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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3

       그래도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을 때는 나름대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상황이 어떻게 되건, 그 상황 자체를 취소시켜버리고 내가 가장 유리한 상황까지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혜였으니까. 솔직히, 다른 게임이나 만화에서도 내가 가진 능력만큼 좋은 능력을 갖춘 캐릭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내가 그 능력을 쓸 수 없다는 것이고.

        

       그 능력 덕분에 유지하던 나의 이미지도 간당간당하고, 무엇보다 능력이 없으므로 나는 내 앞의 상황에 한없이 무력했다.

        

       그 가면녀는 지금도 어디선가 나를 보면서 비웃고 있을까.

        

       생각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당장은 나를 죽여버릴 의사는 없는 것 같았다. 그 정체가 내가 추측한 인물 중 하나라면 앞으로도 그럴 일은…… 아마 없을 거고.

        

       앨리스를 쏴버리려고 했다는 점은 주의해야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상황은 나에게 매우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가면녀가 달려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루카스가 달려들면 막아줄 인물이 꽤 많았다. 한 명 한 명은 루카스의 실력에 조금 못 미치겠지만, 모두 한 번에 달려들면 루카스라도 무조건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 상황이 정말로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그러니까.”

        

       제이든은 평소에는 정말 보기 힘든, ‘아주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놈이, 나의 여동생과 하룻밤을 보냈다는 뜻이렷다?”

        

       “예? 아니, 그게……!”

        

       “그게 왜 그런 뜻이 되는 겁니까?”

        

       결국 상황을 보다 못한 나는 제이든과 레오 사이로 끼어들며 말했다. 안 그러면 정말로 제이든이 검이라도 휘두를 기세였기 때문이다.

        

       “너랑 저 놈팽이가 같은 곳에서—”

        

       “그곳에는 검성께서도 함께 계셨습니다만.”

        

       “그래. 아무리 나라도 그런 상황을 그렇게 해석하지는 않는다.”

        

       바로 조금 전까지 매우 고리타분한 대사를 내뱉던 검성마저 어이가 증발한 표정으로 제이든에게 말했다.

        

       “하지만 분명히 저 녀석이—”

        

       “—‘하룻밤’이라는 단어를 자꾸 강조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일부러 그 단어를 자꾸 들먹이시는 겁니까? 오……”

        

       라버니, 라는 말을 나는 목구멍 아래로 넘겨버렸다.

        

       “……는 제 명예에 그런 흠집이 생기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그, 단어를 굳이 중간에 잘라먹을 필요는 없는 거 같은데.”

        

       아쉽다는 듯 그렇게 말하는 제이든을 보고 나는 결국 이마에 손을 올리는 것을 참지 못했다.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레오는 저와 같은 아카데미,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고, 같은 학생회 출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의 자매인 클레어와 제가 친분이 있는 사이이니, 자연스럽게 저와 레오 간의 친분도 있습니다. 올해가 지나더라도 앞으로 3년은 더 얼굴을 마주 볼 사이이니 그 친분이 더 깊어질 수는 있겠지요.”

        

       “역시!”

        

       아니, 그러니까 그런 거에 화내지 말라고. 수학여행 포크댄스 때문에 손잡은 여자애랑 사귄다고 놀리는 초등학생도 아니고.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다고 해서 무조건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는 무도회에서 다른 귀족가 여성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죄다 염문설로 묶이는 것을 원하십니까?”

        

       “…….”

        

       제이든은 대답이 없었다.

        

       아, 맞다.

        

       얘 여자한테 인기 없었나.

        

       루카스가 여자한테 인기가 많지만 별다른 관심이 없는 캐릭터라면, 얘는 여자한테 관심은 있는데 인기는 없는 타입이었다. 분명 미남이라고 묘사되는데 이상하게 여자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

        

       아니, 이상하게는 아닌가. 대화 할 때마다 어느 조병창에서 만든 제식검이 잘 드느니, 자기가 어느 전장에서 어떻게 활약했느니 하는 말을 몇 번이나 한다는 설정이 있었으니까.

        

       말하자면 여자 앞에서 군대 이야기하는 캐릭터다.

        

       ……무도회에서도 여자랑 춤도 제대로 춰본 적 없다는 설정이었나.

        

       “금욕적인 교회 소속 여학교가 아닌 이상은 여자가 남자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 것 하나하나에 끼어드실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레오 쪽을 보았다. 레오는 조금 감동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긴, 남작가 아들이 황자한테 직접 불호령을 들으면 기겁할만하지. 그걸 황녀가 직접 막아주었다고 생각하면 감사할만했다.

        

       “저희의 대화가, 일상적인 것을 넘어서 서로 간의 이성적인 호감을 향해 진전된 적이 있습니까?”

        

       “없죠, 당연히 없죠!”

        

       “검성 님의 오두막에서도?”

        

       “그렇습니다!”

        

       레오의 말에 클레어도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제이든은 그런 두 사람을 보고, 다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건가?”

        

       “그런 겁니다.”

        

       이 멍청아. 하는 말은 당연히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만약 내가 회귀 능력을 막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한마디 하기는 했겠지만.

        

       하긴 내가 그런 능력이 없었으니 상황이 이렇게 개판이 된 것도 있겠지만.

        

       제이든은 자기 검 손잡이에 올리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이내 그 손을 처량하게 늘어뜨렸다.

        

       음, 별로 불쌍하지는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쐐기를 박으려는 듯,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앨리스가 입을 열었다.

        

       “실비아가 누구랑 결혼하건 그건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잖아. 실비아가 본인이 좋다는 남자를 데리고 와도 똑같이 반응할 거야?”

        

       “그야 당연히—”

        

       제이든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 쪽을 보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내 표정은 무표정이었다고 자부한다.

        

       다만, 그 무표정이라는 게 상황에 따라서 보는 사람의 해석도 달라지는 법이니까.

        

       ……적어도 제이든이 아직 내 밑천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

        

       그리고 그렇게 안 그래도 개판인 상황에 화룡점정이 찍혔다. 아니, 왜 자꾸 사람이 모이는데? 그것도 제국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들이. 무슨 스●시 브라더스도 아니고.

        

       “이런, 이런.”

        

       그 목소리에 레오와 클레어가 기겁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두껍고 굵은 목소리를 모르더라도, 이 제국에 살면서 황제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테니까.

        

       “귀한 분께서 행차하셨는데 곧장 와보지 못한 것은 미안하군.”

        

       자기보다 나이가 거의 스무 살은 많아 보이는 검성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황제도 참 황제다웠다.

        

       훈련장으로 들어오던 황제의 시선이 아주 잠깐 나를 향했다. 입가에 재미있다는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면, 내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게 사실이기도 했고.

        

       “호오.”

        

       그리고 황제를 본 검성 또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고개 한 번 숙이지 않는 것을 보면 이쪽도 만만치 않다. 권위니, 뭐니 하는 것에 굴복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건 원작에서도 나왔으니 당연하려나.

        

       그리고—

        

       쾅!

        

       황제는 곧장 허리춤의 검을 뽑아서 검성에게 달려들었다.

        

       검과 검이 부딪히는데 무슨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냐.

        

       검기를 발하지도 않은 두 검이 휘둘러지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바람이 일었다. 무언가를 날려버릴 법한 폭력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휘날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

        

       적막.

        

       검을 휘두른 황제도, 검성도 서로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 두 미소가 모두 ‘미소’라고 불러도 되는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두 사람 모두 서로를 그렇게 싫어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직 정정하시군, 노인네.”

        

       “그러는 자네야말로 언제나 의자에만 앉아있지 않았던가?”

        

       ……응?

        

       내가 그런 대화에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두 사람은 검을 거두어 각자의 검집에 다시 넣었다.

        

       그리고 서로 손을 내밀어 꽉 잡고 악수했다.

        

       아니, 뭔데?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나 말고도 여럿 있는 모양이었다. 앨리스는 물론이고 레오나 클레어, 제이든도 두 사람을 보며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으니까.

        

       “이것 참, 다시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황제가 생전 처음 보는 친근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도 내가 이런 번잡한 곳으로 내려오게 될 줄은 몰랐군.”

        

       검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대답했다.

        

       ……둘이 아는 사이였어?

        

       아니, 아는 사이일 거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하지만 그게 친근한 관계일 거라는 예상은 아니었다. 어느 유명인과 대통령쯤 되는 사람이 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그런 관계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점에서는 자네 딸을 칭찬하는 게 좋겠군. 어쨌거나 나는 그 녀석한테 낚여서 내려온 몸이니까 말이야.”

        

       엑.

        

       검성이 그렇게 말하자, 훈련장에 서 있던 모두가 동시에 나를 보았다.

        

       아, 어…….

        

       아니, 뭐, 그렇게 되긴 했는데…….

        

       나는 검성 한 사람만 데리고 오는 것을 의도했을 뿐이다. 그냥 루카스 어그로 좀 끌어서 대화나 해보려고 한 건데.

        

       일이 왜 이렇게까지 굴러가냐고.

        

       나는 라이벌 동창회 같은 거 시킬 생각 전혀 없었다고.

        

       게다가 나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전부 ‘뭔가 대단한 것을 꾸미고 있군’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만약에 가면녀가 미래의 나거나, 아니면 다른 친근한 사람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언젠가 만나면, 반드시 때려서 엉엉 울게 만들어 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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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1. Sitidara says:

    Membosankan seperti biasa, tapi tetep gw baca karena ingin melihat akhirnya
    Kalau udah selesai mungkin, gw blacklist aja dari pada jadi list yg ga g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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