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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3

       “아니, 그래서 내 집착찌개는 누가 끓여주는데?”

       

       현대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솔솔 드는 카페 한구석에서, 묘령의 여성이 언성을 높였다.

       

       “주딱을 그렇게 과거로 보내버리면! 소유욕과 독점욕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전)용사(현)마왕 집착물은 누가 써주냐고?!”

       

       말끔한 오피스룩을 차려입은 여성의 푸념에, 가만히 듣고 있던 일행이 질렸다는 듯 답했다.

       

       “아니, 그러니까 좀 진정하고 들어보래도.”

       

       마치 동네 마실이라도 나온 듯 편한 츄리닝 차림에, 며칠 연속으로 밤샘 철야라도 한 듯 퀭한 다크서클. 윤기 없는 검은 머리카락을 대충 묶어내린 포니테일 여성이 상대의 불만사항에 반박했다.

       

       “우선 못박아두겠지만, 그 여자가 현 시간대에 가만히 남아있어봐야 그런 집착물을 찍을 확률은 거의 없어. 애초에 마왕이라곤 해도 그쪽 인격은 사실상 전원이 꺼져있는 상태고. 태생이 고지식하고 온순한 용사잖아. 기껏해야 천마랑 정실경쟁하면서 조금 투닥거리는 소프트질투집착 정도겠지. 라면으로 비유하면 진순이라니까?”

       “진순이 뭐가 어때서??”

       “이제 보니 맛알못이었네 이거.”

       “아니, 맛알못이고 지랄이고 일단 만나야 진순이라도 끓일 거 아니야 닝기미씹썅련아. 보아하니 캡틴은 주딱 보러 쫓아갈 것 같지도 않은데 이거 어떻게 할 거냐고?”

       

       오피스룩 차림의 여성이 테이블을 쾅쾅 두들기며 육두문자를 퍼부었지만, 츄리닝 차림의 여성은 귀를 감싸며 미간을 찌푸릴 뿐 상대의 언행에 대해서 따로 주의를 주진 않았다. 마치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선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렇게 큰 소리로 떠드는 데도 주변의 그 누구도 그녀들에게 관심을 주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그녀들의 존재를 인지조차 못하는 듯 아무도 일말의 눈길조차 주지 않는 가운데, 오피스룩 차림의 여성ㅡ

       

       ‘집착’이 재차 불만을 토했다.

       

       “어차피 주딱 정도 힘이면 별다른 위기도 없이 과거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잖아. 이게 맞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뭔가 계획이 있는 거지? 후회 너한테 완벽한 계획이 있으니까 주딱을 과거로 보낸 거잖아, 그렇지? 빨리 그렇다고 말해!!”

       

       분을 못 참고 노려보는 집착에게, 츄리닝 차림의 여성ㅡ의 탈을 쓴 후회가 답했다.

       

       “아니, 그런 거 없는데.”

       “뭐?”

       “애초에 주딱이 별 고생 없이 잠깐 갔다 돌아와도 괜찮지 않아?”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지’라는 표정으로 멍하니 쳐다보는 집착의 귀에, 후회의 감언이설이 들려왔다.

       

       “생각해봐. 집이랑 땅 준비해둘 테니까 몸만 오라는 스윗캡남의 말에 주딱은 은근 기대하면서 과거로 돌아갔단 말이지?”

       “그런데?”

       “근데 걔가 볼일 보고 오는 동안 천마랑 엘붕이랑 좀붕이는 놀고 있겠냐?”

       “아.”

       “칼퇴하고 왔더니 캡틴이 다른 여자한테 이미 넘어가 있으면, 묘한 배신감과 상실감에 속이 쓰라리겠지?”

       “어어…?”

       “안 그래도 완전히 마왕으로 거듭난 상태에서 그런 식으로 속을 후벼파이면, 감정이 폭발한 주딱이 비참한 패배관음자위를 하든 밀착끈적집착NTL역강간을 하든 둘 중 하나는 하겠지?”

       

       본래 악마의 감언이설만큼 넘어가면 안 되는 것이 없다지만, 이런 식으로 니즈를 살살 긁어주면 정신을 못 차리기 마련이다. 애초에 같은 악마이기에 더더욱.

       

       “후회, 너…”

       

       집착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감탄했다.

       

       “회귀자 에피소드를 개같이 말아먹길래 상병신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 계획이 있었구나…!”

       “아니, 이런 씹. 너는 진짜 말을 좆같이 하는 재주가 있구나?”

       

       후회는 순간 열받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말해 뭐하겠냐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뭐, 그것도 어디까지나 아무 일도 없이 무난하게 지나갈 때의 이야기긴 한데.”

       “응?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카페의 문이 열리며 들려오는 딸랑거리는 종소리에, 후회는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며 말했다.

       

       “내 다음 타자로 쟤가 나서는 시점에서, 아무 일도 없을 리가 없다는 거지.”

       

       호랑이도 제말하면 오는구나. 그런 후회의 눈빛을 담담히 받아내며, 마지막으로 합류한 여성이 싱긋 미소지었다.

       

       “늦어서 미안. 대신 커피는 내가 살게.”

       

       기다란 밤색 생머리를 단정하게 늘어뜨린, 얼핏 온화한 인상을 풍기는 미녀의 모습에도 후회의 쓴웃음은 가실 줄을 몰랐다. 악마에게 있어 외견이란 단순한 겉껍질에 불과하다. 계약을 통해 합법적으로 얻어낸 지성체의 몸뚱아리를 빌려 노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중에서도 이만큼이나 겉모습과 내용물이 차이나는 녀석은 또 없을 것이다. 눈앞의 포근한 인상을 풍기는 계집의 실체야말로 이 자리에 모인 셋 중에서 제일 악질이었으니까.

       

       후회, 피폐, 집착의 삼총사 중에서도 배드엔딩 수집률이라면 단연 압도적인 1위를 자랑하며, 악마들 전체를 기준으로 놓고 봐도 수위권에 달하는 순수악 그 자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너무 날뛰었다간 색욕이 정말로 나설지도 모른다?”

       “그거라면 괜찮아. 어디까지나 장난으로 끝낼 테니까.”

       

       걱정 말라는 듯 후후 웃으며 손사래를 치는 ‘피폐’의 한마디에, 후회는 생각했다.

       

       과연 피폐찌개의 매운맛을 본 당사자들도 그걸 단순한 장난으로 넘어가줄까, 라고.

       

       

       ***

       

       

       교주님과 엘레노아를 태운 수송기가 금방 돌아온 연유로, 아쉽게도 사이버펑크 감성이 물씬 풍기는 접전을 끝까지 관람할 순 없었다. 과연 갤러리 입장 초기처럼 따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면 몰라도, 지금은 매일같이 할 일이 넘쳐났으니까.

       

       언제나처럼 올가네에 들러 수련을 한 직후, 그대로 평소의 소재 조달&물품 배달 업무를 병행했다. 그리고 그 중 처음으로 들른 곳은ㅡ

       

       “으음… 고생이 많으시겠네요.”

       

       다름 아닌, 예의 도서관이었다. 여러 갤럼들에게서 모아온 이런저런 책더미를 도서관 데스크에 쏟아놓으며 대꾸했다.

       

       “아뇨, 그만큼 페이를 받고 하는 건데 힘들 것까지야.”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지만요… 뭐 됐나.”

       

       아니스는 불쌍한 것을 쳐다보는 눈으로 나를 보더니, 이내 관심을 끄고는 내가 가져온 책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야 요즘 은근 이런저런 사건이 많긴 했지만, 저런 시선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빌리고 싶은 책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져가세요.”

       

       근래 들어서 아니스와의 거래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가고 있었다. 이쪽에서 여러 세계의 책들을 모아다주면, 아니스는 그 대신 도서관에 있는 온갖 책들을 자유롭게 빌려준다.

       

       물론 그 자체로 힘을 지니는 마도서라든지 성서 따위는 별개로 취급해서, 이쪽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희귀한 책을 가져와야 흥정이 성립됐지만.

       

       “예전에 받았던 미래예지의 페이지는…”

       “안 돼요, 그렇게 남발할 만한 물건이 아니니까요.”

       

       엘레노아를 구하는 데 지대한 공언을 했던 책 같은 경우는 아니스가 아예 안 된다고 못을 박아버렸다. 재고를 보충할 방법이 없는 한정품목이라 함부로 내줄 게 못 된다나. 하긴,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사태를 경고해주는 예언서의 가치란 말할 필요도 없이 막중하겠지.

       

       “뭐, 천마신공에 준할 정도로 귀한 책을 구해온다면 또 모르지만요.”

       

       아니스는 그리 말하며 싱긋 웃었지만, 과연 그 정도로 대단한 보물을 구할 일이 또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불확실한 희망사항은 제쳐두고, 우선 도서관의 관장 겸 사서인 아니스에게 필요한 책을 말했다.

       

       “혹시 페러그린… 그러니까 전 주딱의 세계에 대한 책이 있나요?”

       

       그간 이곳의 책장들을 둘러보며 알게 된 것이지만, 이 도서관에는 정말 별의별 책이 다 있었다. 온갖 차원의 역사서, 교양 서적, 학문서, 소설, 시, 민간 설화와 괴담에서 심지어는 백과사전이나 일기장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도 모를 무수한 책무더기들을 일일이 뒤져가며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니, 아니스는 시원시원하게 한 권의 서책을 찾아 건네줬다.

       

       “그거라면… 이게 제일 적당하겠네요. <대륙의 신앙과 마왕의 역사>.”

       

       아니스는 얇은 유리 안경을 매만지며 책에 대한 설명을 친절히 덧붙여주었다.

       

       “여신은 어떻게 대륙의 유일신이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경위를 거쳐 마왕과 밀월 관계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책이네요. 보통 이런 기록은 상당히 편파적인 시각에서 쓰인 경우도 많고, 잘 모르겠는 부분은 허구의 상상을 덧붙이는 경우도 흔해서 신뢰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읽는 사람의 몫이겠죠.”

       

       기분이 좋은 듯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아니스에게, 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뭔가 책을 읽기도 전에 의심암귀에 빠지는 기분인데요…”

       “뭐, 말은 그렇게 했어도 이 책의 경우는 그렇게 의심할 필요는 없겠죠. 인류의 틈바구니에서 여신보다도 오래 부대끼고 살던 몽마가 취미로 쓴 기록이니까요. 굳이 악의적인 거짓을 더할 필요는 없었을 거예요.”

       

       아니스는 그렇게 말하며 쿡쿡 웃었다. 아니, 그럼 그것부터 말씀해주시면 되는 게 아닐까요?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이 아가씨도 성격이 참 나쁘다. 쓸데없는 구석에서 짓궂다고 해야 하나.

       

       “그런가요… 일단 감사히 빌려가겠습니다. 아, 혹시 용사에 대한 건…”

       “그거라면 이 <용사 파티에 대한 고찰 : 여신이 영웅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를 추천드릴게요. 방금 그거랑 같은 저자가 쓴 거니까 안심하고 읽으셔도 될 걸요.”

       

       그렇게 낡은 서책을 두 권 받고 나서,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럼 30회귀 4권부터 6권이랑… 혹시 악마에 대한 책은 없나요?”

       

       내 물음에, 아니스는 흥미롭다는 듯 살풋 웃었다.

       

       “악마, 악마인가요…”

       

       아니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이내 내게 물었다.

       

       “실용적인 책이랑, 재미있는 책. 어느 쪽을 원해요?”

       “…둘 다는 안 되나요?”

       “하나만 골라보세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의도가 뭘까. 단순히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운 것일까?

       

       그렇게 몇 분간을 끙끙거렸을까, 나는 결국 고민 끝에 결심을 내렸다.

       

       “…실용적인 책으로 부탁드립니다.”

       

       내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아니스는 곧바로 책 한 권을 내게 내밀었다.

       

       “그럼 이 <마魔에 대한 모든 것>을 빌려드릴게요. 제목은 거창하지만, 실제로는 악마라든가 마왕 등등 비슷한 명칭을 가진 용어에 대한 해설서니까요. 아마 원하시는 정보는 어지간하면 그 안에 다 들어있지 않을까요?”

       

       나는 아니스의 설명을 듣고는 만족스럽게 책을 받아들었다. 뭔가 함정이라도 있는 건가 싶었지만, 막상 이렇게 고르고 보니 결과물은 별다른 장난질도 없이 착실했다.

       

       그렇게 나는 교주님과 함께 다음 목적지로 떠났지만, 그래도 남는 의문이 하나.

       

       과연 내가 ‘재미있는 책’을 골랐다면, 그녀는 대체 내게 어떤 책을 주려고 했던 것일까?

       

       

       ***

       

       

       “성실함과 호기심, 꽤나 아슬아슬한 접전이었지만… 결국 전자가 이겼나요.”

       

       아니스는 살짝 김이 빠졌다는 투로 말했다.

       

       “그야 어느 쪽이 실제로 유용한가 하면 그쪽이 당첨이기도 하고… 굳이 따지고 보면 30회귀 쪽도 ‘악마에 대한 정보가 담긴’ ‘재미있는 책’에 속하니 결국 양쪽 다 챙긴 셈이고. 여러모로 괜찮은 판단이긴 하지만.”

       

       그녀는 잠궈놓았던 데스크의 서랍 중 하나를 열쇠로 열며 말했다.

       

       “그래도, 조금 아쉽네요. 재미를 우선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볼 만한 광경이 연출됐을 텐데.”

       

       서랍에서 꺼낸 책의 표지에는, 고풍스러운 필체로 제목이 새겨져 있었다.

       

       

       <종말 후 외톨이 갤러리>

       

       

       “이것도 결국은 악마들에 대한 이야기 중 하나니까요? 뭐, 태반은 그 잉여로운 악취미에 대한 기술이고. 미래에 대한 내용은 없으니 실용성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좀 애매하고.”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알고 있는 비밀이 많을 뿐.

       

       “보아하니 또 누군가는 억지고구마각을 보는 것 같지만… 극복하실 수 있겠죠?”

       

       그도 그럴 것이, 당신은 주인공이잖아요.

       

       이야기를 탐닉하는 독서광이, 기대감에 가득 찬 미소를 지어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 아 약피폐라고 안심하고 먹으라고 ㅋㅋㅋ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Gallery for Loners After Dem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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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FLAD 종말 후 외톨이 갤러리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community for the last people who survived on Earth. This is ‘The Lonely Gallery After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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