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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2

    루크는 기대감으로 부푼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창 밖에 시선을 걸치고 조각구름만이 몇 점 떠있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루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을 꼽자면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하늘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나 익숙해서,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5000년 전에도, 5000년이 지나도 하늘은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루크가 과거의 추억에 향수에 빠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레니에, 그녀는 자신이 바라던 것처럼 변치 않고 모두가 우러러볼 수 있는 하늘이 될 수 없었지만, 그녀가 없더라도 이 세계는 여전히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래, 이 모든 것을 지켜낸 것이다.’

     

    마계에서 최후를 맞은 가짜용사, 성창의 거짓된 주인이지만 진실된 영웅, 케일 프롭슨.

    다행히 그의 희생을 기억하는 자들은 많다.

     

    비록 동화로서 전해져 내려올 뿐이었지만, 그와 그녀의 이름만은 영원히 불멸하리라.

     

    5000년, 아주 오랜 시간이 아닌가.

    자신이 실제 존재했던 사실을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만일 역사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레니에와 케일, 그리고 자신의 이름은 동화나 소설 등의 허구가 섞인 이야기가 아닌, 실제 역사서에서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게 아니면, 역사가 사라질 정도의 대사건이 있었음에도 다들 기억될 수 있다는 점을 감사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 생각하니 문득 가슴 한 켠이 깊게 먹먹해지는 감각이 있었다.

    희미하게, 머리로는 알고 있는 그것은 바로, 감정이라는 것이었다.

    그리움, 그래.

    아마도 그리움이겠지.

    또한 그리움이란 반드시 상실감을 동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법사가 그 감각에 심각할 정도로 깊이 빠져드는 경우는 없다.

    마법사로서, 오로지 마법과 지식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옛적에 겪은 감각은 이토록 강렬하지 않았었다.

    기껏해야 바싹 마른 육포를 씹으며 불편한 잠자리에 들 때, 평온하고 안락한 집을 그리워하는 정도의 감각.

    그게 바로 루크에게 익숙한 정도의 감정의 높낮이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파이와 정령의 대화를 하며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진 지금과는 다른 것이다.

    꽤, 많이.

     

    감정의 폭이 늘어났다는 느낌이다.

    과거엔 이만큼이나 누군가가 그리울 수 없었는데.

    케일이 마왕과 대적하다 죽었을 때가 가장 깊은 상실감을 느꼈던 순간이지만, 그 때 이상으로 모두가 보고 싶다고 느꼈다.

     

    참 이상한 일이지, 지금도 떠올리려면 얼마든지 기억속에 존재하는 그들의 행동과 표정, 모든 것을 떠올릴 수 있는데도, 그렇기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환상으로 현실에 구현할 수 있는데도, 자신이 어떤 대화를 건네고, 어떤 행동을 하면 그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이미 추측할 수 있음에도, 그 어떤 새로운 반응도 보이지 않을, 마법사로서는 지루함과 동일한 단어인 ‘익숙함’에 그 어떤 것보다 어울리는 기억임에도…….

     

    그리웠다.

     

    감정적, 마법사라는 말을 꾸미는 데엔 그 어떤 것보다 어울리지 않을 형용사이다.

     

    어쩌면 이 시대 최고의 정령 친화력과 마력 감응력이라는 상반된 재능을 한 몸에 담았기에 벌어진 일.

    그러니, 알고 있다. 자신이 모순적이라는 사실쯤.

     

    지금의 자신은 마치 차가운 불, 또는 타오르는 물, 부는 땅과 단단한 바람과 같은 존재다.

     

    서클이 감정에 동요해 떨려왔기에 루크는 한숨을 쉬어 감정을 다잡는다.

     

    ‘마음대로 잊을 수도 없다니……. 머리가 좋은 것도 마냥 좋은 것 만은 아니군요.’

     

    라고 말하던 레니에의 표정이 어째서 그토록이나 슬퍼 보였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선명한 기억은 감정을 미처 풍화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

    좋은 날, 어째서 그리움이라는 감정에 빠져 불편해질 필요가 있을까?

    지금 필요한 감정은 그리움이 아닌, 기대감일 것이다.

     

    루크는 결국 제 옆에 앉은 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루드였다.

     

    마음 같아서는 더욱 친해지라고 메리와 함께 앉혀주고 싶었는데, 메리가 다른 친구와 앉겠다며 다른 자리에 앉아버리고는 ‘루크가 시루드랑 앉아!’라며 권유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루드는 여전히 이성이 부끄러운 듯 자신과 쉬이 눈을 마주치지 못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아무리 자신이 감정적이게 된다고 해도 그래도 저 정도까지 감정적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 생각하니 참 신기했다.

    그 정도로 마나 감응력이 뛰어나다면 원래 마법사로 타고난 아이일텐데, 그토록이나 감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

     

    “시루드, 뭘 그리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는게냐? 혹시 누구와 연락중인겐가?”

     

     

    아까부터 계속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던 시루드를 향해 묻는다.

    혹시 부모와 연락을 하고 있는 중일까.

    휴대폰을 최근에 바꿨는지 모양이 달라졌다.

    하긴, 루크 자신도 휴대폰을 처음 받았던 순간엔 밤낮없이 매달릴 정도였으니, 최근 휴대폰을 샀다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루드의 대답은 루크의 예상과 달랐다.

     

    “아, 아니, 그냥 게임중인건데……?”

     

    시루드의 대답에 루크는 깜짝 놀랐다.

    루크가 아는 게임이란 슈퍼 매직 리그가 고작이었는데, 휴대폰으로 그것과 비슷한 활동을 할 수 있다니?

    휴대폰의 코어성능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수준이기는 하지만, 이 시대의 제대로 된 ‘컴퓨터’에 사용되는 코어와는 같은 선에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수준에 차이가 있었다.

    비록 과거에도 현재에도, 시루드가 들고 있는 휴대폰은 자신이 들고 있는 휴대폰 보다야 훨씬 성능이 좋기는 했어도 말이다.

    계산상으로는 어떻게 최적화를 하더라도 ‘절대’ 게임이라는 것을 구동할 수 없다.

     

    루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휴대폰으로 그런 것도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시루드는 놀란 표정의 루크를 향해 자신이 들고 있던 물건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이거 휴대폰 아냐, 게임기야.”

     

    시루드가 들어올린 휴대폰, 아니 게임기의 화면 안쪽에선 뭔가 휘황찬란한 색상이 마구 터져나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떻게봐도 자신이 알던 게임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상하군, 그게 게임이라고? 누구랑 싸우지도 않고, 이상한 화면만 반복되는게?”

    “응. 이건 리듬게임이거든.”

    “리듬……? 대체 그게 무슨 게임인지 도저히 모르겠군.”

    “역시 모르나…….”

     

    나왔다, 루크의 저 표정.

    아무것도 모른다는 저 표정을 누구든 바라보고 있으면 성심성의껏 알려주려고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대놓고 표하는 ‘의문’.

    그 마수는 시루드 역시 뿌리치기 어려웠다.

     

    “이건 노래에 맞춰서 버튼을 눌러서 하는 게임이야.”

    간단하지만 핵심적인 설명.

    “음, 그게 단가?”

    “단데.”

    “단순하군? 그럼, 어떻게 하는건지 보여주겠느냐?”

    “그래. 내가 한번 하는 걸 봐봐.”

    “알겠다.”

     

    루크는 조금 시루드의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화면을 바라보았다.

    더욱 자세히 화면을 바라보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지만, 시루드는 크게 당황했다.

     

    ‘……가까워!’

     

    보기만 할 거라면 이렇게 가까울 필요는 없지 않아?

    어깨, 팔 허벅지뿐만 아니라, 엘프 특유의 길다란 귀 끝에 루크의 부드러운 솜털 같은 머리카락이 닿는다.

    조금 의식하면 숨결까지 느껴질 지경이다.

    정말 다행인 점은, 루크가 자신의 뿔을 생각해서인지, 아예 어깨 위에 머리를 얹어버리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런 시루드의 날 것 그대로의 반응은 아무리 눈치가 없는 바보라고 해도 쉽게 이 하이엘프 아이가 어떤 상대에 놓였는지 알 수 있게 했다.

    루크가 물었다.

     

    “혹시, 내가 불편한가?”

    “아,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다행이로군, 한번 해보게.”

     

    루크는 시루드에게 살짝 웃고는 다시 화면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싫은 건 아니다. 그냥 신경이 쓰일 뿐이지. 좀 많이, 과할 정도로.

     

    “…….”

     

    시루드는 한번 심호흡한 뒤, 게임을 시작했다.

     

    원래 평소엔 다양한 곡을 플레이하기를 즐기는 시루드였지만, 이 순간은 왠지 그럴 수 없었다.

    시루드는 일부러 가장 자신있게 칠 수 있는 곡을 골랐다.

    화려하고 약간의 기교가 필요하지만, 그다지 어렵지는 않아서 보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곡을.

     

    화면이 전환되고, 시루드의 귀에 박힌 이어폰에서 음악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음악에 맞추어 내려오는 막대, 그것을 타이밍에 맞게 누를 뿐인 게임, 하지만 마도기기를 리듬에 맞춰 조작하는 행동은 그 자체로 특별해서 재미있는 무언가였다.

    특히, 무언가 확실히 상호작용을 한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 그리고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매력적인 장르다.

     

    하지만, 루크는 미묘한 표정이었다.

     

    “잘 모르겠군. 이게 뭐가 재밌는 게지?”

    “궁금하면 한번 해볼래?”

    “음…….”

     

    궁금했다.

    그리고 루크는 절대로 궁금증만은 참을 수 없었다.

     

    ——–

     

    메리는 옛날부터 버스를 타면 곧바로 잠에 빠지는 체질의 아이였다.

    그 체질은 당연히 지금도 유효해서, 버스가 출발하자 10분정도 옆에 아이랑 대화하다가 바로 곯아떨어진 뒤에 잠깐 눈이 떠졌다.

     

    살짝 갈증이 느껴져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려고 몸을 앞으로 숙이자, 시루드와 루크가 무어라고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리를 양보해 줬더니 재밌게 있는 것 같다.

    메리는 내심 뿌듯함을 느끼며, 다시 자기전에 무슨 대화를 하는지 들어보기로 하고는 앞쪽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루크, 내가 대체 언제까지 해줘야해?”

    “한번만 더…….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냐.”

     

    시루드의 조금 지친 목소리와 루크의 묘한 숨이 섞인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는 메리의 잠을 싹 달아나게 만들었다.

     

    ‘내가 잠든 새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메리는 더욱 청각에 집중했다.

    귀를 가리던 머리카락도 정리해 살짝 드러내면서.

    그러니 선명한 대화소리가 메리의 귓가에 들어와 앉는다.

     

    “그렇지만, 이제 슬슬 힘든데.”

    “하아…, 그럼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괜찮겠느냐?”

    “그래, 한번만 더…….”

     

    뭘? 뭐를? 뭘 부탁한다는 거야?

    메리는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메리는 금방 경악하고 말았다.

     

    “흐읍,  흑.”

    “……!”

     

    갑자기 앞좌석에서 들려오는 루크의 억눌린 신음소리.

    엄청나게 작지만, 분명히 들렸다.

    루크가 왜? 왜 저런 소리를 내? 시루드랑 대체 뭘 하길래?

    “흐읍, 그만. 거긴 간지럽잖느냐.”

    “아, 미안…….”

    “괜찮다, 미안한건 나지.”

    굉장한 충격, 순간 머리가 굳어버렸다.

     

    ‘얘들은 버스에서 둘이 대체 뭘 하는 거야아–!’

     

    ——–

     

    그 무렵, 앞좌석에서는 시루드가 수인용 이어폰을 캐리어에 넣고 화물칸에 보관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이어폰을 손에 각각 한쪽씩 쥐고 루크의 귀에 대어주고 있는 중이었다.

    시루드는 그것이 여자애랑 딱 달라붙어 있는 꼴이라 부끄럽기도 했지만, 벌써 30분 넘게 손을 들고 있는 중이라 팔이 아팠다.

    그 탓에 실수로 귀 안쪽에 손이 닿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루크는 지나치게 간지러워했다.

    귀 안쪽이 민감하다나…….

    그래도 루크가 재밌게 하고 있으니 뭔가 조금 뿌듯하긴 하다.

    남과 취미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구나.

     

    ‘……루크가 세운 저 신기록들은 대체 어떻게 깨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시대 최고의 정령 친화력이 낳은 압도적인 리듬감과 마안과 수련으로 극에 달한 동체시력, 그리고 머릿속으로 떠올린 모든 행동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신체능력과 반사신경까지.

    그 모든 것을 갖춘 루크는 리듬게임에서 조차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루크는 마법사로서, 언제나 ‘결과’가 완벽한 것에 집착하는 성격이었다.

     

    “후우, 이제야 만족스럽군.”

     

    화면에 큼지막하게 뜬 SSS. 최고등급이다.

    가장 어려운 난이도의 곡, 올 콤보, 올 퍼펙트를.

    기어코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사실 그리 놀랍지도 않아.

    왠지 할 것 같더라고.

     

    “이제 손 내려도 돼?”

    “그래, 꽤 재미가 있었구나.”

    “휴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메리 망상 멈쳐ㅓㅓㅓ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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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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