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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1

       142. 후회성녀는 시간을 달린다(5)

       

       

       어쩌면 이건 예정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숨겨야 하는 사정이 있는 탓에 속이 썩어들어가도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상황. 

       

       그와 반대로 황족이라는 신분 덕에 돈은 차고 넘치도록 있다. 그런 상황에서 율리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선택할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술과 도박. 

       덤으로 약간의 행패와 갑질.

       

       갑갑한 처지와 고립은 한 순진무구한 소녀를 완벽한 망나니로 전락시켜버린 것이다. 

       

       어찌나 괴로웠으면 저리 망가졌을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긴 한데….

       

       “…너희 짰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없어.”

       

       포커페이스는 개나 줘버리고, 그냥 자기 얼굴에 패를 써놓는 듯한 플레이를 해놓고선. 자기가 지니까 추하게 소리치는 모습.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야?!”

       

       신분을 감추려고 위장까지 해놓고서 자기 신분을 못 알아보고 무례를 범했다며 꼬장을 부리는 모습.

       

       “이 XXXX XXXX XXX XXX XX가….”

       

       성인조차 성인물을 볼 수 없는 유교국가 출신 국민으로서 너무라도 상스러워 입에 담는 것조차 불가능한 폭언. 

       

       그런 욕을 걸쭉하게 내뱉는 모습.

       

       “오랜만에 나왔는데 하필이면 저런 좆 같은 새끼를 만나가지고.”

       

       한숨을 푹푹 내쉬며 독한 술 한 병을 병나발째 들이키고는… 그걸로도 성이 안 찼는지 빈 술병을 아까 그 아저씨한테 던지는 행위까지.

       

       ‘이건 좀 너무 나갔지 않나….’

       

       자연스레 내 입에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일단 명색이 호위기사 아니던가.

       저딴 짓을 벌이고 들켰다간 안 그래도 나락까지 떨어져 있던 평판이 더 개판이 날 것이 명백한 상황.

       

       저런 걸 막아주는 것도 내 일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그거라면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바로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누가 잘못했는지는 뻔하지 않은가.

       

       나는 바로 달려가가지고는….

       

       “뭐냐 넌? 어린애가 무슨 갑옷까지 입고 기사 흉내를…….”

       

       -까앙!

       

       그 대머리 사내의 대가리를 내리쳤다.

       

       빨갛게 달아오른 머리. 

       남자가 벙찐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저놈들이 아까 그 카드놀음에서 부정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우리 황녀님이 아주 제대로 꼬장을 부려서 딴 돈도 제대로 못 가져갔는데.

       

       그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얻어맞았으니 당황스러워 할 수밖에.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꼬우면 너도 황족으로 태어났어야지.’

       

       원래 세상이란 게 그러하다. 

       

       상대방의 신분을 몰랐어도, 무례를 범한 게 아니라 저쪽이 그냥 일방적으로 기분이 상한 거여도. 

       

       율리가 황족인 이상 누가 잘못했는지는 명백했다.

       

       그녀가 여태까지 고생해 온 것도 알고 전작을 플레이하며 붙인 정도 있기에. 나도 웬만하면 그녀를 감싸 주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뭐, 이 죄없는 아저씨한테 미안함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솔직히 이놈은 운이 좋은 편이지.’

       

       내가 그나마 인도적인 편이여서 그렇지. 다른 놈한테 걸렸으면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목이 달아났을 거다.

       

       복날 개처럼 쳐맞고 있는 지금은 나를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겠지만, 사정을 알면 이놈도 나한테 감사해할 거다 아마.

       

       제국에서 황족 기분을 상하게 했는데. 

       그게 이 정도로 끝나면 정말 천운이지 뭐.

       

       나는 그렇게 간단히 자기합리화를 마치고는 다시금 황녀님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기분은 풀리셨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내가 다시 마주한 건….

       

       “……?”

       

       그 잠깐 사이 뭐라도 잘못 먹었는지.

       참으로 괴상한 표정을 하고 있는 황녀님의 얼굴이였다.

       

       *****

       

       “대체 어떻게 안 거야?”

       

       만취한 3황녀의 입에서 자연스레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방금 그녀의 눈앞에서 벌어진 행위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분명 이럴 때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잖아.’

       

       겉으로 봤을 때. 누가 잘못했는지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황족이라는 신분이 있긴 하지만….

       

       저놈은 호위기사.

       다시 말해서 소드마스터 급의 전력이다.

       

       약소하다,는 수준을 넘어서 렌야가 깔아뭉개려고 작정하면 언제든 묻어버릴 수 있는 그녀 정도에게 쩔쩔맬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 저 소년이 보였어야 할 반응은 정해져 있었다.

       

       망나니 소문은 사실이였다며, 이런 썩은 동앗줄을 붙잡아버린 자신의 처지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잔소리를 내뱉는 것이다.

       

       더 이상 나쁜 소문이 나면 위험하니 제발 조용히 넘어가달라는 이야기도 하고 말이다.

       

       헌데 저 소년은 그러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를 한심하게 여기는 기색조차 없었다.

       

       그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을 뿐.

       

       “못 봤을 줄 알았는데. 소드마스터는 진짜 천리안이라도 있는 거야?”

       

       그렇기에 그런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시온의 얼굴은 여전히 의문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녀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세.

       

       지금 이 상황.

       그것이 말해주는 사실은 명백했다.

       

       ‘모르고 있어.’

       

       아까 정말 있었던 일.

       그걸 저 소년은 모르고 있다.

       

       그녀가 그렇게 화를 낸 건 도박에서 져서가 아니라, 한 사내가 테이블 밑으로 몰래 그녀의 다리를 추잡하게 문질러서라는 것을.

       

       기분이 더럽긴 하지만. 이런 걸 공론화시킨다면 저놈만 죽는 게 아니라 저놈의 가족까지 목이 달아날 터이니.

       

       최대한 조용히 일을 끝내기 위해 눈치를 줬는데.

       

       저놈이 취해서 사리분별이 안 되는 것 같으니 좀 자제시키라는 암묵적인 이야기.

       

       그것을 듣고 기분나쁜 미소를 짓는 다른 사내들을 보고, 모두가 한패라는 걸 깨달은 그녀가 했던 말이….

       

       -너희 짰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없어.

       

       언뜻 도박에서 져서는 괜한 트집을 잡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였다는 것까지. 그런 전후사정을 저 소년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모르고도 그런 짓을 한 것이다.

       

       “그러면 왜 저놈들을 때린 거야?”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상황.

       그렇기에 그녀는 시온에게 그리 물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그야… 제가 황녀님 편이니까요?”

       

       단순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뜬금없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는 듯,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는 그리 이야기하는 시온의 모습.

       

       …참으로 괴상하기 그지없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여기서 잘못한 건 누가 보아도 그녀였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이가 보았을 때, 그녀는 그저 취해가지고는 꼬장을 부리는 취객일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헌데 그럼에도 저 소년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저놈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응징하였다.

       

       그건 따지고 보면 비도덕적이고 비이성적인 행위다. 분명 그럴 터인데….

       

       어째서일까.

       올라가는 입꼬리를 부여잡을 수가 없다.

       

       ‘내 편…. 내 편이라….’

       

       사정 따위 상관없다.

       누가 잘못했는지 따위 상관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

       

       그건… 뭐라고 해야 할까.

       

       글이랑은 영 맞지 않아 책을 멀리한 그녀의 어휘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기분좋은 일이어서.

       

       소녀는 조용히 고마워, 라는 말을 흘리고는. 다시금 쾌활하게 웃으며 자신의 기사와 함께 술을 들이킨 것이었다.

       

       *****

       

       이변이 생겼다.

       계획에 계속해서 차질이 생기고 있다.

       

       그렇기에 제국의 소드마스터 하인리히.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런 신분으로 자신을 숨기고 있는 ‘성황청의 교황’은 말 없이 인상을 찌푸렸다.

       

       렌야.

       승리의 여신에게 축복받은 성자에게 걸어둔 위장술식이 잠깐 해제된 것도 신경쓰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율리 그 아이지.’

       

       빛의 성녀에게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그래서는 안 된다.

       철저하게 고립당하여, 모든 것을 원망하고, 모든 것을 저주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계획이 이루어진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시체.

       축복받았을 뿐인 용사를 통해서도 그러한 간섭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성녀가 필요하다.

       

       빛의 신을 타락시킨다니.

       그런 일을 성녀 없이 이루어낼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시온.’

       

       기억도 지우고 신성력도 박탈시켰는데도, 본능적으로 기막히게 이기는 편에 서려는 렌야.

       

       그놈이 기묘할 정도로 그 꼬마를 아끼는 것부터,  어째서인지 성녀에게 계속 달라붙어 있는 것까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놈이 모든 계획을 망쳐놓을 것이다.

       그런 예감이 계속해서 들기 시작한다.

       

       성검을 탈취하고 드워프들을 대거 납치한 아마 성검을 복구시켰을 터인 검은 송곳니 단장.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 그 골치아픈 방해물과 버금갈 정도의 거슬림이다.

       

       혹시 동일인물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물론, 본인이 마나에 대고 검은 송곳니가 맹세하는 걸 2황자를 보필하며 몰래 들었고. 

       

       상식적으로 본인이 검은 송곳니인걸 모르는 검은 송곳니 단장이라는 괴상한 존재가 있을 리 없으니. 이건 너무 허황된 추측이겠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참으로 거슬리는군.’

       

       그런 생각을 하며 하인리히는 다시금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것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단순한 이야기다.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치워버리면 그만 아니겠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은 무척이나 단순하다.

       

       계획에 차질 따윈 없을 것이다.

       

       멸망은 곧 다가오리라.

       모두가 함께 지옥에 떨어지겠지.

       

       그렇게 되면….

       그 아이도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서 백발의 노인은 초점없는 눈동자로 기분나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언제나 무뚝뚝하지만, 그래도 날 많이 좋아하셨던 사랑하는 우리 할아버지.

    잘 보내드리고 왔습니다.
    이런 일은 난생 처음 겪는 거라 조금 혼란스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틀어박혀만 있는 건 할아버지한테도 못할 짓이겠지요.

    원래대로 주 5회. 최대한 지켜가면서 성실히 연재해 보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Ilham Senjaya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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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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