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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1

       “딱히 본인을 이기라는 소리는 아니다.”

       

       그대들이 나를 이길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위협을 주리라는 기대도 마찬가지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투쟁을 바랐다면 나는 이 자리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삼존이나 여러 문주들에게 시비를 걸었겠지.

       

       “그저 본인을 상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본디 사람의 한계는 극에 몰렸을 때야 드러나는 것이니 본인이 직접 그 한계가 되어주겠다는 소리다.

       

       “그대들이 떨떠름해 하니 기준을 하나 주지. 내 발을 움직이지 않고 그대들을 상대해 줄 테니 내가 발을 떼도록 만들어 보아라.”

       

       그리 말을 하니 지원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대들도 나름 무인이긴 한가 보구나. 발 하나 움직이지 않고 상대해 주겠다는 소리에 눈빛이 사나워지는 것을 보면.

       

       “한 편이 될 인원은 추첨으로 뽑겠다. 하린?”

       “넵!”

       

       부지 한 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린이 종이로 된 상자를 들고 와 내 옆에 섰다.

       

       “줄을 서도록.”

       

       *

       

       하기정 아래에서 펼쳐졌던 싸움에서 죽었지만 화령의 눈에 들어 다음 시험에 올라올 수 있었던 박연은 줄을 서 있는 이들의 면면을 보곤 침을 꿀꺽 삼켰다.

       

       약한 사람이 없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강하거나 그보다 더 강한 사람뿐이었다.

       

       화룡무인 내에서 상위권 유저라 자부하는 박연이지만 이 곳에선 쭈구러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저 사람들보다 뛰어난 무언가를 보여서 합격할 수 있을까?

       

       박연은 도저히 그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제발 자신이 약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조에 들어가기를 바랐다.

       

       뛰어난 조에 들어가서 그들과 대결을 하느니 약한 조에 들어가 거기에서 발악을 하는 게 더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특히나 지금 유룡의 앞에서 투닥거리고 있는 나설과 시유검이 있는 조에는 결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나설님. 복수한다고 했죠?!”

       “거기서 둘 다 죽는 것보단 하나가 죽는 게 낫잖아요.”

       “뭐요?!”

       “둘 다 진정 좀 합시다. 아직 시험 진행 중이거든?”

       

       단순 스펙만 따지자면 화룡무인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인 나설과 무공을 다루는 실력을 바탕으로 유저 무림맹의 간부가 된 시유검.

       

       박연은 결코 저 둘보다 뛰어난 무위를 펼칠 자신이 없었다. 저 곳은 그야말로 죽음의 조였다.

       

       “무림최강님. 저기 시끄러운 데로 가시면 돼요.”

       “…진짜요? 제가 아재라 그랬다고 그러는 거 아니죠.”

       “이런 걸로 장난 안 치니까 빨리 가요.”

       

       그리고 그 죽음의 조에 화산의 유저 대표였던 한민준이 끼었다.

       

       저 조는 안 돼. 저기에 들어가면 화령님이 아니라 저 사람들한테 치일 거야.

       

       제발 저 곳만은 피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먹힌 걸까. 박연이 추첨을 하기 직전에 나설이 있는 조의 빈 두 자리 중 하나에 사람이 채워졌다.

       

       이제 저 곳에 남은 자리는 한 자리. 그리고 아직 이 상자 안에 남은 종이는 열 댓 개. 그가 나설이 있는 조에 들어갈 가능성은 한 없이 낮아 보였다.

       

       “박연님. 지금 손 떨리고 있는 거 알아요?”

       “…그런가요?”

       “저기를 피하고 싶은 거죠?”

       

       추첨상자를 들고 있는 하린이 눈짓으로 유룡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그 곳은 한민준이 끼는 바람에 소란이 더 격화되고 있었다.

       

       “당연하죠. 저기 들어가면 광탈이라고요.”

       “설마 이 많은 종이 중에 저 조를 뽑겠어요? 맘 편하게 뽑아요.”

       “그렇겠죠?”

       

       박연은 하린의 응원을 받아 상자 안에 있는 종이 중 하나를 뽑았다.

       

       그 종이에 적힌 글자는… 유룡이었다.

       

       박연은 눈을 감았다 떠보고 종이를 접었다 펴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확률의 신께서 그에게 고했다.

       

       세세한 확률을 따질 필요 없다고.

       

       세상의 일은 되느냐 안 되느냐의 양자택일뿐이라고.

       

       *

       

       

       “조가 다 정해졌으니 이제부터 한 시간 동안 회의를 할 시간을 주겠다. 최선의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다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나설과 시유검은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싸우지는 않았다.

       

       어느 쪽이건 아직 시험에서 떨어지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분위기가 잔뜩 냉각되어 있는 것은 그대로인지라 한 자리에 모인 다섯은 서로 눈치만 볼 뿐 그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조별과제 조장 할 사람을 찾는 듯 무거운 분위기에서 먼저 말을 꺼낸 건 한민준이었다.

       

       화산의 대표로써 사람을 이끌 일이 많았던 그이기에 이런 분위기에서 나서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것이다.

       

       “일단 서로 대충은 다 알 테니까 통성명은 넘기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한민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이들은 최전선에 자주 섰던 이들.

       

       적으로건 아군으로건 싸울 일이 워낙에 많았던지라 서로의 얼굴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저는 화령님을 이기겠단 생각은 배제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동의하십니까?”

       

       박연은 한민준이 꺼낸 말에 수긍했다. 일류의 몸으로 그 괴물 같던 화산문주를 날려버린 저 사람을 어떻게 이기겠는가.

       

       다른 화산의 유저도 비슷하게 생각하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으나 시유검이 중간에 끼어 들었다.

       

       “그렇게 답이 없어요?”

       “시유검님은 화령님 영상 안 보셨나요?”

       “봤죠. 말도 안 되게 강하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래도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 강한 사람들이잖아요. 다섯 명으로 협공하면 작은 가능성이라도.”

       “시유검님. 지난번에 화산사람 열 댓명이 화령님한테 협공을 걸어 봤거든요?”

       

       그건 명목상 대련의 형식을 띄고 있었지만 화산사람들의 마음가짐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엔 어땠을지 몰라도 화령에 의해 몇 번씩 바닥을 구르게 되며 독기가 찬 화산의 이들은 진심을 다해 화령을 공격했다.

       

       “한 번도 성공 못했어요.”

       

       결과는 참패였다. 화산의 유저들이 수도 없이 연습하고 실전에서 갈고 닦는 협공은 화령에게 하나도 닿지 못했다.

       

       “그런데 합도 안 맞는 다섯이 즉석에서 전략을 짜서 공격한다고 결과가 바뀔까요?”

       

       말문이 막힌 시유검은 나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까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는 것처럼.

       

       허나 나설의 신경은 이 곳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애초부터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신경은 오롯이 저 멀리서 여우로 변한 바루를 쓰다듬고 있는 화령에게 가 있었다.

       

       시유검은 그 모습을 보곤 미간을 찌푸리더니 손바닥으로 나설의 등을 후려쳤다.

       

       “흐악!”

       “집중해요. 전략 짜고 있잖아요.”

       

       말로 하면 되지 않느냐는 투정을 부리며 고개를 돌린 나설은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넷의 시선을 받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요?”

       “화령을 이기는 게 가능하냐는.”

       “화령님.”

       “네?”

       “화령님이요.”

       

       평소의 약간 허술하던 목소리는 어디로 가고 잔뜩 날이 선 목소리를 내는 나설의 모습에 시유검이 당황해선 목을 주무르더니 말을 정정했다.

       

       “화령님을 이기는 게 가능하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시유검이 존칭을 붙이자 나설이 다시 얼굴을 풀었다.

       

       그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박연은 나설의 표정변화에 섬뜩함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당장 물어뜯을 듯 사나운 눈과 무표정한 표정을 짓던 사람이 금방 해맑은 미소를 짓는 걸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을 할 것이다.

       

       “못 이기죠. 화령님을 저희 따위가 어떻게 이기겠어요.”

       “그 정도인가요?”

       “아피스 때 이야기를 빼도 튜토 당시 몸으로 검선의 인정을 받은 데다 일류의 몸으로 혈교의 술법 버프를 받은 전 화산문주를 이긴 분이신데요? 이것 말고도.”

       

       나설이 한 이야기는 과장도 무엇도 섞이지 않은 사실의 나열이었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큰 것만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나설이 기억하고 있는 전적은 더욱 많았다.

       

       “알겠어요. 못 이기는 거네요.”

       

       흥분한 어투로 그를 설명하려는 나설의 말을 시유검이 끊어버렸다.

       

       그 때문에 나설이 정색을 했으나 이번엔 시유검도 따로 반응을 해주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할 건데요.”

       “발이라도 움직여 봐야죠. 그걸 노립시다.”

       “겨우?”

       “겨우라뇨. 이것도 못하는 분들이 태반일 걸요. 저희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요.”

       

       화령의 유명한 영상 정도만 보았을 뿐인 시유검으로선 다른 넷의 수긍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굳이 말을 더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사실을 나열해봅시다. 화령님이 사용하시는 무공은.”

       “화령님에 대해선 제가 이야기 해도 될까요?”

       

       전략을 수립하기 전에 상황을 파악해보자는 한민준의 말에 나설이 끼어들었다.

       

       “하십쇼.”

       “화령님이 쓰시는 무공은 단정지을 수 없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저 분이 사용한 무공의 개수만 해도 수십 개가 넘어요. 무공을 상성으로 카운터치겠단생각은 버리는 게 나을 거에요.”

       

       보통 한 사람의 무인을 상대로 전략을 짤 때 기본이 되는 건 그 사람이 사용하는 무공의 상성을 노리는 것이다.

       

       허나 그 대전제가 화령을 상대로는 무의미 했다.

       

       여태 방송에서 보인 무공만 해도 수십 개가 넘는 그녀에게 상성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반사신경이 말도 안 되게 뛰어 나셔서 빈틈을 노리기도 어렵고, 전략이나 전술 같은 거에 소양이 있으셔서 어설프게 전략을 짜봐야 읽힐 뿐이고, 심지어 기감도 엄청나게 뛰어나셔서 비수도 의미 없을 거에요.”

       “아직 몸은 일류시잖아요. 내기의 소모를 강요하면?”

       “되겠어요? 일류의 상태로도 전 화산문주를 쓰러트렸다는 걸 잊지 마세요.”

       

       이후로도 여러 약점이 될만한 것들을 사람들이 거론해 보았지만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화령에게 약점이 없다는 것.

       

       찌를 만한 빈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정공법을 강요받는다는 것.

       

       박연은 만약 화령이 어느 게임의 보스였다면 그 게임은 망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레이드 보스는 완전무결해 보이지만 명확한 약점이나 파훼법 같은 게 있어서 시간을 가져다 박으면 깰 수 있게 되어있다.

       

       허나 화령이란 레이드 보스에겐 파훼법이 없었다.

       

       순수하게 그녀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녀야만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답없네.”

       

       긴 회의 끝에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 나와서 분위기가 축 쳐졌지만 어째서인지 나설만큼은 기뻐보였다.

       

       화령이 대단한 게 꼭 자신이 대단한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것처럼.

       

       “첫 번째 순번이 누구지? 나오도록.”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난 건지 화령이 화산 부지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녀가 첫 번째 순번을 부르자 한 유저 무리가 움찔했다.

       

       그들은 처형대에 올라가는 사람마냥 터덜터덜 걸어 화령의 반대편에 섰다.

       

       “전략은 준비됐나?”

       “일단은요.”

       “기대하지. 오게나.”

       

       첫 번째 순번이 된 이들은 모두 다 화산의 유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연계를 신경 쓸 필요 없을 정도로 서로에게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선택한 전략은 단순했다.

       

       다 같이 한 번에 달려드는 것.

       

       그들은 화령이 시작을 선언하자마자 화산의 진법을 펼쳤다.

       

       다섯이 하나가 되어 공격을 펼친다. 일체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펼쳐지는 다섯 개의 검법은 대적자에게 출혈을 강요하는 듯 했다.

       

       “미친.”

       

       허나 화령은 쏟아지는 검격에 너무도 간단히 대처했다.

       

       그녀가 왼 손을 가볍게 휘둘렀을 뿐인데 화산의 진법이 파훼된 것이다.

       

       검이 휘둘러지기도 전에 검이 올 위치를 파악해 몸을 움직이는 화령의 모습은 그녀가 미래를 보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지난번에도 한 말이지만 그대는 자기 공격이 먹히지 않으면 급해지는 버릇이 있다. 침착해져라.”

       “오. 그대는 발을 움직이는 게 많이 좋아졌군. 그대로 정진하도록.”

       “그 쪽은 처음 보는 사람이군. 검을 휘두를 때 손에 힘을 과하게 주는 버릇이 있어. 그것부터 고치게.”

       

       화령이 얼마나 여유로운지 그녀는 화산의 다섯을 상대하며 하나하나에게 조언을 건네주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화산 사람들의 공격이 거세어졌지만 화령은 단 한번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렇게 20분 가량이 지났을 무렵 화산 유저들의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촘촘했던 연계에 하나 둘 구멍이 나며 진법이라는 톱니바퀴가 삐그덕 거렸다.

       

       화령은 그를 가만 바라보다 처음으로 공격을 펼쳤다.

       

       화령의 손등이 한 화산 유저의 턱에 닿는다.

       

       얼핏 보기엔 가벼운 접촉에 불과했지만 그 접촉이 불려온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화산의 유저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일격.

       

       일격이었다.

       

       다른 화산의 유저들이라 해서 이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화령의 공세에서 두 수를 버틴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정확한 빈틈을 노린 한 수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첫 번째 지원자들을 모두 처리한 화령은 아쉬운 눈으로 바닥에 쓰러진 이들을 바라보다 목소리를 냈다.

       

       “다음.”

       

       두 번째 차례가 된 이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약점 없는 레이드 보스라니. 똥겜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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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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