적은 없었는데.

    저번엔 동료영입제안까지 했었고.

    설마 제안을 거절해서 그걸로 앙심을 품은 건가?!

     

    가능성은 있다.

    NPC의 성격도 매번 동일하지는 않다.

    어떤 회차는 집안이 크게 성공해서 친절한 친구가 어떤 회차에서는 집안이 파산해서 말 걸기도 무서울 정도로 까칠하고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거든.

     

    “오크노디. 지금부터 하는 질문에도 솔직하게 대답해주면 좋겠어. 네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거야.”

    “먼데 그래요?”

    “재단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넹?”

    “와이히엠하이 재단. 그들이 네게 한 교육은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의 선을 넘어섰어.”

     

    이슈타르는 자신이 들은 소문을 열거했다.

     

    “재단은 가혹한 훈련을 따르지 않는 아이들에게 독을 먹이고, 고통 받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은 창관이나 노역소에 팔아넘긴다고 들었어.”

    “헉. 정말요?”

    “남의 일처럼 말하지 마. 오크노디 너도 마찬가지잖아. 어린 나이에 다양한 환경적응훈련과 각종내성훈련, 곡예를 포함한 온갖 암살훈련을 받았잖아.”

     

    뜬금포로 면전에서 던지기엔 너무 무례한 소리였다.

    사람을 대체 뭘로 보는 거야?

     

    “아니에요! 멋대로 파파의 재단을 나쁘게 말하지 말아요. 전 그런 가혹한 훈련은 받은 적 없어요!”

    “…거짓말. 그렇게나 안 좋은 소문이 잔뜩 도는데 그게 다 헛소문일 리가 없잖아.”

    “제가 강해진 건 전부 저 스스로가 좋아서 해왔던 훈련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억지로 할 리가 없잖아요?”

     

    용사의 얼굴이 아연해졌다. 칼집에 얹은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 졸렬한 녀석, 재단을 나쁘게 말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건가?!

    이번 회차의 용사는 인성파탄자가 걸렸나보다.

    지금 이 용사가 파파의 딸인 나한테 파파의 조직을 나쁘게 말하라고 압박하면서 그러지 않으면 베겠다고 협박하는 거 맞지?

    흥.

    강하게 나온다고 굽힐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나는 강강약강.

    강자한테도 강하고 약자한테도 강한 성격이다.

     

    “재단과 파파를 나쁘게 말한다면 아무리 용사라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하아.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넌 지금 당대 최강의 인재로 거듭날 현역용사를 앞에 두고 있다고.”

    “패륜을 강요하는 못된 용사는 용사를 자처할 자격이 없어요!”

     

    그런가.

    이슈타르가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바로 한판 뜨려는 건 아닌가보다.

    휴우.

    한숨 돌리고 있자니 용사가 돌아서며 말했다.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선의로 베푼 말이었지만 마음이 상했다면 사과할게.”

     

    얘가 와서 한 건 패륜하라고 강요한 게 전부잖아.

    이딴 게 선의?

    이번 회차 이슈타르는 인격파탄자 확정이다!

     

    “흥. 됐으니까 얼른 가세요. 훈련에 방해되잖아요.”

    “저 아이는 자발적으로 훈련하는 거야?”

     

    모브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싫어… 살려줘…”

    “…오크노디. 미안하지만 저 아이는 그만 풀어줬으면 좋겠어. 용사로서 눈앞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이를 무시할 수는 없거든.”

    “참나. 자기가 먼저 도와달라고 했으면서.”

     

    투덜거리면서 모브를 해방시켜주니 그제야 용사가 돌아갔다.

    나쁜 녀석.

    이러다 모브가 낙제하면 전부 네 탓이야!

     

     

    * *

     

     

    이슈타르는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그녀를 용사로 선출한 유일신 <태양의 소페미아>.

    소페미아가 용사를 위해 하사한 성검에는 <모든 거짓을 감별하는 힘>도 존재했다.

     

    “역시… 이 정도 위압감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살기저항훈련을 했나보네. 암살자는 실전에서 몸이 굳으면 안 되니까.”

    “음… 머 비슷한 이유로 적응이 되기는 했죠!”

     

    거짓감지가 발동하지 않았다.

     

    “아니에요! 멋대로 파파의 재단을 나쁘게 말하지 말아요. 전 그런 가혹한 훈련은 받은 적 없어요!”

     

    진실이었다.

     

    “제가 강해진 건 전부 저 스스로가 좋아서 해왔던 훈련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억지로 할 리가 없잖아요?”

     

    그녀는 진심으로 가혹한 훈련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너무 어린나이부터 훈련을 받았어.’

     

    호불호가 생기기도 전부터.

    잔혹한 훈련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도록.

    재단은 아이의 마음을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아이답지 않은 기호를 지니도록 개조했다.

    너무 늦었다.

    언뜻 보기에는 순진하고 사랑스럽게 생긴 어린아이지만 그 내면에는 가혹한 훈련을 놀이처럼 여기고 즐겁게 생각하는 파탄난 정신이 존재한다.

    살인.

    암살.

    그마저도 다르지 않을 것은 명백했다.

     

    “재단과 파파를 나쁘게 말한다면 아무리 용사라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진실.

     

    “패륜을 강요하는 못된 용사는 용사를 자처할 자격이 없어요!”

     

    진실.

     

    용사를 동경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적으로 돌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마치 언젠가 용사의 적이 될 날이 찾아올 것처럼.

    다 큰 성인들도 두려워하는 미래를.

    어엿한 거대조직의 수장들도 용사에게 찍혀 악의 조직으로 낙인찍힐 것을 두려워하건만, 이 작은 아이에게는 조금의 두려움조차도 없었다.

    두려움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려워하지 않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이미 어엿한 암살자를 넘어서 차세대 마왕후보로 교육받고 자랐다.

     

    “참나. 자기가 먼저 도와달라고 했으면서.”

     

    50kg이 넘는 중량을 차고 다니게 만들고.

    불타는 링에 동급생을 뛰어들게 만들고.

    날카로운 단검 다섯 개를 공중에 세운 밧줄 위에서 저글링 하도록 강요한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조차 안한다.

    자기도 거쳤던 과정이니까.

    그녀에게는 단순한 수련이자 놀이니까.

    그러니 선악의 경계도 불투명하다.

     

    ‘깨달았어. 저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약한 지금 죽여야만 한다고.’

     

    하지만 저렇게 어리고 순진한 아이를?

    선악의 경계가 모호하다함은, 악에 쉽게 빠질 수 있어도 언제든지 선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죽이지 않고.

    해치지 않고.

    적으로 돌리지 않고.

    어떻게든 저 아이를 선한 길로 인도할 방법이.

     

    ‘유피의 도움이 필요해.’

     

    그녀의 오랜 친우이자 첫 번째 동료, 유피.

    성녀의 이해심과 자비심이 필요했다.

    이슈타르는 돌아섰다.

    그리고 다짐했다.

    지금은 이대로 순순히 물러나지만 다음에는 다를 거라고.

    언젠가 저 가엾은 아이에게 그녀가 겪은 것은 놀이도 수련도 아닌 학대이고, 그녀의 파파는 좋은 사람이 아니며, 재단이 악의 조직임을 이해시키겠다고.

     

     

    * *

     

     

    “좋아? 특훈 그만두니까?”

    “미안, 오크노디… 체력이 딸려서 이 이상은 도저히 무리야.”

    “약골이네, 정말. 뭘 먹고 자라서 이 나이 먹도록 건강이 이렇게 약해?”

    “흑빵이랑 잡탕수프?”

    “으휴. 엑스트라 아니랄까봐 도감수집률 상태가 참 레전드네.”

     

    할 만큼은 했다.

    오크노디가 시킨 특훈을 다 끝마치지는 못했지만 전보다 검의 궤적이 균등하고 칼끝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몸이 생각한 대로 움직이고, 전에는 백 번 칼을 휘두르면 두세 번 느껴졌던 좋은 느낌이 이제는 열 번에 한번 꼴로 늘어난 느낌.

    칼 휘두르기 대신 중량적응훈련과 곡예기행만 벌였음을 생각하면 왜 강해졌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래서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괜히 1학년 공동수석이 아니었구나.’

     

    특훈을 마치고 쥐 죽은 듯이 기숙사로 돌아가 한숨 자고 일어난 뒤.

    평소보다 묘하게 빨라진 체력회복속도와 올라온 컨디션에 몸이 건강해졌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마나검증시험.

    낙제가 걸린 대망의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모브. 준비는 어때? 꽤 험한 수련을 했다는 소식이 자자하던데.”

    “딱 좋아. 몸도 마음도 최고의 컨디션이야.”

     

    막말로 어떤 시험이 나오더라도 50kg 중량을 덕지덕지 매달고 불타는 링을 뛰어넘는 기행이나 줄 위에서 날이 섬뜩하게 세워진 단검 다섯 개를 저글링하는 것보다는 쉬울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쿠. 넌 어때?”

     

    오랜 친구는 어딘지 모르게 초연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됐어.”

    “멘토링이 도움이 많이 됐지?”

    “그래. 도움은 되더라. 일주일만 더 빨리 받았더라면…”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표정이 안 좋다.

    느낌이 이상하다.

    자쿠 녀석, 잠을 설치기라도 했나?

    대화라도 나눠서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냐고 긴장을 풀어주고 싶었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바깥에서부터 들리는 수많은 발걸음 소리.

    유독 많은 조수들을 몰고 다니는 반 스네이크 교수님의 등장을 알리는 소리에 괜스레 느낀 불안을 해소할 기회를 놓쳤다.

     

    “자쿠!”

     

    주먹을 들며 힘내라고 응원하는 것이 최선.

    자쿠 역시 주먹을 마주 들며 그를 응원했다.

    드르륵.

    강의실 문이 열리며 마침내 교수가 나타났다.

    이제 시험은 피할 수 없다.

     

    “지난 4주간의 시간이 유의미했는지, 헛된 시간낭비였는지를 증명할 때다. 모두들 최선을 다하도록.”

     

    하급반 4주차 공통필수강의 시험, 마나검증시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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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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