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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1

       헤헤.

       겨울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가장 많은 돈을 벌었음에도 음료수밖에 사 주지 못해 미안했는지, 하얀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옷자락을 말아쥔 작은 손과, 힘없이 가라앉은 귀가 안쓰럽다.

       음료수 따윈 필요도 없는데.

       대체 이 작은 수인족 아이에게 왜 빚이 생겨버린 걸까?

       

       신서연은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주위만 둘러보았다.

       멀리서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던 강진호가 다가온 것이 그때였다.

       

       “괜한 돈 쓰지 마. 이거 끝나고 회식 있으니까.”

       

       강진호가 음료수를 살 필요 없다며 손을 내 젓는다.

       신서연은 회식 따위가 없음을 알고 있었으나, 찾아온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마, 맞다. 우리 회식 있었지?”

       

       “그런 게 있었어요···?”

       

       “응. 교육 끝나고 다 같이 맛있는 거 먹기로 했는데, 기억 안 나?”

       

       “아··· 저는 몰랐어요.”

       

       당연히 모르겠지.

       지금 막 지어낸 이야기니까.

       신서연이 한숨 돌리는 순간에 강진호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거 어떻게든 해야겠는데.’

       

       돈은 갚지 않아도 된다.

       그리 말해 주고 싶었으나, 거저 얻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겨울이었다.

       

       어떻게 겨울을 잘 설득할 방법이 없으려나.

       강진호는 고뇌하고 또 고뇌했다.

       

       ‘빚을 갚아도 문젠데.’

       

       빚을 다 갚는 순간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려 할 테지.

       움직이는 시체들이 도사리는 그 세계로.

       수신의 힘을 키워낸다면 딱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언젠가 열릴 포탈을 통해 고향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테니까.

       

       빚을 어떻게든 탕감해주되, 최대한 질질 끄는 게 답인가.

       강진호는 고민 끝에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나중에 빚 빨리 갚는 법 알려줄게.”

       

       “제 빚을요?”

       

       “응. 지금은 일단 던전에 집중해. 던전에서 딴생각 하는 거 아니야.”

       

       “아, 넵.”

       

       확실히, 던전에서 잡생각을 하면 안 되겠지.

       겨울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활을 고쳐잡았다.

       

       일단은 던전을 클리어하는 걸 최우선시 하기로 했다.

       

       

       **

       

       

       보스 몬스터는 평범한 엔트보다 몇 배는 더 큰 엔트였다.

       위압감이 상당했으나, 토벌이 어렵지는 않았다.

       스무 명가량의 교육생들이 일제히 보스를 공격한 덕분이었다.

       

       “음···”

       

       물량에 장사 없는 건 이 세계도 마찬가지구나.

       허탈함에 빈 물잔만 만지작거렸다.

       보스 토벌 후, 회식을 위해 온 식당의 물잔이었다.

       

       “표정이 안 좋네?”

       

       마스터가 내 물잔에 물을 따라주었다.

       목이 마르지는 않았으나,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뭔가 생각한 거랑 많이 달라서요. 긴장감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교육이라서 그래. 삼 단계 던전 중에서도 최대한 쉬운 던전으로 골랐으니까. 사람도 많았고.”

       

       “실전은 더 어렵다는 거죠?”

       

       “그렇지. 오늘 정도를 생각하고 들어가면 크게 다칠걸.”

       

       마스터가 말을 많이 해서 목이 탔는지, 컵에 담긴 물을 들이켰다.

       비어버린 물잔에 물을 따라주려는 순간, 마스터가 물컵 위를 손으로 막았다.

       

       “내가 할게.”

       

       “음··· 넵···”

       

       뭔가 머쓱하다.

       고급스러운 식당이라 더 그런걸지도 몰랐다.

       

       나는 물잔을 움켜쥔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개별룸이 구비된 횟집이었는데, 타이밍 좋게 종업원이 문을 두드렸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종업원의 등장에 모두가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허락을 내릴 수 있는 자가 마스터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는 탓이었다.

       

       그러나 모두의 시선을 받은 마스터는 하염없이 물만 마셨다.

       내가 대신 답하라는 눈빛을 함께 보냈다.

       

       이 많은 사람들을 대표해서 입을 열라니.

       너무 난이도가 높지 않나?

       부담스러웠지만, 마스터의 명령이기에 어떻게든 입을 열기로 했다.

       

       “네에···”

       

       내 대답과 동시에 문이 열린다.

       입을 연 게 나라는 걸 알고 있는지, 종업원이 나를 향해 눈웃음을 지어주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꾸벅 고개만 숙였다.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종업원의 입가에 미소가 만개했다.

       

       “순서 없이 한 번에 다 내달라고 하셨죠?”

       

       종업원이 끌고 온 카트 위에 고급 회가 잔뜩 담겨있다.

       연못에서는 잡아먹을 수 없는 회들이었다.

       

       “와···”

       

       이거 참치 회잖아.

       내가 감히 먹어도 되는 건가?

       

       나는 젓가락도 들지 못한 채 참치 회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내 앞으로 신서연이 회를 밀어주었다.

       

       “겨울이가 기여도 일등이었지? 기여도 일등 한 사람이 첫술 뜨는 게 규칙인데.”

       

       모험가에게 그런 규칙이 있었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스터를 올려다보자, 마스터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다들 앞에서 힘들게 싸우는데, 전 뒤에서 편히 활만 쏴서 그런가 봐요.”

       

       “그것도 실력이지.”

       

       “으, 으음···”

       

       더 뭐라 하면 자랑밖에 안 되겠다.

       나는 변명 없이 참치회를 한 점 집어먹었다.

       

       “······!”

       

       귀와 꼬리털이 쭈뼛 솟아오를 정도로 충격적인 맛이다.

       참치회 삼키는 순간에 꼬리가 미친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맛있어?”

       

       “네. 살면서 먹어본 음식 중 두 번째로 맛있어요.”

       

       “두 번째? 첫 번째는 뭔데?”

       

       첫 번째는 당연히 한여름이 해주는 요리였다.

       맛을 떠나서 해주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으니까.

       물론 부끄럽기에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회를 맛볼 뿐이었다.

       

       모험가들과 함께 먹은 회는 상당히 맛있었다.

       

       

       **

       

       

       겨울의 천막 앞.

       그 앞에서 한여름이 팔짱을 낀 채로 서 있었다.

       

       ‘시간 날때 해야겠지.’

       

       실수로 베어버린 겨울의 냄비 두 개.

       새걸 사서 조금만 더럽힌 뒤에 줄까 싶었으나, 그만두기로 했다.

       

       겨울의 관찰력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으니까.

       일반인의 범주를 넘어선 눈은 새 제품이라는 걸 금세 알아챌 터였다.

       

       정성을 다해 중고를 주워줘야겠다.

       한여름이 결심을 내리는 순간에 겨울이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뭐하세요?”

       

       “응? 겨울이 벌써 왔어?”

       

       “네. 생각보다 일찍 끝나더라구요.”

       

       겨울이 비닐봉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고급 회가 담겨 있는 봉지였다.

       

       “회네?”

       

       “네. 마스터가 사주셨어요.”

       

       “음··· 그럼 있다가 저녁에 같이 먹을까? 지금은 따로 할 게 있거든.”

       

       “할 거요?”

       

       뭔데 이 귀한 회를 마다하는 거지?

       겨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분리수거장에서 뭐 좀 주울 게 있어서.”

       

       냄비를 줍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착한 겨울이라면 그럴 필요 없다며 말릴 테니까.

       덕분에 한여름은 다른 의문을 살 수밖에 없었다.

       

       “분리수거장에서 뭐 줍기도 해요?”

       

       엄청난 부자인 한여름이?

       믿기지 않는 사실에 겨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 언니라고 항상 새것만 쓰겠니. 쓸만한 거 있으면 당연히 중고도 쓰지.”

       

       “···그렇군요?”

       

       한여름이 중고를 쓰다니.

       최근 며칠 중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겨울이었다.

       

       “응. 언니가 필요한 게 분리수거장에 있을 확률이 높거든. 잠깐만 보고 올게.”

       

       헤헤.

       눈웃음을 지으며 뒷걸음질치는 한여름을 겨울이 따라갔다.

       

       “저도 같이 가요.”

       

       “같이?”

       

       “네. 저도 쓸만한 거 있나 보고 싶어서요.”

       

       “어··· 그럴까?”

       

       겨울이랑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 장소가 분리수거장이라는 건 조금 별로였지만.

       

       ‘겨울이랑 있는데 장소가 뭔 상관이야.’

       

       한여름은 겨울과 함께 아파트 단지의 분리수거장으로 이동했다.

       겨울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나, 진지한 모습으로 분리수거장을 뒤적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꾹 참았다.

       

       ‘일단 냄비부터 찾아야겠다.’

       

       분리수거장에 쪼그려 앉아 쓰레기 더미를 뒤적거린다.

       워낙 거대한 단지이다 보니, 쌓여있는 물건이 많아 냄비를 찾기가 힘들었다.

       

       “으···”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손에 묻는다.

       퀴퀴한 냄새 때문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냄비만 찾자 냄비만.’

       

       마음을 다잡으며 분리수거장을 뒤적거리는 그때.

       한여름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헌 옷을 들고 있던 중년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긴 시간 동안 한여름의 뒷모습만 보고 있었다.

       

       “···젊은 처자가 벌써 부터 그러면 어째요?”

       

       “네?!”

       

       사람이 다가오는 기척은 느꼈는데, 설마 지켜보고 있던 건가?

       화들짝 놀란 한여름이 뒤를 돌아보았다.

       

       “한여름씨 아니여···?”

       

       한여름을 알아본 중년 여성이 당황스러움을 표했다.

       돈이 많은 그녀가 분리수거장을 뒤적거리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아, 안녕하세요···”

       

       “여기서 뭐해요?”

       

       “그, 그게 쓸만한 냄비라도 있나 싶어서···”

       

       한여름이 말을 잇다 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겨울이 들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겨울은 물건 찾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이고, 알뜰도 하셔라. 어떻게, 집에 있는 냄비라도 드릴까요?”

       

       “그, 그래도 되나요?!”

       

       “냄비야 많으니까요.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봐요.”

       

       “네! 기다릴게요!”

       

       쓸만한 물건을 줍는 게 이런 느낌인가?

       어쩐지 겨울의 기분을 조금 알 것만 같았다.

       

       ‘일단 기다릴까.’

       

       한여름은 중년 여성이 돌아오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 겨울에 관한 이야기를 보기 위함이었다.

       

       ‘겨울이가···’

       

       스마트폰을 두드려 여명길드가 자주 언급되는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모든 글을 다 볼수 없으니, 인기순위에 올라온 글만 확인했다.

       

       실시간 인기순위 올라온 글.

       그것은 겨울이 아닌 한여름에 관한 글이었다.

       

       [한여름 우리 단지에서 쓰레기 뒤지는 중ㅋㅋ]

       

       “······?”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로 한여름의 뒷모습이 찍혀있다.

       유명한 그녀인지라 알아보는 사람이 꽤나 많이 있었다.

       

       [지랄ㄴ 한여름이 쓰레기장을 왜 뒤짐.]

        [└허리에 검찬 거 보셈 진짜 한여름임. 아마 겨울이랑 같이 온 듯?]

        

       [재산이 천억이 넘는 한여름도 저렇게 사는데, 내가 뭐라고···]

        [└천억은 무슨ㅋㅋ 몇천억이지 ㅋㅋ]

         [└난 부자들은 명품만 쓰는 줄 알았어.]

       

       [한여름 쟤는 진짜 호감이네 ㅋㅋㅋ]

        [└모든 걸 다 가졌는데 겨울이랑 분리수거장 뒤적거리는 게 인간적이어서 호감임 ㅋㅋㅋㅋ]

       

       “어···”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버렸다.

       그런데 어째선지 이미지는 좋았다.

       이거 전부 겨울이 덕분인가?

       

       한여름은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입만 조물거렸다.

       

       일단은···

       겨울이에 대한 반응이나 더 찾아보기로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돼요!!

    분리수거장 뒤적거리는 대기업 이사(미소녀+도내 싸움 1위)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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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곁에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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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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