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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2

       

       

       

       

       

       이드밀라의 브레스.

       

       들끓는 거대한 용광로에서 쇳물을 폭포처럼 쏟아 부은 듯, 그 브레스는 지하 광장 저편을 온통 붉은 화염과 연기로 물들였다. 

       

       치이이이익.

       

       단단한 지하 암반조차도 닿으면 녹아 내리는 초고온의 화염.

       

       그 한가운데에 있는 헤카르테는 더 이상 거대 거북이라고도 부르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진 검은 무언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끄, 끄어억…. 대, 대체 어떻…게….】

       

       헤카르테의 안광이 고장난 TV 화면처럼 불규칙하게 점멸했다. 

       

       크기도 기존의 절반 이하로 줄어 있어, 방금까지 어마어마한 마기를 내뿜던 그 헤카르테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드밀라 님의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았으니….’

       

       그냥 브레스도 아니고 생명력까지 갈아 넣어 가면서 쏜 브레스다. 

       

       응축된 에너지로만 따지면 한 방에 도시 하나가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브레스.

       

       오히려 정통으로 맞고 나서도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게 신기했다. 

       

       “아르야…! 어떻게….”

       

       이드밀라는 눈앞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아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젓더니 빈사 상태의 헤카르테를 보며 말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이, 이럴 수는 없다…. 이리도 허무하게는…. 절대….】

       

       구우우웅….

       

       반쯤 녹아내린 몸으로, 남은 마기를 쥐어짜 낸 헤카르테는 마지막으로 탈출을 시도하려 했다. 

       

       “어딜!”

       

       이드밀라의 금색 눈이 빛남과 동시에 헤카르테의 움직임이 굳은 듯 멈추었다. 

       

       “아르야! 어서 마무리를 하거라!”

       “네, 이모!”

       

       자신이 브레스를 쏘고도 놀랐던 아르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는 헤카르테를 향해 플레임 버스터를 쏘았다. 

       

       “쿠와아아앙!”

       

       포효와 함께 날아간 불꽃은 헤카르테에게 정통으로 적중했고.

       

       【끄, 끄아아아아악!】

       

       무방비 상태의 헤카르테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흩어졌다. 

       

       그와 함께, 내 눈앞에 메시지가 어지럽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사역마 ‘아르젠테’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사역마 ‘아르젠테’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마왕 헤카르테를 물리치고 들어온 경험치는, 아르와 내가 반씩 나눠 받았음에도 엄청난 양이었다. 

       

       “진짜로 끝난 건가….”

       

       솔직히 너무 얼떨떨해서 잘 믿기지도 않았다. 

       

       까마득히 강한 존재 둘이 맞붙는 현장에서 엄청난 힘의 충돌, 그로 인한 폭풍을 온몸으로 감당하다가 일순간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고요해졌다. 

       

       눈앞에 떠 있는 레벨업 메시지가 아니었다면 방금 있었던 일이 꿈이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하지만, 꿈이 아니야.’

       

       이드밀라와 아르는 헤카르테를 물리쳤다. 

       마신의 씨앗.

       마신의 부활을 위해 대륙을 어지럽히는 악의 근원 중 하나를 제거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그래, 헤카르테는 죽었다. 봉인에서 풀려나자마자 죽었으니 이제는 제 힘으로 이 대륙에 다시 발을 들이려면 만 년은 있어야 할 거다.”

       “만 년이요…?”

       

       아직 내가 수천 년의 수명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도 실감이 안 되는데, 만 년이라고 하니 아예 감도 안 온다. 

       

       “그래. 마신이 부활해 직접 헤카르테의 영혼을 다시 찾아 거두어 대륙에 뿌리지 않는 이상, 적어도 그 정도의 시간은 걸릴 거야.”

       “…마신의 부활은 정말 무조건 막아야겠네요.”

       “그래야지. 지금처럼 마왕을, 마신의 씨앗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면 막을 수 있을 거다. 설사 부활한다 해도, 씨앗 없이 부활한 마신은 반쪽짜리일 뿐이고.”

       

       마신이라는 말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레키온 사가」를 하면서 마왕 바할라크가 최종 보스인 줄 알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아직 까마득해 보였다. 

       

       내가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자 이드밀라는 피식 웃었다. 

       

       “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지금은 마왕을 잡았음에 충분히 기뻐해도 되느니라.”

       

       그 말에 아르도 신이 난 듯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마쟈! 이모랑 아르가 해냈어! 레온, 봤지? 아르 멋있는 브레스 쏠 수 있게 돼써!”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 브레스는 도대체.”

       

       내 말에 이드밀라는 은룡의 브레스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살상력이 없는 대신 모든 걸 정화하고, 마나, 마기 할 것 없이 모든 힘을 무無의 상태로 되돌려 버리는 특수한 브레스.

       

       게다가 다른 드래곤의 브레스보다 속도까지 빨라서, 카르사유의 브레스에는 ‘은빛 섬광’이라는 이명까지 붙었다고 했다. 

       

       “그걸 우리 아르가 벌써 쓸 수 있게 됐다니, 신비롭고도 기특한 일이지.”

       

       이드밀라의 말대로라면 아르의 브레스는 그야말로 짙은 마기를 사용하는 마왕들의 천적이나 마찬가지.

       

       ‘아니, 따지고 보면 마왕뿐만 아니라 그냥 모든 마법사, 오러를 쓰는 검사, 마나와 마기를 두른 마물들을 상대로도 전부 압살할 수 있는 능력이잖아.’

       

       아르의 브레스를 맞은 대상은 그야말로 자신이 가진 신체 능력으로만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마나를 아무리 모았든 간에 전부 흩어져 버리면, 처음부터 마나를 모으는 시간 동안 아르한테 당할 수밖에 없지.’

       

       게다가 아르는 브레스가 살상력이 없다고 해도 공격 면에서 딱히 손해 보는 게 없는 편이다. 

       

       ‘왜냐하면, 아르는 마법 천재니까.’

       

       물론 대부분의 드래곤은 마법을 잘 다룬다. 

       

       브레스에 화력이 꽤나 몰빵되어 있는 편인 이드밀라조차도 화염 마법은 감히 인간이 비빌 수 있는 경지가 아니고, 기타 무속성 마법들도 꽤나 자유자재로 다루는 편이다.

       

       하지만, 마법을 그렇게 선천적으로 잘 다룬다는 드래곤 중에서도 모든 속성의 모든 마법을 잘 다루는 드래곤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버 드래곤을 제외하면 말이다. 

       

       아르의 경우 아직 레벨업이 조금 덜 됐고, 천 년의 힘이 있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태어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아 10서클까지 자유자재로 다루는 정도는 아닌 게 사실이긴 하지만.

       

       아르는 지금도 8서클 정도 선에서는 빙결, 화염, 전격, 바람, 대지, 무속성 마법 할 것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계를 보여 줄 수 있다. 

       

       ‘지상에서의 전투에서 그건 확실하게 보여줬지.’

       

       파이어 브레이슬릿을 이용한 나의 멋진 화염 마법 연계를 초라하게 만들었던 연계를 떠올리면 지금도 고개가 절로 내저어진다.

       

       거기다 이제 마왕을 잡으면서 레벨업도 많이 했으니 마력 스탯을 올려 9서클, 10서클 마법도 꽤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되면.

       

       ‘일대일로 과연 아르를 이길 수 있는 존재가 몇이나 될까.’

       

       심지어 드래곤끼리 붙어도 아르의 브레스는 상대 드래곤의 브레스를 흩어 버릴 테니 유리하게 시작할 수 있을 거다. 

       

       물론 드래곤끼리 친선 대련 이외에 싸울 일이 있어선 안 되겠지만….

       

       ‘아무튼, 그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아르는 훨씬 엄청나게 강해졌다는 거지.’

       

       거기다 나 역시 레벨업을 똑같이 했으니 파이어 브레이슬릿의 힘을 빌려 더 강한 화염 마법으로 아르를 보조해 줄 수 있을 거다. 

       

       “헤헤헤. 레온, 어때? 아르 멋지지! 쿠와아앙!”

       

       아르는 신이 나는 듯 기운 넘치는 포효를 내질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저렇게 성체의 모습을 하고도 아르는 귀엽다니까.’

       

       무시무시한 은룡 성체의 모습을 하고서도 눈을 초승달처럼 접으며 쿠와아앙! 하고 포효하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하하하, 아르가 전에도 천 년의 힘을 사용해 봤다더니 브레스를 쏘고도 기운이 넘치는구나.”

       

       이드밀라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아르의 브레스는 방금처럼 적을 무력화시키는 데에도 아주 탁월하지만, 동시에 아군을 케어하는 데에도 아주 효과가 좋지. 바로 지금 저기 비실거리고 있는 실비아 같은 녀석한테 말이야.”

       

       이드밀라는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실비아를 가리켰다. 

       

       “실비아 씨…. 괜찮아요?”

       

       마기를 잔뜩 두른 마물들과 근접 전투를 오랫동안 펼쳤어서일까. 

       

       실비아의 몸 주변에는 기분 나쁜 검은 기운이 뭔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레벨업을 해서 보이는 건지는 몰라도, 나조차도 볼 수 있을 정도라면 무시할 수준은 아니리라.

       

       하지만 실비아는 손을 내저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딱히 상처를 입은 곳도 없고, 지금은 조금 몸이 무거워진 것뿐이라 앉아서 명상으로 마나의 흐름을 가속시켜서 몰아내면….”

       “어허. 그러다가 마나 회로에 마기가 들어가서 휘돌기 시작하면 오히려 더 오래 걸리느니라. 아르한테 몸을 맡겨 보거라.”

       “마자! 아르한테 맡겨 바, 언니!”

       

       아르는 자신이 실비아의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을 반짝였다. 

       

       “…근데 이모. 그냥 아까랑 똑같이 브레스 쏘면 대여? 몬가 언니 마나까지 다 없어지는 거 아니에여?”

       “흐음. 그게, 카르사유 말로는 브레스를 쏠 때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 있다고 하던데 말이다. 대상을 정화한다는 생각으로 쏘면 된다는데 내가 쏴 본 적이 있어야 알지.”

       

       이드밀라가 가볍게 흠, 하고 숨을 내쉬었다. 

       

       “뭐, 어차피 다 끝난 뒤라 마나까지 좀 날아가도 상관없을 거야. 그러니 쫄지 말고 써 보렴.”

       “알겠어여, 이모!”

       

       아르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후우우웅.

       

       아르의 몸 속에서 아까보다는 훨씬 약하지만 부드러운 무언가가 소용돌이치는 듯한 느낌이 올라왔고.

       

       “쿠왕!”

       

       눈을 질끈 감은 실비아의 위로 은빛 섬광이 쏟아졌다. 

       

       섬광은 일시에 꺼졌고, 실비아는 눈을 떴다. 

       

       “어때, 언니?”

       “…몸이 엄청 가벼워.”

       

       실비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끔벅였다. 

       

       확실히 방금까지 실비아에게 덕지덕지 붙어 있던 검은 기운들이 깔끔하게 제거되었고, 실비아의 얼굴에서는 윤기까지 흐르는 것 같았다.

       

       “앗싸! 언니까지 정화해 줘따!”

       

       아르는 더더욱 신이 나서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레온! 아르 잘해찌? 잘해찌?”

       

       아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건…. 아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많이 받아 본 눈빛이다.’

       

       바로 나의 칭찬을 기다리는 눈빛.

       

       그러고 보니 마왕과의 전투가 끝나고 얼떨떨한 기분 탓에 아르한테 잘했다고 제대로 된 칭찬 한 마디를 아직 못 했다는 게 생각났다. 

       

       ‘칭찬이 많이 고팠구나.’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아르를 올려다보았다. 

       

       “그래, 아르야. 아르 덕분에 마왕도 쓰러뜨리고 모두 살았어. 너무 잘했어. 고마워.”

       

       진심을 담은 칭찬이었다. 

       

       아르가 성체의 모습만 아니었다면 품에 꼬옥 안아 주면서 엉덩이를 토닥여 줬을 거다.

       

       그러면 아르는 기분이 좋아서 아마 꼬리로 땅을 톡톡….

       

       ‘어? 톡톡?’

       

       불현듯 어떤 생각이 든 나는 아르의 거대한 꼬리를 바라보았다. 

       

       “아르야?”

       

       하지만 이미 늦었다.

       

       “히히! 레온한테 칭찬 받아써! 너무 조아!”

       

       내 칭찬에 아르의 입은 헤 벌어졌고, 꼬리는 기분 좋은 듯이 쭈욱 올라갔다. 

       

       그리고.

       

       “아르….”

       

       콰앙! 콰아앙!

       

       아르의 꼬리가 땅을 힘차게 내리쳤다. 

       

       “헉, 레온! 갠차나? 미아내, 아르 꼬리 조절을 못 해써!!”

       

       흡사 지진이라도 난 듯한 충격에 넘어진 나를 보며 아르가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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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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