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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3

       

       

       

       

       지금까지 927 작가의 작품에서 줄곧 촬영 감독 자리를 맡아온 고동빈.

         

       사실 927 작가는 고동빈을 상당히 고평가하고 있었다.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어떻게든 소화해내는 실력이 마음에 든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작품에 임함에 있어 대충이라는 것을 모른다.

         

       한 장면 한 장면, 자신이 생각하는 말 그대로 최고의 장면만을 뽑아내는 것.

         

       이것이 고동빈의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었다.

         

       당연히 최고의 장면이 쉽게 뽑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위해 상당히 많은 공이 들어간다.

         

       특히 기한이 정해져 있는 작품이라면 더더욱 관계자들과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고동빈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언제부턴가 ‘독종’이라는 부정적인 별명으로 불렸고, 현장에만 들어서면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물론 그러한 까칠한 점 덕분에 현장을 지배하기 쉬웠고, 항상 성공 가도를 달려왔기에 그를 찾는 사람은 많았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상당히 흥미로운 제안이 왔다.

         

       바로 신인 작가인 927 작가의 작품에서 촬영 감독 자리를 맡아 달라는 것.

         

       처음에 고동빈은 그 제안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의 927 작가는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완전 무명 시절이었다.

         

       그렇기에 스튜디오엔믹스가 왜 그렇게 자신을 간절히 원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927 작가의 ‘어서오세요 카페 바이올렛’의 대본을 읽은 순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마치 927이라는 작가가 자신에게 도발을 해오는 것 같았다.

         

       자신의 걸작을 어디 카메라로 담아낼 수 있으면 담아내 보라는 깜찍한(?) 도발.

         

         

       ─근데 왜 하필 접니까? 제가 그리 평가가 좋은 사람은 아닌데.

       ─927 작가님께서 대외적인 평가와는 상관없이 그저 실력이 좋은 분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고 감독님의 ‘향수’라는 작품을 보고 왔다면서 망설임 없이 감독님을 원하시더군요.

       ─그건……

         

         

       ‘향수’는 고동빈이 처음으로 촬영 감독의 자리에 오르고 제작한 작품이다.

         

       어쩌면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했을 때였고, 가장 공을 들여 만들었다.

         

       그만큼 평가도 좋고 성적도 좋았지만, 덕분에 처음부터 기준점이 올라간 것도 사실이다.

         

         

       ─뭐… 그래도 신인답지 않게 보는 눈은 있나 보군요.

         

         

       물론 고동빈은 그 얘기를 듣고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능력만 보고 뽑았다는 점과 기본적으로 대본의 수준이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기에 고동빈은 촬영 감독 자리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고동빈은 계속 실력을 인정받아 927 작가의 작품에 계속 참여할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투덜투덜하면서도 결국은 927 작가가 내린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해내는 것이 바로 고동빈이었으니까.

         

       어쨌든 그런 그는 바로 전날에 나영진으로부터 상당히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다음 날, 스튜디오엔믹스에 다급히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전에 통지받은 대로 어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에는 상당히 익숙한 얼굴들이 먼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스튜디오엔믹스의 박용오 국장과 유연정 국장, 제작기획 2팀의 리더인 신명오 PD, 927 작가의 드라마 촬영 과정에서 자신과 함께 합을 맞췄던 연출 감독 김재석 등등.

         

       쉽게 말해 스튜디오엔믹스의 중심인물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고동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박용오 옆의 비어있는 옆자리에 앉았다.

         

         

       “그… 진짜로 합니까? 박 국장님.”

         

         

       그리고 진심으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박용오에게 질문했다.

         

       이에 박용오는 호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고 감독님도 알다시피 그분은 한다면 하는 사람 아닙니까? 그래서 저희가 모인 거죠.”

       “…….”

         

         

       오늘 이 자리에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927 작가가 직접 자신의 연기를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서 당연히 관계자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나 뭐라나…….

       

        솔직히 흥미로운 얘기긴 했다.

         

       천하의 927 작가가 배우 겸 각본가로 출연하는 영화가 있다고?

         

       이건 일단 재미가 없든 말든 무조건 뜨긴 뜬다.

         

       심지어 거기서 연기까지 잘해버리면 말 그대로 금상첨화(錦上添花).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대본이겠지만, 927 작가가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대본을 가져올 리가 없다.

         

       그리고 그걸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겠지.

         

       즉, 굳이 대본을 검수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고동빈이 생각했을 때도 927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한해서 완벽주의자니까.

         

         

       “일단 927 작가님이 오실 때까지 이번 영화의 대본이나 한번 읽어 보시죠.”

         

         

       박용오의 말에 고동빈은 자신의 책상 위에 있던 무언가를 발견했다.

         

       네가 없는 여름.

         

       맨 앞의 종이에 이런 제목이 적혀있는 대본을…….

         

       어찌 보면 이것은 제작사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특권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남들은 제작이 완료되고 정식으로 방영되면 그제서야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걸 처음부터 확인할 수 있으니까.

         

       자세히 둘러보면 사전에 먼저 대본을 읽어 본 박용오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그 대본을 읽고 있었다.

         

       고동빈 역시 서둘러 그들을 따라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덧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대본을 다 읽어가던 시점에……

         

         

       “안녕하세요. 이렇게 직접 인사드리는 게 처음인 분들이 몇 분 계시네요.”

         

         

       이 상황을 만든 주인공이 나영진과 설소영과 함께 방안으로 들어섰다.

         

         

         

       ***

         

         

         

       방 안에 들어서니 익숙한 얼굴도 보이고 낯선 얼굴도 보인다.

         

       문제는 대부분이 내게 호의적인 얼굴을 보이고 있다는 점.

         

       이런 걸 흔히 내적 친밀감이라고 표현하는 게 아닐까?

         

       다들 내 작품의 제작 단계에서 엄청 활약해주신 분들이니 뭐…….

         

         

       “힘내세요.”

         

         

       그때 내 뒤쪽에 있던 설소영이 응원의 말을 해주며 나 PD님과 정해진 자리에 착석했다.

         

       처음에는 그녀와 함께 연기하는 장면을 보여 드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딱히 불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가 전적으로 그녀의 리드를 받으며 연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시작할까요? #1의 장면을 연기해볼 생각이에요.”

         

         

       그래서 나 홀로 연기를 하는 씬을 한번 보여 드리고자 한다.

         

       대본상에서도 첫 번째 씬이 바로 그런 장면이니.

         

       참고로 ‘네가 없는 여름’은 내가 누누이 말했듯이 우리의 얘기를……

         

       아니, 정확하게는 ‘내’ 얘기를 각색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내용을 포인트로 삼았을까?

         

       나는 이다혜 스토커 사건의 여파로 무려 열흘 동안 정신을 잃고, 긴 잠을 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어떠한 꿈이라는 것을 꾸게 되었다.

         

       사실 꿈이라기보다는 악몽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결국 그날 내가 제때 도착하지 못해 이다혜가 스토커한테 살해당하고, 그 이후의 일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어쩌면 진짜 있었을지도 모르는 세계선의 이야기였기에 나는 절대 그 악몽을 잊을 수가 없다.

         

       또한 피를 흘리며, 빗물에 몸이 차게 식은 이다혜의 몸을 끌어안았을 때 나는 이런 감정을 느꼈다.

         

       허무함, 공허함, 슬픔, 분노 등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

         

       그때 느꼈던 그 절망적인 감정은 아마 평생 지워 지지도, 물론 쉽게 잊을 생각도 없다.

         

         

       ─많이 과감해지셨네요.

         

         

       문득 차 안에서 설소영이 내게 한 말이 떠올랐다.

         

       어찌 보면 이 말은 맞는 말이다.

         

       그 꿈을 꾼 이후로 나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소중한 사람을 허무하게 잃지 않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때문에 927 작가라고 당당히 정체를 공개하고, 국민들을 상대로 과감한 도박까지 했다.

         

       다행히 결과는 좋았지만, 어차피 이다혜가 죽은 세계선에선 하등 다 쓸모없는 얘기였다.

         

       나는 그저 이 영화를 통해 내가 그때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 역시 나일지도 모르지.

         

       물론 그것이 그리 좋은 감정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 즐거움만이 따를 수가 없듯이, 때로는 이런 얘기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분명하게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

         

       

       ‘시작은 분명 어두운 방 안이었지.’

         

         

       꿈속에서 이다혜의 죽음 뒤에 나는 어두운 방 안에서 한동안 계속 나오질 않았다.

         

       그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그저 혼자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솔직한 마음으론 현실을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던 중 불현듯 나와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고, 나는 그녀에게서 구원을 받았다.

         

       물론 대본의 내용은 이것과 조금 다르다. 다만, 어떠한 계기로 구원이라는 것을 받는다는 것은 똑같았다.

       

       그리고 첫 번째 씬의 시작 지점 역시 이야기 흐름상 거의 끝 부분이었다.

         

       이 부분은 대한청소년연극제의 ‘꿈꾸는 아이들’이라는 대본을 쓴 경험이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쨌거나.

         

       나였을지도 모르는 ‘강하늘’이라는 소년은 어두운 방 안에서 천천히 눈을 뜬다.

         

       이것은 내 연기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였고……

         

         

       짝짝짝-

         

         

       얼마 지나지 않아 앞쪽에서 들려오는 어떠한 소리에 순식간에 다시 사고가 돌아온다.

         

       그리고 그곳에는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설소영이 나를 향해 박수를 치고 있었다.

         

       물론 방금 내가 선보인 연기가 좋았다는 의미에서.

         

         

       

       “허….”

         

         

       동시에 고동빈은 방금 서은우가 펼친 연기를 보고 자연스레 탄식을 내뱉고 있었다.

         

       그는 순간 강하늘이라는 배역과 927 작가가 동일 인물이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고동빈의 머릿속에서 지금 당장 떠오르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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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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