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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2

        

         입가에서 연신 바스락거리던 음식 포장지가 슬그머니 무릎 쪽으로 내려간다.

         

         물론 특별히 합의한 건 없었지만.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그나마 편하게 풀어지는 휴게 시간이 식사 시였기에 암묵적으로 일과 관련된 잡담은 피하던 규칙을, 가장 행실 불량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켄이 조심스럽게 어겼다.

         

         “저… 아마 오늘 밤 늦게…. 아니면 내일 아침 정도면 자료 복구용 가이드라인이랑 페이로드 인코딩 용 프로그램이 얼추 완성될 것 같은데, 그러면 이제 좀 업무 분담을 좀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 부끄럼쟁이! 드디어 완성한 거야? 단순 반복 작업이라면 내가 또 기가 막히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거 쓸데없이 성실하기도 하지….’

         

         팡팡…! 하고 마리나가 꼬맹이의 등을 두들겼고, 그는 켁켁거리면서도 거친 칭찬을 받아들였다.

         

         반면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메마른 감상과 함께.

         포크를 입에 문 채 까딱거리며 속으로 구시렁거려봤지만… 그런다고 별반 달라질 것도 없었다.

         

         마음에 안 드는 결과가 있으면 그걸로 이어지게 된 원인도 있다고.

         

         최근 내가 눈에 띄게 작업 속도에 열을 내면서도 정작 두 사람은 느긋하게 해도 괜찮다며 설득하려 한 탓인지, 혹은 알고리즘을 짠다고 정작 의뢰주가 맡긴 서버는 거의 만지지 못하는 나날에 묘한 책임감과 조급함을 느낀 켄이 혼자서 애를 쓴 건지는 모르겠다.

         

         뒤늦게 그걸 깨닫고 어떻게 해보려 해도, 게으름부리게 만들 이유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고 이제 와서 내가 손을 늦출 수도 없었다.

         

         괜히 눈치 보느라 미적거리다가 진짜로 꼬리가 잡히면 대참사니까.

         

         하여간 결국 쫓는 사람은 자기가 쫓는 줄 모르고, 쫓기는 나만 벅차 하며 식은 땀을 흘리기를 며칠.

         마침내 맞춤형 사제 프로그램이라 내보일 만한 물건이 완성된 모양인데….

         

         …괜찮나? 괜찮겠지? 그래도 그동안 나름 열심히 격차를 벌려 놓고, 대비책도 세운답시고 준비했으니까 걱정을 덜어도 되겠지?

         

         내 초상 능력이 기대를 배반한 적은 분명 없긴 해도 막상 그 탄생 과정에 수상한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한몫 거들었다고 하니 영 불안해서 원.

         

         “혹시… 우리가 아직 한 번도 손을 안 댄 저장장치가 남아있어?”

         

         – 전에 P열 8행 서버랙의 하단부 단말기에서 연구 자료 일부를 회수 및 파기하신 후, 전기의 출력이 약해지셔서 그대로 작업을 중단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서버와 별개로 외곽에 빠져 있는 기록용 블랙박스 중에서도 살펴보지 않은 장치가…. –

         

         “에이씨…!”

         

         진짜 더럽게 많기도 하다. 에나마 측이 예상한 작업 난이도보다야, 그저 손대고 정신 집중해서 몇 분 동안 전기 찜질하는 걸로 자료를 쫙쫙 뽑아낼 수 있는 이점이 있기는 하다만.

         

         역시… 에나마가 공연히 세 달이라는 넉넉한 마감을 준 게 아니었다.

         

         사람 셋이서 해결하려면 먹고 자는 시간 빼고 전부 갈아 넣어야 겨우 마무리되는 작업량이 예상되니까, 선심 쓰듯이 보수부터 불러서 근로 욕구를 진취 시킨 거다.

         

         도중에 우리 쪽에서 앓는 소리를 내거나 매일 올라가는 복원 데이터의 양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용병을 더 구해주던가 신원이 확실한 직원을 붙여주던가 했을 테고.

         

         ……원조 블랙 기업의 품격을 이런 식으로 과시할 줄이야. 이 나쁜 새끼들.

         이쪽 세상의 역사가 어떤 지는 몰라도, 원래 지구에서는 과로사의 개념을 처음 정립한 게 일본이었다는 사실. 나는 뉴스에서 분명히 읽었다 이 놈들아…!

         

         “부끄럼쟁아! 인코더를 어떻게 쓰는데? 뭐 시제품 같은 거 없어? 난 따로 설명서 챙겨줄 거 아니면 꼭 A부터 Z까지 사용법이 있어야 되는데!”

         “……그래서 가이드라인도 일부러 다 따 놨다고 했잖아요 누나.”

         

         내가 이를 악물고 이 넓은 창고를 가득 채운 서버 관련 설비들을 기어이 한 바퀴 돌아보는데 성공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들끼리 뭔가 체계적인 계획을 짜느라 바쁜 두 사람의 소란이 들려왔다.

         

         “하아….”

         

         보란듯이 숨을 내쉬면서 턱을 괸다. 덤으로 포크를 잘근잘근 씹어서 흔드는 빈도도 높였고.

         

         에러 체크 비트(Parity Bit; 전송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는지 표기해주는 숫자)니… 오류 코드가 어쩌니… 하면서 떠드는 꼴을 뚱하게 쳐다봐도 이쪽을 향해 별다른 질문이나 이야기의 바톤이 넘어올 낌새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굳이 나를 대화에 안 끼워주려는 의도는 알겠다.

         여태까지 혼자서 제출하는 자료 할당량을 꼬박꼬박 채우느라 고생했으니 이제는 좀 맡겨 두고 쉬엄쉬엄 하라는 배려가 틀림없다. 음.

         

         …그런 건 전혀 필요 없고, 제발 시야밖에서 몰래 일하려고 하지 말아 줄래? 여기 켕기는 게 많은 사람은 불안해 죽겠으니까 진짜로.

         

         “으휴, 어쩔 수 없이 너가 고생 좀 해야겠다. 이번만 참아줘, 다음에는 혼자 널널~하게 재택 근무할 수 있는 의뢰로 골라잡을게.”

         

         – 저는 애초에 수면을 취하지 않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평상시에도 가동에 사용되는 연산 소자를 번갈아 가면서 구동하는 걸로 부품에 누적되는 피로를 최소화하고 있으니, 부디 안심을. –

         

         “……잠깐, 그건 좀 많이 부러운데? 뭐 돌고래야?”

         

         모자란 체력은 운동으로 조금씩 깨작깨작, 부족한 영양소는 건강 보조식품을 통해, 섭취하는 족족 능력을 쓰느라 빨려 나가는 열량은 욕망 그득한 고칼로리 식단으로 어찌저찌 메꾸고 있다만.

         

         원체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이는 수면 욕구를 한탄했더니 제로 녀석으로부터 얼토당토않은 진실이 되돌아왔다.

         

         뭐, 잠이 불필요해…? 심지어 그런 놈이 매일 아침마다 나보고 늦잠 잔다고 뭐라 했다고? 사람 억울하게 만드네 요게. 주기적으로 혼날 거리를 알아서 들고 와요 아주.

         

         드르륵!

         앞으로는 모닝콜을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하며 의자를 밀치고 일어났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이정도면 충분히 쉬었다. 달이 넘어가도록 에나마 놈들 돈으로 실컷 먹고 자고 했겠다. 슬슬 그만 다가오는 대단원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게 노력해야지.

         

         원래 시험은 장기간 갈고 닦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직전의 벼락치기-막판-에 갈아 넣은 집중력도 성적을 크게 좌우하는 법이니까.

         

         “후… 좋아. 마리나, 켄! 따로 할 얘기 없으면 먼저 일어날께?”

         

         “엥? 왜! 더 들지 않고? 평소처럼 볼따구가 빵빵해지는 걸 기대했는데.”

         

         “……작업하다 끊은 게 있어서 찝찝해서 그래. 그리고 그렇게까지 입 안 가득 우겨 넣은 적도 없거든!?”

         

         양심은 찔리지만, 동고동락한 그들에게도 결코 공개할 수 없는 속내를 감춘 상태로 한 발 빨리 자리를 떴다.

         

         여기 온 이래 생전 처음으로 음식을 남긴 건… 그러니까 누가 상의도 없이 쌀국수 같은 걸로 메뉴를 통일하래! 아직도 입에서 세제 맛이 감돌잖아! 그아악!!

         

         

         

         

         ★ ☆ ★ ☆ ★

         

         

         

         

         탁, 타닥. 탁!

         삑—. 삑—. 삐익—. …찰칵.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가 제각기 키보드를 두들긴다.

         누군가는 간편한 패드 형태의 경량 컴퓨터를, 또 누군가는 차마 휴대용이라 부르기도 힘든 슈퍼컴퓨터에 딸린 걸로. …그보다 한술 더 떠서 대동한 로봇에 단말기를 심은 괴짜도 있었고.

         

         아무튼 출신도 다르고, 나이도 차이 나고, 특기나 전공도 미묘하게 다 색다른 이 기막힌 임시 해커팀의 일하는 모습은 생각 이상으로 꽤 질서정연했다.

         

         우선 팀의 에이스 워커홀릭이자, 최근 의욕이 넘쳐흐르다 못해 눈에 불을 켠 아나스타샤가 일선에서 신기한 스타일과 테크닉으로 마구 데이터를 뽑아낸다.

         그럼 이제 포렌식이 끝나고 정상적으로 복구된 파일은 자동으로 내부 네트워크에 업로드 되고, 감식반이 신뢰성 검토를 시작한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면 피차 편하련만 비공식 의뢰에서 출발했어도 어디까지나 도착점은 정규 계약.

         

         당시에 명시한 대로 경과 보고서를 매일 보내야 했기에, 드로이드로부터 전송된 두서없는 메타데이터와 기타 원시 데이터(Raw Data)를 그나마 보기 좋게 정리해서 마리나에게 토스하면 최종적으로 반복 작업과 아부에 도가 튼 그녀가 사탕발림을 듬뿍 추가해서 양식대로 제출한다.

         

         그 외에도 짬짬이 손이 비거나 머리가 잘 안 돌아가면 근처에 있는 서버를 붙잡고 초과 근무를 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오늘까지는 말이다.

         

         “흐아아… 진짜 죽는 줄 알았드아…. 저기, 둘 다 슬슬 자러 들어갈 거지? 나 빼놓고 야근하는 건 자제해줬으면 좋겠는데.”

         

         있는 힘껏 개운하게 기지개를 펴면서도, 연신 힐끔거리는 시선을 방출하는 소녀.

         세상에 제발 일하지 말아 달라고 눈치를 주는 동료가 있을 수 있나 싶었지만… 여기 산 증인이 있는 걸 어쩌겠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아, 완성된 툴은 마리나 누나한테 건네 주고 들어가려고요.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아나스타샤 누나.”

         “이쁜아! 지금부터 내가 일주일 내로 타임 어택해서 네 기록도 깨고 보너스도 챙겨줄 테니까, 이 참에 푹 쉬어도 돼!”

         

         “어… 응, 그래. 파이팅…? 인수인계가 필요하거나 내가 실수로 놓친 게 나오면 좀 말해줘. ……꼭이야.”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금방 자러 갈 예정이라는 말에 선선히 수긍한 그녀가 고생했다며 손을 마주 흔들어주고 떠나갔다.

         당연히 덩치 큰 초합금 병아리처럼 뒤에 딱 붙어 다니는 무지막지한 컴퓨터도 주인 따라서 모습을 감췄고.

         

         그렇게 남은 두 사람의 연장 근무에 불이 들어왔다.

         

         “일단… 노트북으로 보낼 테니까, 잘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주시고… 내일부터 천천히….”

         “오…?”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쑥덕거린다.

         화기애애하다면 그리 보이기도 하고, 죽이 잘 맞는다고 우기면 납득하지 못할 것도 없는 분위기가 이어진다.

         

         주로 설명할 게 많은 켄이 떠드느라 분주했다면 마리나는 이해는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수준으로 맹렬하게 머리를 끄덕거렸다.

         

         30분… 1시간. 먼저 떠난 팀원이 한참 전에 잠들었을 시간이 흐르고.

         딱히 질문거리가 없으면 이 소모임을 파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감정이 소년 쪽에 피어오르던 그때.

         

         “음음~ 근데 부끄럼쟁아…?”

         

         “네?”

         

         조금, 아주 조금 예고없이 마리나의 얼굴이 켄 쪽을 향해서 굽혀졌고.

         싱글벙글. 근심은커녕 아무런 걱정거리조차 없다는 듯이 웃는 표정에, 기울어진 각도 탓인지 어울리지 않는 으스스한 그늘이 생겼으며.

         무엇보다 속을 떠보는 시선과 들여다보는 태도가 교차했다.

         

         “아까 보여준 시제품이랑 다르게, 지금 던져준 프로그램에는 걸리면 아~주 위험해 보이는 통신망 관련 명령어가 끼어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외부랑 함부로 교신하면 끌려간다는 조항, 까먹었어? 응??”

         

         “…….”

         

         딴마음을 품은 건 누구였고, 덫을 준비하던 건 어느 쪽이었을까?

         가면이 약간 흘러내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건… 사랑의 라이벌! (절대아님)

    안… 돼는데… 또 연재분이 밀린드아아아….

    Rime 님의 33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닥치고 가져가라고 하셨지만… 저는 말이 많은 인간인지라 네… 아무튼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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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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