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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3

       *

         

         

         이동 거리와 주변 지형 따위로 방위를 잡고, 일출과 일몰, 별자리 등으로 다시금 이를 역산한다면 비교적 정확하게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오차 범위가 큰 지도를 지니고 있다 한들 어쨌건 이것은 군용 지도다. 축척이 부정확하다 한들 지면에 표기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량을 자랑하는 물건이다.

         

         따라서 이반은 지금 그가 있는 위치와, 이틀 안에 타우르스가 보일 수 있는 최대 진군 거리를 계산할 수 있었다.

         

         침투 경로를 따라 방사형으로 열 개의 마을이 진군 범위 내에 있다. 개중 다섯 개의 마을은 실제로 수탈당했을 것이다.

         

         

         ‘베르토망은 무너졌겠군.’

         

         

         아무런 사전 대비 없이, 전선에서 훌쩍 떨어진 곳의 지방 토호가 대응할 수 있는 침탈이 아니었다.

         

         이반은 불타버린 마을을 거닐고 있었다.

         

         

        -타닥. 으직.

         

         

         발치에 까맣게 탄화된 유해 하나가 짓밟혔다. 깨끗하게 발골된 정강이 뼈였다. 여성의 것이고, 최소한 성인은 되었을 크기다.

         

         그의 몸 위로 긴 그림자가 늘어섰다. 해질녘의 석양을 막아선 구조물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뼈무덤이 있었다.

         

         

         ‘투모르 직속 근위보병대 출신인가.’

         

         

         주위에 찍힌 발자국은 성체 타우르스의 것들이었다. 타우르스와 오크들 중에 ‘먹을 것’으로 이런 ‘비효율적인 짓’을 벌이는 놈들은 투모르의 보병대 뿐이었다.

         

         네크로맨서나 데이몬 따위의 기타 마족들 중에선 마법적 의식을 위해 치루는 경우가 종종 있겠으나, 타우르스는 그렇지 않다.

         

         이 멍청한 족속들은 인간을 식량으로 바라보니까.

         

         그러므로 시체를 쌓아둔 채 불을 지르고, 몇몇 시체는 기괴하게 꺾어 장대에 걸어둔 이 행태는 비정상적이다. 이것은 투모르를 위한 제사였다.

         

         

         ‘의식을 주관할 수 있을 수준의 고위 마족이 이 무리를 이끌고 있군.’

         

         

         놈들의 위협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려야 했다. 적어도 백부장 이상의 병사가 최소한 천은 족히 되는 정예 부대를 이끌고 침탈한 상황이다.

         

         생존자 없는 마을을 지나며, 이반은 다시 머릿속에 지도를 펼쳤다.

         

         베르니니 산맥에서 시작된 붉은 점들이 방사형으로 점점히 펼쳐지고 있었다. 푸른 초원을 오염시키는 흑사병처럼.

         

         

         ‘모람동, 르드미유, 드몽모르 정도가 아직 안전 지역으로 분류될 수 있겠고.’

         

         

         다리를 한 차례 풀고 영양바를 씹어 삼켰다. 아직 침략 초기에 있는 영지들을 머릿속에 그리고, 만일 이 영지에서 생존자들이 있다면 그 유민들이 어디로 흘러갈지 생각했다.

         

         가장 가까운 모람동은 마을 네 개 정도의 소규모 영지다. 르드미유는 그나마 요새화된 거점이 있다 하겠다. 드몽모르부터 이어지는 드넓은 평야는 방어 전선이 마땅치 않다.

         

         마족군과의 회전을 감당해야 한다면 적어도 이쪽 병력이 동수를 맞추어야 할 것이다. 타우르스는 기동력이 기병의 것에 모자람이 없으니.

         

         그렇다면….

         

         

         ‘모람동으로는 모자라. 최소한 네 개의 영지가 모여야 한다.’

         

         

         그가 없다고 가정할 때, 인근 영지만의 병력으로 지금의 타우르스 병력을 막아내기 위해선 베르토망 수준의 작은 지방 영지가 넷 이상 모여야 할 것이다.

         

         그 영지들이 모였을 때, 최소한의 군사력이 확보되었을 때. 마족을 막아서기 위해 집결한 영주들 앞에서 대백작들은 무슨 짓을 시도할까.

         

         

         ‘에타크리히의 이름 아래에 집결시키고 대백작들을 견제한다면.’

         

         

         나라를 지킨 영웅으로 숭배 받으며 상 마틸렌느로 향하려는 기욤의 계획이 무너지고 만다. 마족들은 그의 손으로 막아내고, 모인 영주들의 병력을 규합해 위기에 처한 상 마틸렌느로 향한다.

         

         그때 기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신의 병력으로 이 영주들을 막아서는 것뿐. 그렇다면 놈의 가면극도 끝이다. 그 순간부터 놈은 그저 반군에 불과하다.

         

         귀족 정치에서 명분이란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명분을 잃은 기욤이 회전을 시도한다면, 그 순간이 놈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흩어져 있는 병력을 하나하나 잘라나가는 것은 시간도, 노력도 많이 필요하지만.

         

         뭉쳐 있는 병력 속에서 적의 수뇌를 잘라내는 것은 익숙한 일이니까. 설마 기욤의 군영이 칠용장의 왕거보다 험하겠는가.

         

         이반은 혀를 차며 몸을 풀었다. 영양바가 위 속에 녹아 내리는 것을 느낀 직후, 그는 다리를 박차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

         

         

         몇 개의 화전민촌과 소수의 교역촌으로 이루어진 작은 영지, 베르토망은 타우르스의 침탈 이튿날 반나절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영주, 드 노아르 남작을 포함한 소수의 생존자들만 간신히 베르토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다섯 명의 기사를 포함하여 고작 오십여 명의 영민을 간신히 유지한 채로.

         

         

         “대체 어디서…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베르니니 산맥에 에타크리히 대공께서 친정하셨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았습니까. 지원을 청하시려면 그리로 가심이….”

         “우리만 따로 달려가서야 무슨 의미가 있느냐!”

         

         

         노아르 남작은 종사에게 버럭 소리지르고는 곧장 후회했다. 그의 곁을 지킨 몇 안 되는 가신 중 하나였다. 영지가 전소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대우받아 마땅한 이였다.

         

         노아르 남작은 숨을 크게 몰아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솔 몇과 기사 다섯, 그리고 간신히 수습한 유민이 오십여 명에 불과했다. 천여 명에 달하던 영지민이 고스란히 마족의 아가리 속에 들어갔다는 의미다.

         

         모두 전멸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직 고작 하루가 지난 시점이니까.

         

         그러나 노아르 남작은 차라리 그들 전부가 이미 죽었기를 바랐다. 보호 없이 마족의 군세 아래에서 살아 있다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일 테니까.

         

         

         “주여.”

         

         

         그는 성호를 긋고는 말을 이었다.

         

         

         “모람동에 몸을 의탁한 뒤, 에타크리히 대공과 상 마틸렌느에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지금 당장 우리만 몸을 빼서 달아난다면 저들은 누가 지켜주겠는가?”

         “각하, 하지만 유민들을 이끌고 퇴각하시는 것은 시간이….”

         “시간을 벌기 위해 영민을 던지고 퇴각하라? 그 뒤엔? 우리가 여전히 귀족일 수 있겠나? 자네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영민과 봉토를 상실하고, 행정귀족으로서의 직위도 없는 시골 영주에게 미래가 있을까. 없다. 상 마틸렌느의 귀족원은 재정복한 영지를 귀족에게 분배한 뒤 그를 버릴 것이다.

         

         명분이야 귀족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이겠지만….

         

         남작은 이를 꽉 깨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미래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루를 살더라도 귀족으로 살고, 귀족답게 죽어야 했다. 그것이 가문이 살아남는 길이다.

         

         

         “가도를 벗어나 이동한다면 놈들의 추적을 최대한 늦출 수 있을게다. 놈들은 이 땅 지리에 익숙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결국 따라잡힐 겁니다.”

         “이런 꼴로도 두어 시간 정도는 벌 수 있겠지. 모람동의 영지로 들어갈 시간 정도는 버텨내 보이겠다. 내 가족을 부탁하마.”

         

         

         갑옷을 챙겨 오지도, 제대로 된 무장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장검 한 자루와 가벼운 튜닉 차림이 끝인 허름한 행색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 전쟁에서 살아남은 귀족이다. 투모르의 전선에 직접 부딪쳐가며 생존한 기사였다. 용사 파티가 나타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쭉.

         

         평화에 찌들었다고 표현하기엔 그 시간이 너무 짧지 않았는가. 그는 여전히 현역임을 자부하고 있었다.

         

         몇 안 되는 기사들을 훑었다. 저들 모두 그와 함께 같은 전역에서 내달렸던 참전 군인들이었다. 이젠 황혼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더라도, 여전히 전쟁을 기억하는 자들이다.

         

         

         “자, 다들 하루를 살더라도 귀족으로 살아야지 않겠나.”

         “기왕이면 귀족으로 일년 정도는 더 살고 싶은데 말입니다, 각하.”

         “그럼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구나.”

         

         

         남작이 피식 웃자, 기사들이 왁자지껄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추레한 행색의 늙은 사내 여섯은, 그러나 창칼을 날카롭게 치켜들고 유민 일행의 후미로 향했다.

         

         

         “우린 이 자리에서 시간을 벌겠다. 이후부턴 가도를 벗어나 모람동까지 멈추지 말고 가라. 모람동의 세르테 남작에게 경고를 해주고, 근방 영지들에게 소집령을 요청해.”

         “하지만 그 치들이 저희 말을 듣겠습니까? 저희가 간다 한들 방관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인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나라는 고작 한 무리의 마족에게 무너지겠지.”

         

         

         남작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십수만의 마족 군단과 직접 투쟁하고도 제 조국을 지켰던 사내들은 다 어디에 사라지고, 고작 저 정도의 수에 내륙까지 침탈당한다는 소리인가.

         

         동부 전선이 무너진 것인가? 파발을 보낼 새도 없이? 그렇다면 정녕 이 나라는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아마 인근의 대영주들이라면 지금 그의 영지를 침탈한 정도의 마족 따윈 손쉽게 막아낼 것이다. 그러나 초기 진화에 실패했다는 것, 마족이 지금 이 자리까지 돌출했다는 것, 그리고 동부 전선에서부터 이 먼 땅까지 누구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베르니니 산맥 너머의 영지들은 어떤 상태가 되어 있을 것인가. 만일 저들이 선봉에 불과하다면, 만일 동부 전선의 군단이 무너졌다면, 이 상황에서 이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절망감이 그의 머리를 깊게 눌렀다. 아마 전역에 종사했던 이 자리의 기사들 또한 같은 것을 깨닫고 있을 터였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지.”

         

         

         낯선 목소리가 수풀 너머에서 들렸다. 기사들은 즉시 칼을 겨누며 자세를 잡았다.

         

         누가 되었든, 낯선 손님이란 언제나 위협적인 법이다. 특히 이런 취약한 상황에서라면야.

         

         곧, 수풀을 헤치고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들 못지 않은 허름한 행색에, 나뭇가지에 쓸려 찢긴 듯 헤진 옷차림. 그리고 온몸을 푹 적셨다가 간신히 굳은 듯한 혈흔까지.

         

         누가 봐도 도적과 다를 바 없는 차림이었다. 노아르 남작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귀하는 누구요? 지금 우린 손을 맞이할 상황이 아니오만.”

         “이반 페트로비치 예레모프.”

         

         

         사내는 수풀을 거칠게 털어내며 가도 위로 올라섰다. 망토를 대충 묶어 만든 묵직한 보따리 하나를 들고 있는 채였다.

         

         그 안에서 스며나온 질척한 핏물을 애써 무시하며, 남작은 으르렁거렸다.

         

         

         “이 땅의 이름이 아닌데, 크라실로프의 귀족이 무슨 용무로?”

         “마족을 죽이러.”

         

         

         이반의 목소리는 평이했다. 특별히 대단한 어떤 임무를 수행한다기보다는, 평소에 해왔던 일들을 마저 끝내러 왔다는 식이었다.

         

         

         “귀하가 그것을 어찌 알고 이런 시의적절한 순간에 홀로 나타나셨다는 말이오?”

         “시간이 넉넉한가?”

         “뭐요?”

         “의심하고, 증명을 원하고, 납득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넉넉하냐고 물었다. 급해 보이던데.”

         “그렇다고 무턱대고 불청객의 말을 귀담아들을 이유는 없지.”

         “에타크리히 공작의 전언이다.”

         

         

         이반은 망토를 대충 엮어 만든 보따리를 남작의 앞에 휙 던졌다.

         

         그 무례에 날선 반응을 보이려던 기사들은, 바닥에 구르며 풀린 망토 사이를 바라보고는 멈춰섰다.

         

         타우르스의 잘린 머리가 다섯 개 들어있었다. 여전히 피가 굳지 않아 흥건한, 혀를 빼물고 있는 우악스러운 소의 머리가.

         

         날카로운 송곳니는 육식 동물의 것이었다. 참전 경력이 있는 기사들은 본 순간 저것의 진위를 의심하지 않았다.

         

         

         “남작, 네 소집령으로는 근방 영주들을 설득할 수 없겠으나. 에타크리히 공작의 말이라면 다르지.”

         “증거… 그 귀족들을 설득할 증거가 없잖소. 그것이 에타크리히 공작의 말이라는 증거가.”

         “네 목을 걸어라. 거짓일 경우 공작의 명령을 위조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받아들이겠다고.”

         “뭐요?!”

         “잃을 것이 더 남았나?”

         

         

         이반은 영민을 한차례 훑고는 다시 남작을 바라보았다.

         

         

         “근방 영주들이 모여 마족을 막아내든, 그렇지 않고 이대로 밀려나가 몰락하든, 어차피 더 잃을 것이 없지 않은가.”

         “귀하의 말 몇 마디로 장담하기엔 대공의 이름이 너무 드높지 않겠소?”

         “나는 장담하지 않는다.”

         

         

         이반은 피 묻은 검을 툭 떨어트렸다. 이가 빠져 헐어 있었다. 대충 보이는 것을 집었더니 이 모양이다. 역시 무기는 꼼꼼하게 관리한 것들을 사용해야 했다.

         

         

         “그 대신 증명하지. 너희는 이 자리에서 시간을 벌겠다며 목숨을 걸지 말라. 더 귀한 곳에 걸어도 모자라니까. 에타크리히 공작의 전언을 근방 영지에 모두 알려라. 공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베르니니 산맥에서 전투를 이어가고 있으니까.”

         “역시 베르니니까지 전선이 밀렸는가…!”

         “이제 떠나라. 대공의 이름 아래에 군대를 모아서 다시 오라. 닷새 안에 모람동을 전선으로 잡을 수 있도록, 충분히.”

         

         

         이반은 가장 앞선 기사에게서 검을 받아들고는 몸을 돌렸다. 얼결에 검을 내어준 기사는 멍한 눈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대응하기도 전에 빼앗겼다. 다가오는 손을 인지하지도 못했다. 그것만으로도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어서, 기사는 다소 주눅든 눈으로 이반의 등을 바라보았다.

         

         이반은 검을 한 차례 살피며 낮게 말했다.

         

         

         “잘 관리했군.”

         “아직 쓸 일이 많은 시대니까.”

         “훌륭하다.”

         

         

         이반의 말에 기사가 문득 물었다.

         

         

         “귀하가 목숨을 걸 이유가 있소? 그대는 크라실로프 사람이잖소?”

         “마족이 인간을 국적으로 구분하던가?”

         

         

         이반은 피식 웃으며 검을 갈무리해 허릿춤에 묶었다.

         

         

         “아니면 귀국의 용사가 인간을 국적으로 구분하여 구원했던가.”

         “그대가 용사라도 된다는 듯이 말하시는구려.”

         “그럴 주제는 되지 못하지.”

         

         

         하지만 따라는 해줄 수 있지.

         

         이반은 뒷말을 애써 삼켰다. 질 베르가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도, 당대에도 용사파티가 아닌 적 없다 했던가.

         

         여전히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격지심 따위가 아니라, 그저 담담한 자기객관화에 해당한다. 자격지심은 질 베르 같은 소인배나 가지고 있는 감정이니까.

         

         그는 이 사람들을 구할 것이다. 그의 목적을 위해서. 틸레스의 존속이나 영민들의 목숨을 귀히 여겨서가 아니다.

         

         다만 그의 목적을 위해서. 대백작들을 견제하고, 개중 하나를 제거하기 위해서.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 탓이다.

         

         그러니 그는 스스로 용사 파티의 일원이라 자부하지 못하리라. 용사와 그 일행은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눈 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보이는 모든 이들을 구하려 시도했으니까.

         

         정상인이 그 미치광이들을 따라할 수는 없는 법이다. 소시민에겐 소시민의 삶이 있는 까닭이다. 이반은 그러니, 그저 척후의 입장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현대인인 이반은 자신이 용사 파티라 여기는 대신. 친구의 헛소리에 잠시 어울려주는 것이다.

         

         어쨌건 친구의 이름을 팔고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귀하의 헌신에 감사드리오.”

         

         

         감명받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남작을 일별하고, 이반은 다시 걸음을 옮기려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아. 한 가지만 더.”

         “말하시오.”

         “귀관의 충성은 어디로 향하나.”

         “당연히 나의 주군과 이 나라를 향하오. 위대한 틸레스의 천년 왕가를 위해서.”

         

         

         일말의 머뭇거림 없는 남작의 대답에 이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하군. 하며.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남작은 영민들을 다독이며 가도를 떠났다.

         

         홀로 남은 이반은 다시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흔적을 지우지 않았으니 반나절 안에 도착하겠군.’

         

         

         도망치는 유민들의 흔적과, 흩어져 있던 소수의 타우르스 추적대의 시체를 뒤섞어 길을 마련해 두었다.

         

         놈들은 이제 눈이 뒤집혀 달려들 것이다. 그가 있는 자리를 향해서.

         

         최소한 백인대장 이상이 끼어 있는, 잘 훈련된 타우르스 천여 명을 홀로 맞설 수 있을 것인가.

         

         할 수 있다. 해봤으니까.

         

         정면으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연전을 벌이며 천천히 깎아 나간다면 그 두 배를 상대로도 해본 바 있다.

         

         그렇다면 집결되어 방진을 짜고 덤벼드는 타우르스를 상대로 한다면 어떤가.

         

         할 수 있다. 하는 것을 본 적 있으니까.

         

         질 베르는 충분히 여물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제 갓 기사 서훈을 받은 상황에서도 했던 일이다.

         

         그 어린 시절의 녀석에게도 밀려서야 척후 일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다면, 모방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가 받았던 훈련은 그런 것들을 위해서였으니.

         

         이반은 무장을 점검하고 적당한 자리에 모닥불을 피웠다. 젖은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충분히 연기가 피어오르도록 뒤적이며.

         

         영양바를 적당히 군불에 굽고 으적거리며. 차갑게 식은 눈으로 숲과 이어진 지평선 어림을 노려보았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끊기 애매해서 걍 붙였는데 너무 고봉밥이면 말씀 주세요!
    이번 화는 정보량이 많아서 글을 다이어트 시킬 필요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다이어트 포기한지 좀 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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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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