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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2

   ‘사역마요?’

   “사역마? 얼빠변태여우가?”

   

   “그래. 정 본녀를 곁에 두기 부담스럽다면 본녀가 주인님의 사역마가 되어주도록 하지.”

   

   자기가 거대한 것을 양보한다는냥 얼빠여우가 꺼드럭거렸지만 나는 거기에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사역마를 자처하겠다는 것은 충분히 저런 반응을 보일만한 내용이었으니까.

   

   소울 아카데미에서 사역마라는 것은 일종의 펫 시스템이다. 특정한 짐승을 길들여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사용하는 식이지.

   

   게임 속에 존재하는 이런 시스템이 다 그렇지만 모든 짐승을 다 길들일 수는 없고, 강대한 힘을 지닌 짐승일수록 길들이기가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특히 숲의 주인처럼 드높은 힘을 지닌 고고한 존재는 사역마로 삼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나의 거대한 숲을 다스리는 이가 어찌 다른 생명체에게 고개를 숙일까.

   

   소울 아카데미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테이밍해보려 했던 나이기에 단언할 수 있다.

   

   숲의 주인이라는 족속들은 인간의 사역마가 될 바에야 죽음을 택하는 족속들이다.

   

   내 앞에 있는 얼빠여우 또한 그러했다. 정신 나간 변태처럼 보이는 이 녀석도 어쨌든 간에 한 숲을 다스리는 입장에 선 녀석이니까.

   

   그런 그녀가 자처해서 사역마가 되겠다고 한 것이다.

   

   지금이야 혼자서 히죽히죽거리며 주인님이란 말을 되뇌이고 있지만 저 결정에는 아마 많은 고민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담겨 있겠지? 그치?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저 얼빠여우라서 도저히 확신을 못하겠네.

   

   저 녀석이 단순히 내 애완동물이 되고 싶어서 저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 다른 뜻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얼빠여우가 내 사역마가 된다면 쟤를 옆에 두는 데 부담이 줄긴 한다.

   

   내가 아는 소울 아카데미의 설정대로라면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정해둘 수 있으니까.

   

   나보다 강한 존재와 계약을 하는 만큼 많은 것을 강제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변태 짓에 제동을 걸 수 있다면 충분해.

   

   애초에 저걸 거절한다고 얼빠여우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잖아. 저 알아 목줄을 찬다 그러면 환영이지.

   

   ‘좋아요.’

   “좋아. 그렇게 애완동물이 되고 싶다니 목줄을 채워줄게. 마조여우.”

   

   “고맙구나. 주인이여. 자. 여기 목줄을 준비해두었…”

   

   얼빠여우가 내뱉은 말을 무시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 할배를 집어 들었다.

   

   ‘할아버지. 저 얼빠여우가 뭐 이상한 짓 했죠?’

   <미리 단정 짓는 게냐?>

   ‘안 했을 리가 없잖아요.’

   

   자기보다 한참은 어린 애한테 밟아달라고 부탁하는 변태가 아무 일도 안 했을 리가 있나.

   

   할배. 솔직하게 말해봐요. 뭐 했어요. 저 마음의 각오 하고 있으니까 괜찮아요.

   

   <아무것도 안했다. 놀랍게도.>

   ‘거짓말.’

   <진짜다. 본인의 명예를 걸도록 하마.>

   

   흥?

   

   진짜 아무것도 안했다고요?

   

   정말로?

   

   그치만 고지식한 귀족이자 성기사인 할배가 명예를 걸면서까지 저 변태여우를 지켜줄 린 없잖아.

   

   그렇단 건 얼빠여우가 진짜로 얌전히 있었단 소리인데. 이건 좀 놀랍네.

   

   <그보다 여아야. 사역마로써 계약을 맺을 것이냐?>

   ‘네. 어차피 간택됐으니까. 목줄이라도 걸어놔야죠.’

   

   그러지 않으면 무슨 짓거리를 할지 모르니까.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걸어두고 싶어서요.

   

   ‘그러니까 할아버지. 도와줘요. 이런 데에는 할아버지가 전문이잖아요.’

   

   쟤가 날 위해 싸워주건 말건 그건 저언혀 중요하지 않아요.

   

   대부분의 위협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내 힘으로 해쳐나가면 그만이니까.

   

   그러니 저 얼빠여우의 변태짓을 최소화 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계약을 준비해주세요.

   

   저 쪽에서 계약을 받아들여주는 형식이라 많은 걸 강요할 수 없으니 최대한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요!

   

   <알겠다. 잠시 기다려 보거라. 방금 전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생각해둔 바가 있으니.>

   

   할배는 내 요구사항을 듣자마자 미리 준비를 해두고 있었던 것처럼 술술 계약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다.

   

   <우선은 범죄적인 행위를 막는 데에 중점을 두자꾸나.>

   ‘네! 제가 완벽히 바라던 바에요!’

   <어디까지 계약을 할 수 있을진 모르겠으나 우선은…>

   

   그는 최대한 내가 얼빠여우에게 느끼는 불쾌감을 줄일 수 있는 방향이었다.

   

   그녀의 기본적인 성향은 어찌할 수 없을 테지만 성희롱적인 무언가는 막아낼 수 있으리라.

   

   역시 할배에몽이야! 나 믿고 있었어! 아카데미 짬통 탐방은 다음번으로 미뤄두도록 할게!

   

   할배가 말해주었던 것들을 얼빠여우에게 읊어주었더니 녀석은 눈에 띌 정도로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게 무어냐. 주인될이여. 마음대로 달라붙지도 마라. 몰래 따라다니지도 마라. 슬쩍 구경하지도 마라. 그래서야 본녀가 여기까지 온 이유가 없어지지 않는가.”

   

   변태 같은 일을 하지 말라는 게 그렇게 힘드니? 그래. 너라면 힘들 수도 있겠다.

   

   ‘꼬우면 꺼져주시겠어요? 제발 부탁 드릴게요.’

   “싫어? 그럼 꺼져. 난 너 같은 얼빠변태여우가 없어도 상관 없거든. 아니지. 역겨운 목소리를 안 들어도 되니까 좋을 것 같네.”

   

   “므므므…”

   

   그렇지만 얼빠여우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네가 제안한 사역마 계약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그게 싫으면 사라지면 되잖아! 네가 살던 숲으로 돌아가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단 말이야. 내 매력 수치가 그 정도로 높은가?

   

   얼빠 여우가 이런 식으로 집착할 정도면 거의 매력 스텟을 맥스 찍었다는 건데 그런 것치고 사람들의 시선이 막 그렇게까지 좋진 않았잖아.

   

   그 정도면 아무리 다른 요소가 구져도 사람들의 시선이 호의적일 수밖에 없을 텐데 말야.

   

   …설마 싶지만 높은 매력 수치를 잡아먹을 정도로 내 평판이 쓰레기 같은 건가?!

   

   그런 건가?!

   

   내 평판이 아무리 쓰레기 같다지만 진짜 그 정도인 거야?!

   

   “알겠다. 받아들이마.”

   

   잔혹한 현실을 깨닫고 좌절에 빠진 순간 얼빠 여우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옆에서 떠나가느니 여러 제약이 있더라도 사역마가 되는 편이 낫다 생각한 것이다.

   

   과연 저 결정에 나를 주인이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영향을 끼쳤을까.

   

   “그럼 계약을 진행하자꾸나.”

   

   얼빠여우는 그리 이야기를 하곤 자신의 품 안에서 부적을 하나 꺼냈다.

   

   “이는 본녀의 힘을 담아서 만들어낸 부적이다. 이를 들고서 속으로 계약의 내용을 되새기거라. 그리고…”

   

   그녀가 설명해 준 계약의 내용은 게임 속에서 컷신으로 진행되던 것과 비슷했다.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새로운 게 없다는 점에 살짝 들떴다. 게임 속에서 있던 것 중 하나를 재현할 수 있게 된 것이었으니까.

   

   허나 그 들뜸은 순식간에 가라앉고 말았다. 여러 이펙트가 존재했던 게임 속과는 달리 현실의 계약은 심심했던 것이다.

   

   부적을 손에 잡은 후 얼빠여우가 알려준 대로 했더니 부적이 빛이 되어서 내 몸에 스며들고 끝.

   

   신비하기는 했지만 게임의 화려한 이펙트를 아는 내 입장에선 이걸로 끝이야? 라는 말이 절로 새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현실은 때때로 실망스럽구나.

   

   아쉬움에 부적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던 중 옆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뭐야. 뭐야. 폭발이야? 계약과정에서 뭔가 오류가 난 건가?

   

   이펙트가 심심했던 때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구나?!

   

   “역시 이렇게 되나?”

   

   연기가 걷힌 순간 모습을 드러낸 건 자그마한 여우의 모습이 된 얼빠여우였다.

   

   그녀는 바닥에 앉은 채 고개를 돌려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곤 다시 고개를 들었다.

   

   “걱정말거라. 계약이 실패한 것은 아니니. 그저 주인이 지닌 힘이 아직 부족하여 내 모습을 완전히 드러낼 수 없을 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차…”

   

   …우와.

   

   내가 얼빠여우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자존심 상하기도 하지만.

   

   귀여워.

   

   똘망거리는 눈이나.

   

   자그마한 손발이나.

   

   딱 봐도 부드러워 보이는 털이나.

   

   살랑거리는 꼬리나.

   

   완전 인형 같아.

   

   복슬복슬. 복슬복슬!

   

   “주인이여?”

   

   저 속에 든 게 얼빠여우라는 게 무척이나 거슬리긴 하지만 그것만 지워버린다면 그렇게 나쁘지 않아.

   

   난 예전부터 동물을 좋아했다고! 그게 자그마한 아가라면 더더욱!

   

   “주인?”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잠시 정신이 날아갔다.

   

   예전에 친구가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보았을 때처럼 머리를 쓰다듬었더니 포근포근한 감촉이 손에 가득 찼다.

   

   키야아아아. 이거지.

   

   모니터 너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온기와 부드러움.

   

   얼빠여우의 본체도 외모만 따지면 관리가 잘 된 편이라서 그런가 털도 완전 보슬보슬해.

   

   이 정도면 모피 중에서도 최고급 모피 아냐?

   

   그 특유의 느낌에 중독이 되어서 계속 머리를 만지고 있으려니 얼빠여우가 다급히 몸을 일으키더니 저 멀리로 도망쳐 버렸다.

   

   ‘어디가세요!’

   “얼빠여우! 어디가!”

   

   어디 가는 거냐! 내 사역마면 사역마답게 얌전히 나한테 털과 온기를 바치란 말이다!

   

   “잠…잠. 잠깐! 저어. 그. 무어냐. 너무 가깝지 않으냐?!”

   

   쟤는 뭐래는 거야. 여태까지는 지가 나한테 달라붙어 놓고는 나는 만지면 안 돼?

   

   너도 좋을 거 아냐! 네가 바라던 게 이런 거잖아!

   

   왜 이제 와서 청순한 사람처럼 도망치는 건데!

   

   이리와! 복슬복슬한 털을 더 느끼기 위해 얼빠여우를 추적했지만 그녀는 재빠른 움직임으로 내 손길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쳤다.

   

   뭐야! 쟤 왜 이렇게 빨라! 지금 내 스텟도 상당할 텐데 왜 저 녀석이 더 빠른 거냐고!

   

   꼴에 숲의 주인이라 그거야?!

   

   똑똑.

   

   필사적으로 그녀의 뒤를 추적하던 도중 또 다시 누군가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이번엔 누구야! 나 지금 바쁘다고!

   

   어줍잖은 걸로 내 즐거운 시간을 방해한 거라면 용서하지 않겠어!

   

   “어. 아가씨? 무슨 일 있으십니까?”

   

   씩씩대면서 문을 연 나를 맞이해 준 것은 칼이었다.

   

   ‘뭔데요.’

   “뭐야. 허접.”

   

   별 이유도 없는데 나의 추적을 방해한 거라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런 마음을 담아 칼의 눈을 노려보았더니 칼이 내 눈치를 보면서도 말을 이었다.

   

   “아. 그것이 알새틴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가씨께서 부탁하신 내용을 찾았다더군요.”

   

   알새틴?

   

   …그거라면 급한 일이 맞지.

   

   하아. 어쩔 수 없네. 어차피 얼빠여우는 내 사역마니까. 그 복슬거리는 털은 나중에 느끼도록 하자.

   

   *

   

   소울 아카데미 속 가장 커다란 종교인 주신 교회는 어지간한 나라에 비견될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 그 영향력은 나라보다 더하고.

   

   역사 속에는 주신 교회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멸망한 곳은 있으니까. 표면적인 이유는 다르게 알려져 있지만.

   

   보통 이런 서브컬쳐 게임에서는 이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지닌 곳이 마냥 선한 이인 경우는 흔치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선을 주장하고 거대한 세력을 지니고 있으나 그 위는 썩어 비틀어져 몇몇 선한 이들에 의해 유지되는 장소.

   

   그 곳이 주신 교회라는 단체다.

   

   할배가 사도라는 걸 밝히면 소리 소문 없이 묻힐 수 있단 이야기에 괜히 동의한 게 아냐.

   

   주신 교회는 실제로 그럴 만한 장소니까.

   

   이쯤 되면 알겠지? 페이비의 사연도 한없이 어두울 거라는 거.

   

   “오셨습니까?”

   

   뒷골목 술집의 문을 열자마자 알새틴이 굳은 얼굴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기가 먼저 가는 건 괜찮지만 상대가 먼저 오면 안 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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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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