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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2

    즐거운 생아귀 스테이크 아침 식사가 끝이 났다.

    예린이는 달콤한 마시멜로를 아침으로 먹기에는 좀 그랬는지, 룸서비스를 시켜서 먹고 미니 아귀를 품에 안고 TV를 보고 있었다.

    하긴 아침 식사로 머리통만 한 마시멜로는 조금 힘들겠지.

    슬금슬금 기어가서 예린이의 무릎에 머리를 얹고 누워서 위를 쳐다보자, 자그마한 미니 아귀의 발이 보였다.

    몰래 뜯어먹으려고 입을 벌리자, 예린이가 하얀 아귀를 내 눈앞에서 치워버렸다.

    “이건 내거니까, 안 줄 거야.”

    어차피 재생할 텐데, 치사한 예린이.

    하얀 미니 아귀를 새로 소환해서 입에 한가득 물고, TV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TV에서는 뉴스 진행자가 미간을 찌푸리고 무거운 어조로 최근 나타난 재앙, 신종 마약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강력한 중독성을 가졌지만, 전혀 검출이 되지 않고 가격마저 저렴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분명 오브젝트로 만든 마약이겠지.’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아귀를 크게 베어 물자, 불만스러운 뀨힝힝 소리가 마시멜로에서 들려왔다.

    유행하는 신종 마약을 분석해 보니 주성분은 완전히 태운 단백질이라는데, 너무 타버려서 어떤 고기인지도 알아내지 못하는 상태라고 떠들고 있었다.

    마약단속국에서는 이번 마약을 오브젝트와 관련된 범죄로 보고, 오브젝트 협회에 협조를 요청한 상태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신종 마약을 복용한 사람들의 사진들이 TV 화면에 나열되었다.

    마른 고목 나무처럼 마르고 건조해 보이는 피부.

    미라처럼 비쩍 마른 몸.

    흉흉하게 빛나는 눈빛.

    예전에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생김새 같은데….

    생각해 보니 서울숲의 괴인과 조금 닮은 것 같았다.

    곰곰이 생각하던 도중, TV가 꺼지며 예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으, 정말 끔찍하게 생겼네. 꿈에서 나올 것 같아.”

    예린이는 그 모습을 보며 몸서리를 치며, TV를 꺼버린 것이다.

    그리고 예린이가 나를 품 안에 껴안으며 말했다.

    “사신아. 여기 호텔 내부에도 수영장 있다는 데 가보자! 어차피 손님도 없고, 우리끼리니까 재밌을 거야.”

    그렇게 나는 예린이의 품에 안겨 호텔 객실 밖으로 옮겨졌다.

    ***

    제임스 시티 내부의 비교적 멀쩡한 회의실 중 한 곳, 제임스와 부시장, 그리고 미니 달을 관측하던 관계자들이 모여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군. 좀 쉬는 게 어때. 제임스.”

    여전히 목에 도주 방지 목걸이가 걸려있었지만, 잠시 격리에서 풀려난 부시장의 말에 제임스는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지금 잔뜩 고생해 두는 편이 낫지.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계속 기다리게 할 수도 없고 말이야.”

    제임스는 프로젝터에 비친 화면을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제, 회색 달 관련 이야기 좀 해보자고.”

    제임스의 말을 받듯이 ‘미니 달 관측 계획’ 관계자가 슬라이드를 전환했다.

    “어제 하루 동안 관측된 달의 사진입니다.”

    슬라이드에 나온 달의 사진들은 미니 달들 사이에서 그 존재감을 자랑하는 커다란 달의 모습이었다. 

    모두 회색빛을 띤 달.

    “아시다시피 달의 색은 기상 상황이나, 시간에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어제 이후로 언제 어디서 관측하더라도, 같은 색을 가진 회색 달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온갖 위치와 시간대에서 찍은 사진들이 지나갔지만, 놀라울 정도로 똑같이 생긴 달의 사진들이 지나갔다.

    “지금은 남색 달의 등장 때문에 원래 달의 이변을 눈치챈 사람은 극소수입니다만, 곧 많은 사람이 눈치채게 되겠죠.”

    “붉은 달 때처럼 큰일로 번지지 않으면 좋으련만.”

    부시장의 중얼거림에 다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달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온갖 종류의 종말론이 두드러지고 자살, 휴거 등의 사건으로 난리가 났었으니 말이다. 

    그 뒤처리로 너무 고생스러워서, 별다른 사건이 터지지 않는 한국이 부러울 정도였다.

    회색 달에 대한 논의가 끝나자, 슬라이드는 조금 다른 성격의 문서를 비춰주기 시작했다.

    수기로 작성된 보고서.

    그것을 보며 부시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이제 내 차례로군.”

    그것은 목격담이자, 오브젝트 전공자이자 물리학 전공자인 학자 입장에서의 해석이었다.

    정신 오염과 환각의 가능성이 큰 만큼, 충분한 해석을 곁들인 이야기였다.

    슬라이드를 넘기며 설명하던 자세한 발표가 끝나고, 부시장은 짧은 말을 덧붙이며 자리에 앉았다.

    “가볍게 결론을 내리자면 내가 볼 땐 확실하다는 거야. 시공간이 뒤틀렸지만, 환각이 아닌 남색 달을 관측 했어. 그리고 그것을 파괴하는 회색 사신의 모습도.”

    “드디어! 미니 달이 회색 사신이 일으킨 현상이라고 99% 확신할 수 있겠군.”

    붉은 달 사건 이후, 회색 사신이 원인이라고 확신하고 있던 제임스는 후련한 기분을 표현했다.

    그 이후로는 앞으로의 관측 스케줄이나 제임스 시티에 입주해 있던 연구소들의 이전 여부 등을 결정하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것으로 회의를 마칩니다.”

    회의 종료 선언을 마지막으로 다들 지친 얼굴로 회의실을 나섰다. 

    “불편하군.”

    부시장은 목에 걸린 도주 방지 목걸이가 불편한지, 연신 만지작거리며 투덜댔다.

    “아, 그거 불편하지. 규정상 정신 오염 의심 2급이니까 한 달은 착용해야 할걸?”

    제임스도 3급 의심으로 일주일 동안 착용했었다고 덧붙이며 말했다.

    정신 오염 의심자 격리실로 끌려가는 부시장을 보며 인사했다.

    “그럼 한 달 뒤에 보자고.”

    “그래.”

    격리 중이라 할 일이 없는 부시장은 바빠 보이는 제임스와 작별을 하며 헤어졌다.

    ***

    호텔 수영장의 분위기는 고요하면서도 의외로 매력적이었다.

    다른 이용객은 아무도 없어서 한적한 수영장에서 사신이들이랑만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한껏 긴장한 표정의 제임스 연구소 소속 보안요원들도 없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무리한 이야기겠지.

    수영장 가장자리에 부딪히는 잔잔한 물소리, 그리고 황금 사신이들이 10m짜리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며 내는 물소리가 배경음악처럼 잔잔히 깔리고 있었다.

    첨벙첨벙.

    사신이는 내게 겨드랑이를 붙잡힌 채, 무심한 표정으로 작게 발을 휘두르며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호텔 수영장의 놀이 기구들은 제임스 연구소의 놀이 기구처럼 과격하지는 않았지만, 황금 사신이들은 똑같이 즐거워하며 놀고 있었다.

    요즘 들어서 황금 사신이들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이들은 언제나 즐거워 보여.

    더 재밌거나 맛있는 걸 먹고 나면 다른 것들은 조금 시큰둥해져야 정상인데, 황금 사신이들은 그런 낌새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호불호가 없는 것 같지는 않아.

    어쩌면 주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반응이 다른 걸까?

    사신이랑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도중,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 제임스가 호텔 수영장으로 찾아왔다.

    “잘 쉬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군.”

    “제임스는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안색이 너무 심각한데요?”

    제임스는 아직은 괜찮다고 말하며, 호텔 중앙홀 쪽으로 우리들을 불러냈다.

    ***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안색의 제임스가 나타나서 예린이와 나를 불러냈다.

    아마 그 0호 유물인가 하는 것들 관련이겠지.

    수영을 마치고 도착한 커다란 홀에는 엄청난 숫자의 골동품들이 늘어서 있었다.

    고대 유물처럼 보이는 것부터, 고풍스러운 골동품처럼 보이는 것까지 다양했다.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만년필.

    신전의 벽에서 뜯어낸 것처럼 보이는 생소한 스타일의 벽화.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 중에 오브젝트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느낀 것처럼, 나와 반응을 하는 0호 유물은 하나도 없었다.

    “아무것도 반응하지 않는군.”

    제임스는 살짝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시선이 자꾸만 가는 물건이 하나 있긴 했다.

    바닥에 커다랗게 장식된 대리석 모자이크.

    7개의 달이 떠오른 하늘, 거대한 첨탑 그리고 그 첨탑만큼 거대한 동물들을 묘사한 그림이었다.

    내가 유심히 바라보는 것을 보고 예린이가 모자이크를 이리저리 살펴보자, 제임스가 모자이크에 관해서 설명해 주었다.

    “아, 그건 한국에서 사들인 모자이크야. 트리니티 제3 연구소 소장의 집에서 발견됐지.”

    약간 의문점이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제임스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스타일이나 사용된 무늬 등이 0호 유물과 유사점이 많아서 사들였는데, 조사해 보니 현대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져서 0호 유물을 모방한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핏물로 된 덩어리들이 되뇌던 말소리가 생각나는 그림이었다.

    <인간은 신을 죽였다. 그리고 다시 필요로 했다.>

    <신은 잔혹했지만, 인간을 지켜주었다.>

    ***

    한때 우뚝 솟은 나무들이 가득했던 장엄한 산맥에는 이제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대지에는 석유와 비슷한 점성을 띤 검은 액체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고, 그 검은 액체는 산맥 너머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대지에 생기를 불어넣는 평범한 동식물은 보이지 않았고, 그 어떤 지저귐이나 바스락거림, 속삭임도 없었다.

    이 황량한 풍경 속에는 신화에서만 볼 법한 거대한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산맥과 크기를 비견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돼지.

    그 돼지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불을 토해내며 검은 액체를 불살라버리고 있었고, 발굽이 대지를 내리칠 때마다 천둥 같은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불타는 돼지는 이 버려진 산맥의 지배자이자, 끝없는 허기에 시달리며 배회하는 자였다.

    돼지는 불타는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기를 가늠하고 있었다.

    하늘 위에는 달이 3개 떠올라 있었다.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달이 태양처럼 빛나며 세상을 비추며, 이 비틀린 세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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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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