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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1

     

    “모든 지표가 양호하네요. 퇴원하셔도 되겠습니다.”

     

    내 허가에 아셀라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입꼬리를 쭉 찢었다.

     

    본래 다른 의사들과 함께 진료하고 의견을 나누는 게 매뉴얼이지만, 아셀라는 병실에 사람이 우르르 들어오는 게 싫다며 나에게만 진료받기를 원했다.

     

    덕분에 병실에는 늘 그녀와 나뿐이다.

     

    “이제야 바깥 공기 좀 맡겠구나. 여기 봐, 공자. 하도 앉아 있어서 침대에 자국이 생겼어.”

     

    “축하드려요.”

     

    “루시를 불러줘. 바로 월광궁으로 돌아가고 싶거든.”

     

    “무리하지는 마세요. 상처가 덧날지도 모릅니다.”

     

    “호들갑은. 멀쩡해. 흔적도 없어.”

     

    “제가 직접 못 봤으니까요.”

     

    아셀라는 깨어난 후로 내게 수술 부위를 못 보게 해서 체크는 클로에가 맡는 중이다.

     

    “공자가 내 맨몸을 왜 봐.”

     

    “수술할 때 봤는데요.”

     

    “잊어버려, 명령이야.”

     

    아셀라가 내게 베개를 던지며 툴툴댔다.

    기운차시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진단으로 봐도 괜찮고.’

     

     

    ―――――――――――

    · 이름 : 아셀라 폰 뷔르템펠트

    · 체력 : 20 / 22

    · 상태 : 회복 중

    · 부상 : 없음

    · 기분 : 기대감

    ―――――――――――

     

     

    다른 의사들의 소견은 못 들었지만 세컨드 오피니언으로도 체크했다.

     

    아셀라의 컨디션은 더할 나위 없는 호조다.

     

    “공자, 내일부터 축제야.”

     

    아셀라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네요.”

     

    “긴 축제야. 신년까지는 다들 호사스런 분위기에 젖어 방방 뜨겠지.”

     

    “휩쓸리지 말란 말씀이신가요.”

     

    내 반응에 아셀라가 조금 당황했다.

     

    “음… 가끔은 괜찮지 않겠니. 우리도 외출 약속이 있었고.”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으신지 확인할 기간도 필요합니다. 마지막 날에 나갈까요?”

     

    “내일 바로 나가자.”

     

    역시나 행동력이 좋으신 황녀님이었다.

     

    “긴 축제니 마지막 날은 다들 지쳐있지 않겠니. 첫날의 광기가 보고 싶어.”

     

    아무리 서민이라도 축제 정도로 정신을 잃고 미쳐 날뛰진 않거늘.

     

    “그리고 내일 밤에 개막을 알리는 불꽃놀이가 성대하게 열린다고 하더라.”

     

    “불꽃놀이가 보고 싶으시군요. 흠, 재미는 있겠네요.”

     

    “응. 잘 보이는 자리도 미리 알아놨어.”

     

    아셀라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내일이라.

     

    주치의로서 퇴원 직후에 격한 활동은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아셀라가 저렇게 나올 때 말릴 수 없단 사실도 잘 안다.

     

    그동안 병실에 갇혀있기도 했으니 까짓거 내일 하루는 풀어주기로 했다.

     

    ‘아셀라의 생일이기도 한데.’

     

    선물도 준비해야 하네. 클로에에게 맡길까 생각하는데 아셀라가 코웃음을 쳤다.

     

    “왜요.”

     

    “선물은 가져오지 마. 미리 루시에게 전해 월광궁에 넣어놓도록 해.”

     

    어째 사람 생각 읽는 게 더 능숙해지셨네.

     

    아니면 나를 읽기 쉬워진 건지.

     

    “들고 다니기 불편하기도 하고, 어차피 공자가 주는 선물은 뻔해서 재미도 없더라.”

     

    “아야.”

     

    선물 고르는 센스가 없어서 송구하구만.

     

    “그리고 뭐어…”

     

    아셀라가 잠시 뜸을 들인 후 말했다.

     

    “가끔은 생일인 사람이 선물을 주는 날이 있어도 되잖니.”

     

     

     

    ***

     

     

     

    다음날은 무탈했다.

     

    오전에 진료한 아셀라는 평소의 월광궁의 황녀로 돌아와 있었다.

     

    월광궁에서는 그녀의 퇴원 축하 및 생일을 기념해 간단하게 파티가 열렸다.

     

    입원한 동안 급히 기획을 세웠다는 듯하다. 노련하다.

     

    나는 오전은 내의원에서 업무를 보고 오후는 파티가 열리는 동안 그녀의 곁에서 대기했다.

     

    아셀라에게 우호적인 황족도 몇 왔다 갔고, 비싼 텔레포트 게이트까지 이용해서 참석한 귀족도 있었다.

     

    어찌 보면 누가 월광궁의 편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특별한 일도 있었다. 황제가 예고도 없이 행차한 사건이었다.

     

    “존안을 뵙습니다. 긴요한 시간을 월광궁에 허해주시니 광영입니다.”

     

    아셀라가 예를 표해 그를 맞으니 황제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아셀라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고트베르크.”

     

    “존안을 뵙습니다.”

     

    “이번 수술도 큰일이었다고 전해 들었다.”

     

    “폐하의 바다와도 같은 아량 덕에 무사히 끝났습니다.”

     

    “갈수록 황실의 많은 이가 그대의 덕을 보고 있군. 평생 어떤 치유사도 손대지 못한 아셀라를 고칠 줄이야.”

     

    “과찬이십니다.”

     

    “그대들은 아직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한 때이지만, 짐 정도 되면 어떻게 죽을 것인지도 중요해진다. 내의원을 키웠던 건 짐이 가장 마음에 드는 정책 중 하나지. 자네 같은 인재도 들어왔으니 말일세, 고트베르크.”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는 황제였다.

     

    인사가 다수 모인 자리에서 대놓고 내 이름을 불러주니 나쁠 일은 없었다.

     

    ‘내년부터 제약공장이 본격적으로 약품을 생산해 제국 각지에 판매하게 돼.’

     

    고트베르크라는 이름 자체가 간판이니 황제가 불러주면 이 자리에 모인 귀족들에게는 최고의 광고다.

     

    서민들이 그런 특수한 물건을 직접 살 순 없으니 영지의 영주가 우리와 계약해 가져가야 한다.

     

    지금은 월광궁과 서부 공작에게도 지분이 있다. 가능한 자산을 늘려 사업을 둘에게서 독립시켜야 하니 매출은 빠르게 늘어날수록 좋다.

     

    “아셀라.”

     

    “예, 폐하.”

     

    “월광궁에도 훈장이 늘어나고 있군.”

     

    “제국을 위한 일입니다. 공을 헤아려주신 은덕에 황공할 따름입니다.”

     

    흠.

     

    이번에 훈장을 받은 건 타냐인데 마치 아셀라에게 줬다는 어투였다.

     

    ‘혹시 황제는 처음부터 타냐가 내 곁을 선택할 거라 예상했나.’

     

    이미 그의 인식으로는 나랑 아셀라, 타냐는 월광궁으로 한 묶음이었나?

     

    ‘어째 군사권도 시원하게 내줬고, 소드마스터인 타냐의 거처도 안심하고 맡긴다는 느낌이었지.’

     

    잠깐.

     

    혹시 지금 상태에서 아셀라가 계약을 이행해서 나와 파혼하면 황제가 반역이라고 생각하려나.

     

    ‘…그 정도는 아니겠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나와 아셀라를 한 시야 안에 담으며 어째 뿌듯한 표정이다.

     

    “나쁘지 않군.”

     

    내게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은 말로 들렸다.

     

    황제는 내게 할 말은 다 전했는지 순식간에 관심을 돌렸다.

     

    “아셀라.”

     

    “네, 폐하.”

     

    “축하한다.”

     

    아셀라는 황제의 드문 축하를 예를 갖춰 받았다.

     

     

     

    ***

     

     

     

    사교 모임처럼 진행된 파티는 저녁 만찬도 예정되어 있었다.

     

    오늘 일과 시간이 끝나면 황제가 지정한 축제 기간이 시작된다.

     

    그 시작을 알리는 게 성대한 불꽃놀이다. 이백 먹은 드워프 장인이 몇 달에 걸쳐 만들어왔다고 한다.

     

    제국의 북서부에 있는 자그마한 드워프 왕국에서 출장을 왔다고 한다. 내의원 의료 장비를 만드는 드워프도 그곳 출신이다.

     

    불꽃놀이는 그다지 볼 일이 없었는지 사람들은 꽤 들떠 있었다.

     

    라우가도 벌써 자기 궁에서 성대하게 술판을 벌이는 모양이고.

     

    ‘월광궁에선 안 보일 텐데.’

     

    월광궁은 황궁 북쪽 끄트머리에 있다. 축제 거리로 장식될 제도 광장은 남쪽이니 한참 멀다.

     

    “공자.”

     

    그런 생각을 하며 월광궁의 손님들을 보고 있으니 아셀라가 내 가운을 당겨왔다.

     

    “아, 황녀님. 어쩐 일이신가요.”

     

    “지금이야.”

     

    “뭐가요?”

     

    “다들 곧 시작할 만찬에 정신이 팔렸잖니.”

     

    아셀라가 소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쿡쿡댔다. 신이 나서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루트는 미리 알아놨어. 가자.”

     

    “잠깐만요, 옷이라도 갈아입고…”

     

    아셀라는 내 대답을 더 듣지 않고 무작정 팔을 잡아당겼다.

     

     

     

    아셀라와 함께 북동쪽 성벽 아랫문을 통해 황궁을 벗어났다. 별안간 생각지도 않게 둘이서 산책을 하게 됐다.

     

    “이러면 못 알아보겠지?”

     

    어디서 구해왔는지 아셀라는 수녀들이 쓰는 헤드드레스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둘렀다.

     

    오히려 금빛 눈동자만 반짝거리는 모습이 훨씬 수상해 보였다.

     

    “황녀님의 고귀함을 겨우 천 조각 몇 장으로 숨길 수 있겠습니까.”

     

    “어머, 잘 알고 있구나. 오늘은 어디 가서 소문내지 말고 공자만 알고 있어.”

     

    “물론입죠.”

     

    황궁 바로 근처는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되어있기에 산책로로는 딱 적당했다.

     

     

    몇 분 둘이서 말 없이 걸었을까.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있잖아, 라스.”

     

    “예.”

     

    “그냥 생각해보는 건데, 만약 네가 주치의가 되지 않아서 나를 고치지 못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글쎄요.”

     

    그 대답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카밀라는 완전히 흑마술사로 돌아선 자신의 분신에 의해 악령으로 변했다.

     

    영혼의 인간성은 잘라내 지고, 증오나 원망만 남아있었다.

     

    그게 마력폭주 사건과 함께 아셀라와 영혼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분신을 죽인 건 카밀라의 증오였다.

    하지만 아셀라는 분신을 친모라고 생각했기에 죄책감을 가지고 그 비틀린 소망을 이루려 황제가 됐다.

     

    그녀가 폭군이 된 계기라면 그것이었겠지.

     

    흑마술은 결국 궁극적으로 자신을 포함해 모든 걸 파괴하는 마법이다.

    황제 아셀라는 분신의 목적을 대신 이루며 저주를 끝낸다고 여겼던 게 아닐까.

     

    “황녀님은 어땠을 것 같으세요?”

     

    “네가 없었어도 나는 황제가 됐을 거야.”

     

    “하하, 아무렴요.”

     

    “하지만 누구도 바라지 않는 황제였을지도 모르겠어.”

     

    “그럼 지금은요?”

     

    아셀라는 나를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모두는 몰라도 한 명이 바라는 황제는 될 수 있어.”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항상 느끼지만 아셀라는 참 당당하다.

     

    어떻게 그렇게 겁이 없는지 궁금할 정도로.

     

    “왜 발을 멈췄니? 벌써 지친 건 아니겠지. 정말 운동이 부족하구나.”

     

    “황녀님도 일주일은 누워 계셨으니 당분간은 활발하게 움직이세요.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말 돌리지 말고. 자, 여기서 쉬었다 가자.”

     

    아셀라는 근처 돌담에 앉아 자기 옆을 톡톡 두드렸다.

     

    들고 있던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는 아셀라.

     

    “뭔가요?”

     

    “저녁 먹으려고.”

     

    “저녁이요? 기왕이면 가게로 가시는 게 어떠시겠어요.”

     

    “사람 많은 데 가면 들킬지도 모르잖아. 준비해왔어.”

     

    아셀라가 내게 종이로 싼 덩어리를 하나 넘겨주었다. 꽤 묵직했다.

     

    포장지를 바스락 열어보니 샌드위치였다.

     

    “먹음직스럽네요.”

     

    “…그래?”

     

    “베이컨보다 살라미를 좋아하긴 하지만요. 염분이 너무 많거든요. 할라피뇨도 좋고요. 빵은 좋아하는 거네요. 사선으로 자르면 더 좋았을…”

     

    “빨리 먹기나 해.”

     

    아셀라가 내 어깨를 찰싹 때렸다.

     

    한 입 크게 베어무니 다 씹어 삼키기도 전에 마스크를 내린 아셀라가 내게 얼굴을 슥 들이밀었다.

     

    체하겠는데.

     

    “어때?”

     

    어떻고 뭐고 아직 씹고 있다.

     

    “맛있니?”

     

    왜 그게 그렇게 궁금하실까.

     

    평소 월광궁 요리사들이 내오는 야식에 비하면 그냥저냥인…

     

     

    …흠.

     

    에이,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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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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