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43

        

         상당히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답지 않게 날이 선 내용과 비꼬는 듯한 말투에, 그래도 이때까지 괜찮은 관계를 이어왔다고 생각한 상대방이 뻣뻣하게 굳은 게 여실히 티가 났다.

         

         일단 말을 꺼낸 마리나는 계속 웃기만 할 뿐. 늦게나마 농담이라 말하거나 세운 대립각을 내려놓을 기색이 없었기에 이대로 가면 속절없이 시간만 낭비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저기…… 무슨 뜬금없는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누나. 혹시, 사용법을 이해못하신 거면 제가 얼마든지 다시 설명해드릴 테니까….”

         

         “내가 모르는 건 아무것도 몰라도. 아는 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기억하거든?”

         

         아무래도 타이르는 느낌이 강하게 깃든 대답을 그녀가 가차없이 끊어버렸다.

         꼭 그런 핑계는 들어줄 일말의 가치도… 마음도 없다는 것처럼.

         

         뻗어진 팔이, 팀원들이 식사할 때 모여 앉던 테이블 위로 노트북을 쭉 내밀었다. 내리쬐는 조명 아래에 드러난 화면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면서.

         

         고 잠깐 사이에 가지고 있던 디코더(Decoder; 해독기)를 이용했는지, 아니면 본인이 직접 분석을 했는지는 몰라도 완성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로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게 켄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요걸 실행하면, 그동안 귀염둥이가 열~심히 복원하던 에나마 보안 문서의 대략적인 개요랑 형태를 학습한 알고리즘이 몇 번씩 채로 걸러서 흔적 자료를 수집하고 재조립해준다는 거 아니야? 자동화된 조립 공정처럼.”

         

         “음…. 그…렇죠?”

         

         이해를 못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한 다음 얻은 의구심.

         아주 무근거한 헛소리나 짜증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그의 목소리가 조금 기어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에 왜 외부 라우터를 탐색하고, 멋대로 신호를 내보내는 코드가 포함되어 있냐니까? 응??”

         

         “…….”

         

         확신이 넘치는 목소리. 이건… 단순한 시비 같은 게 아니다. 명백한 추궁 쪽에 훨씬 가까웠지.

         혹은 계약 종료 후, 비밀유지용 임플란트와 약물이 투여될 때까지 외부와의 어떠한 통신도 금지라는 조항을 왜 위반하려드냐는 비난이나.

         

        그에 따라 켄의 사고가 조금씩 확장되었다. 

         …설마, 자신이 한 달은 족히 투자한 코드뭉치를 단시간에 모조리 간파하고?

         

         아니, 그런 건 불가능하다. 막말로 지금 자리에 없는, 뇌라는 운영체제를 컴퓨터처럼 활성화할 줄 알아야 가능하다는 어비스 다이브를 낮잠 자듯이 쓰던 실력자인 소녀가 받아서 살펴봤다 하더라도 물리적으로 살펴볼 시간이 부족해야 정상….

         

         ‘…아.’

         

         거기까지 논리가 뻗어 나가자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자기는 사이버 엔지니어링을 이해하고 일하는 게 아니라, 무식하게 라이브러리를 통째로 외워서 맞는 명령어를 들이미는 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팀원이 그녀라는 게.

         

         그렇다면 대략적인 개요를 쓱 훑으면서 단시간 내에 있으면 안 되거나, 있는 게 이상한 실행문을 찾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또한 일부러 그런 걸 확인한 이유는 아마… 모종의 확신이 있어서.

         

         스륵….

         

         이마를 넘어 눈가를 가리던 앞머리를 그가 말없이 손으로 쓸어 올렸다.

         

         어느새 꺼내든 머리띠를 써서 다시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하는 걸로, 의안의 확대율을 살짝 조정해서 표정을 좀 더 자세히 살필 수 있게 하는 걸로 눈을 마주친 채 진솔한 대화를 나눌 밑작업을 끝마쳤다.

         

         “……언제부터 알았어요?”

         

         “그럼. 절대 안 걸릴 줄 알았어? 요 맹랑한 꼬맹아, 누나를 함부로 속이려 들면 못써요. 니가 성격이 아무리 소심하고 무해해 보여도 믿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일뿐더러~ 산업 스파이 자체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고!”

         

         소년은 씁쓸하게. 여자는 씨익 하고 크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들통났다면 어쩔 수 없다. 섣불리 판단하기엔 또 위험해도 그나마 적의가 큰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는 점을 위안 삼아야지.

         

         “하아… 딱히 연기를 한 적도 없고, 그렇게 가식을 떤 것도 아닌데. 어떻게 눈치챘는지는 좀 알려주시면 안 돼요?”

         

         도박사에 비유하자면 장난이라 할 수도 없게, 흡사 밑장을 빼거나 소매에서 위반 물품을 꺼내다가 현장에서 검거된 것과 얼추 비슷한 상황. 변명의 여지가 없이 수세에 몰린 셈이었지만, 혹시나 모를 ‘다음’을 대비하고자 켄은 어디에서 꼬리가 잡혔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편하게 턱을 괸 채로 웃던 마리나의 손이 의안을 한 번, 그리고 오늘도 매끈한 외형과 성능을 자랑하는 켄의 전용 컴퓨터를 쿡 찌르듯 가리켰다.

         

         “태어났을 때부터 빚더미에 앉은 데다가, 길거리 출신이라 교육비까지 다 외상으로 해결했다는 애가 불과 몇 년 만에 이런 초호화 장비로 도배했다고? 아무리 양지에서 활동한 기록을 남겨봐야 수입이랑 지출이 이렇게까지 안 맞아 떨어지면 어떡하니.”

         

         “…전혀 관심 없다더니. 잘도 전부 엿들으셨네요.”

         

         미소가 한층 깊어졌다.

         속고 속이는 싸움에서는 당한 쪽이 잘못. 그래도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었다는 건 인정하는 바인지 그녀도 저 꼬집는 지적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론이 없었다.

         

         “아무튼! 익숙하지 않은 걸 보니 원래 이런 아슬아슬한 부업을 즐겨하는 건 아닌 모양이고, 따로 업계에 정착할 수 있게 도와주고 키워준 후원자(Sponsor)가 있나 본데. 고용주인 에나마도 다 그런 가능성은 감안하고 우리 같은 용병 쓴다는 건 알아? 물론 이렇게 대놓고 병신 짓을 할 정도로 멍청하다고는 생각 안 했겠지만.”

         

         “아니면… 평소에는 더 치밀한데, 우연히 같이 일하게 된 귀염둥이의 미모에 홀려서 안 해도 될 말까지 구구절절 털어놓다가 꼬인 건가? 으응??”

         

         “…….”

         

         흔한 미사여구나 배려 하나 없는 빈정거림에 켄의 얼굴이 확 붉어졌고.

         붕붕, 쥐고 있는 노트북을 신나게 흔들어 보이느라 바쁜 마리나를 그가 밉살스럽다는 듯이 노려봤다.

         

         그게 과연 순전히 욕을 먹어서인지, 또는… 부끄럽고 미숙한 부분을 깊게 찔려서인지는 오직 본인만이 알 것이다.

         

         뭐, 어쨌건 간에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상대방. 다소 악질적인 행태를 보여주고 있기는 해도 쪼르르 의뢰주에게 달려가서 고자질하는 흉내는 낼 생각은 없어 보였다.

         

         따로 자신에게 바라는 뭔가라도 있는 걸까? 입막음에 대한 대가?

         내부 고발자에 대한 상여금 조항은 없었던 만큼 그런 식으로 이득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냉정하게 따져서 머릿수를 줄이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나?

         

         “이씨. 바라는 게 뭐에요 도대체?”

         

         “바라기는! 뭘 그리 삭막한 생각만 하는 거야, 같은 동업자끼리. 그냥…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작은 부탁이나 해보려는 거지.”

         

         “그게 무슨…!”

         

         실속 없는 군소리냐고. 목젖 근처까지 솟구친 말을 켄은 간신히 삼켰다.

         

         ‘같은 동업자끼리’, ‘방해하지 말아라’? 이게 웬 표현일까. 함께 에나마에 고용된 처지를 빗대서 말한 거라 하기엔 뉘앙스가 묘했다. 언제나 능숙하게 상황을 정리하던 그녀치고는 빙빙 에둘러 떠드는 것도 심했고.

         

         마치 스스로 알아채 주기를 바라는 사실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그도 잠시 짜증을 접어두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외부의 시선 탓인가?

         

         슬쩍 시선을 올려 위쪽에서 자신들을 감시하느라 바쁜 모니터링 용 카메라와 이 촌극을 바라보고 있을 에나마의 야근 당직을 떠올렸다.

         그들은… 별 문제가 안 됐다. 저 녹화 장비의 성능은 대강 알고 있는 만큼 목소리를 낮추기만 해도 몸동작만 가지고는 죄를 묻기 어려울 테니까.

         

         허면 문가를 철통처럼 지키고 있을 특수 요원, 추적자?

         그것도 애매했다. 최근 마리나가 하도 들들 볶아 대서 대기하는 정위치를 더 멀리 옮겼는지 웬만한 소란에는 반응조차 잘 안 하기 시작했으니…?

         

         “어?”

         

         벼락. 번뜩이는 섬광과 동시에 조금 골 때리는 가설이 켄의 뇌리에 떠올랐다.

         

         산업 스파이는 경쟁하는 다른 기업이 가진 온갖 기술, 생산이나 판매. 거기에 경영에 관한 정보를 빼돌리고 팔아 치우는 아찔한 행위이다. 좋게 포장하자면, 누군가는 아예 생업으로 삼기도 하는 전문적인 고부가가치 노동인 셈.

         

         따라서 필수적으로 관련자의 포섭, 그게 여의치 않다면 자신이 직접 내부로 들어가 보안을 약화시키거나 혼란을 야기해서 기회와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켄이 안에서 전산망에 구멍을 뚫으려고 했던 것과 비슷하게.

         

         결국 거기서 만약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차례가 된다.

         

         만약에. 그동안 누군가가 겁도 없이 오만 소문이 떠도는 에나마의 정예 병사에게 대들던 이유가, 일부러 우수한 감시역의 속을 긁어 대고 속옷차림으로 꼴불견인 척을 연출해서라도 조금이나마 경계 수준을 낮추기 위해서였다면?

         

         하지만 확률적으로 첩보 영화 마냥 두 스파이가 충돌하는 그런 우연이 존재할 리가….

         

         “건방지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던 부끄럼쟁이 주제에 감히 선배를 함정에 빠트리려 하면 쓰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리나의 눈매가 곱게 호선을 그리며 기분 좋게 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뭐야 이 콩가루 팀은…!

    어흠… 지각이 멈추질 않네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못난 저라 항상 죄송합니다;;

    햐얌 님의 34코인 후원! 숨은 쉬어주세요 흑흑.
    암컷천마 님의 1코인 후원! 모두 너무 감사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