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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1

       ​

        “…아직 멀었습니다.”

        ​

        “한 번만 더 넘으면 초절정일 텐데, 그 정도면 대단하지.”

        ​

        나도 미친 듯이 빨리 경지를 올렸지만 목경이는 서너 달 만에 절정 끝자락까지 경지를 끌어올린 걸 보면 괜히 주인공이 아니네.

        ​

        아마 이번 일을 해결하면서 실전 경험 좀 그득하게 쌓아주면 머지않아 나와 같은 경지에 도달하겠지.

        ​

        그 전에 차이를 좀 벌려놓고 싶지만…그게 마음대로 될 리가 없다. 차라리 혜령이를 절정고수로 만드는 게 더 쉬우니, 한동안은 혜령이를 집중적으로 봐주든가 해야지.

        ​

        나 혼자만 강해져선 의미가 없으니까.

        ​

        “등에 멘 건 비동에 있던 물건이야?”

        ​

        “그렇습니다. 비급 몇 권과 검과 도장과 벽에 새겨진 검흔뿐입니다만…”

        ​

        “이런 상황에 미리 대비해둔 것 같은데.”

        ​

        마치 멸문당할 것을 알기라도 하듯이.

        ​

        나는 갑자기 급부상한 의문점에 턱을 긁적이며 내 맞은편에 앉은 목경이를 쳐다보았다. 목경이는 머리와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는, 모닥불에 시선을 고정했다.

        ​

        “아버지께서 가문이 습격당할 것을 대비해 미리 운남단가의 비급과 가주의 증표인 검을 이곳에 숨겨놓으신 듯합니다.”

        ​

        “철두철미한 분이셨군.”

        ​

        “…언제나 모든 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으셨던 분이셨죠.”

        ​

        모든 일에 대비해야 한다라.

        ​

        “유산은 찾았으니, 몸을 추스른 후에 사혈방을 칠 준비를 하자.”

        ​

        “…셋이서 말입니까?”

        ​

        “사람이 많아지면 귀찮아질 뿐이야. 우린 사혈방주만 잡으면 돼.”

        ​

        사혈방에 쳐들어가서 죄다 밀어버리는 게 더 쉽겠지만, 굳이 사람을 더 많이 죽이는 선택을 고를 필요는 없었다.

        ​

        손에 피를 최소한으로 묻힐 방법이 있는데도, 피를 더 묻히려 하는 건 살인귀나 하는 짓이니까.

        ​

        천살성이 아닌 이상에야 그런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

        요 근래 전장에서 싸우던 시절의 기억이 자꾸 떠오르는 것도…

        ​

        그리 좋은 징조는 아니었으니.

        ​

        “…놈을 죽일 기회를 제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물론. 그놈을 죽이는 건 네 몫이다. 나는…그저 기회를 만들어 줄 뿐이지.”

        ​

        “감사합니다…은공.”

        ​

        “그게 내가 내건 조건이었으니.”

        ​

        “…은공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만남은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

        첫만남이 좀 미묘하긴 했지. 내가 뜬금없이 찾아와서 단목경이 맞냐고 물었으니. 목경이 입장에서 참 당혹스러운 이야기긴 했겠네.

        ​

        “원래 만남이란 건 예기치 않은 거지.”

        ​

        계획된 만남이 아니라면 모든 만남은 우연이니까.

        ​

        “아저씨이…”

        ​

        무슨 꿈을 꾸고 있길래 헤실헤실 웃는 걸까. 나는 몸을 뒤척이며 뒤로 쓰러질 뻔한 혜령이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그러자 혜령이는 노렸다는 듯이 내게 몸을 바싹 붙였다.

        ​

        …자는 거야, 아니면 자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달라붙는 거야?

        ​

        “…혜령 소저는 남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지요.”

        ​

        “그렇긴 하지.”

        ​

        사실 여자들 시선도 잡아끄는 것 같은데.

        ​

        나는 목경이의 시선이 혜령이의 가슴께에 머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

        “…니다.”

        ​

        “뭐라고?”

        ​

        “아무것도 아닙니다.”

        ​

        너무 작게 말해서 제대로 못 들었는데. 뭐라고 중얼거린 거지?

        ​

        궁금증을 담아 목경이를 쳐다보았지만, 목경이는 어색하게 눈을 내리 깐 채로 내 시선을 피했다. 삽시간에 어색해진 분위기가 우리 둘 사이에 자리 잡았을 즈음, 나는 혜령이를 끌어안은 채로 몸을 일으켰다.

        ​

        “슬슬 자자. 내일 아침부터 바빠질 테니.”

        ​

        “…예, 은공. 안녕히 주무십시오.”

        ​

        나는 담요를 꺼내 바닥에 깔고 혜령이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담요 위에 드러누운 혜령이는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진 채로 몸을 뒤척였다.

        ​

        “으음…아저씨…엉큼해요…”

        ​

        도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거야.

        ​

        나도 모르게 목경이에게로 시선이 간다. 목경이도 혜령이의 잠꼬대를 들은 듯, 어색한 미소로 내게 화답해왔다.

        ​

        “…잘 자라.”

        ​

        “은공도 안녕히 주무십시오.”

        ​

        우리는 밤하늘의 별을 이불 삼아 자갈밭에 드러누웠다.

        ​

        —————————-

        ​

        “어때요? 이제 많이 능숙해졌죠?”

       

        “처음 했을 때보단 훨씬 낫네.”

        ​

        “헤헤.”

        ​

        열심히 가르친 보람이 있네. 처음에는 야채를 자르려다 도마까지 잘라버려서 애꿏은 생돈이 나갔었는데, 이제는 나름 능숙하게 재료도 다듬고 요리도 할 줄 알게 된다니.

        ​

        …가르친 게 야매요리긴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나 대신 요리 담당을 맡아도 되지 않을까.

        ​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하셨군요.”

        ​

        “열심히 연습했거든! 꿈에서도 연습했어!”

        ​

        무림인이 꿈속에서까지 요리 연습이라. 이걸 칭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한 발언이네. 나는 혜령이의 귀여운 모습이 피식 웃으며 즉석에서 만든 나무젓가락을 모닥불에 던져넣었다.

        ​

        “오늘은 운남성의 성도인 곤명으로 간다. 썩어도 성도니까 뭔가 유용한 정보를 구하기엔 거기만 한 게 없겠지.”

        ​

        사혈방의 본단이 있다는 원강으로 바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원강에 가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닐 것 같았다.

        ​

        사혈방은 현재 거대한 세력을 자랑하는 방파. 그런 방파가 과연 도시를 장악하지 못했을까.

        ​

        원강의 하오문이 멀쩡한지 알 수도 없거니와, 사혈방이 하오문지부에 간자를 심어두지 않았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

        그런 상황에서 아무 생각 없이 바로 원강으로 달려가는 건 지양해야지.

        ​

        나야 어떻게든 되겠지만, 목경이나 혜령이는 위험할 수 있으니까.

        ​

        “곤명에서 하오문지부에 방문하는 거예요?”

        ​

        “맞아. 하오문지부에 가서 일단 사혈방에 대한 정보를 더 찾아본다. 성도에 있는 지부가 운남에선 가장 클 테니 거기엔 뭐라도 있겠지.”

        ​

        다른 지부는 겉도는 수준의 정보밖에 없었지만, 곤명지부라면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으리라.

        ​

        “그럼 곤명 지부에 갔다가 사혈방주가 있는 곳으로 가는 거네요?”

        ​

        “정답이야.”

        ​

        “이번에도 엄청 뛰어다녀야겠네요. 덕분에 경공 실력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 같아요.”

        ​

        “…호북에서 하북까지, 호북에서 운남까지 경공을 펼쳤으니 천 리를 넘게 달렸을지도 모릅니다.”

        ​

        그렇게 많이 뛰었으니 경공 실력이 안 늘래야 안 늘 수가 없지. 내 경공도 더 다듬어져서 이제 내공 소모도 어느 정도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됐고.

        ​

        “뛴만큼 보상이 뒤따를 테니 오늘도 발바닥에 불붙도록 경공을 펼쳐보자고.”

        ​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경공을 펼쳤다. 내 시야의 양 끝 쪽에 긴 잔상이 눈을 간지럽힌다. 전보다 더 빨라진 덕이었다.

        ​

        아직 수상비니 초상비니 궁신탄영이니 하는 기예를 펼치기엔 많이 부족하지만, 평생 경공이라곤 배워본 적도 없는 기사가 이 정도 펼치는 게 어디야.

        ​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유용한데.

        ​

        …갑옷을 입고 펼칠 수 있냐 없냐가 문제지만.

        ​

        몸에 얼추 50근짜리 갑옷을 입고 경공을 펼치는 건 아직 시도해보지 못한 영역이었으니까.

        ​

        맨몸 검술과 갑주 검술이 다르듯이, 갑옷을 입은 상태에서의 경공을 펼치려면 더 큰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

        불현듯 떠오른 새로운 과제에 경공을 펼치기를 반나절. 우리는 문산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개원(開遠)에 도착해 방을 잡고 여독을 풀었다.

        ​

        당연하게도 방은 3개.

        ​

        목경이가 여자인 것을 알게 된 이상 같은 방에서 잘 수는 없으니 당연한 일.

        ​

        혜령이는 목경이와 같이 자도 된다고 했지만, 목경이가 생각할 것이 있다며 방 3개를 잡아달라고 요청했기에 나는 목경이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

        목경이가 나에게 부탁을 하는 건 드문 일이었으니.

        ​

        “아저씨, 하오문지부는 언제 가려구요?”

        ​

        “이제 가봐야지.”

        ​

        “다녀오세요~”

        ​

        “다녀오십시오.”

        ​

        둘의 배웅을 받으며 방을 나선 나는 삿갓을 푹 눌러썼다. 내 눈에 띄는 외모를 최대한 덜 노출하려면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

        이렇게 해도 키가 커서 제대로 가려지지는 않지만.

        ​

        “여기 하오문지부는 어디 있을까.”

        ​

        사람들이 모인 장터를 지나 골목길에 들어선다. 어둠침침한 골목은 축축하고 기분 나쁜 공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골목 안쪽 깊숙이 들어갔다.

        ​

        하오문지부를 찾으려면 음지에 들어서는 게 나았으니까.

        ​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

        나는 허름한 옷차림을 한, 거친 인상의 사내들이 모여있는 길거리에 도착했다. 칼을 차고 있는 걸 보니 낭인인가.

        ​

        낭인들이 모여 있는 걸 보니 여기 어딘가에 의뢰를 맡기는 중개소가 있을 듯한데. 

        ​

        내게 쏠리는 시선을 무시하며 얼마나 더 걸었을까, 나는 중개소로 보이는 전각을 발견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전각으로 들어가, 곰방대를 문 채로 책상에 턱을 괸 중년의 남성에게 다가갔다.

        ​

        “이보시오.”

       

        “어, 또 뭐…?!”

        ​

        뭘 그리 놀라. 색목인 처음 보나.

        ​

        나는 얼빠진 얼굴로 곰방대를 떨어트린 남성이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 책상을 손가락으로 세 번 두드렸다. 

        ​

        “사, 사자검협께서 여긴 어인 일로…”

        ​

        “하오문. 어딘지 아나?”

        ​

        “이곳에서 나가 좌측으로 걷다 보면 황가객잔이란 곳이 있소이다. 그곳에서 접선하면 될 것이오.”

        ​

        “고맙군.”

        ​

        나는 은근슬쩍 상 위에 은자를 하나 올려놓고는 등을 돌렸다.

        ​

        “…저자가 사자검협?”

        ​

        “듣던 대로 기골이 장대하군.”

        ​

        “색목인들은 다 저런가?”

        ​

        쑥덕거림을 흘려넘기고, 황가객잔을 향해 걸어간다. 다행스럽게도 황가객잔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

        나는 곧장 문을 열고 황가객잔에 들어갔다.

        ​

        그리고, 나는 문 바로 앞에서 나를 향해 포권을 하고 있는 남성을 발견했다.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

        이미 내가 온 거 알고 있었구만.

        ​

        나는 남성을 따라 객잔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피부에 염증 생기니까 죽겠네요…

    간지러워 죽을거가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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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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