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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3

       *** ***

         

       유경은 하루동안 어젯밤의 일을 곱씹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동생을 늑대 놈이 채 간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았지만…

         

       “경들은 대체 하는게 뭐요?”

         

       “송구하옵니다아! 폐하!”

         

       “저저, 사마염을 보시게! 십오 년 넘게 이 황국을 좀먹던 해충들을 일망타진하고 제 멋대로 칠십이채니 하던 산적놈들까지 뿌리뽑지 않았소!”

         

       “송구하옵니다아아! 폐하아!”

         

       “뿐인가? 그 과정에서 관군 한 사람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재산을 환수하여 중앙으로 내놓았는데 경들은 그 사이에 무엇을 했는가!”

         

       “송구하옵니다아아아아! 폐으하아아!”

         

       “그런데 경들은 사마염이 퍼다 준  황금으로 예산안 하나 짜면서!! 의견 하나 모으지 못하고 뭘 하는가아아!!”

         

       “송구하옵니다아아아아악!! 폐으하아아악!!”

         

       부글거리는 속을 안고 한 바탕 열정적으로 국정을 보고 나니 머리가 맑아졌다. 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 해. 시원하게 속을 풀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린 유경은 어젯밤을 생각했다.

         

       ‘너무 시간 아까운 일이었다.’

         

       어제 너무 혁기린을 몰아붙였고 가상의 매제에게 쓸데없이 증오심을 태우느라고 귀한 시간을 낭비했다. 무려 십 이 년만에 만나 한담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즐기기는커녕 분노에 붙잡혀 날려버리고 만 것이다.

         

       ‘성급함에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해버리고 말았구나.’

         

       황궁에서 공주로 살아가면 가능하나 남장하며 살아가는 무림에서 할 수 없는 것이 혼인인 것은 맞다.

         

       그러나 마음이 급해도 너무 급했다. 혼인이란 사람의 인생을 가르는 대사.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해치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혁기린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더라고 황궁에 있는 시간동안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혼인을 통해서 유야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황성을 나서고 해도 늦지 않는 일이었다. 어제 나는 해야 할 것을 놓치고 말았다.’

         

       자극적인 사실에 눈이 멀어서 숲을 보지 못했다. 혁기린이 이 황실에 돌아올 마음을 먹게 만들 수 있는 요소는 혼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림보다 황궁을 더 가까이 여기게 만들고 더 즐거운 공간으로 만들어야 돌아오지 않겠는가.

         

       유경은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옳게 된 전략이지.

         

       유경은 어린 시절을 되짚으며 혁기린과 함께 이야기할 추억담들을 되짚었다. 하나하나가 동심 어린 이야기였으며 소중한 추억이자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기억이기도 했다.

         

       “하하하.”

         

       그래 이게 맞지. 유경은 웃음을 터트렸다.

         

       유경은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림인으로서의 혁기린이 충분히 행복해 보였고 또한 멀게 느껴졌기에 다급히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녕 오라비로서 올바른 태도였는가?

         

       응당 오라비로서 해야 할 도리는 혁기린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혁기린이 이 황궁에 머무르는 동안은 늘 함께 웃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움. 궁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혁기린에게 맛보여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일랑은 다 머릿속에서 지우고 혁기린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만 생각해야지.

         

       그렇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마시던 유경은.

         

       “유야 공주님께서 마음에 품은 자를 찾았습니다.”

         

       궁청전 궁녀의 보고에 얼굴을 굳혔다.

         

         

       *** ***

       

       “하아.”

         

       궁녀들을 모두 물린 방. 혁기린은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턱을 괴었다.

         

       ‘환혹 내성…’

         

       혁기린은 머리 위에 올라가있는 태양건을 만지작거렸다. 황실의 보물 중 하나로 말 그대로 양기를 머금고 있는 물건이었다. 태양과 같은 기운을 내뿜기에 사람이 믿음직스러워 보이며 남자다워 보이는 효과를 발휘한다.

         

       응당 사람이라면 미약하게나마 기를 흘리며 살고 남자는 양기를, 여자는 음기를 흘리기 마련이다. 이 태양건을 쓰고 있으면 아무리 여자라고 해도 남자와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호천안과 흑묘 그리고 여일예를 이끌고 사마염의 처소로 간 뒤 열린 술자리. 술자리에서 만취해 깨어나보니 사마염이 흑묘와 호천안이 남장여자라는 것을 눈치챘다고 알려 주었다.

         

       그때는 그냥 감이 날카로운 사람이거니 하고 넘겼다.

         

       점창파에서 호천안이 환혹내성을 지닌 체질이라는 걸 듣고 나서야 처음부터 남장여자인 것을 간파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결국 바뀌는 것은 없었다.

         

       ‘남장이야… 늘 들킬 여지를 주고 있었으니까.’

         

       혁기린의 경지쯤 되면 골격을 완전히 변경할 수 있는 역용을 운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럼에도 가급적 본래의 체형을 유지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혁기린이 남장여자였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나오도록 완벽한 위장이 목적이 아니었다.

         

       ‘으음…그럴 수 있는 거 같기도 하고..’라는 소리가 나오도록 아슬아슬하게 위장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여 무림인이 금기시 되는 것도 아니고 굳이 남장을 한 이유는 황위 계승의 정통성을 훼손하기 위함이자, 그 당시만 해도 세력이 충분히 살아 있던 유야 공주 지지파들의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남장여자 무림인이 되지 않았더라면…그렇게 가정하던 혁기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점창파에 남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 혁기린을 지지하던 중앙 파벌은 꽤 힘이 강력했으니까. 그들은 온 힘을 다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혁기린을 다시 황궁으로 되돌려 놓으려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희생과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나라가 두 파벌로 갈려 싸우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다 남장여자이자 무림인인 혁기린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유야 공주가 사실은 무림인이 되어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남장을 하고 남자처럼 지내는 해괴한 짓을 벌였다!

         

       무림인이 된 것. 점창파의 정식 제자가 된 것. 남장을 한 것. 모두 다 정통성에 치명적인 흠결이었고 이 사실이 소문나는 순간 유야 공주를 지지하던 파벌은 끝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그들은 소리소문없이 유야 공주를 황궁으로 되돌려야 했고 황궁으로 되돌리려는 시도 역시 온 힘을 다하기는 커녕 소문이 나지 않도록 최소한의 힘을 동원해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에서는 유경이 유야 공주파벌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물리적인 힘은 점창파가 막아주었다.

         

       ‘만약…내가 남장여자 무림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피가 흘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 피가 흐르고 흘러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었을 때 유찬이나 혁기린이나 둘 중 한 명은 그 피의 책임을 져야만 하는 처지에 처했을 것이다.

         

       그런 사태를 막았다. 유경은 순조롭게 황권을 강화시켰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후계를 튼튼히 했다. 혁기린은 점창파의 제자로서 사제들을 돌보며 황궁을 나와 새로운 삶을 개척했다.

         

       참으로 이상적인 결과였다. 혁기린은 생각했다. 만약 과거로 회귀해 다시 한번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공주로서의 삶 대신 남장여자 무림인 혁기린으로서의 삶을 택할 것이라고.

         

       ‘그래도…’

         

       그래도 미련은 남는다.

         

       아름다운 의복을 입고, 화장을 하고, 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장신구를 하고 호천안의 앞에 섰다면.

         

       그랬다면 친우가 아니라…다른 말을 들을 수 있었을까.

         

       좀더 특별한 어떤 존재로 호천안의 머릿속에 남을 수 있었을까.

         

       “이제와서 뭘 아쉬워 하는거야.”

         

       혁기린은 뺨을 문지르며 애써 기운을 끌어 올렸다. 곧 오라버니가 올 터였다. 길어야 이주일도 되지 않을 귀한 기회였다. 그런 날 죽상을 하고 오라버니의 걱정을 받고 싶지 않았다.

         

       시기적절하게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궁녀가 유경의 도착을 알렸다.

         

       “후후, 오라버니 오셨습니까.”

         

       “그래. 유야야. 오늘 하루도 잘 지냈느냐?”

         

       “예. 뭐 조금은 갑갑하긴 합니다만…참을 만 하더군요.”

         

       “하하. 그래 너는 어렸을 적부터 활기찼지. 궁녀들이 네 행적을 놓쳤을 때는 우선 바깥으로 나갔었으니까.”

         

       “그랬습니까…생각해보니 주로 정원에서 놀았던 것 같은 기억이 나는군요.”

         

       혁기린은 유경이 꺼내는 추억들을 상기하며 미소 지었다. 혁기린은 나이 차이로 인해 유경은 기억하지만 혁기린은 기억하지 못하는 추억들을 들으며 신기한 기분에 빠졌다.

         

       “하하하하!”

         

       “후후후후!”

         

       두 사람은 어릴적 추억담을 꺼내며 웃고 떠들었다. 처음에는 유경을 의식해 웃던 혁기린이었지만 어느 새 즐거워져 자연스러운 웃음이 나왔다.

         

       추억 이야기의 특징은 시간가는줄 모르고 빠져든다는 점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내던 유경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다.

         

       “후우. 그래. 벌써 밤이 깊었구나. 동이 트기 전에는 돌아가야지.”

         

       “이런, 오라버니의 시간을 너무 빼앗은 것이 아닐까요.”

         

       혁기린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혁기린은 초절정 고수인지라 운기 조식을 조금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유경은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은 몸. 낮에는 국정을 보고 밤에는 이리 찾아와 혁기린과 시간을 보내면 일과에 꽤 무리가 갈 터인데…

         

       “하하, 이 정도는 끄덕없다. 지금 들어가서 잠깐 잠을 자면 괜찮다.”

         

       “…예 너무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유경은 웃는 낯으로 혁기린의 방을 나오며 생각했다.

         

       ‘어렸을 적부터 너는 표정을 잘 감추지 못했지.’

         

       미소 자체는 비슷하지만 어쩐지 생기에서 많은 부분이 차이가 났다. 그렇기에 유경은 혁기린을 만나자마자 깨달을 수 있었다. 내심 마음에 두고 있는 자로부터 친구관계라 못이 박히는 바람에 꽤나 상심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허허허허.”

         

       이 자식이 지금…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동생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사실 당연한 결과였다. 남자인 줄 알고 있는데 연심을 품는 건 말이 안 되고 남장여자인줄 알고 있다고 해도 항시 남장을 하고 있는 여자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 흔한 분조차 바르지 않고 여성적인 매력을 강조하기는 커녕 숨기기 급급한 지금의 혁기린의 모습은 매력적이라고 하기에는 힘들었으니까.

         

       그러나…그게 뭐가 어쨌단 말인가?

         

       혁기린의 마음에 상처가 났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호천안을 향한 이성적 판단은 죽었다.

         

       내관들은 웃는 낯을 유지하는 유경을 바라보며 허리를 바짝 숙였다. 혁기린은 모르겠지만 내관들은 알았다. 오랜 기간 황제로서 살아온 유경은 감정의 흐름과 관계없이 늘 일정하게 웃었다.

         

       암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표정 관리를 할 필요가 없음에도 유경은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내관들은 유경이 좋지 않은 생각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고 있으며 그것을 감추기 위해 습관적인 웃음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놈의 자식 신상 명세 정리해 와. 지금 당장.”

         

       “예, 폐하!”

         

       밤과 새벽의 어딘가. 황국의 정보기관인 동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p107에서 ‘혁기린은 사마염을 통해 본인이 실은 여자이고 남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호천안과 흑묘가 눈치챘다’는 묘사를 추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 뒤 108화의 후기에서라도 그 사실을 명시해 놓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군요.

    작가의 미숙함으로 혼란을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그 뒤로도 혁기린과 흑묘가 서로 동성임을 알고 있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어려운 스킨십을 보여준다던가 둘이서 대놓고 여자들만의 수다를 떤다던가, 황궁으로 출발하기 전에 서로 팔짱을 낀다던가 하는 묘사 등등에서 어리둥절한 기분을 느꼈을 독자님들에게 사과드립니닷!!!!

    혁기린의 남장과 신분에 대한 사실관계 정리.

    혁기린의 시선 : 호천안과 흑묘가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공주라는 것은 모른다고 생각한다.

    흑묘의 시선 : 호천안이 말해 줘서 남장여자인줄 앎. 혁기린이 권력과 연관 있는 출생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짐작하지만 공주인 줄은 모름. 월복당을 동원해 알아보면 혁기린이 공주인지 금방 알 수 있지만 동창과 엮이기 싫어서 황궁 쪽의 정보는 취급하지 않음.

    호천안의 시선 : 남장여자에 공주인 것까지 다 앎.

    요로코롬 알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황국에 대한 TMI

    황국에는 내시가 없습니닷! 내시 아웃!

    내시 대신 일반적인 남성으로 이루어진 내관이 황제와 황궁의 대소사를 처리합니다.

    궁녀들과 정분이 나면 어떻게 하냐고요? 괜찮습니다. 내관들은 동자공의 원리를 가미한 심법을 의무적으로 익혀야 해서 통정을 하면 바로 들키거든요!

    무공 덕에 물리적인 거세를 하지 않아도 내관에 대한 신용도 확보가 가능한 무림천하!

    동창 역시 내관들과 협조하여 황궁과 국가의 정보를 다루는 황실 정보기관입니다.

    금위위도 있긴 하지만 본 설정과 달리 동창의 하부조직은 아니고 황실경호대라고 보면 됩니다.

    황실에 대한 내용은 앞으로 에피소드에서 차근차근 설명될 것이지만 우선적으로 이 정도만 먼저 풀겠습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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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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