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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1

       전생에는 시간이 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매번 야근에 시달리면서도 야근 수당은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그러면서도 입에 풀칠은 해야 해서 차마 그만두지 못하고 멀리 떨어진 회사에 다니던 나는, 언제나 개인 시간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껏 주말에 쉬더라도 곯아떨어져 게임이나 영화는 생각도 못 하고, 소설이나 조금씩 읽다 말았으니까.

        

       재벌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나 돈 걱정 없이 그냥 놀면서 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사실 지금도 그런 마음이 있긴 하다. 솔직히, 사라의 몸으로 다시 깨어났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긴 했으니까.

        

       하루하루 돈을 펑펑 써도 내가 쓰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온다. 인터넷으로나 보던 부자들이 하던 일들, 그러니까 슈퍼카를 수집하거나, 희귀 동물들을 데려다 키우거나, 집 안에 놀이공원을 만들거나…… 하던 일들이 전부 가능한 삶.

        

       내가 돈만 많았으면 이러이러한 일들을 했을 텐데— 하는 망상들을 전부 이루고도 남을 재산.

        

       그런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라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자신의 하나 남은 가족의 사랑.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그런 꿈들, 혹은 망상들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남들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은 그럭저럭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 때문에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가끔 만나 인생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도 있었고,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가족이나, 나를 위해주시는 부모님도 있었다.

        

       누구 하나 부럽지 않은 삶, 이라는 말을 할 생각은 없다.

        

       나는 그저, 사라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취미고 뭐고, 뭘 좀 하나 진득하게 해 보고 싶어도 시간이 부족하던 나의 전생과는 다르게, 지금 내가 가진 것은 시간뿐이었다.

        

       나의 시야를 함께 보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던 사라와는 다르게, 나는 그런 일은 하지 못했으니까.

        

       그저 사라의 마음 속을 거닐며 그 기억을 읽는 것이 전부였다.

        

       지난번에도 봤지만, 사라의 기억은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이었다.

        

       학교에 갈 때를 제외하면 집 안에만 있는다. 함께 대화해줄 사람은 없다. 놀아주는 사람도 없고, 당연히 친구도 없다.

        

       인터넷 같은 것은 필요할 때가 아니면 하지도 못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본인이 원했다면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도.

        

       내가 스마트폰을 달라고 했을 때, 양혜인은 나에게 스마트폰을 넘겼다. 내가 저택 안에서 무슨 일을 벌였을 때마다 사용인들은 당황하긴 했어도 나를 막지는 못했다.

        

       그렇다. 사라는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그저 너무 어린 시절에 마음을 꺾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을 뿐.

        

       ……사라는 침대 위에 무릎을 안고 앉아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핏 보면 정지 화면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규칙적으로 호흡하며 어깨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보인다.

        

       어느 날이었을지 모를, 사라의 반복되는 삶의 한순간.

        

       괜스레 사라 옆에 앉았다. 내가 옆에 앉거나 말을 걸어도 사라는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곳은 사라의 기억의 재현일 뿐이니까.

        

       이때의 사라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저 방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을 죽이고 있는 사라의 모습은, 너무나 안쓰러워 보였다.

        

       “차라리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어땠을까.”

        

       방 안을 짓누르는 침묵이 너무 무거워,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당연히 어린 사라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사라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기억 속의 사라가 어리기 때문이었을까? 사라와 같은 모습을 한 나보다도, 사라의 키가 더 작아 보였다.

        

       “네가 더 어렸던 시절에 왔으면, 네가 그렇게 되기 전에……”

        

       “……내가 어떻게 됐는데?”

        

       “아.”

        

       내가 하던 말을, 사라가 끊는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린 사라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금의 사라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아직 어려서 그런지 사라보다 눈이 조금 더 크고 순해 보였다.

        

       하지만 그 눈 안쪽에서 보이는 것은 어린아이다운 순수함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깊고, 쉽게 치유되지 않을 상처. 어린 시절의 어두운 기억들.

        

       “왔어?”

        

       내가 그렇게 묻자,

        

       “응, 돌아왔어!”

        

       사라는 방긋 웃었다.

        

       그리고 내 어깨 위로 얼굴을 뉘었다.

        

       사라는 내가 자신보다 조금 더 큰 모습일 때를 좋아했다. 이렇게 기대고, 안기고, 나를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게 어린 시절에 가지지 못했던 부모를 향한 눈이라는 것은, 눈치가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는 나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뭐, 사실 내가 이런 딸을 가지기엔 아직 좀 많이 젊기는 하지만.

        

       “학교는 재미있었어?”

        

       “응!”

        

       이런 대화를 매일같이 나눈다.

        

       사라를 만나는 순간은 사라가 잠들었을 때뿐이었지만, 이게 딱히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있잖아, 학교에서…….”

        

       나와 마주한 사라는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열심히도 들려주었다. 오늘은 급식이 뭐가 나왔었는지, 하늘이와 소희, 수아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은 손아름이 무슨 지적을 했고, 운동장을 얼마나 뛰었고 축구공으로 연습은 또 얼마나 했는지.

        

       전부 반복되는 일상 속의 평화로운 나날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중요하거나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는 없었다. 나는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라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에.

        

       사라의 삶의 목표였던 ‘어머님의 사랑’을 제외하고 나면, 그녀는 텅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대체 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이. 당연히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고,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꾸려나가야 할지 모르는, 겁에 질린 어린아이.

        

       사라가 나에게 자기 삶을 그대로 맡기고자 했던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랬던 사라도 이제 많이 바뀌었다.

        

       나에게 ‘자신의 삶’을 정리하러 가겠다고 하고 의식의 표면으로 나간 사라는, 이제는 나에게 자신의 삶을 맡기겠다는 말을 따로 하지 않았다.

        

       언제 또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라는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잘된 일이다.

        

       하늘이, 수아, 소희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조금 슬프다.

        

       이제 꽤 즐기게 된 달리기를 하지 못하는 것은 조금 아쉽고, 슬슬 익숙해지기 시작한 공차기를 하지 못하게 된 것도 조금 서운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원래는 사라가 누려야 했을 것들이 아니겠는가.

        

       “……괜찮아?”

        

       나에게 신나서 이야기하던 사라가, 어느 순간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 순간 다른 쪽으로 생각이 빠져버렸다.

        

       “응? 그야 당연히.”

        

       “정말? 친구들과 만나지 못해서 서운하지 않아?”

        

       “…….”

        

       이럴 때의 사라는 정말 예리하다.

        

       사람을 마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 그럴까, 사람의 감정을 읽는 사라의 본능은 가끔 소름 끼칠 정도였다.

        

       어쩌면, 그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 그저 관찰하듯 바라보았기 때문에 얻은 재능일지도 모른다.

        

       “아냐, 괜찮아.”

        

       서운하다면 서운하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그건 사라가 원래부터 누려야 했을 당연한 것들이었다.

        

       원작 게임에서도 예사라 루트가 존재하지 않던가.

        

       비록 모든 루트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알고 있는 부분도 내가 진짜로 플레이한 것이 아니라 남이 하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것도 제일 재미있는 부분만 모아둔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하지만, 이쯤 되면 알 수밖에 없다.

        

       그 게임에서, 아마 예사라야말로 진히로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

        

       남자 캐릭터 루트로 빠지면 어느 루트건 예사라는 악역으로 등장한다. 여성 캐릭터 루트에서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는 것이지만, 이런 슬픈 과거를 가진 예사라가, 왜 그렇게 갑자기 악녀로 등장하게 되는 걸까?

        

       모든 것을 포기해버렸기에 그렇게 된 건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걸 나름대로 ‘방법’으로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루트에서, 마지막에 최나경은 예사라를 포기하게 되니까.

        

       그래, 내가 참견하지 않았어도, 어쩌면 사라는 자신과 최나경의 관계가 뒤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노력해서 그 관계를 깨부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뜻하지는 않았지만, 멋대로 사라의 인생에 끼어들어 이런저런 참견을 해버린 불청객.

        

       그게 지금의 나의 위치였다.

        

       장기적으로 보면, 나는 이 몸을 떠나는 것이 옳을 거다.

        

       어차피 이미 죽은 목숨이고, 앞날이 창창한 십 대 여자애의 머릿속에 남자 인격이 하나 더 들어있어 봐야 좋을 것이 없을 테니까.

        

       “괜찮아.”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대답한다.

        

       사라가 너무나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으니까.

        

       지금 당장은, 사라 옆에 앉아 그 의지를 붙잡아줘야지.

        

       “정말로?”

        

       “응.”

        

       그리고, 언젠가.

        

       사라의 삶에서 내가 필요 없어지는 날이 오면.

        

       어린 시절에 기억하고 있다가 잊어버린 상상 속의 친구처럼, 나는 마땅히 망령으로서 가야 할 길을 떠날 것이다.

        

       그렇게 하기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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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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