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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1

        

         “…허.”

         

         우르르.

         폭풍처럼 몰려와서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던 에나마 병력들이 썰물 빠지듯이 돌아서 나간다.

         

         호위하는 대상이 볼일이 끝났다고 떠나는 만큼, 모양새가 빠지더라도 밑에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건 이해가 갔다. 까라면 까는 거고, 상황이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따르는 거지.

         

         “뭐냐고…!”

         

         하지만 기껏 무섭게 경고해 놓고, 멀쩡히 일하던 전문 기술자들 불러서 사열시키는 흉내까지 냈으면서. 막상 사람 얼굴 한 번 보고는 못 볼 걸 본 것 마냥 기겁해서 도망가는 건 대체 무슨 심보인데!

         

         내가 예정에 없던 뜻밖의 조우에 당황해서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매너 없이 입을 좀 뻐끔거리긴 한 것 같지만… 그게 그렇게 꼴 보기 싫었나? 이게 지배 계층의 일반적인 감상이라면 어쩔 수 없긴 하다만.

         

         군대에서도 이따구로 하급자들 굴리면 마음의 편지 박히는 거 모르나?! 어차피 출세길이 보장되어 있다고 막나가냐 너 지금?

         

         속으로 마구 씹어 대 봤자 별반 달라질 건 없었다.

         당사자는 이미 떠났으니 나는 원작 지식과 방금 겪은 실체험, 그리고 얼핏 확인한 맹수의 반응을 통해 내막을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에다마츠 아마기.

         

         아마기 가의 적자(嫡子; 본부인이 낳은 아들)…라 하면 적자인 인물이다.

         

         일본 특유의 낡은 문화 탓인지, 아니면 저 집안이 특별히 맛이 간 건지는 몰라도. 근친혼에… 약탈혼에… 여러모로 족보가 3D 입체 도식화되는 짓거리에는 가문 전체가 열을 올렸지만 어쨌거나 서자는 아니니까 뭐.

         

         하여간 입지전적 이야기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고, 시체로 산을 쌓는다 해도 또 틀린 말은 아닌 스토리를 가진 아마기 일가의 막내로.

         후계 자리에 가장 관심이 없던 주제에 기어이 형제 자매 전부를 물어뜯고 제쳐서 꼭대기에 올라서는, 재벌가 성공물의 왕도(Royal Road)를 걷는… 대충 그런 인간이다.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에나마의 일선 집행자인 만큼. 프롤로그에서도 얼굴을 내비치고, 의료와 밀접한 사이드 퀘스트에서도 흑막으로 나오고, 그러면서도 무서울 거 하나없이 막 나가는 주인공을 유심히 지켜보는 상위 계층의 일원.

         

         유저 평가는… 크게 두 분류로 갈린다. 미친 마마보이, 혹은 돌아온 탕아라고.

         

         일부는 여자 코스프레를 하는 건지, 빡센 컨셉을 잡은 건지는 몰라도. 주인공 캐릭터의 성별에 관계없이 흥미를 보이는 에다마츠를 두고 짐승남이니 집착남이니 하면서 각자의 취향에 부합하는 어지러운 스크린샷을 찍어 내기는 했는데….

         

         나는 어디까지나 게임적 연출이나 허용과 설정 고증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던 쪽인지라, 그냥 수도 없이 회차를 진행하면서 봤던 경험을 바탕으로 마마보이 설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남겨진 유품이나 과거의 잔재에 매몰된 성향이 지나치게 강한 것도 그렇고.

         또 제 딴에는 아닌 척, 멀쩡한 척해도. 미친 가문의 피가 이어진 일원답게 선을 좀 넘을라 치면 상호 협력이고 뭐고 죽일듯이 달려드는 면도 강한 게 곳곳에서 드러나는 편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배경들을 다 감안한 채, 결국 개인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냐고 묻는다면… 딱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기업 붕괴, 또 몰락 시나리오에서 처절하게 죽어갈 때, 그리고 호감도를 올려서 따로 획득하는 회상 씬이나 데이터를 보고서 안타깝고 불쌍하게는 여겼지만 거기서 더 깊게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내가 네오 헤이븐이라는 게임에 엄청 과몰입 했던 것도 사실이고!

         뒷설정이나 이스터 에그 탐방도 평균 이상으로 즐기며 공략에 열을 올렸던 것도 틀림없긴 한데.

         

         솔직히, 호감도 작업이나 로맨스가 가능한 캐릭터고 나발이고. 당시 플레이어인 내가 동성애자가 아니었는데 뭘 더 바라냐고요…! 그냥 업적도 깨고 수집품도 모으면서 그렇구나~ 하고 말았지.

         

         “에이씨…!!”

         

         헛도는 생각이 답답해서 머리를 한차례 벅벅 긁었다.

         

         이 인간 옆에는 항상 세트 메뉴로 딸려오는, 독한 기업인의 면모를 강조하면서도 어그로를 대신 먹어주는 ‘그 씹새끼’가 비서로 있는 게 당연했기에.

         마음의 준비는커녕 아무런 대비도 못한 채로 마주쳤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최악은 면했다고 봐도 괜찮겠지.

         

         그런데 에다마츠 이 콤플렉스 덩어리… 그리도 어머니가 그리웠으면 얌전히 자기 사무실에서 분위기나 처잡고 있지, 왜 여기까지 행차해서 다짜고짜 초면인 사람한테 뜬금없이 헛소리를 박는 거야?

         

         현실이 되면서 애가 가진 소시오패스(Sociopath;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 경향이 더 짙어졌나.

         그건 좀 곤란한데. 에나마 관련 스토리의 핵심 인물이 변해버리면 원작 진행은 누가 책임져줘. 올해가 다 지나가기 전에 조금이나마 교정이 되어야 할 텐데… 무슨 계기가 따로 있나.

         

         “혹시… 귀염둥이가 아니라 큰언니라고 불러야 하나? 저런 장성한 애가 있다면, 눈대중으로 생각한 것보다 훨씬 조숙하다는 결론에….”

         

         “큽!? 미쳤어 진짜?!”

         

         사고의 늪에서 단번에 뛰쳐나오게 만드는 기절초풍할 모함에 사레가 들렸다.

         

         그나마 외야가 조용하길래 피차 못들은 척 넘어가는 줄 알았거늘.

         엇박자로 태연하게 미친 소감을 늘어놓는 마리나를 켁켁거리며 째려봤지만 그녀는 하찮은 농담이라며 신나게 손을 흔들어 보일 뿐.

         

         “우와아…. 유… 유부녀였어요? 누나…?”

         

         “야!!”

         

         …일단 그걸 또 곧이곧대로 삼키고 세상 충격 받은 표정을 짓는 켄도 똑같이 윽박질러서 퍼뜩 정신을 차리게 했다. 옛말에 사람 셋이 짜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 수 있다고 이러다가 위험한 소문이 도는 건 아닌가 몰라.

         

         하지만 그보다 거슬리는 건 역시 마리나의 확신.

         

         정말 찰나의 시간 동안만 시선이 스친 것 같았는데, 심심풀이 삼아서 나를 질 나쁜 농담의 소재에 엮으려는 걸까? 그런 악취미가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히려 모성…을 느꼈다면 실상 나보다는 그녀 쪽이 더 가능성이 크지 않나? 그…… 여러모로.

         얘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에다마츠가 지칭한 게 나라고 믿는 건지.

         

         ♬~… ♪.

         

         그녀는 미심쩍은 눈초리를 받으면서, 콧노래와 함께 통통 튀는 발걸음으로 우리만 남은 창고를 가로질러 문 쪽으로 다가갔다. 쓸데없는 수식어가 덕지덕지 붙었지만 궁금증을 풀어주는 말을 덧붙이면서.

         

         “공주님이 눈치가 없네… 눈치가! 당장 옆에 있는 로봇한테 물어봐도 그 핸섬하고 지갑 빵빵해 보이는 젠틀맨의 뜨~거운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건 무조건 귀염둥이라고 확답할 걸?”

         

         뭐라굽쇼.

         

         “……저거 진짜야?”

         

         – 비록 본능이나 직감에 가까운 돌발 행동에 대해 완벽히 논리적인 설명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시선의 방향만 따진다면 사실입니다. –

         

         삐걱거리는 목을 돌렸다.

         제발 착각이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하며 제로를 바라봤지만 냉정한 분석 결과만이 돌아왔다.

         

         그것 참 재수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엉뚱한 곳에서 발목을 붙잡힌 기분이네.

         이래서 메가코프 주변을 맴도는 게 아니었는데……가 아니라, 어쩌다 발 한 번 헛디뎌서 휘말려 들었다고 이게 무슨 꼴이람.

         

         “이야~ 덕분에 좋은 구경을 했어! 저런 높아 보이시는 분이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여자가 고프시다? 요거 요거… 도시에 널린, 인생역전을 꿈꾸는 예비 신데렐라들에게는 엄청 기쁜 소식이 될지도…?”

         

         “너… 그거 크게 떠들다가, 어디로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도 난 모른다.”

         

         낄낄대는 그녀에게 나름 진심 어린 충고를 던지고는 한숨 돌렸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문제가 커지고 수상한 작당 모의가 진행되는 것보다야, 차라리 이렇게 코 앞에 범행 예고장을 들이밀어주는 게 훨씬 낫긴 하다만.

         

         에다마츠 아마기의 관심이라….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권력자에게 노출되는 것과 비교한다면 단연코 이쪽이 안심된다.

         

         문제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라는 점, 그리고 이용할 수 있는 배경이 대부분 에나마의 최고 기밀이나 치부와 관련되어 있어서 함부로 선뜻 꺼내기가 좀 애매하다는 거…?

         

         이것도 죽어라 노력해서 후딱 일을 끝내고 도망가면 해결될 말썽거리기는 하니까. 어떤 의미로는 더없이 공평한 난관이긴 하겠다.

         

         ……망할, 조금만 힘내자.

         

         팔자에도 없던 단체 합숙 생활에 눈치를 보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게 고역이긴 해도, ‘세상에 둘도 없는 희귀한 탈주 실험체’ 이름표가 달린 채로 영영 사육 당하는 신세가 되느니 잠깐 고생하고 마는 게 모든 면에서 나을 테니까.

         

         쿵쿵쿵…!!

         

         “요원 형씨! 밖에서 미적대지 말고 빨리 식사 주문이나 받아줘! 밥밥… 밥! 이대로 우리 굶길 거야? 응? 아니지?? 여기엔 그쪽 높으신 분의 예비 애인까지 있다고?”

         “귀하의 무례함에는… 정말 매일이 새롭구료. 감탄을 금치 못하겠소이다.”

         

         “……저게 진짜?”

         

         그나저나. 어쩐지 신나서 출입문 쪽으로 다가간다 했더니, 저저 해맑은 돈귀신은 그새를 못 참고 추적자를 긁어 댕 생각에 흥겨움을 주체하지 못하던 거였네요. 예.

         

         야, 제로. 저거 붙잡아. 묶어서 지 방에다 던져버리게.

         

         …그럼 밥은 뭘로 시키냐고? 아니, 그걸 고민하기 이전에.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영락없이 기분 상해죄로 콩밥 먹는다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대충 가화만사성 가계도).

    하하, 이 여캐충 녀석. 본 때를 볼 시간이다.

    인생만사 님의 10코인 후원! 너무 감사드립니다!
    항상 재밌게 읽어주셔서 불민한 저는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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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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