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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3

       “⋯⋯그렇게 해서, 엔버스가 체험하러 가기로 했대. 누구는 차원 마법이라고 그러고 누구는 환상 마법이라고 그러는, 교수님의 마법을.”

       

       -으음⋯⋯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엔버스? 글쎄. 긴가민가한 것 같던데⋯⋯ 하여간, 내가 뭘 챙겨주면 좋을까?”

       

       셀비어의 질문에 니오레는 지난날의 경험을 반추했다. 그리고 해 줄 말을 생각해 보았다. 미친 마법사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라?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소중한 사람을 지켜라⋯⋯?

       

       아니, 차라리 모든 것을 가짜라고 믿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는 원래부터 멘탈이 약한 사람 같았으니까.

       

       심지어 이번에는 엔버스 단독 투입이라고 들었다. 마음이 깨졌을 때, 주변에서 일으켜 세워 줄 사람도 없다. 그러니 그저 환상 마법이라며 스스로를 지키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닐 터다.

       

       그렇다면 어떤 꿀팁을 전해줘야 할 것인가.

       

       시대도 건물도 배경도 상식도 다른 이세계에 떨어진 이방인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가. 니오레는 답을 찾아냈다.

       

       유틸이다.

       

       무슨 역경과 고난이 닥칠지 알 수 없다면, 어떤 시련에서도 몸을 비틀 수 있는 능력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그러니.

       

       -단순한 거라도 좋으니까, 아티팩트. 손전등이나 라이터 같은 걸 주면 어떨까?

       

       “손전등이랑 라이터가 뭔데?”

       

       -아, 그러니까⋯⋯ 소형 빛 발사기와 작은 불꽃 생성기 같은 거. 마법사가 아닌 엔버스는 불편한 상황을 많이 마주할 테니까. 그가 할 수 없는 부분을 채워주는 도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확실히⋯⋯.”

       

       니오레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셀비어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아티팩트 목록을 머릿속에서 쭉 펼쳐보았다.

       

       ● 소형 발화장치와 원뿔형으로 빛을 내는 짧은 완드

       ● 옷을 말리는 스크롤과 화염 저항력 상승 포션

       ●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스크롤

       ● 대폭발 스크롤

       

       “하나씩 만들어 주면 되겠네. 고마워, 니오레. 도움이 됐어.”

       

       -천만에. 그런데 셀비어는⋯⋯ 엔버스에게 관심이 있는 거야?

       

       “저언혀.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소꿉친구 말이지⋯⋯?

       

       셀비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엔버스는 그녀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었고, 이상형에 가까웠더라도 그런 마음은 먹지 않았을 터다.

       

       아무리 언덕에서 돌이 굴러와도, 용접된 박힌 돌을 빼낼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설 마음을 먹는 건, 내 소꿉친구가 죽었거나, 아니면 소꿉친구가 내 마음을 거절했을 때부터야. 그전까지는 다른 사람을 마음에 들일 생각이 없고⋯⋯ 또.”

       

       들어올 것 같지도 않았다.

       

       니오레는 충분히 알아들었다는 의미를 담아서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셀비어를 위한 조언을 장전했다.

       

       그녀의 소꿉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다섯 번 정도 들었다. 셀비어가 중증 콩깍지에 씌어 기억을 왜곡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는 매력적인 남성일 터.

       

       그가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다면, 이미 여자가 꼬였을 확률이 몹시 높다.

       

       그렇다면 셀비어는 후발주자인 입장에서 연애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타라와 경쟁 중인 니오레보다도 어려운 처지.

       

       불리한 쪽은 수비적으로 굴면 말려 죽을 뿐.

       

       궁지에 몰려 있을수록, 공격적으로 나가야만 활로가 보인다. 니오레가 용기를 내서 온갖 플러팅을 날려대었던 것처럼.

       

       니오레는 자신의 옷장에서 천 쪼가리로 만들어진 음란물을 꺼내 들었다.

       

       -셀비어, 이거 입어 볼래?

       

       “갑자기? 어⋯⋯ 이, 이게 대체, 뭣. 엣.”

       

       형언할 수 없는 속옷을 목격한 셀비어는 정신 판정 굴림에서 실패했다. 그 형태를 보아 미루어 짐작하자면 하복부를 가리는 의복의 한 종류로 보였으나, 그녀가 알고 있는 기능적 개념과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무언가였다.

       

       난데없이 이걸 왜 입어 보라고 하는 거지. 셀비어가 혼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니오레는 조곤조곤 텔레파시를 보냈다.

       

       -여자에게는 무기가 필요해, 셀비어.

       

       “무, 무기⋯⋯.”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노력할 수 있다면⋯⋯ 셀비어 너는, 어디까지 노력할 수 있을까?

       

       “⋯⋯⋯⋯!!”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부끄러움과 체면을 내버리면서까지 누군가의 사랑을 쟁취할 열의가 있는가. 니오레의 속삭임에, 셀비어는 그 형언할 수 없는 속옷을 가볍게 쥐어 들었다.

       

       그녀는 마검을⋯⋯ 뽑았다!

       

       ===============================================================

       

       문 닫힌 시련의 탑의 비처, 거지와 엔버스는 산중의 공터에서 다시금 마주했다. 이제 곧 엔버스는 무림으로 떠날 것이니, 혹여 곤욕을 치르지 않도록 여러 정보를 알려 줄 심산이었다.

       

       언어 문제는 사술 쓰는 마법사가 알아서 해결해 주겠다지만, 말이 통한다 한들 색목인이 중원에 떨어져 사는 것이 쉬운 일이랴.

       

       다만, 한때 개방 방주였던 자신의 옛 인연과 정보들을 잘 활용하거든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 터. 거지는 나무 그루터기에 앉았다.

       

       “떠날 준비는 되었느냐?”

       

       “예. 고맙게도 친구들이⋯⋯ 이것저것 챙겨주었습니다.”

       

       엔버스는 챙겨 온 보따리를 풀고, 주섬주섬 물건들을 바닥에 늘어놓았다. 

       

       셀비어가 만들어 준 불꽃놀이 세트. 공격력이 높다.

       

       루나가 만들어 준 식료품 주머니. 가성비가 좋다.

       

       혹여 요술이 엉켜 엔버스가 인적 드문 야산에 떨어져도, 이 물건들이 사람을 찾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 줄 것이다. 거지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엔버스에게 다음과 같은 정보를 일러 주었다.

       

       ● 개방 분타를 찾는 방법 (매듭을 허리에 건 거지를 찾아볼 것)

       ● 천경호 호수 아랫바닥의 동굴 (영약이 있으나 / 이무기가 지키고 있음)

       

       마치며, 거지는 엔버스를 바라보며 운을 뗐다.

       

       “개방의 무공은 이미 네게 전했으니, 오늘은 작은 부탁을 하고 싶구나.”

       

       “말씀하십시오.”

       

       “내게는 못다 한 의무가 있다.”

       

       거지의 주름진 얼굴에는 묘한 감정이 스치는 듯했다.

       

       그것은 일말의 미련, 아쉬움이었다. 

       

       강호의 평화를 위해 한 몸 바친 것은 후회되지 않았다. 천마와 그가 이끄는 마교의 군세는 강력했으며,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을 만큼 독랄하였다.

       

       그들의 수장인 천마를 물리쳐 쫒아 낸 값으로는 목숨도 싸게 준 것이다. 그는 괴물이었고,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졌더라면 세계를 그 손아귀에 쥐었을 터다.

       

       그러나 한가지. 개방 무맥(武脈)을 끊어놓은 것만은 회한으로 남았다. 

       

       개방 방주의 상징인 타구봉법이 거지와 함께 실전되고야 말았던 것이다. 거지는 차원의 틈에 휘말려 이세계에 갇혔으므로, 이승에 비급이나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여 얻을 길이 없었다.

       

       무공(武功)은 시대라는 강물을 따라 자연스레 흐르는 것인데, 자신이 그 물길을 끊어버리고야 말았으니. 후대의 개방도들은 얼마나 아쉬울 것인가.

       

       하여, 거지는 엔버스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시공이란 기이막측하고, 인간이 헤아리기에는 너무나도 높은 곳이니. 중원의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구나.”

       

       “⋯⋯⋯⋯.”

       

       “다만, 개방이라는 이름을 쓰는 거지들의 집단이 여전히 남아 있거든, 타구봉법을 돌려주었으면 한다. 이는 내게 묶인 무공이 아니라, 개방에서 흐르듯 이어져야 하던 것이니.”

       

       “⋯⋯꼭 완수하겠습니다!”

       

       엔버스는 당차게 대답했다. 어떠한 세력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무공, 그 가치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전통이 깊은 가문으로부터 태어나 본 적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큰 뜻을 받아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는 다만, 거지의 회한이 안쓰럽기도 했으며. 가르침을 받은 만큼 의리를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마음이기도 했다.

       

       [역사와 함께 흐르는 것 : 개방도에게 타구봉법을 반환하기]

       

       엔버스 레드번, 하산(下山).

       

       ===============================================================

       

       떨린다.

       

       주먹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발걸음이 무겁다.

       

       온갖 무예가 어지러이 얽히는 무림, 그 낯선 세계에 홀로 떨어지게 되면⋯⋯ 필히 고생길이 있을 것이나. 그만큼 얻어가는 것 또한 많을 터.

       

       엔버스는 제 입술을 매만졌다. 달의 약속은 그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시련의 탑과 마찬가지로 목숨만큼은 온존할 수 있다는 미친 마법사의 설명도 있었고, 보름이 지날 때마다 귀환하게 되리라는 말도 들었다.

       

       그러니 두려움보다도 설렘이 크다.

       

       엔버스가 긴장한 채로 마법진 위로 발을 들여놓으려는 찰나, 미친 마법사는 넌지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운명을 믿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요?”

       

       다소 뜬금없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 미친 마법사는, 엔버스가 맞닥뜨릴 미래에 대해 의뭉스럽게 경고했다. 

       

       “인연에는 『인력』이 존재합니다. 당신이 천마와 만났던 그 짧은 순간, 서로의 운명의 실은 확실하게 교차해 얽혔습니다.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게. 분명 이끌리게 되겠지요.”

       

       “⋯⋯그 말은?”

       

       “당신의 선택에 따라서는 천마의 유산과 마주하게 될 겁니다. 본신의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좋은 친구를 사귀었다면 능히 닿을 수 있겠군요.”

       

       미친 마법사는 검지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붙였다. 이는 비밀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침묵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는 말했다.

       

       “그러니 제가 감히 조언을 드리자면── 언제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은 어려운 길이라는 겁니다. 시련의 탑이 그랬던 것처럼.”

       

       “⋯⋯⋯⋯.”

       

       “어떤 비밀은 잠자는 곰과 같아서, 깨우지 않으면 생각보다도 안전한 법입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 말과 함께 미친 마법사는 엔버스를 일별했다.

       

       [??? : ‘비밀’을 발견하여, 하드모드 루트에 진입한 상태에서 무협 세션 클리어.]

       

       ===============================================================

       

       무협 세션의 막이 올랐다.

       

       그는 무예를 갈고 닦는 수많은 인간군상들 속에서 드물게 협의지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뒤의 선택은 그에게 달렸다.

       

       마교 루트를 타건, 정파 루트를 타건, 사파 루트를 타건, 결말은 한 점으로 수렴한다. 그러나 그 의미만큼은 다르리라.

       

       다만, 기존의 기획에서 몇 가지 수정할 점이 있었다. 바로 히로인에 대한 부분이었다.

       

       본래는 엔버스에게 스승이자 누나이자 일반 공격이 2회 공격에 관통 공격인 여인을 붙여주려 했는데, 나는 봤다.

       

       루나의 히로인 무빙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나만 본 게 아니라, 둘이랑 같이 봤다. 그날 밤에 연구실이 한바탕 뒤집어졌었다. 유나가 끼야아아악 하고 좋아 죽으려고 하고, 핑발레즈가 그새를 못 참고 나한테 손가락 뽀뽀를 카피해서 시전하고.

       

       그걸 본 유나가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한 수십 번 찍었던 것 같다. 이걸 요망하게 해야 설레는 거지, 횟수로 밀어붙이는 건 좀, 키스보다는 입술박살내기에 가까웠던 것 같은데.

       

       그래도 질투해주는 모습은 귀여워서 좋았다. 막, 세상을 불태우고 나와 핑발레즈를 반으로 갈라버리는 질투가 아니라, ‘너는 왜 사탕 두 개 먹어’ 정도의 감정이라서.

       

       서로 장난인 걸 아니까 오손도손 놀 수 있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장난보다 살짝 더 가까워지면 어떨까를 생각해보곤 한다.

       

       하여간.

       

       나는 루나가 의도치 않은 NTR을 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존에 세워 둔 히로인 계획을 폐기했다. 그 대신에 조금 더 무협에 집중하기로 했다.

       

       온갖 클리셰를 찌른다. 기연, 깨달음, 우연한 얽힘, 절벽에서 떨어지면 동굴, 수상한 산맥에서 헤매면 비급.

       

       그리고 객잔에는 까르보나라 같은 양식을 배치해서⋯⋯.

       

       “?”

       

       “왜 그렇게 보세요, 마탑주님?”

       

       “방금 뭐라고 했어?”

       

       “그, 객잔에 까르보나라를 배치한다고⋯⋯.”

       

       아니, 왜. 내가 죽기 전에는 이런 게 정통무협이었다. 그리고 기실, 무협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세계 아니던가 여기는.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대로가 무협인 법이다. 죽엽청에 소면같은 걸 배치하는 대신, 트렌디한 메뉴를 배치해서 사용자의 식도락을 충분히 보장하는⋯⋯.

       

       흐으으으읍.

       

       유나는 온 세상의 공기를 들이마실 듯 깊이 호흡하여, 단전으로부터 목청을 끌어올려 사자후를 내뱉었다.

       

       “갈(喝)──!!!”

       

       “⋯⋯⋯⋯!!”

       

       “너 진짜 고증 똑바로 안 하면 뒤질 줄 알아⋯⋯!!”

       

       나는 유나가 이렇게까지 강하게 표현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그녀의 독서 비율 1위는 로맨스였으나, 2위가 바로 무협이었더랬다.

       

       유나 바이올렛아이리스는 무틀딱이었던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좋은 아침입니다 마이 프렌즈. 어제는 인생 쌀국수를 먹었습니다. 너무 맛있더라구요⋯⋯.
    마이 프렌즈들도 모쪼록 맛점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내일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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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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