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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2

   EP.142

     

   무수한 피난민의 행렬이 보였다.

     

   도대체 마법 벙커 내부가 얼마나 큰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의 머릿수였다.

     

   “어린아이와 노인을 우선으로 대피시켜라!”

   “알겠습니다!”

     

   대피를 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그들을 이끄는 기사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가슴에 수도 수비대의 인장이 그려진 갑옷을 차려입은 자들.

   얼마나 훈련이 잘 된 것인지, 그들은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는 듯 차분히 일을 진행해 나갔고 나는 그들 모두에게 ‘꿰뚫어 보는 눈’을 사용했다.

     

   [‘꿰뚫어 보는 눈(EX)’를 사용합니다.]

   [대상의 정보를 확인합니다.]

     

   —

   이름 : 폰 할만

   나이 : 32세

   능력치 : [근력 Lv.35], [민첩 Lv.29], [체력 Lv.32], [마력 Lv.21]

   스킬 : [아르테나 검술(B+)], [초급 검기(B)], [강인함(B-)], [맨손 격투(B)]

   특성 : [근면(B)], [우수한 기사(A+)], [침착함(B)], [통솔(B)]

     

   현재 상태 : 긴장, 용기, 희생

     

   종합 평가

   – 아르테나 수도 수비대의 소대장.

   – 오랜 평화에 의해 실전 경험은 부족한 편이다.

   —

     

   확실히 이곳에 왜 수도라고 불리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평가는 애매했지만 탑의 3층에 있던 웬만한 플레이어들보다 준수한 능력치.

   물론 특별한 강함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번듯한 능력치를 가진 사람이 수도에 수두룩하게 깔렸다는 것은 확실히 놀랄 일이었다.

     

   “일단 우리도 따라 들어간다. 다른 길드원한테도 전달해.”

   “알겠습니다.”

     

   나의 뒤에 서 있던 몇몇 노인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뿔뿔이 자리에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변장 능력이 있던 길드원들만 대동한 상황.

   변장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일반 병사로 위장해 수도 곳곳에서 피난민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있으니 진 하트가 이곳에 없다 하더라도 금방 소식이 들려올 것이었다.

     

   “어르신, 안심하십시오. 수도의 모든 수비대가 전력을 다하고 있으니 금방 해결될 것입니다.”

   “고맙네……”

     

   길드원들의 변장은 나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났다.

   애초에 지금 사태가 난장판인 게 한몫을 하고 있긴 하겠지만 그 누구도 길드원들을 의심하지 않는 걸로 보아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침투였다.

     

   ‘진 하트가 붉은 눈에 붉은 단발머리를 가진 여성이라고 했던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발견한 길드원의 보고.

   그 정도라면 확실히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는 인상착의였다.

     

   물론 직업 특성상 로브를 입고 있거나 변장을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이런 난리 통에 염색을 할 정신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았고 염색을 했더라도 눈 색까지 바꾸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 나도 슬슬 들어가 볼……’

     

   하지만 그때, 나를 건드리는 묵직한 손길이 느껴졌다.

     

   “자네.”

     

   뒤를 돌아보니 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한 기사가 나의 어깨를 붙잡고 있다.

   반쯤 찡그려진 인상,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만약 내가 도망을 친다면 바로 붙잡을 것 같은 진중한 악력도 느껴진다.

     

   하지만 당황할 것은 없었다.

   도둑 길드의 길드원들과 달리 나는 잘못한 게 없는 사람이고 이 세계에서는 얼굴도, 이름도 아는 사람이 없는 철저한 외부인이었으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현재 길드원들에게 받은 일상용 로브를 입은 상태였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이 판타지 세계와는 거리가 좀 있는 옷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자네 몇 살인가?”

   “……네?”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네.”

     

   그러나 돌아온 물음은 나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의심하나 없는 순수한 질문.

     

   “……29살입니다만.”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나는 물음에 응답했고 그는 나의 전신을 눈으로 훑은 뒤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젊은 남성은 이곳에 들어갈 수 없네. 노인과 어린아이, 그리고 여성들이 우선적으로 대피해야 돼. 두려운 것은 알겠지만 그대도 아르테나의 건아니 이해할 것이라 믿네.”

   “아아… 네.”

   “자네는 저쪽으로 따로 가서 무기를 지급받고 피난민들을 안내해주게.”

     

   그가 나의 등을 툭툭 치며 마법 벙커 밖으로 슬그머니 밀어낸다.

   마법 벙커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슬그머니 기다란 창 하나를 건네는 병사들.

     

   나와 함께 무기를 지급받고 있는 젊은 남성들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훈련받지 않은 평범한 일반인들이었다.

     

   ‘이거…… 아주 나쁘지는 않을지도?’

     

   어쩌다 보니 맡게 된 마법 벙커 경계 임무.

   조금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휘말리기는 했지만 어쩌면 사람을 살펴보기 가장 좋은 위치를 배정받은 걸지도 몰랐다.

     

   ***

     

   -어어……?

     

   김시인에게 난리를 피우라는 임무를 받은 크레센도는 현재 예상치 못하게 발생한 규모의 몬스터 웨이브에 굉장히 당황하던 중이었다.

     

   처음에는 조용히 성문이나 한 대 치고 튀면서 이목이나 끌어 볼 생각이었다.

   전투 자체를 즐기는 편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김시인의 명령이 있었으니 괜히 과하게 반응했다가는 혼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으악! 망했어!

     

   녀석이 날아온 방향에서부터 보이는 꺼림칙한 움직임.

   몬스터 웨이브의 근원지를 향해 날고 있는 녀석의 눈에 성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는 수천 마리의 몬스터 떼가 들어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분명 눈에 보이는 몇 마리만 끌고 왔는데…!

     

   크레센도는 자신이 건드렸던 몬스터들을 천천히 떠올렸다.

   혹여나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던 무언가를 건드린 것은 아닌지,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날아온 영역에 어떤 규격 외의 괴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렇게 한참을 비행하고 있던 와중, 녀석의 청각에 포착된 하나의 외침이 있었다.

     

   크롸아아……!

     

   먼 거리였다.

   녀석이 김시인을 따르며 격이 오르고 능력치가 상승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정도의 거리.

     

   -어떤 놈인지 낯짝 좀 보자!

     

   묘한 기류를 느낀 녀석은 곧장 날개를 펼쳐 그곳으로 비행했다.

   창공의 제왕이라는 와이번이 전력으로 비행하며 생기는 파공음.

     

   하지만 잠시 후, 크레센도는 그 괴물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자리에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크롸아아아아!!!

     

   크레센도보다 거대한 몸집.

   황금보다 화려한 붉은 비늘.

   앞으로 방정맞게 튀어나온 주둥이와 단단하고 볼록한 뱃살까지.

     

   레드 드래곤 한 마리가 바위산 정상에 오른 채, 하늘을 향해 힘껏 포효하고 있었다.

     

   ‘이런 미친…!’

     

   크레센도는 본능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지금 녀석이 과거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강해졌다고는 하나, 근본은 와이번이었으니 최상위 포식자를 보며 떨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이후에 들려왔다.

     

   -명령이다! 블루 드래곤을 도와 인간의 성을 공격하라!!!

     

   블루 드래곤.

   인간의 성.

   공격.

     

   크레센도의 뇌리에 박힌 세 가지 키워드에 녀석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자신이 한 어떤 행동이 레드 드래곤을 자극한 것은 확실해 보였으니까.

     

   우우우!!!

     

   레드 드래곤의 명령에 숲과 평야를 질주하는 수천 마리의 몬스터가 보인다.

   마치 숲이 꿈틀거리며 전진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대군.

     

   크레센도는 공중을 선회해 다시 성을 향해 날개를 펼쳤다.

   앞으로의 상황을 추측할 수는 없었지만 당장 이 사실을 김시인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

     

   ***

     

   마법 벙커의 입구를 통과하는 모든 사람들을 조사했지만 진 하트는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벙커 앞을 지키기 전에 이미 들어갔거나 이곳이 아닌 다른 벙커로 대피했을 거라 추측이 되는 상황.

     

   ‘계속 기다려야 하나?’

     

   물론 모든 벙커에 길드원들이 진입한 상황이었으니 금방 소식이 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람 하나를 찾겠다고 이 많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으니 죄책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녀석은 작은 소동을 만들라고 했더니 무슨……’

     

   나는 소대장에게 들어오는 모든 보고를 엿들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몬스터 대군이 성을 향해 진격하고 있습니다!”

   “오크 궁사들이 마법사들을 저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문이 파괴될 것 같습니다! 마법사들의 추가 지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잇달아 들려오는 소식에 나는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크레센도가 혼자서 이렇게 황당한 짓을 저지를 리가 없었다.

   겁이 많고 심성이 착한 와이번. 고작 음식과 자신의 보금자리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수백 년을 한자리에 짱박혀 살던 놈이 저런 공격적인 행동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후우…”

     

   나는 짧게 심호흡한 뒤, 마력을 집중해 남문 방향으로 기운을 흘려보냈다.

   몬스터의 수를 알아야 했다. 크레센도가 그 자리에 있는지, 혹시 어떤 문제가 발생한 건 아닌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시인 님… 보고입니다.”

     

   나의 옆으로 다가온 익숙한 기척에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사람 대부분을 다 꼼꼼히 살폈으나 벙커 그 어디에서도 목표물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성을 떠난 게 아닐까 추측됩니다.”

     

   길드원이 죄송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무능한 길드원의 모습.

   하지만 오히려 마음은 편해졌다. 이 불편한 분위기를 이제는 끊을 때가 되었다는 말이었으니까.

     

   “모두 북문으로 빠져나가도록 해. 작전은 일단 여기서 끝이다. 아, 그리고 종판이는 이쪽으로 오라고 전달하고.”

   “예.”

     

   단순하고 짧은 명령이었지만 길드원은 아무런 불만 없이 자리를 벗어났다.

   나의 일은 이곳을 벗어나 남문을 우선적으로 정리하는 것.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주변 공기의 흐름이 묘하게 쓸려나간다는 느낌을 받았고 고개를 들어 문제의 근원지를 눈으로 확인했다.

     

   쐐애애액!!!

     

   하늘에서 화살 한 발이 날아왔다.

     

   아니, 저렇게 거대한 걸 화살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도대체 어떤 놈이 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간이 쏠 수 있을 만한 크기가 아닌 쇳덩이의 등장에 나는 주변의 상황을 돌아봤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를 향해 포물선을 그리고 있는 화살.

   강하게 튕겨 내지만 않으면 주변의 피해는 없을 것 같았기에 나는 슬쩍 화살을 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타앗!

     

   나의 우측에서 나를 향해 달려드는 한 명의 병사가 있었다.

   급하게 움직이다 보니 벗겨지는 강철 투구와 그 아래로 드러나는 붉은 단발.

     

   “피해 멍청아!!!”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벙커를 지키는 병사들에게 꿰뚫어 보는 눈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모든 사람들을 다 확인하기에는 피곤하기도 했고 가만히 자리를 지키는 병사들을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꿰뚫어 보는 눈(EX)’를 사용합니다.]

   [대상의 정보를 확인합니다.]

     

   가녀린 손이 나를 있는 힘껏 밀친다.

   스킬로 인해 떠오르는 누군가의 상태창과 그 위로 보이는 익숙한 이름.

     

   [진 하트]

     

   “이제야 찾았네.”

     

   어두웠던 등잔 밑이 이제야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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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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