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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3

       피곤해.

        

       옷장을 정리하는 게 이렇게나 힘겨운 일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애초에 시작을 안 했을 텐데.

        

       이제 겨우 절반 정도 비워진 옷장을 뒤로 한 채, 무거운 몸을 침대에 뉘었다.

       

       조금……조금만 쉬고 할까.

        

       솔직히, 그냥 그만하고 싶은데. 안 되겠지…….

        

       시선을 느릿하게 주변으로 돌렸다.

        

       열린 옷장.

       색상, 재질, 계절 별로 정리된, 극히 일부의 옷가지.

       그리고, 바닥에 한 무더기 쌓인……이제부터 정리해야 하는 옷 더미.

         

       차라리 시작을 안 했으면 모르겠으되, 이 난장판을 방치하는 건……진짜 아니겠지. 알면서도, 몸이 영 말을 듣지 않았다.

        

       -후.

        

       왜 굳이 안 하던, 안 어울리는 짓을 시작했냐고 묻는다면……계기는 오늘 저녁의 약속이었다. 나름 손님을 초대하는 거니까 양심상 조금은 치우자-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방정리.

        

       그리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다. 청소가 쉽다는 건 작디 작은 집의 몇 안 되는 장점 아니겠는가. 거기에 더하여, 애초에 내가 평소 쓰는 물건도 몇 개 되지 않으니.

        

       주된 작업이라고 해봐야, 남에게 대놓고 보이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빈 병들과 빈 캔들을 치우는 정도였다. 현실감이 있게 2병 정도는 남겨뒀지만.

        

       ……쓰레기가 너무 하나도 없으면, 누가 봐도 방금 급하게 다 치운 거 같잖아.

        

       아무튼……그렇게 내 작은 요새를 쓸고 닦는 일이 예상보다 과하게 빨리 끝난 게 문제였을까. 

        

       아직 손님이 오기까지는 한참 남은 여유시간에, 느긋해진 마음이 옷장에 눈길을 주고 말았다.

        

       이 작은 집에서 유일한 수납 공간이다시피 한 옷장은 그야말로 오랫동안 미뤄온 과업의 덩어리였다. 그 안에 가득한 옷들 중 대부분은 태초의 모습 그대로 먼지만 쌓아가고 있었으니.

        

       내부 공간을 어마어마하게 잡아먹는 다양한 옷가지 중, 한 번이라도 손을 댄 옷은 한 줌에 불과했다. 특히 속옷은……아니, 그래도 그 천쪼가리들은 그나마 공간이라도 적게 차지하지.

        

       침대에 누운 채 고개를 젖혀, 바닥에 쌓인 옷더미를 잠시 바라보았다. 지금이라도, 그냥 옷장 안에 다시 넣어서 곱게 보관을…….

        

       아니, 아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결국은, 다 핑계다. 내일의 내가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라는, 무책임한 태도……겠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섬세한 정리는 포기하자. 그냥, 대략 느껴지는 계절감에 맞춰서 상자에 차곡차곡 옷을 개어 넣는 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이 정도면 난 최대한 오래 기다리고, 나름의 최선을 다 했다고 자부할 수 있으니.

        

       그렇게 약 한 시간 후.

        

       큼지막한 상자 3개가 방 한구석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뽐내게 되었지만, 그 대가로 텅 빈 옷장을 얻었다.

        

       ……차츰차츰 채워 넣어야지. 무리하진 말고.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그리 하기로 결심했으니까. 기왕 하는 거, 즐겁게 하면 좋을 거고.

        

       -띵동

        

       그렇게 복잡한 마음을 설렘으로 포장하는 사이, 드디어 손님이 도착했다.

        

       * * * *

        

       “빨리 왔네요.”

        

       “……누군지 묻지도 않고 열어요?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러게. 열고 보니 이상한 사람이긴 하네요.”

        

       “하여간 한 마디를 안 지지. 자, 집들이 선물입니다. VR 영역 테두리 잡아주는 보조장친데, VR 게임 방송할 거면 필수품이에요.”

        

       “……의외네요.”

        

       “또 뭐가요.”

        

       “뭔가, 집들이 선물로는 특이한 냄새 나는 해외 브랜드 디퓨저 사올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는 게……웃고 있는 건가. 저 나른한 눈매에서 감정을 읽어내는 건 아직 쉽지 않았다.

        

       그러나 목소리는 이제 제법 익숙해졌으니, 그 말투에 은은한 놀림이 섞였다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레반이 섣불리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따위의 말로 바로 반박하지 못한 이유는, 실제로 디퓨저를 선물할까 고민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어쩐지 이예나와 어울리는 느낌의 향기가 떠올랐으나- 그렇다고 향수를 선물하는 건 너무 과도하다는 생각에 떠올린 선물.

        

       레반은 새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짐짓 짜증난 척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을 뭘로 보는 거야.”

        

       으르렁거리듯 더한 한 마디에, 슬쩍 어깨를 으쓱인 이예나가 옆으로 비켜섰다. 들어오라는 뜻이겠지.

        

       신발을 벗고, 혹시나 불편해하지는 않는지 확인하며 천천히 들어섰다.

        

       여사친의 방에 놀러가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대학생 시절, 소규모로 술을 마시고 있노라면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폐점시간을 고하곤 했으니. 그렇게 쫓겨난 무리가 길거리를 방황할 위기에 처하면,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던 이가 집에서 맥주나 한 잔 더 하자는 제안을 던지곤 했더랬다.

       

        그리 친절한 집주인은 주로 남자였지만, 예외가 없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처럼 단 둘이 있게 되는 경우는 순수한 친구 사이에서는 없었고……보통, 우정에 종언을 구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아크도 불렀다고 했으니까. 곧 오겠지.’

        

       이번만큼은, 그 누가 뭐라고 해도 특별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여긴 이예나의 스튜디오를 겸하는 방 아닌가.

        

       오늘의 자리는 어디까지나 합방을 하기 위해 동료 스트리머의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레반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반복하여 되뇌었다.

        

       그럼에도 미묘하게 차오르는 긴장감은, 둘이 보자는 뜻으로 오해했던 시간의 여파일까.

        

       아니면, 집이라는 핑계로 허벅지를 절반쯤 가리는 츄리닝 반바지에, 품이 넓은 티셔츠라는 다소 자유로운 복장을 입고 있는 이예나의 탓일까.

        

       어느 쪽이든, 티를 내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제법 능숙하게 태연함을 연기하는데 성공한 레반이, 여유롭게 방을 구경하는 양 시선을 돌렸다.

        

       어딘가 살풍경한 방이었다.

        

       처음부터 설치되어 있었던 듯 보이는 빌트인 옷장을 제외하면, 가구라고는 큼지막한 책상과 침대, 그리고 작은 소반 하나가 전부인 공간. 그리고 구석에는-

        

       “이사라도 가요? 뭔 이삿짐 상자가…….”

        

       “아직은요. 하지만 이상한 사람한테 주소가 노출됐으니……언제라도 이사 갈 준비는 해야겠다 싶어서.”

        

       “물어본 내가 잘못했지. VR기기나 꺼내요. 설치부터 하게.”

        

       “네에-”

        

       말꼬리를 늘어트린 이예나가, 종종걸음으로 걸어가 책상 밑에서 상자를 꺼내 들었다.

        

       포장이 뜯겨진 상태의 상자 안에는, 꺼냈다가 다시 우겨 넣은 흔적이 역력한 구성품들이 가득했다.

       

       설치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결국 포기한 역사가 담긴 유물이다. 각종 게시판에서 억지 떡밥을 신나게 굴리던 시청자들의 상상과는 달리, 정말로 못하겠어서 도움을 청했을 뿐이라는 증거이기도 하지만……무슨 의미가 있을까.

        

       부품과 케이블을 단계 별로 정리하는 사이, 부엌에서 이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좀 마실래요? 라거, 에일, 스타우트……아, IPA도 있어요.”

        

       “선택지가 좀 이상한데. 다 맥주잖아.”

        

       “음……그치만 막걸리는 생각보다 작업이랑 안 어울리더라고요.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위스키를 마실 수도 없고.”

        

       “그냥 물이나 한잔 줘요.”

        

       “……생수는 없는데. 80%가 물인 음료는 어때요?”

        

       “……수돗물도 괜찮으니까, 100%가 물인 물로 내놔.”

        

       “순혈주의가 심하시네요. 본인도 70%만 물이면서.”

        

       80%가 물이라는 음료……뭘 이야기하는지는 뻔했다. 분명 나머지 20%는 알코올인 소주 얘기겠지.

        

       굳이 확인할 필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뭐 이리도 자연스럽게 술을 권하는지.

        

       상대가 이예나만 아니었다면, 조금은 오해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레반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쓸데없는 상념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조립에 전념하려던 찰나.

        

       누군가가 어깨를 톡톡 가벼이 두드리는 감촉에 고개를 든 레반은, 피곤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집주인의 두 눈을 마주했다.

        

       “손님한테 수돗물 대접하긴 좀 그래서. 요 앞에 편의점 좀 다녀올게요.”

        

       “아니, 수돗물도 괜찮다니까……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안 괜찮아요. 편의점 가까우니까……금방 올게요.”

        

       -철컹.

        

       그렇게 현관문 소리만 남긴 채, 이예나는 만류할 틈도 주지 않고 떠나갔다.

        

       ‘맥주나 달라고 할 걸 그랬나.’

        

       옅은 후회는 무엇 때문인지. 레반은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

        

       .

       .

       .

        

       그로부터 약 5분 후.

        

       -띵동

        

       레반이 홀로 작업을 하고 있던 적막한 방에 날카로운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편의점이 가깝다더니, 진짜 가깝긴 가까운 모양이었지만- 대체 집주인이 벨은 왜 누른다는 말인가.

        

       ‘하.’

        

       그 생각이 그림처럼 그려지는 듯했다. 과연 너는 진짜로 굳이 확인을 해가며 문을 여나 한번 보자는 거겠지. 저 문을 여는 순간, 이상한 사람인데 어떡할 거냐며 웃어댈 이예나의 표정이 눈 앞에 선했다.

        

       그럼에도, 레반은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한번쯤은, 뭐.’

        

       물을 마시고 싶다고 한 마디 했다고 편의점까지 다녀온 사람이니……한번쯤은 당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며, 문을 열어젖힌 순간-

        

       “꺅?! 어……시, 시훈 오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아크다.

        

       “아……왔구나? 예나님은 잠깐 편의점 갔어. 곧 올 테니까, 일단 들어가자.”

        

       하기야, 올 때가 되기는 했다. 실망하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던 레반은, 문득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물론, 평소에 비해 퍽 화사하게 꾸민 아크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그보다, 애초에 셋이 보기로 한 모임에 미리 와있었다고 그렇게 놀랄 이유는 없지 않나.

        

       ‘설마…….’

        

       * * * *

        

       생각해보면, 손님을 초대하는 호스트로서 다소 방만했던 거 아닐까. 중세 유럽도 아니고, 물이 없으니 맥주를 마시라고 하는 건 조금……과했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샀으니 괜찮으려나.

        

       물을 사는 김에 겸사겸사 제로탄산과 과일쥬스도 담은 비닐봉투가 제법 묵직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있어야겠지. 아크도 초대했으니.

        

       ……아.

        

       

       아크한테……셋이 보는 거라고 얘기를……했던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딱늘보 님, 100+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도적최고도적도적 님, 2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모 도적부흥운동회 회장이 몹시 좋아할 닉네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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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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