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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3

       황궁의 중앙 회의실.

         

       상석에 앉은 레제프를 중심으로 황실의 주요 관료들이 원형을 이루고 있다.

         

       데카르트와 대립이 길어지는 만큼 이번 회의는 매우 중요했다.

         

       “폐하, 이제는 데카르트와 화합을 이뤄야 합니다.”

         

       대신이 말했다.

         

       그의 역할은 제국의 행정을 총괄하고 황제를 보좌하는 역할. 대신이 회의에서 이런 의견을 꺼냈다는 건 그만큼 일이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맞습니다, 폐하. 현재 데카르트는 홀로 마도 혁명을 일으킨 상황입니다. 말도 안 되는 발전을 이루었지요. 이들과 돈독한 사이를 유지해야만 합니다.”

         

       내무장관이 말했다. 그의 말을 잇는 건 재무 장관이었다.

         

       “현재 제국의 경제에 영향을 가장 많이 주는 상단은 데카르트가 운영하는 ‘프란체 코퍼레이션’입니다. 이 이상으로 데카르트를 배척한다면 제국도 손해를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국의 핵심 인사들이 필사적으로 만류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얼마 전에 도착한 데카르트의 전서.

         

       그 전서에는 데카르트의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절대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다들 할 말은 끝났나?”

         

       황제 레제프가 말했다. 묵직한 목소리에 완고함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제국에서 데카르트의 힘은 너무 독보적으로 강하오. 우리는 지금까지 황실, 데카르트, 페르시아. 이렇게 세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제국을 통치했지.”

         

       드르륵. 레제프가 상석에서 일어나며 의자가 뒤로 끌렸다.

         

       “하지만 지금은 데카르트가 제국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오. 짐은 데카르트의 힘을 줄이고 균형을 유지하는 게 맞는 판단이라 보고 있소.”

         

       사실 레제프는 힘의 균형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데카르트가 힘이 강하건, 황실이 밀리건 무슨 상관인가. 제국만 잘 운영되면 됐지.

         

       하지만 이는 소미레가 바란 것. 레제프는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이든 할 수 있었다.

         

       “폐하, 허나 데카르트와 이대로 대립을 유지하는 것은 좋지 못한 판단입니다. 만약 데카르트가 이러한 황실의 행보에 참지 못하고 반역이라도 꾀한다면…….”

         

       쾅! 레제프가 원탁을 내려찍었다.

         

       “그대는 지금 황실이 데카르트에 의해 몰락이라도 한다는 것이오?”

         

       살기어린 레제프의 시선. 대신은 “송구하옵니다.”하고 고개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 황실 회의는 여기에서 끝내겠소. 짐은 데카르트와의 대립을 멈출 생각이 없으니 그리 아시오.”

         

       자리에서 일어났던 레제프는 그렇게 중앙 회의실을 나왔다.

         

       “…….”

         

       소미레를 위해 움직인 것은 좋았다.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데카르트의 심기를 거스르면 황실에 그만한 업보가 돌아올 거라는 건 레제프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를 어찌해야 할까.’

         

       후우, 레제프는 막막함에 한숨이 나왔다. 애초부터 성립이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귀족 세력 모두가 콩고물을 얻어 먹어보겠다고 황권에 붙어 여러 견제를 통해 힘 싸움에선 이겨냈지만…….

         

       ‘이 이상으로 더 이어가면 안 돼.’

         

       데카르트의 마지막 경고. 이 이상으로 선을 넘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내용.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하지만 어떤 방법? 레제프는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후우…….”

         

       레제프는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곤 자신의 거처, ‘향연당’으로 들어왔다. 간단히 말하자면 휴게실.

         

       푹신한 소파에 등을 기대고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아버님, 황제 폐하가 갑작스럽게 서거하신 이후로 레제프는 쉬지 않고 달려왔다.

         

       비록 무르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엄연히 후계자 교육을 받고 엘리트 코스를 밟은 황태자. 일을 처리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이제 데카르트를 견제할 방도가 없군.’

         

       너무나도 강해져버린 데카르트가 문제였다. 무작정 힘 싸움만 이긴다고 해서 마탑 지분이나 세율을 올리지 않는 이상 황실에 좋은 게 없으니.

         

       그러던 그때. 덜컥, ‘향연당’의 문이 열리며 소미레가 들어왔다.

         

       “폐하,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신가요?”

         

       오늘도 자애로운 미소를 보여주며 푸근함을 선사하는 소미레. 황태자는 피로가 싹 날아가는 것 같았다.

         

       “아아- 소미레.”

       “폐하, 체통을 지키시옵서서.”

         

       당장이라도 안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건만, 소미레는 완고히 거절했다.

         

       “무슨 고민이 있으신 거지요?”

       “고민이라, 고민이야 있지.”

       “그것은 데카르트 때문이고요?”

       “역시 소미레야. 내 고민을 단번에 알아챘군.”

         

       감격받은 레제프. 소미레는 그에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전에 데카르트에서 온 전서 때문에 그러신 거지요? 제게 계획이 있답니다.”

         

       레제프는 “계획이라 하면?”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데카르트에게 일방적인 요구는 그만 두시고, 그들의 약점을 파는 것입니다.”

         

       약점.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 데카르트의 약점을 어떻게 캐낸다는 것인가.

         

       “데카르트의 약점을 물기란 쉽지 않을 터인데…….”

         

       레제프는 턱을 어루만지며 눈썹을 좁혔다.

         

       “그에 대해선 제가 생각한 게 있사옵니다.”

         

       소미레는 씨익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현재 데카르트의 마탑에서 사형수를 상대로 비인도적인 실험을 하고 있는 건 알고 계시지요?”

         

       레제프는 그렇다만, 하고 고개를 주억였다.

         

       “그 정보를 조금 희석해서 내보내는 겁니다. 사형수가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로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이에요.”

         

       너무나도 위험성이 큰 작전. 레제프도 이걸 모르진 않았다.

         

       “소미레, 정보를 가지고 장난질을 치기엔 위험성이 커. 만약 이게 걸린다면……”

         

       아니요, 하면서 말을 끊는 소미레.

         

       “현재 귀족 세력은 전부 황권에 붙은 상황이 아닙니까? 이를 최대한 이용하는 겁니다.”

         

       소미레는 그리고, 하면서 말을 이었다.

         

       “제가 극비로 조사한 내용이언데, 현재 데카르트는 제어하던 진 바렌베르크를 놓쳤습니다. 이 두 개를 이용한다면 데카르트의 입지를 흔들 수 있을 것입니다.”

         

       레제프는 눈썹을 좁힌 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거군. 이제 일방적인 위협이나 견제는 통하지 않으니 트집을 잡자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하고 싱긋 웃는 소미레.

         

       “이것으로 방법은 찾았지요? 저는 황제 폐하만 믿고 있겠습니다.”

       “아아- 물론이지, 소미레. 내 꼭 소미레를 모욕한 데카르트에게 엄벌을 내릴 것이야.”

         

       소미레는 그런 제레프를 보며 픽 웃었다. 멍청한 것.

         

       ‘사실 황실의 패배는 확정이야.’

         

       견고하게 뭉쳤던 귀족 세력도 흔들리고 있다. 힘 싸움은 황실이 이겼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손해는 황실이 크다.

         

       득이 없는 승리.

         

       이에 따라 귀족 세력도 점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어.’

         

       소미레의 목적은 데카르트를 부수는 게 아니다. 자신이 프란체 데카르트와 독대하고 마법의 단검을 심장에 찌를 기회를 얻는 것.

         

       이것뿐이다.

         

       ‘어차피 이 세계의 사람들은 진짜 사람도 아니잖아. 그저 게임 NPC일 뿐이지.’

         

       죄책감은 없다.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소미레는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 * *

         

         

       “이제 좀 잠잠해졌구나.”

         

       이전, 경고와도 같은 위협장을 날린 이후로 황실이 잠잠하다. 가신들의 말에 따르면 귀족 세력도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그렇네요. 진작에 이럴 걸 그랬어요.”

         

       카자르가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이제 이전처럼 으름장을 내놓진 못할 거야. 우리의 인내심이 바닥났다는 의사를 명백하게 밝혔으니.”

         

       조금 여유로워진 프란체는 찻잔을 홀짝였다. 향을 음미하기까지. 오랜만에 편안한 시간을 가지는 거 같다.

         

       “아, 엑시드에서도 전서가 왔어요.”

       “엑시드에서?”

         

       카자르는 네, 하고 말을 이었다.

         

       “자유 도시 판테온에 유명한 요리사가 있는데, 그 사람이 진 씨와 관계있다는 소리였어요.”

         

       프란체의 얼굴에 화색이 밝았다.

         

       “진을 찾을 날까지 얼마 남지 않았구나.”

         

       앞으로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프란체는 심장의 활기를 되찾았다.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마음고생을 많이 했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진만 만날 수 있다면 모든 게 풀릴 테니까.

         

       “오랜만에 편안하게 잘 수 있겠구나.”

         

       집무실 책상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축 늘어진 프란체. 카자르는 싱긋 웃었다.

         

       “저는 진 씨 찾으면 정강이를 차버릴 거예요.”

         

        프란체가 “왜?”하고 물으니 카자르는 미간을 찌푸렸다.

         

       “공작님을 이렇게 고생시키고, 저한테 모든 일을 떠넘겼잖아요. 정강이를 차지 않고서야 못배기겠어요.”

         

       화가 가득한 카자르의 얼굴을 보고 프란체는 픽 웃었다.

         

       “그래. 나도 진을 찾으면 머리채를 쥐어뜯어야겠어. 거기에 감금시키고 내 동행 없이는 공작저 바깥으로는 못 나가게 할 거야.”

         

       둘의 대화를 얌전히 듣던 라데아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서로 쌓인 게 많았구나…….

         

       “아무튼, 오늘은 편하게 휴식을 취하자꾸나. 곧 사업도 원래대로 돌아올 거고, 마탑의 마도 개발도 다시 가동될 테니까.”

         

       그렇게 어깨에 쌓인 짐을 좀 내려놓나 싶었는데.

         

       똑똑. 똑똑.

         

       ─공작님! 황실에서 보낸 전서입니다!

       “또?”

         

       플뤼겔은 서둘러 집무실에 들어와 황실 공인 전서를 전했다.

         

       “이번에는 황실 기사단이 와서 전해주고 갔습니다.”

         

       프란체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황실 기사단이 직접 온 거라면 이번에도 심상치 않은 내용일 터.

         

       “알겠어. 전해줘서 고맙단다.”

         

       플뤼겔은 정중히 인사한 뒤 집무실을 나갔다. 프란체는 미간을 찌푸린 채 전서를 펼쳤다.

         

       ─────────────────

       황제, 레제프 페델리안이 공작에게 전하오.

         

       데카르트에서 진 바렌베르크의 제어를 실패하여 그가 도망쳤다는 정보가 들어왔소.

         

       진 바렌베르크는 초월자이자 제국에게 복수심을 품은 인물.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데카르트 공작은 막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오.

         

       페델리안 사자 패 또한 몰수할 예정이오.

       

       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면 진 바렌베르크와 함께 일정을 잡아 황실로 방문하시오.

         

       기다리고 있겠소.

       ─────────────────

         

       “잠잠하다 싶었더니 방법을 바꾼 거였구나.”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덜덜 떨려오는 프란체의 손. 어째서 이들이 진 바렌베르크가 떠난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가능성이라면…….’

         

       라드리엔 폰 그라시아. 그 초월 마법사가 성녀에게 알려준 것이겠지. 그 마법사는 그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것뿐이니까.

         

       “쯧.”

         

       프란체는 혀를 차곤 고개를 휘저었다.

         

       “무슨 내용이에요?”

       “진이 도망친 걸 알아챈 모양이구나.”

         

       카자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거 엄청 큰일 아닌가요? 제국이 유일하게 두려움을 느끼는 진 씨를 놓쳤다는 건 가볍게 넘어갈 사항이 아닌데…….”

         

       프란체는 “물론, 빠져나갈 구멍은 있어.”하고 말을 이었다.

         

       “긴 시간이 걸리는 임무를 위해 잠시 해외로 보냈다고 하면 돼. 최근 데카르트는 타국으로 사업이 진출하고 있으니까.”

         

       이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변명이 어디까지 통할진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는 수밖에.’

         

       그러나 황실의 공격은 거기서 끊이질 않았다.

         

       똑똑.

         

       ─공작님, 가신 카르테 비에르만입니다! 당장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목소리만 들어도 다급해보인다.

         

       “들어오렴.”

         

       덜컥. 가신 카르테 비에르만이 제국 신문 기사를 하나 들고 왔다.

         

       “예의를 차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일단 내용을 보십시오!”

         

       프란체는 침착하게 신문 기사를 살폈다. 그리고, 얼굴이 종이 구겨지듯 일그러졌다.

         

       내용은 이러했다.

         

       【황실의 충격적인 발표! 데카르트 공작가가 운영하는 마탑에서 인간을 상대로 한 비인도적인 마법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데카르트 공작가의 망발! 바렌베르크의 재앙, 진 바렌베르크를 놓아 주다!】

         

       【대륙제일검, 왕국의 재앙 진 바렌베르크의 행방은? 제국에게 복수하는 것이 아닌가?】

         

       【마탑에서는 사형수들로 실험을 진행해왔지만, 그 숫자가 부족하여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들까지 실험에 동원하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노숙자나 터를 잃은 사람들까지 납치하여……】

         

       황실의 음해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것들이 정말 미쳐버렸구나.”

         

       프란체의 발밑에서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참고 참았던 인내심이, 진만 바라보고 어떻게든 버텨왔던 정신이 바닥을 긁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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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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