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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1

       황제, 황후가 서거하고 암살 의혹을 풀기 위해 황실 수사단과 궁정 마법사단이 힘을 썼지만 나오는 정보는 없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성녀는 황제, 황후의 죽음을 급성 심정지로 판정내렸고, 의혹만을 남겨둔 채 사건은 일단락.

         

       제국 정치권의 안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즉위식 또한 빠르게 진행되었다.

         

       황권이 바뀌어 귀족들의 움직임도 어수선하지만, 생각한 것보다 큰 소란은 없었다.

         

       “다행히 조용하게 지나간 거 같네요.”

         

       카자르가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그렇네.”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마치 큰 폭풍이 오기 전의 날씨처럼.

         

       황권이 바뀌고 권력과 영향력 다툼이 있을 줄 알았다. 이걸 처리해야 하는 게 데카르트와 페르시아의 임무였지만, 다들 눈치만 볼 뿐 그렇다 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데카르트의 힘이 너무 압도적이라 그런 게 아닐까요? 눈밖에 나면 영지의 경제 보복도 가능한 수준이니까요.”

         

       카자르의 의견은 합당했다. 현재 사치품으로 시작해 온갖 사업에 발을 뻗고 있는 데카르트의 상단, 프란체 코퍼레이션.

         

       그것도 모자라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마탑주이자 페델리안 사자 패까지.

         

       이에 거스르는 귀족이 어리석은 수준이다.

         

       “다행히도 머리가 안 돌아가는 귀족은 없었나 보네.”

         

       프란체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큰 사항이 없으니 이대로 경계만 극도로 올리고, 일만 진행하면 될 거 같아.”

         

       이럴 때 엑시드의 유무가 굉장히 중요하지만 진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

         

       “이제 일 얘기로 돌아가자. 현재 상황은 어떻게 되어가니?”

         

       카자르는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간절한 영원의 노래는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저 혼자서도 가능하죠. 그리고 진 씨의 행방은 아직 찾고 있는데, 자유 도시 판테온에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얼마 전, 엑시드에서 보고서가 한 번 더 도착했다. 자유 도시 판테온에 진이 있는 건 확실한 모양. 다만 꽁꽁 숨었는지 흔적만 발견할 뿐이었다.

         

       “그래, 아직 진을 찾지 못한 건 아쉽지만 잘 되어가고 있구나. 감옥은 어떻게 됐니?”

         

       가장 중요한 감옥. 진을 잡아 오는 즉시 바로 가둬야 한다.

         

       “이게 진 씨에게 통할진 모르겠지만, 오러와 마력의 파장을 제어하는 마도구가 개발됐어요. 감시용 영상 통신 마도구도 개발됐고요.”

         

       수많은 마법사들을 마도구 개발에 갈아 넣고 있어서 그런지 속도가 빠르다. 프란체는 만족스러움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정말 진만 잡아오면 되는 구나.”

         

       중간에 다소 잡음이 있었지만 일은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성녀가 앞으로 어떤 짓을 할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성녀에 대한 건 대비하지 않으셔도 되나요? 지금은 조용하지만 분명 무언가 할 거 같은데요.”

         

       조용히 뒤에서 듣던 라데아가 물었다.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이 불안함으로 가득했다.

         

       “지금으로선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단다. 마법사들은 마도구 개발과 마탑 증진 사업에 몰두 중이고, 엑시드는 진을 찾는데 집중하고 있으니까.”

         

       현재 남는 인력은 데카르트 공작가의 기사단과 케일뿐. 카자르 또한 여러 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와중이고 프란체는 말할 것도 없다.

         

       “성녀가 어찌 나올지 보고 움직여도 늦지 않아.”

         

       그만큼 현재 데카르트의 입지는 견고하다.

         

       “아무튼, 우리는 하던 일만 계속 진행하면 되는 거야. 다들 조금만 참자. 고지가 눈앞에 있으니까.”

         

       그렇게 한 목표에만 집중하려 했건만.

         

       -똑똑.

         

       ─공작님, 황실에서 칙서가 왔습니다.

       “칙서? 일단 들어오렴.”

         

       플뤼겔은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와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프란체의 앞으로 이동했다.

         

       “조금 전 황실에서 칙서가 도착했습니다. 문양을 보니 황실 공인이 맞습니다.”

         

       프란체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시기에 황실에서 보낸 칙서라.

         

       “알겠어. 전해줘서 고맙단다. 이만 나가보렴.”

         

       플뤼겔은 정중히 인사한 뒤 집무실을 나갔다.

         

       “평범한 내용은 아니겠네요.”

       “그렇겠지.”

       “성녀가 보낸 걸까요?”

       “그건 지금 확인해야지.”

         

       프란체는 조용히 칙서를 펼쳤다. 내용은 다름 아닌.

         

       “성녀가 미쳤구나.”

         

       명령의 수준을 넘은 갈취였다.

         

       ─────────────────

       페델리안 황제, 레제프 페델리안이 데카르트 공작에게 전하오.

         

       그대의 가문, 데카르트의 힘은 나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소. 황제가 되는 자로서 균형이 깨지는 걸 지켜볼 수만은 없는 법.

         

       황실에서 원하는 바는 두 가지.

         

       첫 번째, 현재의 권위에 맞게 데카르트 공작령의 세율을 세 배 정도로 대폭 상승시키겠소.

       제국의 상단을 대부분 장악하고 사업을 독점하고 있으니 그에 맞는 세율을 부과하는 것이오.

         

       두 번째, 마탑의 지분을 나누시오.

         

       현재 데카르트 공작, 그대의 힘만 압도적으로 강하오. 진 바렌베르크를 제어하는 것도 모자라 백귀라고 불리는 용병왕까지 데리고 있지 않소?

       그에 따라 마탑의 지분을 나눠 균형을 맞추는 게 맞지 않나 싶소.

         

       이는 단순히 권유가 아니라 요구이며, 거부할 시엔 황실과의 대립을 피할 수 없을 것이오.

       ─────────────────

         

       “뭐라고 쓰여져 있는데요?”

       “돈이랑 힘 내놓으라고.”

         

       뿌득. 프란체의 손이 꽉 쥐어져 칙서가 구겨졌다.

         

       “감히 진이 나를 위해서 만들어준 걸 넘봐?”

         

       프란체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진, 그리고 진과의 추억이다.

         

       현재 데카르트가 가진 권력의 중심이 되는 프란체 코퍼레이션이 벌어들이는 돈과 마탑은 단순히 힘을 위한 도구가 아닌 진과의 추억을 증명해주는 존재.

         

       황실은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할 것을 건드렸다.

         

       “이게 성녀가 바라는 거다, 이거지.”

         

       프란체는 소미레의 의도를 명확하게 읽어냈다. 무리한 요구를 반복해 황실과 척을 지도록 만들 생각이겠지.

         

       “안 되겠구나. 카자르, 현재 마탑에서 진행 중인 마도 개발을 전부 중단하렴.”

         

       생각지도 못한 프란체의 발언에 당황한 카자르가 “네?”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성녀의 목적을 알았어. 지금부터 마탑의 인력을 전부 우리 쪽에 쏟을 거야.”

         

       마탑에서 거주하는 마법사들의 숫자는 무수히 많다. 이를 전부 경계와 전투 쪽으로 돌리면 어떤 수작을 부려도 통하지 않을 터.

         

       “엑시드와 진이 없는 지금 의지할 곳은 마탑밖에 없어. 개발을 잠시 중단해도 좋으니 지금은 경계 상태를 올리자꾸나.”

         

       카자르가 물었다.

         

       “대체 칙서 내용이 어땠길래요?”

         

       분노를 주체할 수 없던 프란체는 진정을 위해 크게 숨을 내쉬었다.

         

       “데카르트와 황실의 대립을 원하고 있어. 이 칙서는 그걸 증명하는 거고.”

         

       프란체가 조용히 책상 앞으로 칙서를 들이밀자 카자르가 받았다.

         

       “어…….”

         

       내용을 확인한 카자르도 충격에 빠졌다.

         

       “이건 그냥 갈취네요.”

       “그렇지.”

       “의도가 너무 명확해요.”

         

       물론, 이유는 타당하다. 데카르트의 힘은 지금 제국에서 너무나도 독보적이니까.

         

       하지만 세율을 세 배나 상승시킨 것도 모자라 투자도 하지 않은 마탑의 지분을 가져가겠다니.

         

       “이건 암흑 길드에서 쫓겨난 도적 놈들도 안 할 짓인데요.”

         

       카자르는 “아니, 걔네들이라면 하려나.”하고 고개를 휘저었다.

         

       “역시 성녀는 처음부터 황실과 데카르트의 대립 노리고 황위를 차지한 거야.”

         

       아마도 이유는 프란체를 끌어 내리기 위함. 그 후엔 페르시아를 포함한 다른 귀족들까지 포섭해 데카르트가 반란을 꾀했다는 누명을 씌워서 목숨을 가져갈 생각이겠지.

         

       이를 카자르와 라데아에게도 알려주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갈까요?”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는…….”

         

       회의적인 시선. 그러나 프란체는 확신하고 있다. 그 성녀는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기 위해선 무엇이든지 할 거다.

         

       “다른 작전도 있을 게 뻔해. 이 요구를 들어줄 순 없으니 나는 황실과의 대립을 선택할 거야. 이의있니?”

         

       반대하는 의견은 없었다. 카자르와 라데아는 절대적인 프란체의 편이니까.

         

       “좋아. 만약 안 좋게 흘러가도 진만 찾으면 모든 게 해결될 거야. 나를 믿고 따라와주렴.”

       “네, 공작님의 선택이시니까요.”

       “저희는 공작님을 따를 뿐이죠.”

         

       흔쾌히 수락하는 카자르와 라데아.

         

       ‘이제 남은 건 성녀가 어떻게 나올지 보는 것뿐이네.’

         

       이쪽도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다. 계속 그렇게 나온다면 공격적으로 나가는 수밖에.

         

         

       * * *

         

         

       자유의 도시 판테온.

         

       관광 도시로 유명한지라 지루할 게 없는 곳으로 보이지만…….

         

       “아…….”

         

       더럽게 심심하다. 풍경 구경도 하루 이틀이지, 한 달이 넘도록 여기에 거주했으니 일상과도 같다.

         

       고향의 음식도 처음에만 신나서 이것저것 먹었지만 지금은 물릴 지경이다.

         

       “난 왜 사는 거지.”

         

       뭐든지 할 수 있다. 불가능한 건 없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무력, 아직 세간에 밝혀지지 않은 귀중한 정보까지 다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움직일 원동력이 없다. 내가 딱히 부귀영화를 누릴 것도 아니고, 대륙을 통일한 황제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니 말이다.

         

       굼뱅이처럼 장종원의 집 침대에서 빈둥거리고 있자니 덜컥! 별안간 방문이 세게 열렸다.

         

       “야, 공략아! 나 대박났다!”

       “뭐지?”

         

       장종원과는 꽤 친해져 말까지 놨다. 나이 차이가 조금 있었지만, 그냥 친구 사이 하기로 했다.

         

       “내가 책을 하나 썼는데, 이게 판테온에서 대박이 났어! 사하라랑 아이론에서도 이 책을 수입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뭔진 모르겠지만 방방 뛰면서 신난 장종원. 나는 적당히 분위기에 맞춰주었다.

         

       “무슨 책이지?”

       “기다려봐.”

         

       장종원은 픽 웃더니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잠시 후.

         

       “이거야.”

         

       얇은 책 하나를 들고 왔다.

         

       “이건?”

       “판타지 소설이야.”

       “…….”

         

       판타지 세계에서 판타지 소설을 쓸 생각을 했구나. 얘도 참 기이한 놈일세.

         

       ‘그래도 일단 보긴 해야지.’

         

       책을 받아 들어 제목을 확인했다.

         

       <30살 무직인 제가 만병지왕의 선택을 받아 이세계로 갔더니 100명의 신부가 생겼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제목만 봐도 소름이 돋는 책이었다. 나는 입만 떡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한 번 읽어봐! 반응이 그렇게 좋더라고!”

       “…….”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하렘이니, 깽판이니, 갑질이니 하더니 이런 게 취향이었구나.

         

       “…일단 읽어는 보지.”

         

       진짜 죽도록 읽고 싶지 않았지만,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서 첫 페이지만이라도 읽어주기로 했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만큼 부끄럽고, 과거의 나에게 차마 알려줄 수 없는 비루한 삶이었다. 하지만 이세계로 온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전생과는 다를 거다……』

         

       “…….”

         

       이걸 재밌다고 보는 판테온의 사람들은 대체 평소에 뭘 보고 다니는 걸까. 당혹과 의혹으로 가득하다.

         

       “어떤데?”

       “…읽을만하군.”

       “재미는?”

       “사람들의 반응이 좋다면 된 거 아닌가?”

         

       최대한 돌려 말했다.

         

       “후, 사실 처음 글을 써보는 거라 걱정했는데 다행이었어.”

         

       즐거워 보이니 존중하겠다. 내가 뭐라 할 처지도 아니고,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아, 근데 공략이 너 페델리안 제국 출신이라고 했지?”

         

       나는 그렇다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제국이 난리가 났어. 확인해봐.”

         

       장종원은 세계 소식을 알려주는 신문 기사 하나를 건네줬다.

         

       “음?”

         

       기사의 내용은.

         

       “이런.”

         

       페델리안의 황제, 황후가 갑자기 서거한 것도 모자라, 새로운 황실과 데카르트가 대립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종원. 앞으로 페델리안 제국의 소식이 있으면 바로 내게 전해줘라.”

         

       장종원은 “음? 알겠어.”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대로 문제가 심각해진다면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돌아가야 한다.

         

       프란체를 지키기 위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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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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