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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2


    ​
    ​
    공작가의 집무실은 고급스러운 가구와 빼곡히 꽂힌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중앙에는 넓은 책상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위에는 중요한 문서들, 두툼한 책들, 그리고 고급 잉크와 깃펜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
    공작은 책상 뒤, 가죽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자세는 우아했으며, 눈빛은 진지했다. 그녀의 옆에는 집사가 바른 자세로 서 있었다. 방 안을 가득 채운 책들의 향기와 낮게 타오르는 벽난로의 따스함이 무거운 분위기와 대비되었다.
    ​
    ​
    그녀는 문서에 눈을 고정한 채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
    ​
    “판톤은 무사하던가?”
    “예, 크고 작은 상처는 있었지만, 사지가 잘려 나간 곳은 없다고 합니다.”
    ​
    ​
    사락.
    ​
    ​
    종이가 팔랑거리며 넘어가는 소리가 날 선 칼날 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집사는 기다리던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
    “판톤의 동행자는 어떻게 할까요?”
    ​
    ​
    자식이 아닌 동행자. 
    ​
    ​
    두 사람 모두 판톤과 함께하는 이가 공작가의 핏줄 아니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공작은 말없이 마지막 서류에 사인과 도장을 쿵 하고 찍은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
    “잠시 자리를 비울 테니 뒷 일은 알아서 처리해놔.”
    “..판톤 경을 만나보시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몸에 이상이 없더라도 머리 쪽에 문제가 생겼다며? 제대로 대화하려면 치료가 먼저 일 테니.”
    ​
    ​
    벌컥!
    ​
    ​
    그녀는 서재 테라스를 활짝 열더니 순식간에 난간 밖으로 몸을 던졌다. 집사는 말 없이 제 주인의 등을 바라보았다.
    ​
    ​
    ‘스트레스를 푸시려나 보구나.’
    ​
    ​
    그녀는 제 자식이나 용사의 존재가 떠오르면 검 하나 들고 몬스터를 쓸어버리곤 했다. 그녀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
    ​
    “후우..”
    ​
    ​
    집사는 가볍게 한숨을 내뱉은 후 조용히 서재를 빠져나와 성의 입구로 향하는 긴 복도를 걸었다. 그의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정갈한 얼굴 위로 약간의 주름이 새겨졌으며 눈빛에는 깊은 걱정이 아른거렸다.
    ​
    ​
    ‘판톤경이 무사히 돌아온 것은 다행이지만….’
    ​
    ​
    집사는 다시금 올라오는 한숨을 꾹 삼킨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
    ​
    포장된 돌길 위로 마차 한 대가 성의 입구로 우아하게 다가왔다. 햇빛이 찬란한 낮,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마차와 함께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
    ​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들은 마차가 다가오자 경례를 하며 길을 열어주었다. 위엄과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성문이 열리고 마차가 천천히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
    ​
    바퀴와 돌길이 맞닿으며 내는 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깨뜨렸다.
    ​
    ​
    성안으로 들어서자, 마차는 성의 중앙 광장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광장 주변에 모인 기사들과 집사, 시녀장이 마차의 도착을 지켜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은 우아한 마차에 닿아있었지만, 시선은 시리기만 했다. 
    ​
    ​
    이곳에 모인 이들 중 마차 안에 각하의 핏줄이 타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분위기가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
    ​
    ​
    마차가 광장에 멈춰서자, 기사, 집사, 그리고 시녀장까지, 모두가 마차에서 내릴 인물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기사 중 몇몇은 검 손잡이 위에 손을 올리기도 했다.
    ​
    ​
    습격이 일어나기 3초 전인 상황처럼 날 선 분위기 속에서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마차의 문이 열렸다. 광장의 모인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쏠렸다. 마차에서 내려선 인물의 모습이 드러나자, 광장에 모인 이들의 얼굴에는 순간적으로 경악으로 물들었다.
    ​
    ​
    “….!”
    “허어..!”
    ​
    ​
    가장 먼저 시선에 들어온 건 설산의 눈보다도 하얀 머리카락이었다. 달처럼 희고 고운 피부와 바라보는 이를 압도하는 깊이를 가진 금안.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이목구비와 곧은 콧날은 그가 쉽게 보기 힘든 미남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
    ​
    그들의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
    ​
    허리까지 내려오는 살짝 은빛이 도는 하얀 머리카락, 범의 눈을 보는 것처럼 깊은 색을 품은 금안. 눈처럼 하얗고 고운 이목구비가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것만 같았다.
    ​
    ​
    무엇이든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서늘한 눈빛이 제 주군을 떠올리게 해,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 중 몇몇은 몸을 움찔 떨며 시선을 피했다.
    ​
    ​
    기사의 눈은 놀라움으로 확장되었고, 집사의 입은 미세하게 벌어졌으며, 시녀장마저도 순간적으로 눈썹을 치켜뜨며 당황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순간적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마차에서 내린 인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표정에는 의문과 놀라움이 교차했다.
    ​
    ​
    ‘우왁…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너무 많잖아!’
    ​
    ​
    리안은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은 사람이 나와 있자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긴장했다. 아이리스는 살짝 미간을 구긴 채 제 오빠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제 오빠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모든 시선이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
    ​
    “으으으! 도착!”
    ​
    ​
    제스가 환하게 웃으며 마차에서 내리곤 기지개를 켰다. 밝은 목소리에 긴장감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았다. 뒤에 따라오던 마차의 문도 열렸는지 순식간에 광장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
    ​
    집사는 잠시의 당황을 추스르고, 곧바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한 발짝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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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십니까? 집사 세반입니다. 귀하의 도착을 기다렸습니다. 긴 여정에 지치셨을 테니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편히 쉬실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
    ​
    집사의 매끈한 인사에 시녀장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인사를 건넸다. 
    ​
    ​
    “..시녀장 베니입니다. 귀빈을 맞이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여기 계실 동안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
    ​
    생각했던 것보다 극진한 태도에 리안을 제외한 일행 모두가 당황했다. 능숙한 집사의 태도에 떠밀려 어버버하는 사이 호화로운 숙소에 배정되고 화려한 욕실에서 씻겨졌다. 
    ​
    ​
    그 시간 집사의 집무실.
    ​
    ​
    집사와 시녀장, 기사단장 두 명과 마법 단장 한명이 소파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
    “새하얀 머리카락과 금안은 공작가 핏줄의 가장 큰 특징이죠.”
   “그 때문에 저도 당황하긴 했지만 -… 머리카락과 눈 색을 바꾸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과거에 한 번, 머리색을 바꿔온 자가 있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완전히 새하얗게 만드는 건 불가능하죠. 그때도 하얀색이 아닌 회색에 가까운 색이었죠.”
    “중요한 건 방법이 있다는 거죠. 그 사이 마법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한다면 불가능한 건 아닐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마도구의 힘일 수도 있구요.”
    ​
    ​
    새하얀 머리카락과 찬란한 금안은 공작가 핏줄의 특징이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보니 이를 이용하려는 이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이들은 쉽사리 의심을 놓을 수 없었다. 
    ​
    ​
    “그게 아니더라도 공작가의 먼 방계일 수도 있습니다.”
    “확률은 낮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죠.”
    “후… 이럴 줄 알았다면 각하를 붙잡을 걸 그랬습니다.”
    ​
    ​
    집사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뱉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마법 단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
    “마법적 반응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 말은…”
    “마법이나 마도구를 이용해 머리를 물들인 건 아니라는 말이겠죠. 동시에 판톤에게 세뇌 마법이 걸리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아…”
    “좋은 소식일지 아닐지는 아직 모르겠군.”
   
    ​
    판톤에게 세뇌 마법이 걸리지 않았다는 말은 좋게 생각하면 정신이 멀쩡하다는 말이지만, 나쁘게 생각하면 물리적인 세뇌를 거쳐 완전히 마왕파 쪽에 넘어갔다는 말이 되기도 했다.
    ​
    ​
    분명 사기꾼이라 생각했던 이들이 진짜 각하의 핏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이들의 얼굴 위로 수심이 짙게 내려앉았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시녀장이 고고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
    “우선… 각하께서 돌아오시기 전까지 지켜보도록 하죠.”
    “그러는 게 좋겠군요.”
    “가능하면 최대한 친근하게 접근해서 정보를 얻어보죠.”
    ​
    ​
    그날의 회의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
    ***
    ​
    ​
    ‘히야, 으리으리하네.’
    ​
    ​
    리안은 성 내부를 구경해도 된다는 말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원작에선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던 장소다 보니 더욱 눈이 갔다.
    ​
    ​
    성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높이 솟은 천장이었다. 천장은 정교한 목재 조각과 섬세한 석재 작업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중앙에는 커다란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다.
    ​
    ​
    복도는 넓고 길게 이어져 있으며 바닥은 광택이 나는 대리석으로 깔려 있어,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며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여기저기에 놓인 대형 화병에는 겨울에만 피는 신선한 꽃들이 가득 차 있어, 성 내부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
    ​
    성의 각 방은 고유의 목적과 테마에 따라 다르게 꾸며져 있어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
    ​
    ‘지금까지 봤던 방 중 가장 화려한 방은 내 방이랑 아이리스 방 같은데? 아이리스를 데려다줘서 고맙다는 의미인가?’
    ​
    ​
    아이리스를 공작가에 데려다주고 떠나는 걸 너무 당연시 여겨버린 탓에, 아이리스에게 남매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도 아이리스가 공작의 핏줄이라는 걸 알리는 것도 깜빡했다는 걸 잊은 상태였다.
    ​
    ​
    그 탓에 자신이 공작의 자식으로 오해받고 있다는 걸 리안은 자각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이런 성을 언제 구경해보겠어.’라는 심정으로 눈을 반짝거릴 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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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재미없는 부분 쳐내다가 지각지각… ;0;

바로 다음편 올라옵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공작가의 집무실은 고급스러운 가구와 빼곡히 꽂힌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중앙에는 넓은 책상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위에는 중요한 문서들, 두툼한 책들, 그리고 고급 잉크와 깃펜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공작은 책상 뒤, 가죽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자세는 우아했으며, 눈빛은 진지했다. 그녀의 옆에는 집사가 바른 자세로 서 있었다. 방 안을 가득 채운 책들의 향기와 낮게 타오르는 벽난로의 따스함이 무거운 분위기와 대비되었다.

그녀는 문서에 눈을 고정한 채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판톤은 무사하던가?”

“예, 크고 작은 상처는 있었지만, 사지가 잘려 나간 곳은 없다고 합니다.”

사락.

종이가 팔랑거리며 넘어가는 소리가 날 선 칼날 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집사는 기다리던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판톤의 동행자는 어떻게 할까요?”

자식이 아닌 동행자.

두 사람 모두 판톤과 함께하는 이가 공작가의 핏줄 아니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공작은 말없이 마지막 서류에 사인과 도장을 쿵 하고 찍은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잠시 자리를 비울 테니 뒷 일은 알아서 처리해놔.”

“..판톤 경을 만나보시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몸에 이상이 없더라도 머리 쪽에 문제가 생겼다며? 제대로 대화하려면 치료가 먼저 일 테니.”

벌컥!

그녀는 서재 테라스를 활짝 열더니 순식간에 난간 밖으로 몸을 던졌다. 집사는 말 없이 제 주인의 등을 바라보았다.

‘스트레스를 푸시려나 보구나.’

그녀는 제 자식이나 용사의 존재가 떠오르면 검 하나 들고 몬스터를 쓸어버리곤 했다. 그녀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후우..”

집사는 가볍게 한숨을 내뱉은 후 조용히 서재를 빠져나와 성의 입구로 향하는 긴 복도를 걸었다. 그의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정갈한 얼굴 위로 약간의 주름이 새겨졌으며 눈빛에는 깊은 걱정이 아른거렸다.

‘판톤경이 무사히 돌아온 것은 다행이지만….’

집사는 다시금 올라오는 한숨을 꾹 삼킨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포장된 돌길 위로 마차 한 대가 성의 입구로 우아하게 다가왔다. 햇빛이 찬란한 낮,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마차와 함께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들은 마차가 다가오자 경례를 하며 길을 열어주었다. 위엄과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성문이 열리고 마차가 천천히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바퀴와 돌길이 맞닿으며 내는 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깨뜨렸다.

성안으로 들어서자, 마차는 성의 중앙 광장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광장 주변에 모인 기사들과 집사, 시녀장이 마차의 도착을 지켜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은 우아한 마차에 닿아있었지만, 시선은 시리기만 했다.

이곳에 모인 이들 중 마차 안에 각하의 핏줄이 타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분위기가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

마차가 광장에 멈춰서자, 기사, 집사, 그리고 시녀장까지, 모두가 마차에서 내릴 인물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기사 중 몇몇은 검 손잡이 위에 손을 올리기도 했다.

습격이 일어나기 3초 전인 상황처럼 날 선 분위기 속에서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마차의 문이 열렸다. 광장의 모인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쏠렸다. 마차에서 내려선 인물의 모습이 드러나자, 광장에 모인 이들의 얼굴에는 순간적으로 경악으로 물들었다.

“….!”

“허어..!”

가장 먼저 시선에 들어온 건 설산의 눈보다도 하얀 머리카락이었다. 달처럼 희고 고운 피부와 바라보는 이를 압도하는 깊이를 가진 금안.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이목구비와 곧은 콧날은 그가 쉽게 보기 힘든 미남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들의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살짝 은빛이 도는 하얀 머리카락, 범의 눈을 보는 것처럼 깊은 색을 품은 금안. 눈처럼 하얗고 고운 이목구비가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것만 같았다.

무엇이든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서늘한 눈빛이 제 주군을 떠올리게 해,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 중 몇몇은 몸을 움찔 떨며 시선을 피했다.

기사의 눈은 놀라움으로 확장되었고, 집사의 입은 미세하게 벌어졌으며, 시녀장마저도 순간적으로 눈썹을 치켜뜨며 당황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순간적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마차에서 내린 인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표정에는 의문과 놀라움이 교차했다.

‘우왁…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너무 많잖아!’

리안은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은 사람이 나와 있자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긴장했다. 아이리스는 살짝 미간을 구긴 채 제 오빠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제 오빠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모든 시선이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으으으! 도착!”

제스가 환하게 웃으며 마차에서 내리곤 기지개를 켰다. 밝은 목소리에 긴장감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았다. 뒤에 따라오던 마차의 문도 열렸는지 순식간에 광장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집사는 잠시의 당황을 추스르고, 곧바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한 발짝 나아갔다.

“안녕하십니까? 집사 세반입니다. 귀하의 도착을 기다렸습니다. 긴 여정에 지치셨을 테니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편히 쉬실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집사의 매끈한 인사에 시녀장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인사를 건넸다.

“..시녀장 베니입니다. 귀빈을 맞이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여기 계실 동안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생각했던 것보다 극진한 태도에 리안을 제외한 일행 모두가 당황했다. 능숙한 집사의 태도에 떠밀려 어버버하는 사이 호화로운 숙소에 배정되고 화려한 욕실에서 씻겨졌다.

그 시간 집사의 집무실.

집사와 시녀장, 기사단장 두 명과 마법 단장 한명이 소파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금안은 공작가 핏줄의 가장 큰 특징이죠.”

“그 때문에 저도 당황하긴 했지만 -… 머리카락과 눈 색을 바꾸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과거에 한 번, 머리색을 바꿔온 자가 있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완전히 새하얗게 만드는 건 불가능하죠. 그때도 하얀색이 아닌 회색에 가까운 색이었죠.”

“중요한 건 방법이 있다는 거죠. 그 사이 마법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한다면 불가능한 건 아닐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마도구의 힘일 수도 있구요.”

새하얀 머리카락과 찬란한 금안은 공작가 핏줄의 특징이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보니 이를 이용하려는 이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이들은 쉽사리 의심을 놓을 수 없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공작가의 먼 방계일 수도 있습니다.”

“확률은 낮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죠.”

“후… 이럴 줄 알았다면 각하를 붙잡을 걸 그랬습니다.”

집사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뱉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마법 단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법적 반응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 말은…”

“마법이나 마도구를 이용해 머리를 물들인 건 아니라는 말이겠죠. 동시에 판톤에게 세뇌 마법이 걸리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아…”

“좋은 소식일지 아닐지는 아직 모르겠군.”

판톤에게 세뇌 마법이 걸리지 않았다는 말은 좋게 생각하면 정신이 멀쩡하다는 말이지만, 나쁘게 생각하면 물리적인 세뇌를 거쳐 완전히 마왕파 쪽에 넘어갔다는 말이 되기도 했다.

분명 사기꾼이라 생각했던 이들이 진짜 각하의 핏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이들의 얼굴 위로 수심이 짙게 내려앉았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시녀장이 고고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선… 각하께서 돌아오시기 전까지 지켜보도록 하죠.”

“그러는 게 좋겠군요.”

“가능하면 최대한 친근하게 접근해서 정보를 얻어보죠.”

그날의 회의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히야, 으리으리하네.’

리안은 성 내부를 구경해도 된다는 말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원작에선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던 장소다 보니 더욱 눈이 갔다.

성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높이 솟은 천장이었다. 천장은 정교한 목재 조각과 섬세한 석재 작업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중앙에는 커다란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다.

복도는 넓고 길게 이어져 있으며 바닥은 광택이 나는 대리석으로 깔려 있어,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며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여기저기에 놓인 대형 화병에는 겨울에만 피는 신선한 꽃들이 가득 차 있어, 성 내부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성의 각 방은 고유의 목적과 테마에 따라 다르게 꾸며져 있어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지금까지 봤던 방 중 가장 화려한 방은 내 방이랑 아이리스 방 같은데? 아이리스를 데려다줘서 고맙다는 의미인가?’

아이리스를 공작가에 데려다주고 떠나는 걸 너무 당연시 여겨버린 탓에, 아이리스에게 남매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도 아이리스가 공작의 핏줄이라는 걸 알리는 것도 깜빡했다는 걸 잊은 상태였다.

그 탓에 자신이 공작의 자식으로 오해받고 있다는 걸 리안은 자각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이런 성을 언제 구경해보겠어.’라는 심정으로 눈을 반짝거릴 뿐이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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