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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3

    <143 – 암흑마나>

     

    모브가 힘껏 밀어낸 바위는 조교들이 손으로 들고 뒤뚱뒤뚱 걸어서 다시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교관님. 이 각도면 됐어요?”

    “반대로 놨잖아. 180도 뒤집어.”

    “아 제발.”

     

    탄식하며 바위를 허공에 들어서 조금씩 고쳐쥐며 각도를 맞추는 조교.

    그 딱한 모습에 손오천이 말했다.

     

    “애들 시험이라는 느낌이 갑자기 확 드네. 저렇게 힘들게 민 걸 가지고 놀듯이 하는데?”

    “그런 것 치고는 땀을 많이 흘리는군요. 부담이 없는 건 아닌가봅니다.”

    “3학년들이라서 그래요! 4학년이면 다르겠죠!”

     

    오크노디의 해맑은 외침에 손오천과 지젤은 이제 그러려니 넘어갔다.

     

    “빨간선을 그어둔 부분이 밑으로 가게 내려놔.”

    “이렇게요?”

    “수고했네. 시험이 5분이나 지연되었지만.”

    “아…”

    “또 늦으면 그때는 수당에서 포인트를 깎겠네.”

     

    대기석이랍시고 푯말을 세워둔 풀밭으로 돌아가는 조교의 바지 엉덩이가 풀물과 흙 얼룩으로 물들어있는 모습에 이사벨은 다짐했다.

     

    “난 조교는 절대로 안 할 거야.”

     

    3학년의 열악한 생활상을 체감하던 것도 잠시.

    이사벨은 따가운 시선들을 의식했다.

    탐험대의 일원으로 한참 활동하던 시절, 그녀는 이런 살기에 노출된 적이 있었다.

     

    야지에서 모험가나 탐험가들의 재산을 노리고 습격각을 재던 산적들.

    외진 산골의 길가에서 마주친 상단으로 위장한 노상강도들.

    자연물로 위장한 채 탐험단이 접근하기만을 숨죽여 기다리던 몬스터들.

     

    지금도 다르지 않다.

    허공에 떠오른 수정구슬들로부터 한동안 잊고 지냈던 실전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지젤. 저 구슬들은 뭐야?”

    “교수들의 감시구슬입니다.”

    “…낙제생을 도와준 학생에게 칭찬은 못할망정 살기를 보이다니, 이해할 수 없는 교수들이네.”

     

    이 아카데미는 무언가 이상하다.

    평상시에도 늘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항의라면 나중에 해도 됩니다. 그보다 다음 참가자가 시작하려나보군요.”

     

    지젤의 말에 이사벨은 애써 찜찜한 기분을 뒤로 하고 시선을 다리로 향했다.

    팔길이보다 조금 더 긴 장검.

    거대한 바위를 어찌하려고 든 무기라기에는 잘못된 무기선정이 아닌지 의심이 되는 무장이었다.

     

    “긴장했나보네.”

    “자신이 있는걸지도 모르죠.”

    “쥐방울. 너는 어떻게 보냐?”

    “3D로 봐요!”

    “3D가 뭐냐?”

     

    오크노디가 부쩍 시무룩해져서는 고개를 숙였다.

     

    “모르면 됐어요.”

     

     

    * *

     

     

    회심의 개그가 실패했다.

    지금껏 살아왔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의 주민이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되었다.

    같은 밈, 같은 웃음, 같은 기억을 공유할 수 없다.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지만.

    자신이 아는 것은 누구도 모른다.

    빙의자의 서러움을 느끼는 와중에도 다리 앞에 선 자쿠의 검에서 심상치 않은 마나의 요동이 대기를 타고 흘러넘쳤다.

     

    마나Mana.

    이능을 구사하는 최소단위의 질료.

     

    종류는 다양하지만 보통의 사람이 구사할 수 있는 마나는 보통 단일종류 하나에 그친다.

    마나를 다루려면 큐브의 면 하나를 단색으로 채우듯이 같은 속성의 마나로 퍼즐을 맞춰야한다.

    보통 한 사람이 가장 많이 가지는 속성은 어떤 속성도 띠지 않은 무속성 마나.

     

    ‘그래서 검사의 검기는 기본적으로 무형의 무색에 가까워서 간격을 재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죠.’

     

    그런데 아주 간혹 특별한 환경에서 자라거나 독특한 업적을 이룬 자, 혹은 타고난 속성이 치우치거나 특별한 의식을 치른 자는 마나에 색이 깃든다.

    화염지대나 설산지대에서 사는 원주민 중에 빨갛고 파랗고 색칠놀이를 한 검기가 나오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애초에 색깔을 떠나서 검기는 방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모브만 해도 기를 외부로 방출하는 게 아니라 신체강화로 사용하게 만들었을 뿐인걸.’

     

    극한의 훈련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가면 마나가 있는 사람은 마나를 사용해서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려고 시도하게 된다.

    그것이 마나호흡법의 시초이자 마나운용법의 기초.

    챙챙 칼이나 부딪치며 벌이는 칼놀이 싸움이 나무 쇠 바위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베는 마나숙련자들의 싸움으로 진입하는 단계다.

     

    “저놈 봐라? 저거, 아까 모브라는 놈보다 기운이 심상치 않은데?”

     

    야생의 수인답게 손오천은 힘의 차이를 실감했다.

    신체강화와 검기방출.

    분야는 다르지만 위력은 단연 후자가 강하다.

    몸 전체에 굴릴 마나를 손 안의 무기 하나에 집중하는데 약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힘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다루었던 모브와 달리, 자쿠가 휘두르는 검은 끔찍한 파열음을 내면서 바위표면에 균열을 만들었다.

     

    “자쿠 녀석, 언제 저렇게 강해진 거야?!”

    “좋았어, 부숴버려! 우리 차례까지 바위가 남지 않게 박살을 내버려!”

    “헉. 자쿠가 저거 부수면 우린 꽁으로 다리 건널 수 있는 거야?”

    “자쿠 힘내!”

    “자쿠 파이팅!”

     

    얍삽한 뜻을 품고 목청 높이는 1학년들의 응원이 들리지도 않는지 자쿠는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쉬지 않고 몰아치는 검과 조금씩 커지는 균열, 튀어오르는 바윗가루에 환호성이 커졌다.

    관객석의 다른 구경꾼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함께 응원하는 상황.

     

    “위험하군요.”

     

    나밖에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위험을 깨달은 사람이 한명 더 나타났다.

    아카데미의 깃발사기꾼.

    천장 없는 이중가챠라는 독을 푼 악마.

    암흑상인 지젤이었다.

     

    “알아차리셨어요?”

    “검기의 색이 위험합니다.”

     

    푸른색 검기는 수속성 검객.

    바다에서 물장구 좀 쳤나보다 생각할 수 있다.

    붉은색 검기는 화속성 검객.

    용암 분화구에서 좀 놀았나보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검은색’은 달랐다.

    모든 부정적인 에너지의 상징인 검은색.

    칠흑에 가까울수록 그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어둠과 절망.

    죽음과 허무.

    제대로 된 환경을 거쳐 탄생하는 속성이 아니다.

    모든 검은색은 마에 치우친 색.

    마왕의 권속인 마족.

    마족의 하수인인 마인.

    마족과 마인의 부림을 받는 마수.

    모든 삿된 힘의 원천을 상징하는 색이다.

    조금이라도 제어에 실패한다면 자신을 갉아먹어 자멸하는 힘을 1학년이 다룬다니.

     

    ‘왠지 그립네!’

     

    한때 암흑검사, 소위 말하는 다크나이트에 꽂혔던 시절도 있었다.

    뭣 모르고 어둠의 힘을 사역했다가 개같이 멸망했던 회차가 얼마나 많았던지.

    그런데도 제 버릇 개 못준다는 말처럼 거듭 암흑검사의 길을 걸었던 이유를 자쿠가 보여주고 있다.

     

    “파괴력이 장난이 아닌데?”

     

    파괴력으로는 화속성에 견주고, 침투력으로는 뇌속성에 견준다.

    유지력으로는 풍속성에 못지않고, 회복력으로도 수속성에 못지않다.

    손오천조차 놀랄 위력.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암흑속성의 마나다.

    그렇기에 지금, 자쿠의 몸은 엄청난 부하에 짓눌리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사용시간에 비례해서 사용자를 갉아먹는 힘. 이미 충분히 오래 사용했어.’

     

    지닌 마나가 적다면 차라리 진즉에 나가떨어져서 기절이라도 하겠건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자쿠는 마나가 마를 기색조차 없었다.

    적성이 부족했다면 스스로 자멸하여 죽었을 텐데 그마저도 적성이 좋은지 우락부락 근육이 부풀어오를 뿐, 죽을 기미도 안 보였다.

     

    “손오천 아저씨는 아직 배움이 짧네요!”

    “쥐방울 녀석, 또 뭘 알아내서 그리 잘난 체냐?”

    “소리가 크고 바위가 계속 박살나는 이유는 힘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증거에요. 타격점이 잘 맞으면 힘이 분산될 리가 없잖아요.”

     

    충분히 많은 마나.

    충분히 버틸 적성.

    그에 따르지 못하는 통제력.

    세 가지 조건이 모두 갖추어졌다.

    몸을 파괴해서 부수는 부작용 대신, 암흑마나가 정신을 먼저 노리고 파괴할 요건이 완성되었다.

     

    “그아아아아!”

     

    폭음과 함께 산산이 박살나는 거대한 바위.

    쏟아지는 하급반 학생들의 환호성.

    축 늘어뜨린 검을 따라 거듭 타오르는 암흑마나.

     

    “자쿠 응시생. 시험에 합격한 것을 축하한다. 기운은 이제 거두어도 좋다.”

    “…”

    “자쿠 응시생?”

     

    축 늘어진 자쿠의 고개가 삐걱,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교관에게 기울어진다.

     

    “해냈어! 자쿠가 정말로 바위를 부쉈다고!”

    “우와아아! 바위가 없으니까 우린 꽁으로 통과야!”

    “고마워, 자쿠! 넌 기사학부의 영웅이야!”

     

    교관을 향해 기울어졌던 고개가 홱 하고 뒤에서 그를 부르며 환호하는 동급생들에게 향했다.

    이제부터 일어날 일을 나는 알고 있다.

     

    광폭화.

    대량살인.

    무차별 학살.

     

    1학기의 끝에 챕터보스 헤스티아의 손에 의해 일어났을 살육의 순한 맛.

    모든 마에 치우친 존재들과 암흑마나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건의 시작이다.

     

    “어엇, 자쿠. 위험하게 사람을 향해서 검기를 뿜으면 곤란하지!”

    “자쿠 상태가 좀 이상한데?”

    “얘 지금 눈이 풀렸어. 힘을 너무 써서 의식이 날아간 건가?”

    “자, 잠깐만. 근데 검기를 안 거두고 있잖아.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니야?”

    “오, 오지마! 자쿠, 이리로 오면 안 돼!”

     

    기겁하며 물러서는 학생들.

    그들의 걸음을 따라 걸음을 내딛는 자쿠.

    한 사람을 피해 모두가 부채꼴로 물러서다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화르륵!

     

    암흑마나를 한층 더 불태우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전력질주 준비자세를 취하는 자쿠.

     

    “잠깐, 오크노디! 어딜 가는 거야!”

    “쥐방울 녀석, 간댕이가 부었냐?!”

    “…아니, 여기는 말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역시 지젤은 알아주는구나.

    이사벨과 손오천.

    두 순진한 동료들과 달리, 지젤은 내 의도를 깨닫고 둘이 방해하지 않도록 붙잡았다.

    조교도 교관도 전부 돌발상황에 당황한 상황.

    관객석에서 뛰어내려 시험장에 착지한 나를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랑 마주치다니, 서로 운이 좋았네!”

     

    자쿠를 향해 큰소리로 소리치며 검을 겨누었다.

    그와 동시에 검 끝에서 타오르는 검은 마나.

     

    “저건… 암흑마나?!”

    “안목키우기 강의에서부터 느낌이 싸하더라니.”

    “역시 이렇게 되는군요.”

     

    하급반 학생들이 아닌 나를 향해 돌아서는 자쿠.

    그를 보며 지젤이 말했다.

     

    “암흑마나의 소유자는 다른 암흑마나의 소유자에게 이끌린다고 하죠. 오크노디는 자신의 힘을 드러내어서 자쿠의 폭주를 붙잡은 겁니다.”

    “뭐야. 그럼 잘된 거 아니냐? 쥐방울 녀석이 어디 가서 당할 실력도 아닌데.”

    “실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식의 문제입니다.”

     

    저런 것까지는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눈치가 좋아도 과하게 좋은 지젤은 힘을 드러냄으로써 일어날 사태마저 간파했다.

     

    “하급반 학생조차도 적은 힘을 지니고도 현재진행형으로 제어에 실패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상급반 학생이 그런 힘을 지니고 있으면 유사시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사벨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폭탄.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 취급이잖아.”

    “그것도 아주 고성능 폭탄이죠. 상급반을 싸그리 날려버릴지도 모를.”

    “그럼 나서지 않았으면 된 거 아니냐? 뭐 하러 나선 거냐? 저 바보는!”

    “너무 착해서겠죠. 우리 꼬마숙녀의 성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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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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