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42

       “자, 그러면 실무진 인사도 대충 마쳤으니 5분 쉬는 시간을 가지고 앞으로 루키즈 일정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죠.”

         

       이 자리에서 제일 위치가 높은 정 실장이 쉬는 시간을 선언하자 나는 곧바로 한시우에게 향해 다가갔다.

         

       “하, 한시우 프로듀서님?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아, 네. 예린 양과의 대화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죠.”

         

       한시우는 대화를 청하는 나를 보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실 워낙 거대했기에 구석으로만 가도 사람들이 우리 대화를 엿들을 수 없었다.

         

       이에 나는 그를 회의실 구석으로 데려가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한시우 프로듀서님. 어째서 NAS 엔터로 오신 거예요?”

         

       “그게 무슨….”

         

       “분명히 저한테는 회사를 창업한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근데 왜 갑자기 루키즈의 프로듀서로….”

         

       전생에서 한시우가 창립한 HS엔터는 초반에는 조금 난항을 겪을지라도 처음 1년간 빠르게 지지기반을 쌓는다.

         

       그리고 루키즈 활동이 끝난 유 설을 1호 아티스트로 영입한 다음부터….

         

       ‘날개라도 핀 듯 어마어마하게 날아 오르지.’

         

       그 후 한시우의 HS 엔터는 수십 년간 이어졌던 3대 기획사 체제를 깨고 4대 기획사로 새롭게 합류한다.

         

       그렇게 인생의 탄탄대로를 달려야 할 한시우가 뜬금없이 루키즈의 프로듀서를 맡는다니….

         

       ‘전생과 다른 것은 내 존재 밖에 없어….’

         

       그렇다면 내가 이 세상에 끼친 영향이 한시우가 회사 창립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는 건데….

         

       ‘죄책감이….’

         

       이것이 왠지 내가 한시우의 인생을 망친 것 같은 기분이라 죄책감이 들었다.

         

       이에 왜 회사 창립을 하지 않았냐고 추궁하니 한시우가 그저 씨익 웃을 뿐이었다.

         

       “왜…, 창업을 하지 않았냐라….”

         

       그의 표정이 뭔가 의미심장했다.

         

         

         

         

       **

       

         

         

         

       며칠 전.

         

       띠리리.

         

       “후우….”

         

       나아아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본인의 집으로 돌아온 한시우는 그대로 거실의 소파에 드러누웠다.

         

       늦은 밤이라 그런지 그의 초호화 아파트가 더욱 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

         

       그는 나아아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온 여운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냥 가볍게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는데….’

         

       회사를 만들기 전에 자신의 존재를 대중들에게 다시 각인시키려고 출연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던 프로그램 시작과 달리…, 나아아의 끝은 그에게 여러 가지 오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그가 그렇게 옷도 갈아입지 않고 소파에 누워 허공을 바라보던 그때였다.

         

       띠리리.

         

       고요하던 그의 집이 현관 비밀번호 치는 소리로 순간 가득 채워졌다.

         

       이윽고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음? 뭐야, 오빠 생각보다 빨리 왔네.”

         

       “너….”

         

       익숙한 얼굴의 그녀가 그의 집으로 들어왔다.

         

       한시우의 전 회사 YW의 첫 번째 걸그룹 스물두 번째 밤 일명 ‘스밤’의 막내 멤버 수아.

         

       스밤은 한시우가 속했던 보이그룹과 마찬가지로 YW의 개국공신이나 다름없는 걸그룹이기 때문에 한시우와 사이가 아주 막역했다.

         

       “오늘 나아아 마지막 촬영 날이잖아. 뒤풀이 회식 안 갔어?”

         

       “회식 가면 신지천 옆자리에 앉아야 하는데 그러기 싫어서. 근데 너…, 내가 이렇게 마음대로 들어오지 말랬지.”

         

       “미안. 엄마가 오빠한테 반찬 좀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 상할까봐.”

         

       그리 말하는 수아의 손에는 반찬통이 가득 들려 있었다.

         

       그것을 보고 마음이 약해진 한시우가 조금 누그러진 투로 수아에게 말했다.

         

       “어머님한테…, 이제 그런 거 필요 없다고 말씀드려.”

         

       “말하긴 했는데 계속 갖다주라네? 우리 엄마가 오빠 워낙 좋아하잖아.”

         

       “…….”

         

       그 말을 하고 수아는 익숙하게 냉장고를 열어 그 안에 반찬을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한시우가 도로 소파에 드러 눕고는 수아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수아야.”

         

       “왜?”

         

       “나 회사 새로 만드는 거…, 잠시 미룰까?”

         

       “…뭐?”

         

       갑작스런 한시우의 말에 수아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오빠 미쳤어?! 회사 새로 만들겠다고 재계약 직전에 YW 배신하고 뛰쳐나간 게 오빠잖아! 근데 갑자기 회사를 안 만들겠다고?”

         

       “아니…, 배신이라는 표현은 조금 너무한 거 아니야? 내가 YW에 공헌한 게 얼만데….”

         

       “아직도 회식 자리에서 오빠 얘기 나오면 대표님 우는 거 알아?”

         

       “…….”

         

       “막 가슴을 내리치면서 ‘시우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하면서 흐느끼시는데 내가 다 눈물 나오더라.”

         

       YW 대표하고 한시우가 알고 지낸 지도 벌써 20년이다.

         

       그런 그라면 그렇게 서운해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이에 뜨끔한 한시우가 침묵하니 수아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한시우에게 물었다.

         

       “갑자기 YW로 돌아오려는 것도 아닐 테고…, 갑자기 무슨 일인데?”

         

       “그냥…, NAS랑 잠깐 같이 일해볼까 해서….”

         

       “NAS랑? 설마…, 이번 나아아 애들 프로듀싱이라도 해주려…, …잠깐만.”

         

       “……?”

         

       수아는 말을 하다 말고 한시우의 표정과 눈동자를 보고 얼어 붙었다.

         

       이에 한시우가 고개를 갸웃하니….

         

       “갑자기 왜? 뭐 문제 있어?”

         

       “오빠…. 혹시 해서 묻는 건데….”

         

       “뭔데.”

         

       “오빠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뭐?”

         

       수아가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이에 당황하여 한시우가 어버버하며 물으니 수아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아니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아니 그냥. 오빠가 나랑 연애할 때랑 비슷한 눈을 하고 있길래.”

         

       “…….”

         

       수아의 대답에 한시우는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한시우가 침묵하자 수아가 명탐정처럼 그의 마음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쥐 죽은 듯 입 다무는 거 보니까 맞나 보네.”

         

       “…그런 거 아니야.”

         

       “상대가 누군데? 내가 아는 사람이야? 혹시 우리 팀 언니들은 아니지?”

         

       “…그런 거 아니라니까.”

         

       “잠깐만 설마…!”

         

       그리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설마 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이번에 나아아에서 데뷔하는 애들 중에 있는 건 아니지? 설마 그래서 NAS 엔터랑 일하겠다는 거야?! 좋아하는 애 뒤 봐주려고?!”

         

       “그게 무슨 개소….”

         

       “설마 걔야? 하예린?!”

         

       “…….”

         

       어이가 없어진 한시우가 대응하지 않으니 이내 수아가 경멸의 눈동자로 읊조렸다.

         

       “변태 새끼.”

         

       “아이 씨, 아니라니까?”

         

       “그 애 19살이라며? 오빠랑 무려 14살 차이야, 14살 차이!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아니라는데 대체 내가 왜 욕을 먹어야 하는 거야….”

         

       “오빠 처음 연습생 생활 시작했을 때 걔는 태어나지도 않았어! 오빠 18살에 처음 데뷔했을 때 걔는 유치원도 안 다녔어! 오빠 27살에 군대 갔을 때 개는 초등학교 6학년…, 으읍!”

         

       “입! 입! 그 입 좀 다물어!”

         

       한시우는 결국 몸을 일으켜 강제로 수아의 입을 막았다.

         

       그렇게 간신히 조용히 시킨 후 그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말을 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그냥….”

         

       “…그냥?”

         

       “직감…, 이랄까.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지금 NAS로 가야 할 것 같다는 직감….”

         

       “변태….”

         

       “한 번만 더 변태 소리 하면 그냥 내쫓는다?”

         

       한시우의 협박에 수아가 그의 손을 치우고 말했다.

         

       “안 그래도 나가려고 했네요. 나도 바빠서 오빠 반찬만 가져다주고 바로 가려 했어.”

         

       “아…, 이번에 데뷔하는 YW 신인 걸그룹 네가 프로듀싱 맡는다고 했지?”

         

       “응.”

         

       수아는 외투를 챙기고 현관문을 나서려다 멈춰 서고는 한시우에게 말했다.

         

       “근데 오빠. 나는 오빠가 나아아 걔네….”

         

       “루키즈.”

         

       “그래, 루키즈라는 이름이었나. 아무튼 걔네 프로듀싱 맡는 거 추천 안 해.”

          

       “아직 프로듀싱 맡는 거 확정은 아니야. …근데 왜?”

         

       “지금은 오디션 열풍이다 뭐다 다들 떠들고 있지만…, 우리 애들이 데뷔하는 순간 걔네들은 곧바로 무관심에 묻힐 테니까.”

         

       그리 말하는 수아의 표정에는 강한 확신이 들어 있었다.

         

       “나도 나아아 챙겨 봤어. 유 설, 오빠가 좋아하는 하예린, 그리고 나머지 애들도 전부 다 실력이 출중하더라. 하지만 우리 애들한테는 안 돼.”

         

       “…….”

         

       “이번 우리 애들은 천재야. 그중에서도 리더를 맡은 애는…, 그야말로 아이돌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역대급 천재야.”

         

       조금 오버하는 듯한 수아의 뉘앙스에 한시우도 장난기 있는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역대급 천재? 나보다도 더?”

         

       “어, 오빠보다도 더.”

         

       수아는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진지했다.

         

       “보이그룹 쪽도 지금 우리 회사 애들이 꽉 잡고 있는 거 알지? 지금 내가 프로듀싱하고 있는 걸그룹까지 데뷔한다면….”

         

       “…….”

         

       “앞으로 3대 기획사란 말은 사라질 거야. 우리 YW의 독주 체제가 시작될 거니까. 그러니 오빠도 헛된 바람 갖지 말고 차라리 YW로 돌아와. 이걸로 내 할 말은 끝. 가 볼게.”

         

       수아는 그 말을 끝으로 한시우의 집을 나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다.

         

       “잠깐.”

         

       그런 수아를 한시우가 잠시 멈춰 세우고 물었다.

         

       “그래서 이번에 데뷔하는 우리 후배들 그룹 이름이 뭐야?”

         

       “…….”

         

       수아는 한시우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름을 말했다.

         

       “파이톤(Python).”

         

       “…파이톤?”

         

       “응, 이번에 우리 신인 걸그룹 이름은 파이톤이야. 그럼 진짜 갈게, 잘자 오빠.”

         

       그리고는 정말 볼일 다 봤다는 듯 손을 흔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한시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수아는 허세를 부리지 않아. 나한테는 거짓말도 하지 않고.’

         

       거기에 프로듀싱 능력도 뛰어나고 연습생을 보는 안목도 출중하다.

         

       그런 수아가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이번에도 YW에서 괴물을 배출했네.”

         

       데뷔시기가 겹친 이상 루키즈와 파이톤의 라이벌 구도는 불가피했다.

         

       그리고 이 경쟁은 아무래도 상당히 치열할 듯싶었다.

         

       “파이톤…, 직역하면 비단뱀인가.”

         

       참으로 YW스러운 이름이었다.

         

       그것보다 ‘상대’ 그룹 이름은 파이톤인데 ‘우리’ 그룹 이름은 루키즈라니…, 상대적으로 너무 약해 보이지 않는가.

         

       “우리….”

         

       한시우는 자신이 벌써 루키즈를 ‘우리’ 그룹이라고 지칭하는 걸 깨닫고 곧바로 폰을 꺼내 전화를 했다.

         

       “예, 정 실장님. 새벽 1시긴 한데 안 주무시고 계셨죠? …욕하지는 마시고. 저 하겠습니다. 네, 전속 프로듀서요.”

         

       그렇게 한시우는 루키즈 전속 프로듀서의 길을 선택하였다.

         

         

         

         

       **

       

         

         

       “직감…, 입니다.”

         

       “직감이요…?”

         

       “제가 감이 좀 좋거든요.”

         

       생뚱맞은 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니 한시우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제가 제2의 집이나 다름없는 YW를 나온 것도…, 그곳에 남아 있으면 제 꿈을 이룰 수 없으리란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시우 프로듀서님의 꿈이라면….”

         

       “최고의 아이돌을 만드는 것입니다.”

         

       “…!”

         

       한시우가 과거를 회상하는 듯 향수에 젖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제 현역 시절에 항상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었을 텐데….”

         

       “…….”

         

       “저는 이루지 못한 것을 제 후인(後人)이 대신 이룰 수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제 꿈을…, 예린 양을 비롯한 루키즈 분들이 이룰 수 있으리란 직감이 들었습니다.”

         

       설명을 끝낸 한시우는 다시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뻗었다.

         

       “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예린 양이 봤을 때 바보 같은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저를 응원해주세요.”

         

       “…….”

         

       확실히…, 미래를 알고 있는 내게 지금 한시우의 선택은 바보 같다고 밖에 설명 못했다.

         

       하지만….

         

       왜인지 한시우에게 당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에 나는 뻗은 그의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바보같긴요. 한시우 프로듀서님의 선택을 응원해요.”

         

       “예린 양.”

         

       “…한시우 프로듀서님의 꿈. 꼭 이룰 수 있게 최선을 다할게요.”

         

       그러자 한시우가 그림같이 푸하하 웃었다.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전에 너튜브에서 한시우 데뷔 시절 리즈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때에 비해 지금의 그는 외모도 조금 빛바래고 잔주름도 늘었지만….

         

       저 열정 가득한 눈동자는 예전과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