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43

       내가 보육원에 있었던 시절, 종종 부모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다.

         

       물론 나 같은 하자 있는 아이를 구하러 온 것은 아니었다.

       우리 보육원은 주로 장애아들을 받았지만, 멀쩡한 애들도 몇 명 있었다.

       그들을 입양하러 온 것이었다.

         

       부부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입양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 5년은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사설 보육원은 지역 관공서의 협조만 있으면 바로 입양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있는 보육원의 재단은 사이비 교단 소속이었고, 그들은 해당 지역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꽉 잡고 있었다.

       정치인, 군인, 공무원 등등.

       그들을 동원하면 합법적으로든 불법적으로든 못할 일이 없었다.

       

       원장은 교단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부모들에게 돈을 내게 하고는 아이를 팔았다.

         

       우리는 입양되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아이를 위해 저렇게 돈을 내놓는 걸 보면 분명 부잣집이 틀림없었다.

       아이를 아주 사랑하는 좋은 사람들임이 분명했다.

       저 집에 들어가는 친구들은 분명 행복하게 잘 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돌이켜 보면 고작 그 정도의 돈은 부자라는 증거가 될 수 없었다.

       그 정도 돈을 냈다고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리라는 것도 보장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앵벌이로 몇 푼을 모아 상납금을 채우던 우리에게 있어서 그 정도면 평생 가도 만지기 힘든 거금이었다.

       그런 은혜를 고작 고아 하나를 위해 베풀어주는 부모들이 세상에 다시는 없을 성인처럼 보였다.

         

       우리는 떠나는 그들을 축복해주었다.

       행복하게 잘 살라고.

         

       그러나 그렇게 떠났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혹은 몇 달 있어 보육원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파양된 것이다.

         

       파양하는 부모들은 항상 ‘아이가 생각보다 문제가 있어서’라는 변명을 하곤 했다.

         

       그러나 그건 우스운 말이었다.

       세상에 문제가 없는 아이가 어디 있는가.

       친자식을 키우는 부모들도 늘 자식들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기 마련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아이들이 아니라 부모에게 있었다.

         

       아이를 구해가는 부모는 크게 2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입양을 선택한 쪽과 사고로 인해 아이를 잃었다가 죽은 아이와 닮은 아이를 발견하고 온 쪽이었다.

         

       언뜻 보면 초보 부모들이 섣불리 아이를 받아들였다가 못 견디고 파양할 것 같았지만, 보육원으로 되돌아오는 쪽은 압도적으로 후자가 많았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입양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아이를 통해 상처를 치유 받으려는 것이 목적일 수도 있었고, 아이가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에 측은지심이 발동했을 수도 있었다.

         

       그들도 처음에는 죽은 아이를 대신할 아이가 반가웠을 것이다.

       죽은 아이에게 못다 주었던 사랑을 이 아이에게 다 안겨주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점점 알게 됐을 것이다.

       그들이 데려온 아이는 죽은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입양한 아이 때문에 자신들이 더는 죽은 아이를 추모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괴감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가짜 인형을 자리에 앉혀 두고, 진짜 아이에 대해서는 잊어 가다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입양한 아이에게 주었던 사랑은 사실 죽은 아이에게 준 것이었다.

         

       그냥 둘이 전혀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입양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부모들도 많았다.

         

       엉뚱한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받아야 할 사랑을 대신 받고 있었다.

       엉뚱한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앉아 있었다.

         

       그것은 부모들에게 당혹스러운 공포와 낯선 분노를 느끼게 했다.

         

       명백히 자기네의 선택으로 인해 벌어진 일인데, 정작 원망은 아이에게 돌렸다.

         

       특히 로드 판타스틱처럼 자부심 넘치는 사람이 자신의 실수를 매일 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자괴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렇다고 파양 따위를 하는 것은 또 그의 자존심상 용납하지 못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니까.

         

       그렇게 그가 선택한 것이 레이나를 냉대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그녀를 버리는 것이 아닌, 그녀가 자신을 버리게 함으로써 이 가짜 관계를 종식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레이나는 위와 같은 배경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가 진실을 아는 것은 앞으로 4년 뒤의 일이었다.

         

       나는 마차 옆에 앉은 그녀를 돌아봤다.

       그녀는 견고한 성채처럼 빈틈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배신당하고도, 그의 가르침을 여전히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 그것은 한 번의 균열로 무너져내릴 것 같은 유리의 성처럼 보였다.

         

       종종 가로등 밑을 지날 때마다 빛이 마차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의 눈가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봤다.

       그녀는 눈가를 바로 훔쳤지만.

         

       우리는 파양된 친구들이 돌아왔을 때,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보육원으로 돌아온 것을 반겨야 하는지, 아니면 그 집밥이 별로였냐고 함께 욕하면서 웃어야 하는지 몰랐다.

         

       피가 통하지 않았지만, 보육원 안에서 끈끈한 정을 나누었던 우리였다.

       가족 같은 유대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비유가 적절한 것인지 의심이 들곤 했다.

       가족이 되는 것은 가족 같은 사이가 되는 것보다 더 힘들고 멀어 보였다.

       도대체 파양 당한 친구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른이 되어 사정을 모두 아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는 여전히 납득하기 힘들었다.

       로드 판타스틱 같은 남자의 마음은.

         

       “우리 별장 말이죠. 절벽에서 보는 경치가 정말 좋아요!”

       “핫핫, 휴가를 왔다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가시면 됩니다!”

         

       유라크네와 스벤이 손님을 즐겁게 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의 미소도 짓지 않았다.

         

       여전히 턱을 꼿꼿하게 들고 냉정한 표정을 가장했다.

         

       마차에서 내린 우리는 저택으로 올라가는 골목길 앞에 섰다.

         

       아나이스가 구해준 별장은 정원이 해안가 절벽 쪽으로 나 있어, 괴물 단원들이 외부인들의 눈길을 끌지 않고 마당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덕분에 마차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조금 걸어야 하는 게 흠이었다.

         

       “이곳은…….”

         

       함께 골목길을 오르던 레이나는 어떤 절벽을 마주하고 잠시 발걸음을 멈춰 섰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위를 올려다봤다.

         

       근방에서 제일 큰 저택이 저곳이라고 했던가?

         

       “왜 그러시죠?”

       “저기가 우리 숙소예요.”

         

       그러면서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뭔가를 알아차렸다는 얼굴이었다.

         

       “황금 카니발의?”

       “……네.”

       “후후, 가까운 데 있었군요.”

         

       저들이 머무르고 있다는 귀족의 별장이 바로 이웃 사이였다니.

       안심했다.

         

       강당에서 엘라가 황금 카니발 진영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규정상 2주 뒤에 그녀를 다시 돌려받을 수 있었다.

         

       황금 카니발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TT1에 나온 99명의 서포터 중에 황금 카니발 소속이 제일 많았다.

         

       그러나 레이나가 저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보자 괜히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로드 판타스틱이 엘라에게도 무슨 해코지를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다.

         

       “영감님, 엘라를 따라가 주세요. 치료사 자격으로요.”

       “맞아요! 적지잖아요! 혼자 보내기는 불안해요!”

         

       유라크네가 맞장구를 쳤으나 가스통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치료 안 하기로 했잖나.”

         

       이 노인네가 이제는 삐친 척도 하네?

         

       나는 다시 한번 부탁했다.

       이번에는 스승님이라는 단어도 붙여서.

         

       가스통은 우쭐한 표정을 지었으나, 금방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나 같은 노인네는 틀니 바이러스라는 게 있어서 10대 소녀 근처에 다가가면 큰일 난다고!”

         

       저런 개소리를 저렇게 진지한 얼굴로 하다니.

       처음에는 그가 빈정거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진심이십니까?”

       “어허! 내 말을 못 믿는 건가? 이 서커스단은 늘 그렇지만 장유유서가 엉망이야. 그렇지 않습니까, 형님?”

         

       가스통의 고개가 돌아갔다.

         

       우리는 스벤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며 턱뼈를 달그락거렸다.

         

       “하하……. 아까 몇 마디 농담한 것이 이렇게 될 줄은…….”

       “틀니 바이러스!”

         

       가스통이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스벤의 인스피라인 <광대의 허언>이었다.

       웃음기를 뺀 그의 거짓말은 단원 외의 사람에게 약한 최면을 발휘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풀렸다.

       별장의 관리인도 북극으로 여름 휴가를 떠날 계획을 짜다가 3일 만에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씩씩대며 우리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스벤은 거기다 대고 또 장난을 치려 했지만, 이미 최면이라는 것을 알고 경계하는 이에겐 잘 먹혀들지 않았다.

       ‘약한’ 최면이었으니까.

         

       스벤은 아까 가스통을 한동안 엘라에게 떨어트려 놓기 위해 최면을 걸었다고 했다.

       틀니 바이러스라니.

       가벼운 장난이었겠지만, 그것이 지금은 상황을 더 꼬이게 했다.

         

       “어쩌죠? 엘라를 혼자 가게 두면…….”

       “틀니 바이러스만 없었어도 내가 가는 건데!”

         

       가스통이 술 취한 사람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고 보니 그의 몸에서 독한 술 냄새도 났다.

       저 취기 때문에 최면이 더 잘 먹혀든 모양이었다.

         

       나는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벤의 최면을 바로 푸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가스통을 서커스단에 넣는 것이다.

         

       나는 대회 측에 두 번째 선발은 ‘기권’을 하겠다고 의사를 전달했다.

       그리고 가스통을 서커스단에 받아들였다.

         

         

       [‘가스통 할리우덴’이 단원 목록에 추가되었습니다.]

         

         

       알림창이 뜨는 동시에 가스통이 눈을 껌뻑였다.

       방금까지 틀니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마야 보고 썩 물러가라고 소리치던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뭐지?”

         

       나는 당황하는 그에게 스벤의 인스피라에 대해 설명했다.

       더불어 그가 90대가 아닌 59살이라는 것도 가르쳐주었다.

         

       “이, 해골 자식이! 날 잘도……!”

       “핫핫,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까는 보드카 보고 김빠진 맥주라고……!”

         

       나는 스벤의 멱살을 잡으려는 가스통을 말렸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엘라에게 가주시길 바랍니다. 어서요.”

       “아, 알았네.”

         

       그는 황금 카니발 진영으로 바로 떠났다.

       연금술 길드의 마스터이자 토마토 온실의 전직 관리자라는 명함이 주는 힘은 컸다.

       그가 엘라의 주치의라고 나서자 황금 카니발 측도 거절할 수 없었다.

         

       단원 관리 목록에는 여전히 엘라가 떠 있었다.

       다행히 시스템은 그녀를 아직 우리 소속으로 판단했다.

       

       이러면 ‘음향실’을 통한 음성 채팅도 쓸 수 있었고, ‘단원 퀘스트’ 기능도 작동할 터였다.

         

       이제 위치도 바로 옆인 걸 알았으니, 상황이 다급하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었다.

         

       나는 레이나에게 엘라가 쓰던 방을 내주었다.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쪽 입장에서 불청객이라 할 수 있는데…….”

         

       나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하하, 아닙니다. 장난에 어울려 주는 게 또 키르쿠스의 신도들 아닙니까? 후후. 어차피 2주 뒤에 트레이드를 할 겁니다.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때까지 레이나 양은 우리 손님이니까.”

       “……네.”

       “필요한 게 있으면, 종을 쳐서 랫맨을 부르시면 돼요. 새벽에도 교대로 대기하고 있으니까 언제든 상관없어요.”

       “……네.”

         

       나는 침울한 그녀의 분위기를 보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

       그러나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었다.

         

       외부인인 내가 부녀의 사정에 대해 잘 아는 척하는 것은 웃긴 일이었다.

       무엇보다 ‘황금 천칭’을 연기하는 그녀가 그런 얄팍한 위로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일단 오늘은 푹 쉬세요.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죠.”

       “감사합니다.”

         

       나는 문을 닫고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기 직전에 복도 저편에서 울음소리 비슷한 것을 들었다.

       흐느낌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옅은 한숨을 내쉬며 계단을 내려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 새로운 표지를 맞추고 싶었는데 일러스트가 좀 늦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올해 안에는 나올 것 같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