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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2

       143. 후회성녀는 시간을 달린다(6)

       

       

       요즘 체감한 사실 하나.

       나는 육아와는 도저히 맞지 않는 듯 하다.

       

       순진무구하고 귀여웠던 딸이 어쩌다 보니 도박과 술에 취해 사는 망나니가 되어버린 상황. 나는 자연스레 그 교정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술은 제발 그만 좀 마시십시오. 내일 중요한 일정이 있는데 그건 대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숙취는 약이든 술식이든 써서 없애면 되니까 괜찮아. 몸에 좀 해롭긴 하겠지만… 뭐, 어차피 그렇게 오래 살 생각도 없으니까.

       

       논리적인 근거를 덧붙인 조언도 실패.

       

       -황녀가 도박장에 틀어박혀 있다는 소문이 돌면 안 그래도 나쁜 평판이 바닥까지 떨어질 겁니다. 목숨이 위험해진다고요!

       

       -어차피 다 알고 있는 거라 더 떨어질 평판도 없어. 게다가… 내가 뭐라고 하든 결국 사람들은 그냥 보고 싶은 것만 보더라고. 

       

       겁을 주기 위해 약간의 위협을 가미한 경고도 실패. 

       

       -딱 하루. 딱 하루만이라도 좋으니까. 착실하게 업무에 임해주세요. 평판이든 정치든 제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그건… 안 돼.

       

       이판사판으로 감정에 호소해 보기까지 했지만. 그것마저도 아무튼 그냥 안 된다며 설득에 실패.

       

       그야말로 실패의 연속이였으니까.

       

       망나니를 고쳐놓는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였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소리.

       

       ‘뭐… 나름 진전은 있었긴 한데.’

       

       내 조언은 모두 기각당하긴 했지만. 옆에 계속 따라붙어서 잔소리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같이 있는 시간이 늘었다.

       

       그러다 보니 정도 좀 붙은 것 같고 말이다. 

       

       뭐,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았으니. 내 일방적인 생각일 확률도 있지만….

       

       “시온!”

       

       만취해서 빨개진 얼굴로 헤실헤실 웃으며 나를 부르는 소녀의 얼굴을 보면,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다.

       

       평소에는 항상 따라붙었지만 오늘은 2황자의 호출이 있었기에 도중에 술집에 합류한 상황.

       

       나는 까치발까지 들고 손을 흔들어 제 위치를 알리는 소녀 옆에 자연스럽게 착석하였다.

       

       ‘얘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나를 향한 호감.

       친한 사람을 만난 기쁨이 얼굴과 행동에 아주 대놓고 드러나 있다. 거기에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공유한다는 특별함.

       

       분명 친근감을 느끼는 건 확실할 터인데. 

       

       어째서인지 내 말을 들어먹지를 않는다.

       

       고집이 세서 그런 건지.

       아니면 술과 도박의 중독성이 그리도 강력한 것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

       

       나는 다시금 골머리를 썩히며 대체 이 소녀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내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궁금하면 물어보면 되는 거잖아.’

       

       물론, 물어본다고 세상 모두가 그리 쉽게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을 리가 없긴 하지만. 그럴 때를 위한 대책이 있지 않던가.

       

       현대에도 존재했던 물건.

       사람을 솔직하게 만드는 마법의 음료.

       

       다시 말해서 술이.

       

       굳이 힘들게 억지로 먹일 필요도 없다. 타이밍 좋게 본인이 셀프로다가 몇 병이나 들이킨 모양이였으니까.

       

       판이 이렇게 깔렸는데 망설일 이유 따윈 없다.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대체 왜 그러시는 거에요?”

       

       “……응?”

       

       풀린 혀.

       얼빠진 표정으로 그리 묻는 율리.

       

       조금 어조가 강하지 않나 싶지만. 이런 상황에서 돌려 말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 나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이게 잘못된 일이라는 건 아시잖아요.”

       

       내 말에 그녀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까 그 실없던 표정은 어디 가고 한층 진지해진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던 소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답을 입에 담았다.

       

       “이래야만 내가 살 수 있으니까.”

       

       이렇게 망나니처럼 굴어야만 살 수 있다.

       그런 괴상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에 자연스레 내 표정이 의문으로 물든다. 

       

       그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율리는 조그맣게 미소지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너도 알지? 내가 함부로 사람을 근처에 둘 수 없다는 거. 그런데 그런 조건을 두고 황위를 차지한다는 게 가당키나 하겠어?”

       

       확실히.

       그건 조금 어려워보였다.

       

       황위 다툼에서 인맥이 차지하는 비율은 분명 적지 않을 터인데. 율리는 비밀 탓에 사람을 근처에 둘 수가 없으니까.

       

       “어차피 내 패배는 확정되어 있어. 그런데 내가 여기서 자꾸 설치고 자리를 위협하면 어떻게 되겠어?”

       

       율리의 그 말.

       나는 그제서야 그녀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망나니로 있어야 해. 황위 따위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경쟁자조차 되지 않는 성격 나쁜 머저리가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어.”

       

       그녀는 술과 도박이 좋아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였다. 그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있을 뿐.

       

       자연스레 미안함이 밀려온다.

       이런 아이를 나는 망나니라고 욕해왔던 것인가. 

       

       어쩌면 내 말에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걸 대체 어떻게 사과해야 하나, 내가 한참 그런 생각을 하면서 쩔쩔매던 순간이였다.

       

       “그래서 내가 살기 위해 망나니 짓을 하고 있다…… 같은 건 그냥 거짓말이지.”

       

       다시금 그녀의 입에서 생뚱맞은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은.

       

       “오빠들이 얼마나 지독한데. 경쟁자가 좀 맛이 갔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 두겠어? 결국 내가 살아남을 방법은 이 경쟁에서 이기는 것밖에 없어.”

       

       …그건, 확실히 맞는 말이긴 하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이쪽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으니까.

       

       렌야는 저래 보여도 꽤 냉철한 편. 상대방이 약하다고 해서 잘라낼 수 있는데 잘라내지 않을 정도로 무르지는 않다.

       

       헌데 이상한 건….

       

       ‘그럼 대체 왜 이러는 건데?’

       

       아까 그게 그냥 헛소리일 뿐이였다면, 대체 왜 이런 망나니 짓거리를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다시금 내 얼굴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그것을 율리도 보았는지, 그녀는 멋쩍게 뒷목을 긁다가 이번엔 진짜 답을 입에 담았다.

       

       “그… 외롭기도 하고, 혼자서 할 짓도 딱히 없다 보니까….”

       

       …그냥 평범하게 유흥에 빠진 거였나.

       아까 그 뜬금없는 거짓말도 그냥 이 사실을 입에 담기 무안해서 한 번 해 본 이야기였던 모양.

       

       아주 허탈하기 그지없는 답에 자연스레 내 표정이 굳어진다.

       

       아까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사과해야 하나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던 내가 다 바보같아질 지경.

       

       기가 차다는 내 얼굴을 본 율리는 자기도 창피한 건 아는 듯 내 시선을 피하면서 한참을 우물쭈물거리다가….

       

       다시금 조금 진중한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변한다고 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

       

       패배주의적인 발언.

       시작도 전에 초를 치는 이야기에 나는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담으려고 했으나.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떠들고 싶은 것만 떠드는 법이거든.”

       

       그 이야기.

       그 말을 입에 담을 때의 목소리. 거기에 담긴 회의감. 그것들이 자연스레 내 말문을 막히게 하였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한 게 아니라, 수 차례의 시도 끝에 꺾여버렸다. 그것을 그녀의 표정에서부터 알 수 있었으니까.

       

       정적.

       숨막히는 정적만이 이곳에 감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뭐라 그녀에게 할 말이 있을 리도 만무하고, 율리도 싫은 기억을 떠올렸는지 표정이 어두워졌으니 말이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상황.

       허나 다행히도 그런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뭐, 그렇게 걱정하진 않아도 돼. 이미 익숙해졌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옆에 있으니까.

       그거면 충분해. 더 바랄 것도 없어.

       

       다시금 술을 병나발채 들이킨 소녀는 그리 이야기하며 해맑게 웃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절대. 절대 나 배신하면 안 된다….”

       

       그녀가 혀 풀린 발음으로 그리 이야기한다.

       

       그간의 경험 상 나는 알아챌 수 있었다. 율리가 얼마 안 가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이라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주량을 넘어서도 한참 넘어섰는지 앉은 채로 꾸벅거리다 이내 탁자에 머리를 박는 율리의 모습.

       

       내가 재빨리 손을 끼워넣어서 다행이지. 아니였다면 분명 커다란 혹이 생겼을 게 분명하였다.

       

       이 상태면 찬물을 끼얹어도 깨어나지 않는다.

       전에 한 번 시도해 보았으니 확신할 수 있었다.

       

       결국 해결책은 하나뿐.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가 그녀를 업어가야 할 듯 했다. 평소에는 조금 귀찮아하긴 했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나도 조금 기분이 좋아서.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은 호위기사 아닙니까. 죽는 한이 있더라도 책무는 다하겠습니다.”

       

       나는 그런 말을 내뱉고는 그녀를 부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놈의 귀고리는 확 빼버리든지 해야지 원.’

       

       요즘따라 세상이 곧 멸망할 거라든지. 내가 아까 내뱉은 말이 절반쯤 실현될 거라든지. 진실과 마주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든지.

       

       그리고 모든 게 다시 시작될 거라든지.

       

       그야말로 헛소리만 내뱉는 귀고리 아티팩트를 진짜 처분해야 하면서 고민하며 말이다.

       

       그리고….

       

       “……?”

       

       황궁으로 돌아가려던 내 발이 자연스레 멈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술집의 입구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익숙한 얼굴.

       

       아주 뜬금없는, 전혀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지금 이 주점에 찾아와 있었으니까.

       

       새하얀 머리칼.

       거기에 붉은색의 눈동자.

       

       하인리히.

       제국의 소드마스터가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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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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