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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1

       *

         

         

         틸레스의 모든 눈들이 지금 이 순간 베르니니 산맥을 주시하고 있다 보아도 과언이 아니었다. 왕실도, 귀족원도, 세 백작들까지도.

         

         예로부터 강대한 군권을 쥔 고위 귀족이 출병한다면 시선이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외국을 향한 군사 도발이 되었든, 반정을 위한 출병이 되었든. 대규모 군사를 동원할 때 가장 손쉬운 변명이 ‘사냥’이었으니까.

         

         따라서, 심지어 외국의 첩자들 또한 질 베르 드 에타크리히의 출병을 주시하고 있었다. 즉, 이 순간 베르니니 산맥을 뒤덮은 화마(火魔)는 모든 종류의 정보 조직에게 포착되었다.

         

         이때, 틸레스의 모든 권력자들은 지각이 변동하는 진동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 전쟁 이래 굳건했던 권력 관계에 가해지는 거대한 지진을.

         

         베르니니라는 진앙지는 곧 해일이 되어 이 나라 전체를 뒤덮을 것이다. 무릇 진정한 권력이란 난세에서 탄생하는 법이었으므로.

       

        세 사람이 나라를 뒤흔드는 지진 속에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

         

         

         “하, 하하, 으하하하!!”

         

         

         베르니니 산맥에서 가장 인접한 대영지, 페르보뉴의 지배자. 베르몽포르 백작가의 장 벨투아는 전령이 들고 온 급보를 들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 머저리들의 생각이 맞는 경우가 다 있군!”

         “어찌 하오리까?”

         “우리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그만이지. 기욤과 에투앙이 군사를 일으키길 기다려라. 그 작자들이 상 마틸렌느로 진군하려거든 반드시 근방을 지나야 할 테니.”

         

         

         현명한 자는 결코 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법. 험한 일은 천한 것들에게 일임하고, 귀족은 그 곡식만 진상 받으면 그만이니.

         

         굳이 왕가를 범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를 대신하여 해줄 이들이 이토록 많은 것을.

         

         장 벨투아는 와인을 홀짝이며 소파에 몸을 누였다.

         

         

        *

         

         

         나르봉의 대백작 에투앙 드 그랑마르텔은 새하얀 말을 타고 군영을 내려 보았다. 수많은 병사들이 횃불을 치켜든 채 그를 올려보고 있었다.

         

         사내라면 누구나 전율할 광경이었다. 그랑마르텔의 가문기, 장미가 얽힌 그리폰이 횃불의 붉은 빛 위에서 그를 굽어보고 있었다.

         

         틸레스의 모든 호족 중 가장 위대한 세 가문이 집결했다. 세 사람의 대백작이 오직 이 순간을 위해 손을 잡았다.

         

         마지막까지 남은 이의 가문은 이제 더 이상 백작가라 불리우지 않을 것이다. 왕가. 틸레스 왕실은 몰락하고, 이제 그랑마르텔 왕가의 시대가 도래하리라.

         

         그렇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가장 많은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가장 안정적인 보급로를 차지하고 있으며, 또한 상 마틸렌느 귀족원에 가장 많은 의석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전하. 베르니니의 봉화가 올랐습니다.”

         “오틀레앙과 베르몽포르는?”

         “오틀레앙이 온 힘을 다해 진군한다 한들 사흘은 더 늦을 것이고, 베르몽포르는 상 마틸렌느가 포위되기 전까진 감히 출병할 포부가 되지 못합니다.”

         “아둔한 것들.”

         

         

         에투앙은 차갑게 웃으며 말머리를 돌렸다.

         

         

         “상 마틸렌느는 결코 수성을 시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은 건가? 방위군은 고작해야 삼천 남짓이고, 귀족원은 기꺼이 우리에게 성문을 열어 줄 것인즉.”

         “예, 전하.”

         “병사들에게 이르라. 사냥철이 끝났으니 수확철이 왔노라고.”

         

         

         사슴 사냥이 끝났다. 용에 대적하던 사슴은 장렬하게 소사했으니, 이젠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보다 수월한 단계만 남았을 뿐.

         

         

         “크라실로프와 칼리온의 반응이 변수인데.”

         “칼리온은 제 이득에 따라 얼마든지 갈아탈 작자들이니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크라실로프는 이 땅까지 보낼 군단이 없지.”

         

         

         크라실로프는 북방전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두 개 군단을 소모하고 있으며, 왕실근위대는 바로 몇 달 전에 있었던 대규모 반란의 여파를 진압하는 것만으로도 분주하다.

         

         설령 크라실로프가 출병한다 하더라도 이미 틸레스의 명운은 끝났다. 호국경의 죽음과 함께.

         

         나라를 지키는 기사(護國卿)이 없어진 나라를 위해 과연 누가 창칼을 들어 올리겠는가. 하며.

         

         그랑마르텔 휘하 보병 칠천오백, 기병 팔백오십, 그 중 기사가 삼백.

         블랑몽 남작의 보병이 삼천칠백, 기병 삼백, 그 중 기사가 오십하고 둘.

         라몽느 남작의 보병이 삼천, 기병이 이백, 그 중 기사가 사십.

         콘테르 자작의 보병이 칠백오십, 기병이 서른, 그 중 기사가 다섯.

         

         플뢰빌, 몬느, 푸리뇽, 브뤼… 그랑마르텔 백작가의 봉신들의 모든 군단을 합쳐 총 병력.

         

         보병 만구천, 기병 이천칠백, 기사로만 오백여 명.

         

         동부 군단의 총원이 약 삼만여 명 가량이다. 개중 징집병과 소작농의 비율을 제외하고 본다면 오직 그랑마르텔의 이름 아래에 일개 군단이 편성된 셈이다.

         

         지난 전쟁 이후로 곤두박질친 동원 능력을 고려할 때, 틸레스가 가진 잠재 전쟁 동원능력 중 절반 가량이 지금 이 사내의 손아귀 아래에 있다.

         

         패배할 수가 없다. 국내든, 국외든. 그 어떤 경우에도.

         

         닷새 안에 국호가 바뀔 것이다.

         

         

        *

         

         

         “각하, 그랑마르텔 백작이 진군을 시작했다는 급보입니다.”

         “좋군. 그 멧돼지 녀석이라면 곧장 상 마틸렌느로 달려들겠지?”

         “예, 각하.”

         “그럼 우린 우리 일을 하자고.”

         

         

         기욤은 히죽 웃으며 지도를 쿡쿡 찔렀다.

         

         

         “멍청하긴. 수도가 무너지면 당연히 왕가를 자칭할 수야 있겠으나,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영지의 충성을 받아내느냐가 아니냔 말이야.”

         “참으로 그렇습니다, 전하.”

         “베르니니 산맥을 기준으로 서부 전역에서 충성 맹세를 받아낸 뒤, 에투앙 녀석이 대관식이라도 하는 날에 끝을 보자고.”

         

         

         베르니니 산맥을 중심으로 틸레스를 나눈다. 동부의 거친 산하는 모조리 포기한다.

         

         베르니니의 용들이 질 베르를 죽인 뒤엔 이제 그 너머는 죽음의 땅이다. 동부전선은 마족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니.

         

         마족들이 그대로 틸레스의 영토를 짓밟고 들이닥친다 한들 베르니니 산맥이 건재하다. 용이란 본디 오만하고 탐욕스러운 존재들. 마족들이라 한들 그들을 제어할 수 없다.

         

         그러니.

         

         

         “용에게 먹잇감을 던져주고, 우리의 새로운 동부 전선 군단으로 삼으면 천혜의 장벽이 완성되지 않겠는가.”

         “참으로 현명하십니다. 각하!”

         

         

         틸레스의 영토가 3할 가량 줄어들겠으나, 어차피 그 너머 동부는 산출량조차 변변찮은 죽은 땅이다. 틸레스의 핵심은 서부 곡창지대에 밀집되어 있고, 틸레스의 자금력은 무역에서 나온다.

         

         즉, 무역항과 곡창지대를 지배하는 자가 이 땅의 다음 왕가가 되리라.

         

         

         “제 여동생에게 개처럼 쫓겨나 떠돌아 다닌다기에 한심하다 여겼건만,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돌아간단 말이지.”

         “후후, 그렇습니다. 각하. 하지만 제 나라에서도 쫓겨난 왕자조차도 아낌없이 품어주신 각하의 아량에 비하겠나이까.”

         “그래, 그렇지! 으하하하!!”

         

         

         기욤 2세는 웃음을 정리하고 음산한 얼굴로 지도 한 귀퉁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바르가달이라는 마족 녀석은?”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각하.”

         “좋아. 우리도 준비하지.”

         “예, 각하!”

         

         

         ‘우연히’ 동부 전선을 돌파한 마족 군벌 한 무리가 틸레스의 영지들을 짓밟을 때, ‘때마침’ 나타난 오틀레앙 백작의 군단이 위기에 처한 영지들을 구원할 것이다.

         

         오틀레앙 백작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동안 감히 야욕을 위해 상 마틸렌느를 불태운 에투앙은 역사의 반역자가 되리라.

         

         장 벨투아, 그 소심한 머저리는 대세에 따라 복속하겠지.

         

         그렇다면 이제 이 나라의 이름은 오틀레앙 대공가의 틸레스가 될 것이다. 굳이 왕가를 참칭할 필요조차 없다. 왕의 방계 하나를 앉혀 두고, 섭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만으로도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이 그에게 복종할 테니까.

         

         정치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군사만 일으킨다고 나라를 삼킬 수 있으랴. 멍청한 에투앙과 옹졸한 장 벨투아와는 다르다.

         

         이것이 군주의 자질이다. 기욤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 백작의 난이 시작되었다.

         

         

       

       

       Ep 22. 세 백작의 난.

       

       

       

         

         

         “급전!! 그랑마르텔 백작 에투앙, 나르봉에서 진군을 개시했습니다!”

         “급전! 베르몽포르 백작 장 벨투아, 상 마틸렌느에서 이어지는 모든 무역선을 차단했습니다!”

         “급전!! 동부 로쉐르 지방에서 타우르스 군벌 확인! 수효 약 칠백 오십!”

         “급전입니다!! 베르니니 산맥이 불길에 휩싸여 있습니다! 질 베르 드 에타크리히의 생존 여부 불확실!”

         

         

         파벨은 거의 시차 없이 달려오는 새로운 급보들을 받아 들며 침묵에 잠겨 있었다.

         

         툭, 툭, 툭. 작전 지도가 펼쳐진 테이블을 두드리던 손이 마지막 급전에 멈췄다.

         

         어둑한 백색 마력등 아래에서, 파벨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령관님은.”

         “해당 방면으로 전개된 모든 정보가 차단되고 있습니다. 육안으로 관측한 바, 온 산맥이 불길에 휩싸였다고…. 용들이… 적어도 하늘에서만 마흔 이상 관측되었다 합니다.”

         “용. 용이라.”

         

         

         파벨은 허릿춤을 슬슬 만지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내가 간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 멍청한 후배야.”

         

         

         나이든 이가 먼저 죽는 것이 세상 이치여야 하지 않는가. 파벨은 으득, 하고 이를 깨물었다. 이제 선왕 폐하의 왕실근위대는 정말 나 혼자 남았군. 하며.

         

         마력등이 힘없이 흔들린다. 파벨의 몸에서 흩어져 나온, 제어를 잃어버린 마력이 주위에 미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짙은 쇠비린내 풍기는 살기 속에서, 파벨은 이를 갈며 말했다.

         

         

         “우리는 귀국한다.”

         “예? 하, 하지만 부사령관님….”

         “방첩사령부 대외첩보부는 오늘 이후로 틸레스에서 철수한다. 이는 어명으로 받들라. 오늘 이후 틸레스는 더 이상 우방국이 아니다.”

         

         

         파벨은 코트를 걸치며 자신을 바라보는 요원들에게 씹어 뱉듯 말했다.

         

         

         “틸레스는 반드시 멸망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제 하나뿐이니.”

         

         

         연합의 기치를 훼손한 역적들에 대한 징치.

         사령관을 사지로 내몰아 용의 먹잇감으로 던져준 이들에 대한 복수.

         

         이 나라 귀족들이 범한 두 죄목에 대하여, 크라실로프가 내어 놓을 대답은 단 하나뿐이다.

         

         

         “우리가 다시 상 마틸렌느로 돌아올 때, 우리의 이름은 침략자가 되리라.”

         

         

         파벨이 몸을 돌렸다. 그의 등 뒤로, 방첩사령부의 모든 요원들이 함께 걸어 나갔다.

         

         곧, 마력이 타닥이며 불꽃을 일으켜 상 마틸렌느의 안가를 불사르기 시작했다.

         

         등 뒤로 번지는 불길을 느끼며, 파벨은 씁쓸하게 웃었다.

         

         저것이 망국의 봉화처럼 느껴져서.

         

         

         “이 일을 우리 전하께 어찌 아뢴단 말인가….”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세 백작의 난

    베르니니 산맥에 용이 잠들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세 대백작이 준비한 역모.
    질 베르와 수도방위군이 베르니니 산맥에서 소실되었을 때, 각 대백작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작전을 시작.

    베르몽포르 백작 장 벨투아 : 상 마틸렌느를 고립시키고 무역로를 움켜쥔 채 대기.
    그랑마르텔 백작 에투앙 : 휘하 봉신들의 모든 군단을 소집해 상 마틸렌느로 진군.
    오틀레앙 백작 기욤 2세 : 왕가에 충성하는 지방 영주들을 침공한 ‘신원 불명의 마족’들을 타도하며 충성 맹세를 받아내려 시도.

    난이 성공했을 시의 틸레스 : 베르니니 산맥을 중심으로 동부 방면 모든 영지의 상실. 동부전선 주둔군단 상실, 수도방위군 상실.

    딱 양판소 아카데미물 다운 에피소드라고 보시면 됩니다!

    *
    이런 상황입니다.
    QnA는 하루만 미룰게요!
    질문하실 것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댓글에 남겨 주세요!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답변 드리겠습니다!
    좋은! 한 주의 시작 되세요 여러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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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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