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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3

        웨이블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자라, 몇 년 전 제국 수도로 이사를 온 전형적인 이촌향도 청년이었다. 그는 아카데미 근처에서 월세방을 하나 잡은 뒤 일반대학에서 임상병리를 전공하고 생활터를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임상병리사는 그럭저럭 할 만했다. 적성에 맞는다는 느낌은 안 들었지만, 그렇다고 못 해먹을 것까진 없었다. 온갖 질병이 횡행하는 시대에서 의료인력은 늘 부족했으니까. 적어도 밥 한 끼 벌어 먹고살 정도는 됐다.

       

        그래도 몸이 힘든 건 매한가지. 웨이블은 의료인 협회로부터 받은 편지를 구기며 혀를 찼다.

       

        ‘이번 주는 조금 바쁘겠군.’

       

        편지에는 틸레트 아카데미 재학생 전원의 건강검진에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병원 일로도 바쁜데, 이런 것까지 해야 한다니.

       

        ‘그래도 보수는 주겠지.’

       

        윗선에서 내려주는 짭짤한 페이를 기대하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웨이블은 여느 때처럼 잠들기 전에 차를 마신다. 캐모마일과 둥굴레차 중에서 어떤 티백을 고를까 고민하다가, 내일부터 일이 고될 것을 고려하여 숙면을 도와주는 캐모마일 티를 선택했다.

       

        “후우. 좋네 좋아.”

       

        따뜻한 향기를 느끼며 침대 위에 걸터앉는다. 적당히 식힌 차를 입에 가져가며 한 모금. 건강하고 뭉근한 느낌이 위장을 가득 적신다. 편안하고 나른한 감각에 졸음이 밀물처럼 올라왔다.

       

        그동안 잦은 과업으로 잠자는 시간이 뒤죽박죽이었는데, 오늘은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웨이블은 창가에 비친 달을 바라보며 뜻하지 않은 정취를 즐겼다.

       

        “…응?”

       

        달이 사라졌다.

       

        웨이블은 창가 너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눈을 끔뻑거린다.

       

        갑자기 달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방 안으로 들어오던 달무리가 걷혔다. 웨이블은 눈살을 찌푸린 뒤에야 창가 자리에 무엇인가가 눌러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찰팍

       

        “이, 이게 뭐야….”

       

        창가를 덮은 것은 검고 진득한 고형물이었다. 반쯤 액상의 형태를 띤 그것은 폐암 환자에게서 걷어낸 타르 덩어리처럼 생겼다. 더욱 큰 문제는 이것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어, 어엇….”

       

        -쨍그랑!

       

        웨이블은 들고 있던 유리잔을 떨어뜨렸다. 머릿속이 백지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여기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결정하는 건 이성이 아니다. 과거로부터 유전자에 각인된 생존 본능이 그의 머릿속에서 직감적인 경종을 울렸다. 

       

        도망쳐야 한다.

       

        “씨, 씨발!! 이게 대체 뭐야아아!!!”

       

        웨이블은 이불을 던지고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재빠른 걸음이었다. 그러나 기척을 감지한 타르 덩어리는 이불을 빠르게 흡수한 뒤 침대와 마룻바닥으로 번져나갔다.

       

        “으아아아아아아!!!”

       

        웨이블은 숨을 헐떡거렸다. 떨리는 다리를 겨우겨우 움직이며 침실을 나가려고 했다.

       

        늦었다.

       

        “이, 이거 왜 안 열려!”

       

        타르 덩어리는 벽지를 통해 그보다도 먼저 문에 도달해 있었다. 폭식증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게걸스레 문을 먹어 치운 정체불명의 물질은 철퍽이는 소리를 내며 웨이블에게로 다가왔다.

       

        사방이 암흑으로 뒤덮였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오!!”

       

        그것이 청년이 낼 수 있었던 최후의 소리였다.

       

        타르 덩어리의 일부가 남자를 덮쳤다. 먼저 입을 틀어막고, 검붉은 빨판이 달린 촉수로 몸을 단단히 구속한다. 입에 들어온 덩어리는 날카로운 침처럼 변하여 그의 입천장을 갈갈이 찢어놓았다.

       

        남자는 한동안 바둥거리다가 축 늘어졌다. 고형물은 그의 머리부터 시작하여 장기 곳곳을 먹어치웠다.

       

        이윽고 모든 점액질과 촉수가 말끔하게 걷혔다. 남자의 겉모습은 비교적 온전한 채였다. 다시금 달빛이 창가 사이로 비춰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뒤로 얼마나 흘렀을까. 부패한 시체처럼 잠자코 있던 청년이 끌끌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오랜만에 좋은 식사가 되었습니다.”

       

        웨이블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

       

       

        “키, 몸무게 검사부터 실시하겠습니다!”

        “1학년 학생들은 이쪽으로 와서 줄을 서 주세요!”

       

        결국 오고야 말았구나.

       

        마땅한 대책 없이 이 자리에 서고 말았다. 아니, 대책을 세워두긴 했지만 전혀 안 먹히게 생겼다.

       

        이 부분은 애석하게도 로즈마리의 조력을 받아야 할 것이다. 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동생의 도움이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겠지.

       

        그렇게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기다리던 중.

       

        “그럼 다음 번호는…. 어?”

       

        몇 번 본 적이 있는 얼굴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틸레트에서는 보기 힘든 연둣빛 눈동자. 한쪽으로 땋아 올린 포니테일과는 반대로 사근사근한 눈매가 인상적인 소녀였다. 학생회의 간부, 풍기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샤디엘 아르가나였다.

       

        “이거 금안족 후배 아니야? 오랜만이다!”

        “안녕하세요, 선배.”

        “왜 그리 풀이 죽어 있어? 아, 설마….”

       

        예, 말 못 할 비밀이 있습니다. 알려지면 바로 퇴학당할 만한 비밀이죠.

       

        “…쪘니?”

        “아뇨?”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아니라니까요.”

       

        애초에 이런 몸인데 몸무게 의미가 있으려나.

       

        아니, 잠깐만.

       

        일순 머릿속에 엄청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1. 부피가 같을 때 밀도가 클수록 질량이 크다.]

        [2. 인간의 밀도는 평균적으로 990kg/m^3에 이른다.]

        [3. 철의 밀도는 7900kg/m^3 정도 된다.]

        [4. 2와 3의 차이는 대략 8배.]

        [5. 따라서 몸무게를 측정하면 인간의 8배.]

       

        [결론 : 좆됨.]

       

        “아.”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깨가 제멋대로 떨렸다. 샤디엘 선배가 걱정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지만 애써 웃어넘겼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자, 다음 학우 들어오세요.”

       

        검진을 도와주는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체중계에 올라갔다. 전계마도의 미숙함으로 인해 전자식으로 돌아가는 체중계는 아니었다. 체중계를 밟자 스프링이 눌리면서 팅팅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흠.”

        “보기보다 무겁네.”

        “어허, 숙녀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이 정도면 세이프.”

       

        숫자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몸무게 검사만으로 들킬 거였으면 애당초 교실 의자에 앉았을 때부터 문제가 생겼을 터였다.

       

        “어디 보자, 키는…. 160 정도인가?”

        “162, 162야.”

       

        신장까지 재고 난 뒤에 대기실에 앉아서 멍을 때렸다. 옆에 앉은 프레이는 뾰로통한 얼굴로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상하다…. 우유 열심히 마셨는데….”

        “어른이잖아. 성장판 닫혔겠지.”

        “안 돼! 아아아악!!”

       

        프레이는 침몰했다.

       

       그래. 키, 몸무게는 어떻게든 넘겼다고 치자. 가장 큰 문제는 채혈이었다.

       

       절멸급 마수는 피부부터 단단하기 때문에 보통의 방법으로는 뚫을 수 없다. 주삿바늘로 피를 뽑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어떻게든 채혈에 성공했다고 하자. 임상병리사가 내 피로 검사를 하면 수은이 검출될 텐데 과연 가만히 있을까?

       

       정령마도학 시간에 배웠던 바에 의하면 대부분 마수의 피는 검은색을 보인하다고 한다. 이건 이상한 일이었다. 내 피를 말리면 진사가 나올지언정 색 자체는 붉었는데.

       

        [아, 그건 제가 왜인지 알아요! 아마 수은에 붙는 다른 성분 때문일 거예요! 수은 화합물 중에 산소가 붙는 애들은 검은 색을 나타내기도 하거든요!]

       

       안 물어봤는데.

       

        [아아아악! 알려줘도 지랄이야!!]

       

        양장본은 침몰했다.

       

        “그나저나 기다리는 동안 심심하네.”

        “내가 말동무라도 되어 줄까?”

        “샤디엘 선배.”

        학생회 임원 정도 되니까 데면데면한 사이인 사람한테도 무리 없이 말을 거는구나.

       

        생각해 보면 로테나 프레이도 나에게 먼저 다가왔다. 서양에서는 이런 식으로 스몰 토크 문화가 있다고 한다. 왜, 미국에서 공원 산책하다가 벤치에 앉았더니 옆 사람이 말 걸고 그러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던데.

       

        “이번 주에 우리뿐만 아니라 교수님들도 대부분 쉬시잖아. 왜인지 알고 있니?”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를 설정하는 샤디엘.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어지는 말을 경청했다.

       

        “귀족 회의가 있기 때문이야.”

        “귀족 회의요?”

        “응. 4년에 한 번 열리는 회의인데, 귀족들이 황궁에 모여서 나라의 대소사를 한 번에 논의하는 짧은 회의야. 거기서 작위를 올릴 사람은 올리고, 강등할 사람은 강등되기도 하지.”

        “되게 살 떨리는 회의겠네요.”

       

        정기 업무보고인 모양인데.

       

        “그래도 강등되는 경우는 많지 않아. 가만히 있던 사람이 회의장에서 굿판이라도 벌이지 않는 이상에는.”

        “선배도 가시나요?”

        “아버지 따라서 갈 예정이야. 너도 갈래?”

        “제가요?”

       

        내 손가락이 나를 향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물었다.

       

        “저 아직 평민인데요?”

        “틸레트 졸업하면 무조건 남작 이상이잖아. 에테르는 학년 1등이라며? 틀림없이 자작이나 백작위를 밭을 거야. 3등으로 졸업하신 헤를라인 선생님이 자작으로 시작하셨으니까.”

        “그래도 아직 모르는 일이죠.”

       

        귀족 회의라니.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릿해지는 경험이 되겠지.

       

        웬만해선 참여하고 싶지 않다. 어떤 세계이건 간에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 끼어 있는 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일이나 다름없다. 거기 갈 바에야 연구나 더 하지.

       

        그 뒤로 정신없이 담소를 나누다 보니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이쪽 줄에 계신 1학년 여러분은 절 따라오시길 바랍니다. 채혈할 거예요!”

       

        올 것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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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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