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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1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빛. 악마사냥꾼은 온 몸에 이불을 감싼 채 부르르 떨었다.

         

       생사를 함께했던 동료에게, 배신당하기 전의 기억.

         

       – 또 전갈 구워먹어? 내가 너 이런 거 먹으라고 마탑에서 보존용기 가져다준 줄 알아?

         

       이제는 그 색조차 바래, 떠올리기조차 어렵게 되어버린 것들.

         

       – 혼자 다니면 외롭잖아.

         

       타들어가는 모닥불 앞에서, 옛 동료는 그렇게 말했다.

         

       – 활 이리 줘. 고쳐줄테니까.

         

       악몽.

         

       아주 지긋지긋한 악몽이다.

         

       다시는 그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이토록 끔찍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악마사냥꾼은 절절히 실감하고 있었다.

         

       – 그 전에 돌아오기만 하면 되잖아. 안 그래?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뜨자, 익숙한 방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황녀궁.

       

       황녀의 식객이라는 명분으로, 이 성에 머무른지도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늦잠이라, 너답지 않군.]

         

       악마사냥꾼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방 구석진 곳에, 암주의 형상을 한 그림자가 있었다.

         

       “……본체냐, 분신이냐?”

       [안타깝지만 분신이다. 본체는 집무실에 있지.]

       “집무실? 회의는?”

        [올 필요는 없다. 한참 전에 끝났으니까.]

         

       정기 회의씩이나 되는 장소에 부르지 않은 이유를, 악마사냥꾼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또 똑같은 결과가 나왔겠군.”

         

       현 상태 유지.

         

       북부에서 밀려들어오는 악마들을 경계하되, 다른 회귀자들과 대립각을 세우지도, 올리비아를 따로 찾아 나서지도 않는다.

         

       그동안 황녀가 보여주었던 행보와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그들이 기억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악마사냥꾼은 전투복 차림을 한 채로 방문을 나섰다. 그런 그녀를 암주의 분신이 뒤따랐다.

         

       “……내게 배정된 임무는 뭐지? 기왕이면 남부행이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지만 아니다. 일단 내가 있는 곳으로 와라.]

         

       악마사냥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집무실로 향했다.

         

        “오셨어요?”

       

       집무실 테이블엔 온갖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새하얀 손가락을 휘젓는 황녀. 그녀의 마력에 이끌린 서류들이 손짓에 맞춰 분류되고 결재되기를 반복했다.

         

       “……또 밤을 샌건가?”

       “일이 여간 많아야죠. 그래도 젊어서 그런가 체력이 부족하지는 않아요. 마법 덕도 꽤나 보고 있고요.”

         

       마법, 그래.

       황녀의 수면 시간을 극단적으로 단축시킨 데 크게 한몫한 것이 바로 마법이었다.

         

       “굳이 마법까지 배울 필요가 있나? 네가 현장에서 직접 뛸 필요는…….”

       “그랬다가 이미 한 번 졌으니까요.”

       “…….”

         

       구석에서 지켜보던 암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거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작전 얘기나 하지.”

       

       암주가 테이블에 거대한 지도를 펼쳤다. 대륙 전체가 자세하게 그려진 지도였다. 암주는 단도를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틀 전, 이쪽 근방을 조사하던 내 부하들과의 연락이 끊겼다. 예의주시 하던 곳이라 일부러 특급 암살자들로만 뽑아 보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지.”

       “역시 마신교겠죠?”

        “그럴 확률이 높겠지만, 아직 모르는 일이다.”

         

       몇 년 전부터 극단주의적 사상을 가진 집단들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황실 전복을 외치는 그들은, 시민들을 선동하는 수준을 넘어, 제국의 고위 관료를 암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여태까지 암살당한 귀족만 총 열 셋.

         

       전부 백작급 이상의 고위 귀족이라는 걸 생각하면, 아무리 제국이라고 한들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악마 사냥꾼은 왜 그들이 자신을 여기로 불렀는지를 깨달았다. 암주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녀도 잠임과 암습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잠입 날짜는 내일 새벽이다.”

       “며칠 정도는 더 지켜봐야 하지 않나?”

       “시간이 없다. 할 일이 이것 뿐인 것도 아닌 데다, 대체할 인력도 부족해.”

         

       지난 5년 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나마 아리아가 있었기에 이 정도 선에서 끝난거지, 그녀가 없었더라면 대륙의 삼분지 일은 화마에 휩쓸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악마사냥꾼 님. 가시기 전에,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아리아가 암주에게 눈짓을 했다. 암주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눈치껏 그림자 틈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쯤, 아리아가 입을 열었다.

         

       “꿈에 올리비아가 나왔나요?”

       “…….”

       

       악마사냥꾼은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이미 대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요.”

         

       여러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심상찮은 기류를 느낀 악마사냥꾼이 물었다.

         

       “혹시……너도 그런 꿈을 꾸었나?”

       “그건 꿈이 아니라, 지독한 악몽이에요.”

       

       아리아는 천천히 손을 뻗어, 다 식어가는 찻잔을 붙잡았다. 잠시 후, 차에서 모락모락 김이 솟아났다. 아리아는 다소곳한 자세로 서서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저번 생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나타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번 생에 이런 사건들을 알지 못했던 건, 올리비아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처리해 왔기 때문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당장 악마사냥꾼 자신도, 그런 생각 한 적이 있었으니까.

         

       “어쩌면, 저번 생에 있었던 모든 일이 우리의 오해였고, 이 모든 증오가, 비통함이, 착각이지는 않을까.”

         

       “어쩌면 우리가 해왔던 모든 일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아리아의 눈동자는 고요했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는 그 속에서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중앙 광장을 노다녔다. 아리아는 창문 너머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차마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끄아아아아악!]

       [엄마! 엄마아!]

       [아아아악!]

         

       눈을 감으면, 그날의 참상이 겹쳐 보일 것만 같아서.

         

       “너무 많이 죽었어요.”

        “…….”

       “우리가 올리비아를 용서하고, 올리비아도 우리를 용서한다고 쳐요. 어떻게든 이 증오를 털어버린 다음, 예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가 하하호호 한다고 치자고요.”

         

       아리아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또 똑같은 일이 생기면요? 올리비아의 자의든, 타의든, 갑자기 심마(心魔)에 들든, 홰까닥 돌아버리든……또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면요?”

       “…….”

       “막을 수 있을까요? 아니, 막고 싶을까요?”

        “…….”

       “이미 용서해버려서, 더는 우리를 죽인 원수가 아니게 되어버렸는데?”

         

       찻잔은, 어느새 비어 있었다.

         

       “우린 이미 호랑이 등에 탔어요. 멈출 수도 없고, 멈추려고 해서도 안돼요.”

       “…….”

       “이 증오를, 잊어서도 안되고요.”

       

       아리아는 고개를 돌려, 악마사냥꾼을 마주보았다.

         

       “악마사냥꾼님이 처음이에요.”

       “……무엇이?”

       “이런 말 한거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악마사냥꾼님이 처음이에요.”

         

       “저랑 똑같은 얼굴을 하고 계셨거든요.”

         

       악마사냥꾼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아리아가 말했다.

         

       “여러 감정이 마구 뒤섞인 복잡한 얼굴요.”

         

       아리아의 말을 곱씹던 악마사냥꾼의 뇌리에 기이한 예감이 스쳤다.

         

       ……정말로 그게 전부인가?

       

       아무리 기호지세(騎虎之勢)라고 한들, 원한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을 텐데.

         

       왜…….

         

       무언가 더 숨기고 있다고 느껴지는 걸까.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너…….”

       

       입을 달싹이는 악마사냥꾼을 보고, 아리아는 그저 빙긋 웃었다. 그녀는 집무실 문을 열고 반대편 손으로 정중히 복도를 가리켰다.

         

       “그럼 다녀오세요. 악마사냥꾼님.”

         

         

       *****

         

         

       [제한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올리비아가 눈꺼풀을 들어올리기 무섭게, 말소리가 들려왔다.

         

       “오. 드디어 일어났다.”

         

       연쇄살인마가 눈웃음을 지었다.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잖아.”

         

       그의 몸은 거대한 얼음 속에 처박혀 있었다. 혹시 몰라 안전장치를 해두고 가길 잘했다.

         

       올리비아는 연쇄살인마를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쳐다보다가, 옅은 한숨을 내쉬며 얼음에 손을 가져다 댔다.

       

       어쩌겠나. 

       

       이런 놈이라도, 데리고 다녀야지.

       

       ‘처량하네.’

         

       마경을 클리어하고 세 번째 열쇠를 얻으려면, 연쇄살인마의 도움이 필요했다.

         

       반드시 두 명이서 입장해야 한다는 제한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겸사겸사 단서로 ‘교육’도 시키고 말이다.

         

       쩌저적, 소리를 내며 얼음이 무너져내렸다. 연쇄살인마는 얼음 속에 파뭍혀 있던 생선처럼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으음?”

         

       연쇄살인마는 곧바로 일어나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진심으로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는 양 손을 이용해 제 몸을 더듬더니, 다시금 신음을 뱉어냈다. 제 사지가 멀쩡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보였다.

         

       “으음? 으으음? 어어?”

         

       연쇄살인마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몸을 일으켰다.

         

       “……왜 풀어줘?”

       “그럼, 죽여?”

       “당연히 죽여야…….”

         

       연쇄살인마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쪽 손을 가슴 위에 올렸다. 심장이 엇박으로 두근거렸다.

       

       두근.

         

       “……이상해.”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정말로, 이상해.”

         

       연쇄살인마는,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너, 나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가스라이팅.”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1

    – 뚜알기가 조아님 3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 항상 제 야식을 책임져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ㅠㅠㅠ

    30코인이라는 거금을 또…!

    \(>_<)/

    만쉐이!

    감사합니다!

    -김이얀님 3코인 후원감사드립니다!

    1Fi라…암호라도 되는걸까요?

    아무튼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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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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