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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3

     

    버스의 내부는 떠들썩하고 활기찼던 첫 출발과는 대비되도록 고요하고 정적이었다.

    긴 이동시간에 다들 지쳐버린 것일까.

     

    진작에 잠들어서 간간히 코를 골며 잔잔한 숨소리만 내는 아이,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조그맣게 대화를 나누는 아이, 안절부절한 몸짓으로 불안하게 주변을 살피는 아이.

     

    그리고 어느덧 버스가 멈추자, 그 고요는 깨졌다.

     

    “자, 10분정도 쉬었다 갈 거니까, 화장실 갈 사람들은 얼른 갔다 오렴.”

     

    그 말이 끝나자 불안하게 몸을 비틀던 아이가 ‘드디어!’라는 소리를 외치며 누구보다 빠르게 뛰쳐나갔다.

    그 소란스러움에 전염되었는지, 버스는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다.

     

    버스가 시끄러워지니 잠들어 있던 아이들도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 중에는 루크도 있었다.

     

    날씨도 좋고, 조용하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엔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지 않은가.

    어린아이의 몸은 원체 잠이 많은데, 고양이의 특성이 육신에 각인되어 본능마저 섞여 있으니.

    게다가, 잠이 오는 것을 거부할 이유도 없고 말이다.

     

    “으음, 하아암…….”

     

    루크는 창가에 기대었던 몸을 일으키고서 하품을 하다눈물샘이 눌렸는지 찔끔 튀어나온 눈물을 닦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비행기 비슷한 것은 보이지 않았기에 루크는 조금 의문을 담아 묻는다.

     

    “벌써 도착한건 아닌 것 같구나? 휴식지점인가?”

    “응, 휴게소야.”

     

    시루드가 곧바로 대답했다.

     

    “휴게소라.”

     

    하긴, 먼 거리를 한번에 갈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마차를 끄는 말과 마부의 체력이 무한한 것이 아니어서 과거에도 쉬는 구간은 한 둘쯤 있었으니까.

     

    ‘그럼 잠시 바람 좀 쐬러 나갔다 올까.’

     

    아무래도 오랫동안 폐쇄된 공간에 앉아 있으려니 슬슬 갑갑한 순간이기는 했다.

    게다가, 꼬리구멍이 없는 치마를 입어서인지 오랫동안 앉아있기 불편하기도 했고.

     

    “이곳에 정류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지?”

    “선생님 말로는 10분이라는데.”

    “흠, 꽤 짧은 시간이구나.”

     

    10분이라면 말이 쉬기엔 좀 많이 부족한 감이 있는 듯하지만, 버스는 말이 끄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자신을 반겨주는 선선한 바람에 루크는 금세 기분이 나아짐을 느꼈다.

    가슴을 쭉 펼치고 기지개를 켜내며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있으니 문득 어디선가 흘러나온 향기로운 냄새가 루크의 코에 닿았다.

     

    달콤하고 고소한 향기, 그것에 이끌리는 것은 이미 루크의 본능과 같은 것이었다.

     

    ——-

     

    루크가 달콤한 향기를 쫓아 도착한 곳은 간판에 큼직하게 ‘호두과자’라고 쓰여진 노점이었다.

     

    동그랗게 파여진 홈에 걸쭉한 반죽을 붓고, 팥 앙금을 채운 뒤에 껍데기를 깐 호두를 집어넣는다.

    그 뒤에 뚜껑을 덮고 가열하니 완성된 호두과자는, 이름처럼 호두를 닮은 모양을 띄고 있었다.

     

    루크는 그렇게 호두과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에 담고 있었다.

    여태껏 어디에서도 이런 식으로 과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멍하니 보고 있으니 이것도 꽤 신기하고 재미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있다보니 루크가 신경이 쓰인 중년의 여성은 호두과자를 만드는 것을 멈추고 루크를 향해 물었다.

     

    “얘, 호두과자 사러 온거야?”

    “아니, 그것은 아닐세. 그냥 그대가 요리하는 모습을 눈에 담고 있을 뿐이니까. 신경쓰이게 해서 미안하군, 부디 작업을 속행해주게.”

    “그, 그러니?”

     

    그녀는 뭔가 아이답지 않은 어휘력에 조금 당황하며 다시 호두과자를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루크는 아무도 모르게 작은 한숨을 쉬었다.

     

    참 아쉬운 일이다.

    루크의 지갑에는 사실 돈이 별로 없었다.

    이미 베리튼에서 사용할 여비는 환전을 한 상태였고, 추가적인 용돈은 ‘파이리스에게 맛있는 걸 사줘라’는 명목으로 죄다 거부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딱히 과소비를 할 생각도 없는 데다가, 만에 하나 후에 돈이 부족해지더라도 루크는 어떻게든 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시대에서 10살짜리 아이의 몸으로 돈을 벌 만한 일은 별로 없지만, 자신에겐 정령 감응력으로 다져진 음악적 재능이 있었으니까.

     

    그것도, 압도적일 정도의 재능이.

     

    실제로 적당한 자리에 앉아서 첼로만 켜도 돈이 들어올 정도로 자신의 연주는 돈이 되지 않았던가?

    심지어 그렇게 거리연주를 해서 한번도 허탕을 친 날이 없었으니, 어쩌면 더욱 자만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여태껏 자신의 연주에 깊이를 더해주는 파이 없이 연주를 한 적이 없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타인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연주는 할 수 있으리라.

     

    ‘하하, 내가 이토록 훌륭하게 음유시인 노릇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마법사였던 루크에게는 사실 음악적 재능이 거의 없었다.

    애초에 타인의 감정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마법사가, 어찌 타인의 감정에 영향을 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정령 감응력이 루크를 그럴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재능마저 우연의 결과가 아닌 자신이 스스로 부여한 것이니, 이 능력은 정말 순수하게 자신의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러니 더욱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정령 감응력이 별로 쓸모가 없었다.

     

    이제 휴게소에서 정류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겨우 6분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

    연주 하나를 마치기도 전에 루크는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루크에겐 오랫동안 연주해 손에 익숙한 첼로도 없었고.

     

    “…….”

     

    루크가 ‘하는 수 없이 이대로 돌아가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며 발길을 돌리려 한 순간.

     

    “뭐해, 촌스런 이름? 호두과자나 빤히 쳐다보고.”

     

    루크가 음성의 발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연분홍머리의 양갈래, 밝은 색감의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루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헬레나, 화장실이라도 갔다 왔나 보구나.”

     

    손에 미처 다 닦아내지 못한 물기로 헬레나의 행적을 추측한 루크.

    아마 틀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헬레나는 루크의 말에 딱히 대답은 하지 않은 채 팔짱을 끼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턱을 한껏 치켜들고서.

     

    아마 루크를 내려다보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루크의 키가 헬레나보다 더 커서 결국 그냥 올려다볼 뿐이 되어버렸다.

     

    자신의 작은 키가 불만이었을까, 아니면 루크가 자기보다 어리면서도 큰 것이 불만이었을까?

    헬레나는 퉁명스런 목소리로, 마치 약올리는 듯이 말했다.

     

    “먹고 싶으면 사면 되잖아? 얼마 하지도 않는데.”

     

    하지만 루크는 그런 헬레나의 언동에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뽐내고 싶어하는가 보다, 하고 생각할 뿐.

    그래서 루크는 그저 인자한 어투로 대답했다.

     

    “아쉽게도, 쓸 돈을 이미 다 환전해서 당장에 돈이 없구나.”

     

    “너, 바보야? 아무리 그래도 몇 푼은 남겨뒀어야지.”

     

    ‘바보’.

    비록 모욕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11살짜리 아이에게 들으면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루크는 입가에 미소를 그려내고는 살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 조금 바보 같구나. 조금정도는 남겨둘 걸 그랬어.”

    “어…….”

     

    너무 쉽게 인정해서 더 할 말이 없어진 헬레나는 살짝 당황한 듯 얼굴을 붉혔다.

    루크는 그런 헬레나에게서 눈을 떼고 다시 호두과자를 만드는 여성의 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 잘 봐두면 나중에 집에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달콤한 향이 루크의 침샘을 자극해서 자꾸만 침이 목으로 넘어가는 것은 딱히 의식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렇게 머릿속으로 어떻게 저 음식을 재현할 수 있을지 곰곰히 생각하는 루크의 곁에 헬레나도 섰다.

    둘은 그렇게 호두과자가 만들어지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

     

    가만히 서서 호두과자가 만들어지는 장면을 보고 있으니 5분은 금세 흘러가버려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와버렸다.

     

    그렇게 루크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몸을 돌린 순간.

     

    “이거, 하나 주세요.”

     

    헬레나가 드디어 고민을 마쳤는지 조그만 사이즈를 하나 주문했다.

     

    “그래, 이거 말이지?”

     

    헬레나의 주문을 받은 그녀가 만들어진 호두과자를 집어 작은 사이즈의 종이백을 펼쳐 담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헬레나가 문득 새침하게 말했다.

     

    “왜? 그냥 내가 먹고 싶어 졌을 뿐이야.”

     

    그 반응에 루크는 살짝 어리둥절했다.

    딱히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는데.

     

    곧 호두과자를 받아 든 헬레나가 한 알을 집어먹는 모습을 보며, 루크가 물었다.

     

    “어떻지? 괜찮으냐?”

     

    헬레나는 슬쩍 루크를 흘겨보고는 조금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무 달아, 내 취향은 아니네.”

     

    “그거 안됐구나. 혹시 환불이 되는지 물어보고 오는 게…….”

     

    “됐어, 그냥 네가 다 먹어.”

     

    헬레나는 귀찮다는 듯, 남은 호두과자가 담긴 종이팩을 루크에게 갖고 가라며 내민다.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든 루크는 살짝 놀라서 물었다.

     

    “정말인가?”

     

    “저번에 나한테 빵을 준 답례라고 쳐.”

     

    그렇게 남은 호두과자들을 모조리 루크에게 넘겨버린 헬레나.

    루크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답례로 치라니…….”

     

    딱히 빚을 지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만, 답례라고하니 받지 않을 수 없다.

    루크는 봉지에서 한 알을 꺼내어 입 안에 넣었다.

     

    한입 씹으니 부드러운 빵 안쪽에 질긴 크림처럼 가득한 앙금이 달콤하게 씹힌다. 팥 껍질과 조금 단단한 호두가 씹는 맛을 더한다.

    단팥의 달콤함과 호두의 고소함이 어우러져서 상당히 괜찮았다.

     

    자신의 생각보다 취향에는 맞는 맛이었다.

     

    하지만…….

    루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로 많이 단 맛은 아닌데…….’

     

    어쩌면, 헬레나는 단 맛을 싫어하는 것일까?

    아이들은 다들 단 맛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저번에 준 메론빵은 이것보다 훨씬 달았을 텐데, 취향이 아니었겠구나.

     

    ‘이것 참, 미안한 짓을 했군.’

     

    취향에 맞지 않는 빵을 건네고는 휙 사라져버렸으니, 그 아이가 얼마나 곤혹스러웠을까.

    미안하니 헬레나에겐 따로 또 뭔가를 만들어주고 싶다.

    그때는 조금 설탕을 더 빼서.

     

    ——-

     

    주차장에 늘어선 버스중에 자신의 반에 맞는 버스를 찾아 걸어가니, 버스의 출입구 앞에는 메리가 서있었다.

     

    “메리? 왜 나와있는게냐?”

     

    “루크, 나 잠깐 할 말이 있어…….”

     

    메리의 안색은 왜 인지 약간 붉었다.

    혹시 열이 있는 걸까?

     

    “메리, 몸이 안 좋은거라면 엠마에게 상담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아냐, 그런 거! 나는, 루크한테 할 말이 있는 거야-!”

     

    “음…….”

     

    아픈게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말하거라.”

     

    “그, 우리는 아직 어린이잖아. 그, ㄱ……. 그러니까, 버스에선 그런 거 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거라니?”

     

    메리는 그 질문에 차마 대답할 수는 없었다.

    뽀, 뽀뽀라던가, ‘주물주물’이라던가…….

     

    “…….”

     

    그런걸 부끄러워서 어떻게 입으로 말해!

    그래서 메리는 조금 우회적으로 말했다.

     

    “그, 시루드랑 한 거!”

    “음?”

     

    시루드랑 한 것?

    같이 한 것은 리듬게임을 한 것 밖에 없다.

    그런데 어째서 메리가 저렇게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루크는 잠깐 고민해보았다.

     

    “아.”

     

    그러고보니 예전에 예르나가 계속 하던 말이 있었다.

     

    ‘차에 타서는 휴대폰 하지마. 눈 나빠져.’

     

    사실, 휴대폰과 게임기의 작동원리는 아주 비슷했다.

    성능과 최적화의 차이가 있을 뿐, 회로의 전체적인 발상과 인체에 상호작용하는 부분은 같다고 볼 수가 있었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IS패널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어린아이의 눈에 안 좋다고, 과거에 한번 검색해본 결과도 그리 말해주었다.

     

    자신이 실제로 눈이 나빠질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확실히 걱정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알겠다. 자제하도록 하지.”

    “응…….”

     

    메리는 말이 잘 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루크는 그런 메리를 바라보다가 또 호두과자 한 알을 꺼내 입안에 넣으려다가 멈추고는 물었다.

     

    “아, 메리. 호두과자 하나 먹겠는가?”

    “아냐, 난 됐어…….”

     

    대체 루크는 어떻게 저렇게 태평할 수 있는 걸까……?

    역시, 사랑을 하면 부끄럽지 않나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러분! 대체 메리가 무슨 상상을 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메리는 남자랑 여자랑 뽀뽀하고 손잡고 자면 어린아이가 생긴다고 믿는 순수한 아이라구요!

    ps. 이번편은 사실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가 결국 삽화가 수정되었습니다.
    수정되기 전도 귀여워서 삭제된 삽화모음에 올라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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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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