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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2

     [통일력 97년 3월 29일.]

     3월 31일.

     

     나의 생일.

      

     생일이기는 하지만, 딱히 생일이라고 거창한 축하연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회귀 전.

     지브롤터는 연회만 열었다 하면 사고가 생겼다.

     생일선물도 암살 테러의 가능성이 있어 거의 받지 못했다.

     생일이라고 케이크를 만든다?

     케이크 생크림에 독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컸다.

     따라서 생일은 그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니 대외적으로는 무조건 숨겨야 하는 ‘대외비’.

     그런 나의 생일이 노출되었다.

     

     다름아닌 합스베르크 황태자에 의해.

     “혹시, 불쾌하신 건가요? 이사장님?”

     “전혀.”

     

     ‘주차장’을 향해 가는 도중, 바토리 부총장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내게 말을 걸었다.

     “독이 든 와인이나 마도 폭탄이 든 깜짝 상자 같은 것만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그런 거 받은 적 있나요?”

     “역대 지브롤터가.”

     그리고 매국노 그레이가.

     “그런 의미에서 저건 무식할 정도로 크고 파격적이지만, 적어도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지는 만큼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안전이야 하겠죠. 아이페리아 인더스트리의 안전진단 증서까지 있다면서요?”

     “예. 그게 있었으니까 세이레네 영지에서 이곳까지 ‘육로’로 온 거죠.”

     주차장에 도착했다.

     원래는 마차 등을 놔두는 장소지만, 그 가운데에 너무나도 큰 배 한 척이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배가 어떻게 땅에 있냐고?

     저건 배지만, 배가 아니다.

     배라는 형태를 하고 있으면서, 그 양옆으로 거대한 바퀴를 6쌍이나 달고 있는 육상전차다.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다를 달렸을 제국 해군의 함선.

     “해군을 해체한 뒤로 배를 어떻게 활용하나 했더니, 박물관에 처박아 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마개조를 해서 사용할 줄이야.”

     “마개조라는 단어도 알아요?”

     “제가 매일매일 제국신문을 받아보고 있습니다.”

     마개조.

     그냥 개조하는 것도 아니고, 원형을 알아볼 수도 없게 바꿔버리는 것.

     엄밀히 따지면 원형은 보인다.

     단지 그 원형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서 그렇지.

     “육지를 바퀴로 달리는 배가 있다니. 저것도 연금술의 산물입니까?”

     “연금술이라. 정확히는 마도공학의 산물이죠? 내부에 들어가는 엔진은 연금술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엔진. 바퀴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기관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예. 그렇답니다. 아직 거기까지는 진도를 나가지 않았는데, 잘 아시네요?”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는 것도 있고, 아스타시아 황손녀에게 연금술에 대해 따로 과외로 배우는 것도 있고.”

     “이사장님.”

     이야기하는 사이.

     “안전 조사가 끝났습니다.”

     아카데미의 치안 및 경비를 책임지는 기사단의 일원이 다가와 내게 보고했다.

     “승선하셔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승선이라.”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 따지려는 게 아니야. 나도 승선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승선.

     배에 오르다.

     배에 오른다는 건 분명한데, 배는 바다 위를 떠다니는 물체다.

     “이제는 승차라고 해야겠군. 어디, 한 번 안에 들어가서 살펴보도록 하죠.”

     나는 배의 옆에 길쭉하게 뻗어 나온 승선용 간이 계단을 향해 다가갔다.

     “올라오시겠습니까, 레이디?”

     “어머. 누가 노스트럼의 사람 아니랄까 봐.”

     바토리가 내 손을 잡고 드레스 끝자락을 잡았고, 나는 바토리를 에스코트하며 나무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탈 때마다 이렇게 나무계단을 올라가야 한다니.”

     “아마 내부에 장치가 있을걸요? 저기 배 하단부에 해치가 있을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그야 당연히, 매번 이렇게 옆에 계단을 붙여서 타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바토리 부총장은 변명을 하듯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지만, 나는 알고 있다.

     ‘있긴 있더라도, 사람은 탑승 계단을 타고 오르내리게 되겠지.’

     이것은 전차가 아니다.

     육상전차의 흉내를 내고 있지만, 육상전차라고 눈 가리고 아웅을 하고 있지만 내게는 보인다.

     ‘부품을 다 뺀 상태로 육로를 달리게 해서 그렇지, 딱 봐도 알겠어.’

     

     이거.

     배, 맞다.

     육로를 바퀴로 달리는 게 아니라, 바다를 노 저으며 다니듯 돌아다니는 배가 맞다.

     대신 다니는 곳은 배가 아닌, 구름의 바다.

     ‘비행선(飛行船)’이다.

     양쪽에 달아둬야 할 날개는 전부 떼버리고, 내부에 들어가야 할 핵심 부품-엔진인 ‘풍석’은 일반 마도석으로 교체하고, 바람이 아래로 뿜어져 나갈 부분은 전부 막아뒀겠지.

     그런데도 왜 이런 비행선(비행 못 함)을 내게 보낸 것인가.

     그 이유를 추측하자면….

     “하.”

     “어머나.”

     갑판에 올라 실내를 살피던 도중, 본래 ‘함장실’이라고 해야 할 곳의 문을 열자마자 나는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거, 누구 취향이려나…?”

     “취향이고 뭐고, 일단 악취미는 분명하군요.”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넓은 침대 하나.

     그 침대는 세 사람이 누워도 될 정도로 넓었지만, 침대에는 프릴이 주렁주렁 달린 반투명한 캐노피가 펼쳐져 있었다.

     그냥 사각형인 것도 어처구니가 없을 텐데, 심지어 그 형태는 하트(♥) 모양.

     “하….”

     죽이고 싶다. 

     “아버지에게도 이런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합스베르크.

     * * *

     그 시각, 테르시안 제국 황태자궁.

     “미치셨습니까.”

     “사위한테 생일선물로 차 한 대 정도는 괜찮잖아.”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

     “그렇게 노여워하지 말지?”

     제국의 황태자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한 얼굴로, 눈앞의 상대를 맞이하고 있다.

     “모처럼 예쁜 얼굴이 그렇게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은데. 그런 모습도 예쁘기는 하지만.”

     “그런 마음에도 없는 소리에 속을 만큼 이제는 어리지 않습니다, 전하.”

     한기가 풀풀 날리는 목소리.

     “좋아. 에르윈-”

     “아이페리아 회장.”

     “…아이페리아 회장. 그래. 황실 자산, 그것도 내 개인 소유의 물건을 보냈을 뿐인데 그게 무슨 문제가 있지?”

     에르윈 아이페리아의 방문에 대하여, 황태자는 긴장된 손으로 찻잔을 들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다른 것도 아니고 ‘모비딕’호를 보내시면 어쩌자는 건가요? 그것도 장비는 전부 떼버리고!”

     “장비를 떼어낸 게 더 짜증 나는 건가, 아니면 모비딕 호를 보낸 게 짜증 나는 건가?”

     “모비딕 호! 장비를 떼어내는 건 당연하고!”

     에르윈 회장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직 비공정은 좀 더 실전 비행이 필요한 단계예요. 함부로 괜히 보여줬다가는 다른 사람들을 기대만 하게 만들죠.”

     “음.”

     “해체한 해군의 배 중 일부를 연구용으로 기부해 주신 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모비딕 호는, 그 배는…!”

     “이사벨라로부터 압류한 초호화 유람선이었지.”

     “그걸 알면서!!”

     “하지만 이제는 내 물건이 아니오.”

     황태자는 손날을 세워 자기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아이페리아의 기술을 훔쳐다가 자기네 유람선에 비행장치를 달아, 하늘을 날아 망명하려고 한 작자요. 무엇이 두려운가?”

     “이사벨라, 그녀는….”

     “전혀 걱정할 필요 없소. 그들에 대해서는 아주 천천히 숨통을 움켜쥐는 중이니까.”

     황태자는 서쪽 끝을 향해 손을 뻗었다.

     “1년 안에 해결할 수 있소. 병상에 누워계신 분이 명을 달리하시든, 아니면 이사벨라가 기어이 반역을 저지르든 결과는 나오겠지.”

     “이렇게 대놓고 자극을 했는데, 이사벨라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요?”

     “가만히 있지 않으면? 반란세력을 모아서 반란을 저질러보겠다고 이 귀족 저 귀족 손을 벌리고 있는 여자가 뭘 할 수 있다고.”

     “…노리고 있나요?”

     에르윈 회장의 물음에 황태자는 씩 미소를 지었다.

     “평화의 시대에 반란은 있을 수는 없는 법이지.”

     “반란을 일으키게 유도해 놓고?”

     “이사벨라가 얌전히 황태자비로서 지내고자 했다면, 순순히 나의 ‘이혼’을 받아들였다면 반란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오.”

     “않았을 것?”

     “아차.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 공식적으로는.”

     황태자는 찻잔을 가볍게 흔들었다.

     “이미 반란을 저지르기로 한 이상. 이미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기로 한 이상. 이사벨라는 가만히 놔둘 수 없소. 심지어….”

     “심지어?”

     “조사 결과, 오래전부터 지브롤터를 건드렸던 흔적이 나왔지. 그림자를 보낸 배후.”

     그 찻잔의 디자인은 어딘가, 노스트럼 왕국의 한 변경백 가문에서 쓰일 법한 그런 디자인이었다.

     “아니지. 그건 이사벨라가 아니라 아버지셨나? 흐흐.”

     “…….”

     “아버지는 협곡을 무력으로 정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지. 그게 선대, 그 이전부터 누적되어 온 테르시안의 증오.”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나?”

     “당신이 어렸을 때, 웅변대회에서 ‘타도 노스트럼’을 외쳤던 걸 온 제국 시민들이 다 알고 있는데.”

     “어렸을 때와 지금은 다르지. 아이가 벌써 17살인데.”

     “…….”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안심하시오, 회장. 비행선…비행을 하지 못하니, 그냥 프리깃 컨셉의 트레일러라고 합시다. 그 트레일러는 이전에 군용 전함이었고, 그 뒤에는 비공정 연구를 위한 프로토타입으로 이용되었지만, 이제는 다를 것이오.”

     “어떻게 쓰라고 한 건데요, 도대체. 안전장치는 그대로 놔뒀으면서.”

     “그레이와 아스타시아가 둘이 함께 배에 올라, 왕국 전역을 누빌 수 있는 이동식 호텔?”

     “……뭐?”

     에르윈 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뭐라고…?”

     “말 그대로요. 두 사람을 위한 호텔이지. 이동도 가능하며, 속도도 빠르고, 5시간 정도면 오로솔 아카데미와 지브롤터를 편도로 오갈 수 있는….”

     “호, 호텔이라니!!”

     에르윈 회장이 주먹을 움켜쥐며 책상을 크게 내리쳤다.

     “애, 애들을 상대로 무슨 소리를!”

     “요즘 애들은 젊은 나이에 할 거 다 하는데.”

     “이…!”

     “제국법에 따르면, 20살 미만의 성인은 미성년자지. 음.”

     황태자는 히죽거리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리고 저기는 노스트럼 왕국이고.”

     “…….”

     “그레이 지브롤터가 ‘지브롤터의 전통’을 지키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본인은 개인적으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군.”

     황태자가 찻잔을 에르윈 회장에게 뻗었다.

     “짠 하지. 그레이 폰 테르시안 아이페리아를 위하여.”

     “하.”

     에르윈 회장이 자신의 빈 잔을 들며 이죽거렸다.

     “그레이.T.합스베르크가 아니고?”

     “하ㅡ!”

     황태자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에르윈 회장의 빈 잔에 자신의 잔을 크게 부딪쳤다.

     “역시 당신이야.”

     

     * * *

     엔진실.

     “출력은…확실히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군요.”

     나는 육상전함의 내부, 가장 깊은 곳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엔진실에 있는 거대한 마도 기관에 손을 올렸다.

     크기는 거의 마차 한 대와 맞먹을 정도.

     표면이 강철로 되어 있는 마도 기관은 주변으로 뻗어나간 마도선을 따라 끊임없이 마나를 흘려보내고 있다.

     “마나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맞습니까?”

     “그렇죠? 바퀴로 달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황태자 전하의 의도는 알겠습니다.”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아서 좋다.

     “이걸로 제가 아스타시아 황손녀와 돌아다니면서 더 친해지기를 바라는 거겠죠.”

     “…….”

     “어쩌면 협곡 탐구 동아리를 만들었다는 보고를 들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크흠흠.”

     바토리 부총장은 슬쩍 눈을 피했지만, 바토리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는 이야기했을 것이다.

     스칼렛이든, 아니면 다른 제국의 첩보요원이든.

     “만일 황태자에게 그레이 지브롤터가 어떤 반응을 보였냐고 묻는다면, 하나는 만족하지만 두 가지는 만족하지 못한다고 전해주시겠습니까?”

     “두 가지나 불만족이라고요…?”

     “예. 일단 이런 엄청난 물건을 선물해 준 것 자체는 감사합니다.”

     나는 바토리를 향해, 예의를 갖추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너무 크다는 거.”

     “뭐, 그거야 프리깃 범선을 개조한 물건이니까….”

     “그리고 또 하나. 그 너무 크다는 것 때문에, 너무나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렸다는 것.”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합스베르크 황태자께서는 아무래도 노스트럼에 대해 너무나도 잘 모르는 분인 것 같습니다.”

     “…본인이 들으면 엄청 화를 낼텐데요.”

     “화를 내더라도, 적어도 제게 화를 내지는 않을 것 같군요. 이참에 확실하게 알게 될 겁니다.”

     마침.

     “왜 노스트럼이 노스트럼이고, 지브롤터가 지금까지 지브롤터였는가.”

     딱 도착했다.

     “저건….”

     “황금 여명 기사단. 노스트럼 왕국의 제1 기사단이죠.”

     주차장을 향해, 수십 명에 이르는 황금갑옷의 기사들이 멈춰 섰다.

     “바토리 부총장. 한 번, 지켜보시길.”

     왕국 기사단장까지 대동하며 온 사람이 누가 있을까.

     “노스트럼에서 가장 비상식적이고 파천황적인 인간쓰레기를.”

     “이게 그 도로를 달리는 배라는 건가ㅡㅡㅡ!”

     “…….”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의 중년인.

     “우리의 국왕 전하는 말입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나타났다.

     “수호자 가문의 아들에게 제국의 황제가 생일선물로 준 것도 빼앗아 가는 아주 치졸하고 옹졸한 쓰레기랍니다. 앞으로는 고려해 주시길.”

     “…….”

     “괜찮습니다. 빼앗겨도.”

     대충 안에 보니.

     “다음에 좋은 거 받으면 되죠.”

     감시용 마석 카메라들이 쫙 깔려있더라.

     유출되는 건 무능왕의 사정이지,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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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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