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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1

       하프 드워프의 공방에서 불의 정령 샐러맨더를 만나고 난 후, 나는 곧바로 그간 있었던 일을 대략 알아들을 수 있었다.

         

        최근, 정확히는 한 달쯤 전부터 대기 중의 마력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2주일쯤 전부터는 아예 고갈이 나 버렸다는 것.

         

        그리고 그에 더불어 대기 중을 돌아다니던 바람의 정령이나 빛의 정령들도 함께 사라져 버렸던 것.

         

        그리고 용광로에 남아있던 미약한 마력으로 버티던 본인이 거의 소멸하기 직전일 때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 냄새를 맡고 튀어나왔다는 것이 이 샐러맨더의 설명이었으니.

         

        그 정도의 이야기만으로도 지금 이 마을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추측하기 충분했다.

         

         

        ‘마나 드레인 계열의 광역 마법이려나…?’

         

         

        일단, 이 정령이 말하는 이야기만 들으면 그런 쪽의 가능성이 제일 유력했다.

         

        거기에 더해, 방금 샐러맨더가 내게 한 설명을 통해 이 마을 사람들의 기운이 영 좋지 않아 보였던 원인도 파악할 수 있었고.

         

         

        ‘대기 중에 자연 마력이 없었으니까. 당연한 현상이지.’

         

         

        귀족만이 마법을 쓸 수 있는 세계라고 해서 평민이나 동물의 몸속에 마력이 흐르지 않는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세계관에서는 사실 그렇지만도 않았다.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의 몸에는 마력이 흐른다. 물론 평민의 마력 최대량은 어지간한 귀족에 비하면 미약한 정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흐른다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이 세계의 인간은 항상 자신의 몸에서 생성해 낸 체내 마력과 자연 속에 녹아드는 자연 마력을 순환시키며 활기를 얻는 체질을 지니고 있었으니.

         

        대기 중의 마력이 없는 지금은 마을의 모든 사람이 피곤함에 절어있는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자연에서 얻는 마력은 없이 끊임없이 생산 후 방출하기만 하고 있으니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금세 기운이 빠질 수밖에. 나 같은 경우에는 새어나가는 양보다 자체적으로 몸에서 생성하는 마력이 더 많은 수준이라 상관없었지만.

         

        그리고 드워프는 기본적으로 마력에 의해 컨디션을 덜 받는 종족이니 상대적으로 멀쩡할 터였다. 하프 드워프라고는 해도 절반은 드워프의 성질을 띠고 있으니까.

         

         

        ‘근데…에단은 왜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기분이 침울해졌던 거지?’

         

         

        얘도 기본적으로 귀족이라 마력 최대량이 평범한 인간들보다 많은 녀석이라 겨우 이런 환경에서 늘어질 만한 녀석은 아닌데 말이지.

         

        그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나중에 따로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

         

        아무튼, 대기 중의 마력을 소집하는 것은 평범한 인간은 사용할 수 없는 종류의 스킬이었다. 보통은 마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마족들 혹은 정령들이나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지.

         

        다만, 일반적으로 정령들은 굳이 인간 사회에 내려와서 피해를 줄 만한 행동을 하는 녀석들도 아니었고, 애초에 마을 한 개 규모의 마력을 광역으로 흡수할 수 있는 녀석은 정령 중에는 정령왕 급은 되어야 할 테니.

         

        그런 녀석이 이런 작은 마을에 강림했을 리 없으므로 마족이라고 판단하는 게 합리적이겠지.

         

        그것도 제법 고위 마족에 해당하는 녀석으로.

         

         

        “…….”

         

         

        고위 마족이 연관되어 있다는 발상이 들자마자 내 마음속의 위기 감지 센서가 발동되는 느낌이었고.

         

        여기서 더 개입하는 건 더 좋지 않으리라는 직감이 든 내가, 샐러맨더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이야기는 잘 들었어요, 샐러맨더 씨.”

         

        ‘어떻게 된 건지, 혹시 알아?’

         

        “네. 대충 무엇이 원인인지 정도는 파악했으니까요.”

         

        ‘야호! 그럼 도와주는 거지?! 느껴지는 미약한 마력의 흐름을 따라가면, 아마 마력이 모이는 곳은 이 산 반대편쯤….’

         

        “에단 도련님, 한시라도 빨리 블랙우드 저택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 근처에서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는 것 같으니까요.”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굳이 귀찮은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마을 전체의 마력을 빨아들일 정도로 위험한 마족을 처치하고 사람들에게 닥친 원인 모를 피로를 해소해주라고?

         

        누가 봐도 이건 용사가 해야 하는 일이잖아. 일개 메이드 따위가 신나서 하겠다고 나설만한 문제가 아니라고.

         

         

        ‘왜, 왜애애?! 도와주는 거 아니었어?!’

         

        “왜 그래, 릴리스? 정령이 위험한 일이래?”

         

        “네. 샐러맨더가 이 근처에 있으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지금 당장 마을을 떠나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나 그런 말 안 했어! 너 왜 거짓말해?! 왜 그냥 가려는 건데?! 왜애애?!’

         

        “마을 전체의 마력이 전부 사라진다는 건 틀림없이 이상 현상의 징조입니다. 저희 수준에서 섣불리 개입할 수는 없죠. 이 현상의 근원지도 모르고요.”

         

        ‘사아안!! 산 반대편에 있다고 했잖아~! 저쪽으로 마력이 흘러가고 있다고~! 도와달란 말이야~!’

         

         

        쫑알쫑알 시끄럽네, 거 진짜.

         

        아무리 나에게 매달려서 물고 애원해도 소용없다. 오늘 생판 처음 보는 사람, 아니, 오늘 생판 처음 보는 정령을 위해 목숨을 건 전투를 할 정도로 나는 인정 많은 녀석이 아니었으니.

         

        사실 원래 스토리에서 죽었을 뻔한 리지를 구원했던 것도 일종의 변덕과도 같은 행동이었고, 그에 더해 내 목숨을 보전하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니까.

         

        그나마 게임 속에서 존재를 알고 있던 녀석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게 찝찝해서 개입했던 거지, 만약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다른 귀족 영애가 습격을 받을 상황이었다면 당연히 끼어들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 사람도 아니고 정령을 위해 목숨을 걸라고? 한 번 소멸해도 수십 년 정도 있으면 부활하는 영원불멸한 녀석을?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개입할만한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 반대로 도망칠 구실이라면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고.

         

         

        ‘인간, 나빠! 나는 도와줄 줄 알고 전부 말해준 건데! 배신자! 거짓말쟁이!’

         

        “소멸할 뻔했던 거 마력 먹여서 살려줬으면 적당히 고마운 줄 알 것이지, 왜 귀찮게 엉겨 붙고 지….”

         

        “…릴리스? 정령이랑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소곤소곤 나누고 있어?”

         

        “…아니요, 에단 도련님. 아무래도 이 정령 씨가 제 마력이 마음에 든 모양이라 떨어지고 싶지 않다고 하셔서요.”

         

        ‘그런 말 안했다니까아! 네 마력이 맛있는 건 맞지마안!’

         

         

        내가 샐러맨더와 나누는 대화에 관해 묻는 에단의 말은 적당히 얼버무렸고.

         

        좀처럼 포기를 모르고 내 팔에 엉겨 붙어오는 샐러맨더를 억지로 떼어내 다시 용광로에 밀어 넣으려는 순간, 하프 드워프 장인의 목소리가 내 옆에서 들려왔다.

         

         

        “방금, 원인을 파악했다고 말하지 않았나?”

         

        “……네?”

         

        “용광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날로부터 벌써 2주일이나 지났네. 이제 한 달만 있으면 수확 철이라 농기구가 한창 필요한 시기인데도 말이지. 우리 마을이 비록 작은 마을이고 하프 드워프는 나 하나뿐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또 하나의 고향 같은 장소일세.”

         

        “아, 네….”

         

        “만약 고쳐주기만 한다면 자네가 사용할 검 한 자루는 가장 먼저 만들어서 건네주도록 하지. 손가락에 물집이 잡힌 형태를 보니 단검을 주로 사용하는 것 같은데.”

         

        “…….”

         

        “원인을 파악했다면 해결 방법도 알고 있는 것 아닌가? 혹시, 자네들의 힘으로는 해결해 줄 수 없는 겐가?”

         

         

        …하아, 진짜.

         

        왜 이 아저씨는 사람 부담되게 갑자기 사연 같은 걸 읊기 시작하는 건데.

         

        그런 말을 하면서 나를 바라보니까 괜히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잖아.

         

        물론 드워프 장인이 만든 단검이라는 게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만약 이게 게임 속이었다면 망설이지도 않고 퀘스트를 받아들였겠지만, 실제로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생각 없이 임무를 받아들이는 건 상당히 미련한 행동이었다.

         

         

        특히, 일단 받아놓기만 해놓고 나중에 천천히 깨도 상관없는 게임 속에서의 퀘스트와는 다르게 현실이 되어버린 퀘스트는 여러 의미로 시간의 제약까지 붙어있는 상황이었으니.

         

        받아들이는 순간 일종의 구속 계약이 되어버릴 것 같은 이 수상쩍은 제안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일 수는….

         

         

        ‘나, 나도! 나도 검 만드는 거 도와줄게!’

         

        “…네?”

         

        ‘이, 인간들은 무기에 우리가 축복해주면 더 좋아한다며?! 저 난쟁이가 만드는 무기에 내 축복도 함께 더해줄 테니까! 그러니까 부탁해! 제발~!’

         

        “…….”

         

         

        화염 정령의…축복…?

         

        그것도 드워프가 벼려낸 단검에…?

         

         

        ‘미친…. 그 정도면 거의 에픽급 장비잖아….’

         

         

        아무리 나라고 해도 망설일 수밖에 없는 하프 드워프와 샐러맨더의 제안에 내 마음은 갈등할 수밖에 없었고.

         

        내 마음속의 욕망을 어떻게든 가까스로 참아내며 일단은 에단에게 조심스레 의견을 구했다.

         

         

        “에단 도련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응?”

         

        “도련님께서는 여기 계신 드워프 장인분을 도와 마을의 정상화에 힘을 쏟으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미지의 위험을 마주칠 걱정을 염려하여 이 마을에서 걸음을 떼시겠습니까?”

         

        “…릴리스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저는 그저 도련님의 의견에 따를 뿐입니다.”

         

        “…….”

         

         

        내가 건넨 전속 메이드로서의 대답을 듣고 턱을 잡으며 고민하는 에단의 모습.

         

        나는 물론이고 하프 드워프와 샐러맨더의 시선까지 그에게 집중된 순간이었으니.

         

        에단의 입에서는 조금 방어적이면서도 모두가 원하는 대답이 조심스레 되돌아왔다.

         

         

        “…일단, 조사뿐이라면.”

         

        “네?”

         

        “원인이 무엇인지 조사부터 하고,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때만 해결하는 것으로 하자. 만약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분야의 사건이라면 그때는 피해야 하겠지만.”

         

        “알겠습니다. 에단 도련님의 의견이 그러하시다면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도와주는 거야? 정말로?!’

         

        “협력해주는 겐가?”

         

        “일단은 원인을 파악하는 조사부터입니다. 저희가 해결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문제를 파악한 후에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알겠네.”

         

        ‘앗싸~!’

         

         

        에단과 나 단둘이 조사에 들어가기에는 조금 위험한 이벤트일 것 같기는 했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마냥 거절하기에 에픽급 장비는 너무나도 아까운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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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망나니 공자의 메이드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transmigrated into a character from my favorite game in my previous life. Moreover, as the character I despise second most in the game. (Not a wasteman) The cover was designed by Deep Dark Wolf, and the typography was done by 유일유화 (Yu Ilyu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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