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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2

       그 가면녀는 그날 내 앞에서 사라지긴 했지만, 적어도 이 세상 어딘가에 확실하게 있었다. 그 이후에도 내가 시간을 돌릴 때마다 다시 돌아가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실험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훈련 도중에 갑자기 쓰러져서— 심지어 그 쓰러지는 과정조차 보이지 않은 채 ‘어느새’ 쓰러져있는다면, 너무 수상해 보이지 않겠는가?

        

       시간을 돌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적어도 수련이 끝난 뒤에 해보는 것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유독 힘들어 보이는구나.”

        

       나를 본 지 며칠 되지 않은 검성이었지만, 내 상태가 어제와는 다르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는 모양이다. 아니, 검성이니까 오히려 느끼지 않으면 이상하지.

        

       게다가 나는 어제 걱정하고 악몽에 시달리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침에는 정신이 번쩍 뜨였다고 생각했지만, 몸 상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어제보다 확실히 피곤했다.

        

       그나마 어제 시간을 돌려가면서 훈련장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이 정도였다.

        

       “흠.”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성실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오히려 검성에게는 마음에 들었는지, 검성은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 표정이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아침 훈련 후 다 같이 훈련장에 모여 식사하고 있었을 때였다.

        

       훈련장 문이 벌컥 열렸다. 만약 그 문이 훈련장 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방문이었다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에게 예의 없다고 욕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그 열린 문 너머에 서있는 사람은 제이든이었다.

        

       ……제이든?

        

       평소처럼 완벽한 2대8 가르마……는 아니었다.

        

       마치 급하게 뛰어오기라도 한 듯 그 가르마에서 머리카락이 몇 가닥 흘러내렸다. 막 뛰어왔다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듯, 어깨를 크게 위아래로 들썩이고 있었고, 얼굴도 조금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제이든은 우리와 눈이 마주치더니, 손으로 그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올려서 다시 가르마에 합류시키고, 옷매무새를 만지며 모양을 잡았다.

        

       그리고 어깨를 펴고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거칠던 호흡이 걸어오는 와중에 천천히 줄어들어 편안하게 되는 것을 보고, 나는 과연 기사단장은 기사단장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이냐?”

        

       검성은 황자 앞에서도 당당했다. 하긴, 황제 앞에서도 저런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제국 황실 그리폰 기사단의 단장, 제이든입니다.”

        

       “그 소리는 이미 어제 듣지 않았더냐?”

        

       “예, 하지만 지금 드리려는 말씀을 생각하면 이렇게 다시 한번 소개해 드리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검성은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를 흘겨보았다.

        

       뭐.

        

       오라고 한 건 나지만, 거기 홀려서 따라온 건 검성이다. 아무튼 내 잘못은 아니다.

        

       ……아니, 잠깐만.

        

       나 지금 시간 못 돌리잖아.

        

       그럼 루카스가 나타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거지? 나 그대로 칼에 베이면 죽는 거 아니야?

        

       설마 그 가면녀가 어제 나를 비웃었던 게 루카스한테 칼 맞아 죽을 나를 상상하고 있던 건가?

        

       이번에는 소름이 아니라 오한이 들었다. 한순간이긴 하지만 뼛속까지 시린 한기가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나마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앨리스는 눈치챈 것 같긴 하지만.

        

       “그대는 그곳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네만?”

        

       그렇다. 제이든은 기사단장이고, 성격도 앞뒤가 꽉꽉 막혔다. 그래서 루카스랑도 수시로 싸웠고.

        

       그러니 제이든이 황제의 명령을 무시하고 돌아왔을 리는 없지만—

        

       “공군력을 빌려서 해결하고 왔습니다.”

        

       “…….”

        

       그 말에 우리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제이든.”

        

       나는 제이든을 불렀다.

        

       하지만 제이든은 흠칫 어깨를 떨더니, 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마치 내게 대답하는 것을 거부하겠다는 것 같은 몸짓이었다.

        

       아니, 너는 또 왜 그러는데.

        

       나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싶은 것을 꾹 참은 채 앨리스 쪽을 보았다. 그런데 이쪽은 또 이쪽대로 토라진 듯 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잖아?

        

       그런 표정이었다.

        

       ……짐작은 간다.

        

       내가 제이든을 오라버니라고 불렀던 것에 잔뜩 화가 나서 밤새 자동차를 타고 달려 검성의 오두막을 찾아온 앨리스였다. 심지어 나는 제이든한테 검성을 찾으러 가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집요하게 내 뒤를 추적했던 것을 보면, 지금 저 태도도 그 ‘오라버니’와 관련되어있을 것이 뻔했다.

        

       아마 제이든이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도 그 ‘오라버니’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겠다는 표시겠지.

        

       나는 머리를 감싸……쥐지는 않았다. 온 힘을 다해 참느라 양 주먹을 꽉 말아쥐긴 했지만.

        

       그 가면녀,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 거다.

        

       미래의 나라면 죽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한 대 때려주긴 해야겠다. 진짜로.

        

       “……그쪽 전장은 자치국의 요청 때문에 보병 전력 외의 다른 전력을 보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

        

       하지만 제이든은 참 유치하게도 나에게 전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앨리스를 다시 한번 보았다.

        

       앨리스는 나한테 도움을 주지 않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나, 앨리스, 제이든의 모습을 보고 레오는 다시 딱딱하게 굳어있었고, 상황을 전혀 보지 못했던 클레어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검성은—

        

       —실실 쪼개고 있었다.

        

       아니, 먼저 대화하기 시작했다면 대화를 주도적으로 끝내라고!

        

       “…….”

        

       결국 진퇴양난에 빠진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래, 뭐.

        

       어차피 더 물러날 곳도 없다.

        

       심지어 앨리스가 찾아왔던 사태 때문에 내가 제이든한테 오라버니라는 말을 썼다는 것도 레오한테 죄다 까발려졌고, 심지어 그가 보는 앞에서 앨리스를 언니라고 부르기까지 했으니까.

        

       아.

        

       거기까지 생각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빡침의 임계점을 돌파하니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졌다고 해야 할까.

        

       결국 원인은 전부 나한테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해탈이라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그보다는 현자 타임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지만, 아무튼.

        

       “……언니.”

        

       나는 앨리스를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클레어가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오라버니께 대신 여쭈어봐 주실 수 없을까요? 대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한 건지.”

        

       “아…….”

        

       앨리스는 흐뭇하다는 표정보다는 오히려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제이든도 마찬가지였고.

        

       “아, 어, 어…… 그래.”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이든 쪽을 보았다.

        

       “대체 상황을 어떻게 그렇게 처리하신 거야? 국경 너머로 기갑 장비나 공군 장비를 들일 수는 없었을 텐데.”

        

       네 탓이라는 듯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보는 앨리스를 보고, 제이든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우리가 들어가지만 않으면’ 되는 일 아닌가?”

        

       그리고 제이든은 제이든대로 폭탄 발언을 했다.

        

       “전투기의 기관총 사거리는 국경을 넘을 정도는 되지 않을 텐데?”

        

       “내가 전투기를 썼다고 말했던가?”

        

       저런 진지한 내용을 엄청나게 사이 나쁜 남매가 벌이는 말싸움처럼 하는 것도 참,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모니터함이다.”

        

       아.

        

       거기까지 듣고 나서야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윈터필드에 공군력을 가져다 두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원작에서도 전쟁 준비 중 한 단계였고.

        

       그렇다고 비싼 공중전함을 수십 대씩 만들기는 어려우니, 그보다는 싼 보급선에 전함용 함포를 딱 하나씩만 달아두는 것이다. 방어력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보급선은 전함만큼 첨단 기술을 둘둘 말고 있지는 않았다. 덩치도 전함급에 비하면 훨씬 작다. 2연장인 드레드노트의 주포를 단장포로 만들어 하나만 달아두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그만큼 싸지. 사거리도 길고.

        

       ……그래, 기차가 아니라 보급선을 이용한 이유가 그거였구나. 급하게 포탄을 운송하느라. 하루아침 만에 국경 밖에서 적진을 초토화할 계획을 짰던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전투기 뒤에 타고 여기까지 날아왔지. 모니터함은 아무래도 너무 느리거든.”

        

       “…….”

        

       앨리스가 이마에 손을 얹는 것으로,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을 대신 해주었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인지…….”

        

       “제국이 세계 최고라는 것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으신 것이겠지.”

        

       “…….”

        

       너무 당연하다는 듯 당당하게 말하는 제이든을 보고, 우리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너는 그 광경을 눈으로 보고도 나한테 검술을 배우고 싶은 거냐?”

        

       “물론입니다!”

        

       검성의 질문에 제이든은 어깨를 펴면서 말했다.

        

       “무기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결국 땅을 점령하고 지키는 것은 보병! 기사단의 의무입니다. 당연히 개인의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을 만큼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

        

       검성이 감탄하는 것을 보고, 나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온 힘을 다해 꾹 참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나니시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먼치킨 주인공이라도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 소설이 너무 평이하고 재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주인공이 제일 원하지 않는 상황으로 몰아넣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독자 여러분께서 지나치게 불편하지 않도록 조금 유쾌하고 재미있는 상황을 섞어볼까 고민해보니, 이런 방향이 제일 나을 것 같더라구요. 실비아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을 앞으로도 몇 개 정도 더 생각하고 있습니다. 쿨뷰티의 캐릭터성이 벗겨지는 것은 원래 자기 의지로 벗지 않아야 제맛이 아니겠습니까? 실비아가 그런 캐릭터성을 고른 시점에서 이미 정해진 수순인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쓴건 저지만요.

    오늘도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여러분께서 재미있게 읽어주실만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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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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