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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3

       

       

       

       

       

       143화. 서리용 ( 1 )

       

       

       

       

       

       “허…”

       

       

       현실이라는 느낌도 없고, 실감도 나지 않았지만. 그리고 이 18만 원이 사기당한 것이 아니라면.

       

       방금 전까지의 모든 일들이 현실이라는 뜻이었다. 케넬름을 만났고, 케니스와 노인의 이야기를 들었고, 별자리를 쏘아 올렸다. 그 대가는 단돈 18만 원.

       

       순간적으로 냉장고에서 고이 잠자고 있는 콩나물과 케챱이 스쳐 지나갔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게 아니다.

       

       

       ‘…진짜 내가 신이라고…’

       

       

       텅빈 방 안에서 손을 꽈악 쥐었다 피며 되새겨본다. 사실 케넬름을 만났을 때도 엄청나게 힘이 솟구친다거나 그런 느낌은 없었다. 그냥… 그냥 평소와 비슷했다.

       

       별자리를 만들었을 때도, 그저 그렇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했을 뿐. 엄청나게 특별한 무언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툭.

       

       침대에 풀썩 몸을 던져 누웠다. 습관이라는 것은 참 무서워서, 편하게 누우니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게임을 켜고 있었다.

       

       익숙한 로딩 화면이 지나간다. 신전과 열심히 일하는 드워프, 그리고 초원 한 곳에 놓인 서리알이 보인다.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되는 게 금방이라도 부화할 것 같다.

       

       

       ‘이것들도 전부 살아있다는 소리잖아?’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드워프 하나를 붙잡아서 슥 들어 올린다. 손가락을 따라 하늘을 날아오르는 드워프. 짧은 다리를 열심히 버둥거리며 발버둥 친다.

       

       

       《ㅇr이고 ㄷ,ㅡ워프 살ㄹㅕ=!¡》

       

       

       이리저리 손짓하다가 툭, 광산 근처에서 내려줬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감이 가지는 않았다. 내가 하는 이 게임이, 정말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 내 행동들이 실제로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니.

       

       이거 좀 큰일 아닌가, 싶다가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막상 그렇게 큰일은 아닌가 싶었다.

       

       

       ‘내가 뭐 사람한테 스킬을 쓰기를 했어, 누굴 죽이기를 했어?’

       

       

       오히려 내 영웅급 캐릭터들 죽지 말라고 애지중지 아껴가면서 게임을 했고, 가끔 ‘세계 탐험 모드’에서 회색으로 보이는 것들만 벼락으로 골라 죽였다. 케넬름이 부탁한 악마를 죽이는 일을 진작부터 하고 있었고.

       

       나는 그저 이 게임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전부터 그랬지만.

       

       

       ‘아. 케니스 시련까지 전부 끝났으니까 이제 무기 합성 해줘야 되는데.’

       

       

       초원에 놓인 서리알을 콕콕 치면서 생각을 정리하다가, 문득 콜로세움의 이벤트를 열었던 목적이 떠올랐다. 

       

       ‘성급 강화’

       

       영웅급 모험가가 동일한 무기 2개 이상을 보유하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무기가 강화되는 시스템.

       

       이걸 위해서 미리 설정해둔 등수의 상품에 맞게 모험가들의 등수를 조절하느라, 그야말로 피똥 싸가면서 온갖 고생을 다 했다.

       

       이제 그 기나긴 고생의 보상을 수확할 시간이다.

       

       

       ‘이게 현실이니까 강화는 중요한 거야.’

       

       

       오히려 저쪽 세계를 위해서라도 순위 조작은 필수적이었다. 순위 조작을 해서 영웅급 모험가들이 강해지고, 그걸 바탕으로 악마들을 더욱 수월하게 잡을 테니.

       

       이건 정당하고 정의로운 순위 조작이다.

       

       마음 속의 작고 소중한 양심과 타협을 마치고 익숙하게 화면을 조작하여 콜로세움 전용 UI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내 손바닥 위에 있던 케니스와 노인이 콜로세움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 “여섯 버jㄴ째 신 만ㅅ£ㅔ! 용ㅅr님과 대사ㅈ#ㅔ님 만세!”

       

       – “위대ㅎjㅏ고 거$,룩f한 그 이르£¥ㅁ을 찬야#ㅇ하라!”

       

       

       둘의 주위를 빼곡하게 둘러싼 사람들이 연신 크게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큰 경사라도 났다는 듯한 반응.

       

       대사가 좀 깨져서 나왔지만, 그럭저럭 읽을 만한 수준이어서 큰 지장은 없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콜로세움 이벤트의 최종 등수를 확인했다. 케니스는 시련에서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아마 10등이나 할테지만…

       

       한스 대신 케니스가 유니콘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니지. 어떻게 보면 이 게임의 운영자라고 할 수 있는 케넬름이 나를 보좌하는 거잖아.’

       

       

       운영자의 힘을 쓴다면, 순위를 조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순위창을 열었다.

       

       빠밤ㅡ!

       

       경쾌한 팡파레 소리와 함께 열리는 등수표.

       그 결과는…

       

       케니스가 1등이었다.

       

       

       “나이스! 나이스!!”

       

       

       허공에 뻗어지는 기쁨의 어퍼컷.

       

       운영자의 힘과 현질의 힘. 이 두 가지 힘을 손에 넣은 나는 무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케넬름은 신이다. 나는 무적이고.”

       

       

       사실은 내가 신이지만, 아무튼 케넬름은 신이다.

       

       이 기쁨을 케넬름에게 바치며 콜로세움 이벤트의 최종 정산을 눌렀다.

       

       

       

       

       

       *****

       

       

       

       

       

       “위대한 여섯 번째 신을 찬양하라!”

       

       “빛으로 우리를 품으시는 분! 오오, 별빛으로 속삭이시는 분!!”

       

       

       광란에 가까울 정도로 달아오른 열기. 결투장은 잔뜩 흥분한 관중들의 환호성으로 고막이 터질 지경이었다. 바로 옆 사람의 몸을 끌어안고 소리 지르며 어깨동무하여 환호하고.

       

       신께서 직접 강림하시어 용사님과 대사제님을 데려가셨고, 다시금 별빛으로 돌아오셨으니!

       

       관중들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더욱 거세게 끓어올랐다.

       

       음유시인들은 미친 듯이 손을 놀리며 솟구치는 영감을 적어 내렸고, 이 역사적이고 신화적인 순간을 기록하는 학자와 신관들의 손은 거칠게 떨려왔다. 

       

       화륵ㅡ!

       

       그 모든 소란에 마침표를 찍듯, 결투장에서 고고하게 타오르던 성화가 거세게 몸을 부풀렸다. 성화가 점차 크게 타오를수록 주변의 환호성은 사그라들었고, 그 빈 자리에는 터질 듯 차오르는 긴장감이 아른거렸다.

       

       결투의 축제가 시작된 이후 단 한 번도 꺼지지 않은 신묘한 성화들이 커다랗게 타오른다. 

       

       하늘을 불태울 기세로 덩치를 부풀리던 성화는 이윽고 제 몸에 있는 것들을 세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흐릿한 그림자로밖에 보이지 않던 성물이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파앗ㅡ!

       

       “우왓!”

       

       “서, 성화에서 뭔가 나온다!”

       

       

       어느 것은 검이었고, 또 어느 것은 방패였다. 반짝이는 보석도 있었고, 길쭉한 지팡이와 망치도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머리에 뿔 달린 말도 존재하였다.

       

       번쩍이는 백금빛의 무구들. 천천히 허공을 날아 제 주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허나 기묘하게도, 성물을 받은 이들 중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과 똑같이 생긴 것을 받은 이들도 있었으니.

       

       

       “뭐야 이거? 내 도끼랑 똑같이 생겼는데? 야, 너도 그래?”

       

       “예 공녀님… 제 방패랑 아주 똑같은데요?”

       

       

       프리가와 이스칼, 케니스 그리고 제국의 기사단장에게 성물을 양도받은 카이사르 황제가 그러하였다.

       

       

       “흠, 이게 무슨 영문인지.”

       

       

       카이사르는 양손에 똑같이 생긴 왕홀을 비교하며 중얼거렸다. 두 왕홀의 차이점이라고 하면 색밖에 없을 정도로 세세한 부분까지 아주 똑같았다.

       

       신께서는 어찌하여 같은 성물을 다시 한번 주셨단 말인가?

       

       손가락을 톡톡 흔들며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 위해 고민할 때, 이변이 일어났다.

       

       화아악ㅡ!

       

       성화에서 나온 쌍둥이처럼 똑닮은 무구가 끝에서부터 점차 빛가루로 부서지기 시작했다. 신께서 주신 성물이 부서지다니!

       

       

       “꺄아악! 야, 야 이거 왜 이래 이거!”

       

       “고고고공녀님 진정, 진정하세요! 으아아아! 내 방패!”

       

       

       빛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도끼를 붙잡으려 펄쩍펄쩍 뛰는 프리가와 먼지처럼 사라지는 방패를 끌어안는 이스칼. 카이사르도 점차 사라져가는 왕홀을 바라보며 침음을 흘렸다.

       

       빛가루는 그저 흩날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무구에 스며들고 있었다.

       

       물에 녹아드는 소금처럼, 땅에 스며드는 빗물처럼 무구의 표면을 따라 녹아들며 빛이 퍼져나간다. 빗방울이 떨어지며 원을 그리듯 무수히 작은 파문들이 생겨나고, 저들끼리 합쳐지고 부딪히면서 점차 거대한 울림이 되어간다.

       

       드드드ㅡ!

       

       “흐읍!”

       

       

       손에 쥔 왕홀의 떨림이 점차 심해진다. 카이사르는 왕홀을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한 손으로는 부족하여 양손 모두를 사용했다.

       

       왕홀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제 몸을 흔들었다. 빛을 내뿜으며 미친듯이 몸을 떠는 그 모습이라니!

       

       그리고 한순간.

       

       팟ㅡ!

       

       눈부신 빛을 순식간에 갈무리하며 왕홀의 떨림이 멎었다. 왕홀에서 나오던 빛은 무언가로 빨아들인 듯 사라졌고, 극심한 진동은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잠잠했다.

       

       

       “후, 휴우ㅡ”

       

       “폐하! 괜찮으십니까? 어디 다치신 곳은ㅡ”

       

       “난 괜찮네. 이게 무슨 소란인지…”

       

       

       차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던 호위기사들의 걱정을 뒤로 하고, 카이사르는 손에 들린 왕홀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왕홀이었다.

       

       은백색의 빛을 내뿜는 찬란하고 화려한 지팡이.

       

       하지만 손으로 만져보면 느껴졌다. 왕홀을 타고 흐르는 보이지 않는 힘. 다름 아닌 성물의 주인이어서 느낄 수 있는 그 힘이, 더더욱 커지고 정교해졌다는 것을.

       

       

       “이건…”

       

       

       왕홀의 한 가운데에는 전에 없던 작은 별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어둠을 밝히는 샛별을 가져다 장식한 듯, 정교하고 섬세하게 조각된 하나의 별.

       

       이것은 무얼 상징하는 것일까?

       

       

       ‘하나의 별, 샛별, 별… 모르겠군.’

       

       

       잠시 고민하던 카이사르는 고개를 저었다. 신학에는 배움이 짧아 고민해봤자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황제의 좋은 점이라면 밑에 부릴 사람이 많다는 것이니.

       

       휘하의 유능한 학자들에게 알아보라 시키면 될 것이다.

       

       푸히이잉ㅡ!

       

       갑작스러운 말의 투레질 소리가 들려왔다. 결투장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머리에 뿔이 달린 새하얀 말이 한 청년을 향해 거칠게 투레질을 반복하고 있었다.

       

       푸르륵ㅡ 푸륵ㅡ! 푸히히힝!

       

       《위대한 분이시여! 어찌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저런 더럽고 불결하고 성욕으로 가득 차서 아랫도리에 지배당하는 짐승 이하의 존재가 저의 주인이라뇨!! 푸르륵ㅡ!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ㅡ!!》

       

       “아, 아니. 말이 너무 심한 것 같은ㅡ”

       

       《그대는 입을 다물라ㅡ!! 오오, 맙소사. 장미의 가시처럼 아름다운 처녀는 어디 갔단 말인가! 분명 나를 데리러 온다고 하였는데, 처녀여! 장미를 닮은 처녀여, 어디있소!!》

       

       

       한스를 향해 연신 뒷발질을 반복하던 유니콘은 하늘을 향해 비통하게 울었다. 

       

       원망스러웠다. 이런 가혹한 운명을 내리는 위대하신 분이 밉다!

       

       어찌하여 더러운 남성에게 자신의 등을 내어주라 하시는가! 오로지 순결하고 깨끗한 처녀에게만 허락된 것이 자신이거늘!

       

       

       “공녀님, 저 말… 지금 말하는 장미의 가시 같은 처녀라는 게 설마 공녀님ㅡ”

       

       “쉿! 야, 조용히 해. 눈치 챙겨라? 빨리 방패 뒤에 나 숨기고 여기서 나가자. 빨리!”

       

       

       이스칼의 방패 뒤에 몸을 숨긴 프리가가 빠른 걸음으로 결투장 바깥으로 향했다. 이스칼의 방패 위에 새겨진 별의 문양과 방패 위로 삐져나온 도끼에 생긴 별 문양이 도드라졌다.

       

       케니스도 슬금슬금 유니콘의 눈치를 보다가, 후다닥 뛰어서 결투장의 바깥으로 사라졌다.

       

       다른 도전자들도 유니콘과 엮이기 싫었는지 바람처럼 모습을 감췄다.

       

       남은 것은 하늘을 보며 울부짖는 유니콘과 한스 뿐.

       

       

       《처녀여ㅡ!!》

       

       “하…”

       

       

       파랗고 청명한 하늘이 유달리 얄미운 하루다.

       

       한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참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한숨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새콤달콤한 사탕같은 후원!!! 감사합니다!! 코이츠wwww 완전히 흑우가 되어버린ww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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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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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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