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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2

       드래프트를 진행하기에 앞서 시험 성적이 발표되었다.

         

       수험생 434명과 방출된 단원 22명을 합쳐 총 456명이 시험을 치렀다.

       그중 상위 44명이 드래프트로 선발될 예정이었다.

         

       “으아악!”

         

       처음 엘라와 레이나 앞에 끼어들었다가 망신을 당했던 차력사가 괴성을 내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결국 44위 안에 들지 못했다. 그 말고도 비슷한 처지인 단원들이 있는지 분홍색 운동복을 입은 곡예사 몇몇이 절망에 찬 탄식을 내뱉었다.

         

       그냥 방출하는 거였다면 이렇게까지 괴롭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자기 PR을 해서 다시 고용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이렇게 시험을 통해 방출되는 것은 만인 앞에서 ‘능력 없음’ 딱지를 붙여버린 것과 같았다.

         

       ‘이렇게 될까 봐 그렇게 열심히 시험을 치렀는데…….’

         

       그들이 다시 그랑프리에 참가할 확률은 0에 가까웠다.

       규정 때문에 한 명 한 명 신중하게 멤버를 골라야 하는 와중에, 능력 없다고 공인된 그들을 택할 서커스단은 어디에도 없었다.

         

       관중들은 패배자들에게 금방 관심을 껐다.

       대신 그들은 이번 시험을 뜨겁게 달군 화제의 인물들에게 눈을 돌렸다.

         

       레이나와 엘라.

       24번째 과제까지 동점을 기록했던 두 사람은 마지막 과제에서 차이가 벌어지고 말았다.

       엘라가 부상으로 인해 실격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드래프트 선발 순위는 결국 레이나가 1등, 엘라가 2등이 되었다.

         

       그러나 체육관 안에 있는 누구도 엘라를 2등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1등을 한 레이나 본인도 동의했다.

         

       엘라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다.

       본인의 탈락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진정한 1등은 그녀였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레이나는 불만이 없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어휴, 어디서 지린내 안 나니?”

       “풉, 저것 좀 봐. 오줌싸개가 고고한 척하니까 웃기네.”

       “저렇게 1등 차지하니까 기분 좋나 봐?”

       “구차하구먼! 구차해!”

         

       그녀가 지나갈 때, 레카체프 학생 중 일부는 노골적으로 비웃거나 혀를 찼다.

       그중에서 클라라가 제일 열심이었다.

       그녀는 다른 아이들이 한 마디씩 거들 수 있도록 은근히 분위기를 조장했다.

         

       레이나는 얼굴을 붉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야 했다.

         

       이윽고 단상 앞에 선 그녀는 용기를 내 객석을 바라봤다.

       아버지는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계약서 뭉치를 뒤적거리며 드래프트 준비하는 척을 했다.

         

       레이나는 그것이 경쟁자들의 쑥덕거림을 애써 무시하는 아버지의 연기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드래프트 준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

       황금 카니발은 입학시험에 오기 전부터 드래프트에서 추가 인원을 뽑지 않기로 후원자 측과 말을 맞췄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것은 그저 자신들의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레카체프를 한번 밟아주고 싶다는 아버지의 바람과 이름을 알리길 원하는 후원자의 바람이 일치한 것이다.

         

       추가로 뽑을 인원은 현역에서 활동 중인 일류 곡예사로 이미 내정이 되어 있었다.

       황금 카니발은 레이나를 되찾는 시점에서 선발을 끝낼 것이다.

         

       레이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아버지가 차라리 저렇게 눈을 마주치지 않고 딴청을 피우고 있는 게 나았다.

       여기서 그까지 경멸의 눈빛을 던졌으면 그녀는 도저히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드래프트의 진행 방식은 이랬다.

       우선 수험생과 방출된 단원들을 섞어서 44명을 성적순으로 배치했다.

       그리고 22개의 서커스단은 그 순서대로 새 단원을 차례로 영입하면 됐다.

         

       자연스럽게 모든 수험생보다 높은 성적을 올린 단원들은 원래 있던 서커스단으로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즉, 이건 슈퍼 단원을 보유한 서커스단에게 가하는 핸디캡이었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그런 단원을 보유한 서커스단은 각자 내보냈던 단원들을 다시 품에 안고 순번 맨 뒤로 가라는 것이다.

         

       실질적인 영입은 수험생을 마주하는 순서부터 시작됐다.

       그렇게 22개의 서커스단이 각자 2명씩, 44명을 선발하면 드래프트는 종료됐다.

         

       이 순서대로 인원을 배정하는 방식은 강제적이었다.

       거부권을 쓸 수 있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팀당 1번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배정이 강제적이라고 해도 무조건 거기에 묶여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드래프트로 선발되는 경우는 정식 채용이 아닌 임시 계약이었다.

       입학을 원하고 찾아온 학생들도 있는데 강제로 2년 노동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임시 계약은 9월 1일 입학식이 있기 전날까지, 즉, 2주 동안만 유효했다.

       2주가 지나면 해당 인원은 서커스단에 ‘잔류’할지, ‘탈퇴’할지 선택할 수 있었다.

         

       탈퇴하고 입학을 하는 것은 자유지만, 탈퇴해서 다른 서커스단에 입단하는 데는 제약이 있었다.

       해당 인원을 받아들이는 서커스단이 기존 서커스단에게 단원 1명을 대가로 보내야 했다.

       이것을 ‘트레이드’라고 했다.

         

       원더스타인은 마치 현실의 프로 야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상위 서커스단이 인원을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도 있었고, 순서대로 강제로 소속을 배정하는 것도 그랬고, 필수적으로 머무르는 수습 기간도 있었고, 트레이드에 관한 규정도 마련되어 있었다.

         

       순위에 따라 자동으로 서커스단이 배정되는 시스템 때문에, 드래프트는 사실 순위표가 나왔을 때 거의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팀당 한 번의 거부권 사용이 유일한 변수였다.

         

       물론 아예 선발을 포기하는 것도 가능하긴 했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은 이 귀한 권리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장미 풍차 카바레의 시험을 통과하면서 명성을 조금 올리긴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뛰어난 곡예사를 직접 섭외하기엔 무리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상위권 곡예사를 영입할 기회는 이 드래프트의 강제 배정 규정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선발한 곡예사를 임시 계약 기간 2주 동안 어떻게 구워삶아서 ‘잔류’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보다 기존 단원 출신이 유리했다.

       학생은 ‘입학’이라는 선택지로 도망칠 수 있지만, 단원 출신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선발하기만 하면 어쨌든 ‘트레이드’를 통해 최소한 1명의 곡예사는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들의 차례는 2번째였다.

       우선 엘라를 돌려받고, 그다음 (22+2), 24위를 뽑으면 됐다.

         

       중간에 누가 ‘거부권’을 쓰냐에 따라 변동이 생길 수 있기에 원더스타인은 24위 근처에 있는 사람들도 잘 살폈다.

         

       성적 발표가 끝나자 굽어진 고깔모자에 긴 로브를 입은 50대 여인이 단상 위에 올랐다.

       교감이자 줄타기 교수인 ‘마녀’ 엘파라였다.

         

       그녀는 간단하게 이번 시험의 취지를 설명했다.

         

       입학시험은 전통의 다섯 마당이라 알려진 힘자랑, 땅재주, 줄타기, 쏴, 길들이기의 재능을 평가하는 장이었다.

         

       “여기에 광대놀이와 문예까지 더해서 총 7과목이 여러분들의 ‘특별한(SPECIAL)’ 능력을 상징합니다.”

         

       힘자랑은 힘(Strength).

       쏴는 인지력(Perception).

       땅재주는 지구력(Endurance).

       길들이기는 매력(Charisma).

       문예는 지능(Intelligence).

       줄타기는 민첩성(Agility).

       광대놀이는 운(Luck).

         

       이렇게 7가지 S.P.E.C.I.A.L을 상징하는 6명의 교수가 단상 위에 올라와 다시 한번 자신들을 소개했다. 교장이자 이 학교의 창립자인 광대놀이 교수는 출장 중이라 없었다.

         

       1위부터 44위까지 기본 선발 인원과 45위부터 66위까지 추가 선발 인원이 단상 앞에 정렬했다.

       그 앞에 22명의 서커스단 단장들이 자리를 잡았다.

       

       “1위. 레이나 마기어.”

         

       객석 곳곳에서 작은 야유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레이나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빳빳이 고개를 들고 걸었다.

         

       그녀는 객석을 올려다봤다.

       아버지는 여전히 계약서와 수표를 정리하는 척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주변에서 뭐라고 그런다고 저런 연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뻔뻔스럽게 고개를 쳐들고 받아쳤으면 맏아쳤지.

         

       그런데 딸 때문에 주변에서 쑥덕인다고 딴청을 피운다고?

       아까는 미처 생각 못 했는데, 그건 전혀 아버지답지 않은 일이었다.

         

       레이나는 그가 종이 뭉치 사이에서 계약서와 서류 몇 장을 뽑아 드는 것을 봤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건 너무 메스껍고 끔찍한 상상이었다.

       아랫배가 무거워졌다.

         

       아냐, 아냐.

       그럴 리 없어.

       설마…….

         

       로드 판타스틱의 입에 조소가 어렸다.

       그것은 분명 딸을 향한 것이었다.

         

       그의 입이 열리고 강당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말이 거기서 나왔다.

         

       “거부합니다.”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를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거부한다니?

       딸의 재입단을?

         

       그건 단상 위에 서 있던 엘파라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찬 바람이 쌩쌩불던 그녀의 얼굴 위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거부한다고요?”

       “네.”

         

       너무나 태평스러운 대답이었다.

       엘파라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곧 다시 무대 앞으로 나와 일정을 계속 진행했다.

         

       그녀는 남들에게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엄격한 사람이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짓은 하지 않았다.

       

       “……2번 엘라!”

         

       팔에 석고를 매단 소녀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서 눈을 연신 깜빡였다.

         

       저 아저씨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로드 판타스틱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씩 웃으며 말했다.

       

       “영입하겠습니다.”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강당이 시끌벅적해졌다.

       그중 가장 흥분한 것은 당연히 괴물서커스 진영이었다.

         

       “핫핫, 이거 대위기입니다.”

       “어떡해요? 어떡해? 엘라를 뺏기는 거예요?”

         

       유라크네가 두 손을 벌벌 떨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옆에서 마야가 침착한 목소리로 그녀를 진정시켰다.

         

       “절대 그럴 수 없어요. 트레이드를 통해 무조건 복귀할 수 있어요. 2주 후에요.”

         

       원더스타인도 규칙을 알고 있었다.

         

       이번 드래프트는 2주의 임시 계약 기간을 거친 뒤에 선발자에게 다시 선택권을 주었다. 잔류를 택할지, 입학을 택할지, 이적을 택할지.

         

       그리고 선발자가 이적을 원하고, 이적하는 서커스단에서 받아들일 의지가 있다면, 사실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상대 서커스단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지는 ‘트레이드’뿐이었다.

         

       엘라에 대해서는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냥 2주 견학시키는 마음으로 보내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레이나였다.

         

       사람들은 그 짧은 순간에 여러 추측을 내놓았다.

       그중에는 ‘로드 판타스틱이 딸을 레카체프에 입학시키려고 저런다’는 의견도 있었다.

         

       어차피 대회까지 2년 정도 남았으니, 딸은 수련 삼아 레카체프에 입학시켜 1, 2년 정도 다니게 하고 나중에 부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레이나의 표정을 보면 그 추측은 사실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이라고 해도 일단 레이나와 미리 나눈 이야기는 아닌 게 확실했다.

         

       항상 여유로워 보이던 그녀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핏기가 싹 가신 채 덜덜 떨리고 있었다.

         

       ‘개자식.’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정신이 무너져 내리려는 것을 보고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물론 그녀가 아닌 옆에 앉은 그녀의 아버지를 향해서였다.

         

       어차피 그는 2주 뒤에 엘라가 원한다면 보내주어야 했다.

       그런데 굳이 딸을 버리고 그녀를 선택한 것은 딸에게 모멸감을 주고 괴롭히기 위해서였다.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원더스타인의 눈에는 그의 마음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선발 3번인 은막 서커스의 신입 단원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은 이미 뽑을 사람을 정해두었다.

       나중에 엘라를 ‘트레이드’로 받아내기 위해서는 저쪽에 던져줄 패가 필요했다.

         

       “1번. 레이나 마기어를 영입하겠습니다.”

         

       로드 판타스틱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픽 쳤다.

       그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지만 원더스타인에게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레이나를 가져오는 게 제일 깔끔한 거래가 가능했다.

         

       레이나는 자신이 선발되었다는 것도 모른 채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멍한 얼굴로 그녀의 아버지를 바라봤다.

       큰 충격에 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는 로드 판타스틱의 눈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왜 저런 시선을 받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왜 아버지가 자신을 저렇게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지.

         

       원더스타인은 게임에서 그녀가 했던 신세 한탄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는 아빠에게 가혹하게 다루어지는 날이면 항상 앨범을 꺼내 봤다.

         

       거기에는 그녀의 어린 시절이 담겨있었다.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어린 자신을 바라보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사진 속의 아빠와 엄마는 레이나를 무척 아꼈다.

       그녀가 아빠의 콧수염을 잡아 뜯었을 때도 눈물을 찔금 흘리며 곤란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원더스타인은 TTT에 나온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

       시리즈를 거듭할 때마다 그녀가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도 봤다.

         

       TT2에서 그녀는 진실을 일부 알게 되었다.

         

       그녀가 들여다보던 사진 속의 그녀는 사실 그녀가 아니었다.

       지몬 마기어의 친딸인 레이나 마기어는 3살 때 죽었다.

         

       지금 있는 황금 천칭 레이나는 나중에 구입한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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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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