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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3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 나를 보고, 하늘이가 물었다.

        

       “응? 아, 아니, 그냥.”

        

       물론, 하늘이에게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할 이유는 없었다. 이건 나와 그만의 비밀이었으니까.

        

       그 사람도, 어린 시절에는 글을 쓰던 때가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한 망상을 열심히 노트에 쓰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나처럼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했던 건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공통점은 공통점이 아니겠는가.

        

       “……으음?”

        

       내 표정을 보고, 하늘이는 몹시 수상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 말을 돌려주고 싶지만.

        

       하늘이는 아직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직 어머님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끝까지 버티면서 숨길 생각일지도 모른다.

        

       뭐, 내가 먼저 움직여서 그 원인을 찾아볼 생각이긴 했지만.

        

       “저기 소희야,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어?”

        

       이번에는 소희에게 물어본다. 하지만 소희도 고개를 저을 뿐이다.

        

       그야, 내 머릿속을 읽을 수는 없을 테니까.

        

       두 사람의 반응을 보니, 가슴이 작게 두근거렸다.

        

       마치, 그 사람이 나만의 것인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 사람을 굳이 보고 있을 필요가 없다. 나를 불러내겠다고 하늘이와 얼굴을 붙인다던가, 소희의 가슴에 안기거나 막 샤워를 끝내고 나온 수아와 마주한 그를 볼 필요가 없다.

        

       …….

        

       그래, 이 마음이 결코 ‘옳은’ 것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느껴지는 우월감은 쉽게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고, 오로지 나와만 대화를 해 주는 그 사람.

        

       나와만 비밀을 공유하는 그 사람.

        

       “……아.”

        

       불현듯, 가슴에 불안감이 스친다.

        

       그 불안감의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지금 상황이, 너무나 기쁜데.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고, 모든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고 있는데도.

        

       가슴 한구석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피어오른다.

        

       ……왜?

        

       “사라야.”

        

       내가 고민하는데, 다시 한번, 하늘이가 나를 부른다.

        

       “무슨 일 있어?”

        

       이미 몇 번이고 들은 질문이었다.

        

       나를 보는 하늘이의 표정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어려 있었다.

        

       “……아냐, 아무것도.”

        

       나는 대답했다.

        

       그래,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걱정해야 할 일은 없다.

        

       아무것도.

        

       *

        

       오늘도 하루가 흘러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

        

       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은, 내가 이전에 지내던 때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사건’ 하나하나로 따져보자면, 당연히 많은 일이 있었다.

        

       나를 보고 인사를 해 준, 내가 얼굴만 겨우 기억하는 아이들이 열 명을 넘는다.

        

       수업 도중에 내 행동을 지적한 선생이 세 명인가 있었다.

        

       손아름은 점심시간 내내 나를 수상하다는 듯한 눈으로 봤다.

        

       점심시간 남는 시간에 공원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학생회장이 나의 눈을 피했다.

        

       내 약혼자라는 사람은 오늘도 내 시야 한구석에조차 보이지 않았다.

        

       소희가 나를 보고 ‘괜찮아?’하고 물었다.

        

       수아가 나를 보고 ‘괜찮아?’하고 물었다.

        

       “……사라야, 정말로 아무 일도 없어?”

        

       하늘이는 오늘 다섯 번째로 그렇게 물었다. 정말 끈덕지게도.

        

       “괜찮아, 아무 일도 없으니까.”

        

       그래, ‘아무 일도’ 없었다.

        

       하나하나의 사건으로만 따지면 여러 일이 있었지만, 결국 평범한 하루로 따져보자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이 된다.

        

       누가 다치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갑자기 나쁜 사람이 끼어들어 우리 사이를 방해하는 일도 없었다.

        

       그래, 그러니까, 그런 ‘큰 사건 사고’가 없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명쾌하고, 그래서 마음에 드는 분류방식.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다시 한번 그렇게 말하며, 나는 웃어 보였다.

        

       그래, 이렇게 아무 일도 없는 날이 계속되면 되는 것이다.

        

       이대로.

        

       이대로 계속.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온 힘을 다 할 테니까.

        

       *

        

       유하늘은 요즘 고민이 많았다.

        

       제일 큰 고민은 역시, 아빠와 관련된 일이었다.

        

       무뚝뚝한 아빠는 그 이후로 따로 연락한 적이 없다. 집에서도 뭔가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엄마는 아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무슨 일이 분명히 있긴 했을 텐데, 그게 무슨 일이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답답한 일이었다.

        

       게다가, 거기에 더해서 ‘사라’와 관련된 일까지.

        

       ‘사라’는 온종일 웃고 있었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웃고 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주로 기분 좋다는 듯 웃는 표정이었지만, 가끔 혼자 표정이 흐려지기도 했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웃는 표정이 되었다.

        

       그 이전의 ‘사라’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면 조금 미안하지만, 별로 다양하지는 못했다. 특히 사라 대신 몸에 들어온 직후의 ‘사라’는 거의 언제나 무표정이었으니까.

        

       물론, ‘사라’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었다.

        

       좋은 일이기는 했지만……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상대의 생각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유하늘은 오늘 여실히 느꼈다.

        

       ‘사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계속 웃고 있는 ‘사라’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사라’와 사라의 웃음은, 명백하게 다른 것이었다.

        

       사라가 짓는 웃음은 주로 기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이 한 일에 성취감을 느낄 때, 기분 좋거나 웃긴 일을 마주했을 때.

        

       하지만, 지금 ‘사라’가 짓고 있는 미소는—

        

       웃고 있다. 하지만 웃고 있지 않다.

        

       입은 분명히 웃고 있는데, 시선은 언제나 날카롭게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자신의 앞에 있는 대화 상대는 아닌 듯했다. ‘사라’가 어디를 보건, 그러니까 창밖을 보거나, 멍하니 천장을 보거나, 선생을 보고 있을 때도 그런 표정이었으니까.

        

       아마, 자신이 생각하는 어느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표정이 무너진다. 뭔가 불쾌한 기분이라도 느꼈다는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내 다시 서서히 웃는 표정으로 돌아온다.

        

       그 낙차가, 너무나 무서웠다.

        

       그 표정 변화를 볼 때마다, 역시 ‘사라’는 사라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가슴 한구석에 두려움이 피어오른다.

        

       그런데, 사라는?

        

       ‘사라’가 사라의 몸에 들어온 지, 벌써 2주가 훌쩍 지났다. 이제는 4월도 거의 끝나갔다. 조만간 중간고사가 있을 거고, 학교를 자신의 힘으로 쭉 다니고 싶은 유하늘도, 이제는 선생들이 봐줄 이유가 없는 ‘사라’도,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다.

        

       하지만, 영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사라를 보고 싶다.

        

       ……하지만, 유하늘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

        

       사라는 ‘사라’와 한 몸이었으니까.

        

       스스로 ‘사라’에게 몸을 내주고 ‘사라’의 의식으로 들어간 사라를, 자신의 욕심으로 다시 끌어낼 수는 없었다.

        

       관람차 안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 방 안에서, 유하늘은 이미 많은 것을 느꼈다.

        

       자극적인 방법을 계속 쓸 때마다, 더 자극적인 상황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다가, 언젠가 둘 중 한 명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된다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더라도, 무슨 짓을 해도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된다면?

        

       사라는 유하늘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라’가 소중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사라야, 정말로 아무 일도 없어?”

        

       그렇기에, 이렇게 다시 한번 묻는다.

        

       이런 질문을 하면서도, 자신이 정말로 ‘사라’를 걱정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라를 걱정하고 있는지 헷갈린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으니까.”

        

       ‘사라’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오늘 하루가 지나는 내내, 친구들이 한 질문에도. 자신의 눈빛을 받고 겁먹은 선생들의 지적에도.

        

       “아무 일도 없으니까.”

        

       ‘사라’는 그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아무 일도 없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런데, 대체 그 일이 어떤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에 힘든 일 있으면, 우리한테 말해줘. 반드시 도와줄 테니까.”

        

       그리고, 그런 ‘사라’를 보고 있으면, 그녀 앞에서 어떤 말을 하건, 평소에 느껴지는 ‘옳은 선택’에 대한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다.

        

       마치, 지금 이 순간부터는 더 이상 알 수 없다는 것처럼.

        

       자신의 머리가, 심장이, 그렇게 말하며 도움을 거부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반드시 말할게. 힘든 일이 있으면.”

        

       ‘사라’는 웃으며 대답한다.

        

       오늘 하루 종일 대답했던 것처럼. 똑같이.

        

       하지만, 유하늘은 왠지 ‘사라’의 그 표정을 보고 한 가지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사라’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말하지 않을 거라고.

        

       ……지독한 무력감이 밀려왔다.

        

       그래, ‘사라’가 할 수 있는 일이, 여기 있는 모두의 힘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니까.

        

       “……알았어.”

        

       유하늘은 일단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보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신경 써야 했고, 이제는 슬슬 진짜 공부를 해야 했다.

        

       ……유하늘은 소희와 수아를 보았다.

        

       두 사람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사라’가 한 저 말이 거짓말이 아니길.

        

       유하늘은 그렇게 빌면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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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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