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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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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며칠 동안 그들은 정말 귀한 대우를 받았다. 기사들은 직접 나서서 검을 알려주려 했으며, 도서관 일부를 개방하기도 했다. 매 끼니 상다리가 부러질 것처럼 식사가 차려졌고 달콤한 후식까지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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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독한 사람도 편안한 삶을 살게 되면 몸과 마음이 풀어지게 되어있었다. 일행 또한 다르지 않았다. 
    ​
    ​
    결국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함을 알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달콤한 말이 들려왔다.
    ​
   
   “생각보다 재능이 뛰어난데? 혹시 시종으로 일해볼 생각 있어? 따로 고향이 없다면 여기에 정착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야.”
    ​
    ​
    시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는 사람의 추천이나 가문 대대로 시종을 이어가기도 한다. 고향조차 없는 이들에겐 시종이란 자리는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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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 자네 꽤 재능이 있군. 제국군에 들어가 보는 건 어떤가? 군에 들어간다고 해서 꼭 전쟁터에서 검을 휘두르는 건 아니다. 도시 내의 치안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는 이들도 있고 취사를 담당하는 이들도 있지.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고, 안정적인데다가 큰 도시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아서 삶의 질도 꽤 만족스럽다더군. 원한다면 추천서를 써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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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적인 직장, 커다란 도시. 난민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이들에겐 달콤한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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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적인 셈은 물론 글 까지 떼었단 말이야? 혹시 조금 더 공부해볼 생각 없니? 행정 쪽 인원은 항상 부족하거든.”
    ​
    ​
    더욱 많은 걸 배우고 싶던 이들은 이들의 말에 홀딱 넘어갔다.
    ​
    ​
    낙원 같은 이곳에 계속 머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더 눈부신 미래가 날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이 눈앞에 아른거리자 일행은 푸딩처럼 말랑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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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감이 깊어져 감에 따라 입술이 가벼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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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아요. 형처럼 새하얀 머리색은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관리하는 걸까요? 머리색이요? 어렸을 때부터 함께했지만 한 번도 바뀐 건 본 적 없어요.”
    “제가 정말 존경하는 사람이에요! 언젠가 저도 리안님처럼..”
    “아아 -. 리안님의 생 명 의 빛을 알고 싶으신 거죠? 어어? 어디 가세요?”
   “오빠가 없었다면 다 같이 함께 하는 식사가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을 거예요. 그런 사소한 행복을 몰랐다면 전 지금 이곳에 있지도 못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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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간에 이상한 사이비가 섞여 있는 것 같긴 하지만 호평이 쏟아졌다. 동경으로 흠뻑 젖은 눈동자는 마치 ‘용사’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집사는 몸을 흠칫 떨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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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문 내에서도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으니, 바로 공작의 남편이 실종된 용사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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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는 못 속이는 -… 아니,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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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냈지만 한번 생긴 의심은 크기를 계속 불려 나갔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그 하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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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의 자식은 새끼 범이라고. 공작의 핏줄이라면 조금이라도 검술에 재능이 보일 터였다. 마침 리안과 아이리스의 실력이 출중하다는 말이 많이 거론되었기에 분위기를 잘 살려 검을 맞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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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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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단장은 그날의 느꼈던 전율은 잊지 못할 것이다. 과거 각하를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아득한 격이 이제 성년이 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청년에게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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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분은 각하의 핏줄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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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그렇게 단정 짓기 무섭게 아이리스가 놀라운 검술 실력을 선보였다. 어떠한 감정의 기복도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이나 접근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공작이 검을 들었을 때 분위기가 똑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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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단장은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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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분명 각하의 자식은 한… 분이실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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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그제야 판톤이 어째서 각하의 자식이 두 명이라 말했는지 이해했다. 마법 단장은 다정한 리안의 모습에 각하의 자식이 아닐 거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다가 이내 굳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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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사…. 그 사람의 핏줄이라면 말이 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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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스한 햇살 같은 용사와 설산 꼭대기 빙하보다 더 차가운 공작. 두 사람 사이에서 낳은 아이이니 쉽사리 단정 지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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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사와 닮은 사람을 찾기엔 용사나 리안, 아이리스 모두 공통으로 순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 구분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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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사와 오랜 시간을 보낸 공작이라면 모를까 지나가듯 한번 밖에 본 적 없었던 마법 단장은 두 사람 중 누가 더 용사와 닮았는지 결론 내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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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지날수록 혼란은 잦아들고 어느 순간부터 리안이 각하의 자식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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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백에 가까운 하얀 머리카락과 귀족처럼 매끈한 피부, 영롱한 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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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에 의해) 몸에 녹아든 품위나 예의는 평민들 사이에서 살았음에도 숨기지 못한 품위처럼 보였다. 부드럽고 정중한 태도 속에서 잘 배우고 자란 귀족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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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그들을 위축시키고, 신성력이 마음을 녹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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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려움은 곧 경외가 되었고 공작이 성을 비운 지 이 주째 되는 날 성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리안을 각하의 핏줄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집사와 시녀장은 이성을 꽉 붙잡고 한쪽으로 기울여는 마음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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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잘못 생각한 거라면 -… 그들이 마왕쪽 세력에게 놀아나거나 사기꾼에게 놀아난 거라면 그보다 끔찍한 결말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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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매섭게 뜬 채 리안의 일과를 샅샅이 살펴보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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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 사고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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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래 머무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아! 떠나는 건 저 혼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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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의 뇌가 정지했다. 사기꾼이나 마왕 쪽 끄나풀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해봤어도… 설마 당사자가 먼저 떠나겠다는 말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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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집사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한 채 채비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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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분들은 여기나… 아니면 다른 곳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저 혼자 먼저 떠나려구요. 어디 가서 객사할 실력은 아니니까 식량만 조금 챙겨주시면 바로 떠날게요. 읏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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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을 챙겨 한쪽에 내려놓았다. 아공간 가방이라 무겁진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기합이 입가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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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아,아직 가… 각하께서 금방 돌아오실 테니 인사라도..!”
    “에이, 이렇게 오래 머문 거 아시면 화나실 거예요.”
   “그, 그렇지 않습니다!”
    “빈말이라도 감사드려요. 나중에 기회 되면 인사드리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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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얼굴 위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라는 생각이 선명하게 떠오르자 집사는 자신도 모르게 비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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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정말 각하의 핏줄이라면 이대로… 이대로 보낼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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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의도를 가졌든 공작가에 남으려 할 것이다!’라는 전제가 무너지자 이성이 마비되었다. 집사가 식은땀으로 등 뒤가 축축하게 젖는 걸 느끼며 말을 고르는 사이 그를 도와줄 아군이 나타났다. 혈중리안부족으로 인해 리안을 찾아온 아이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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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곧바로 오빠의 품에 안기고자 후다닥 방안으로 들어왔다가,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떠나려는 듯한 리안의 행색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뚝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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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뭐해?”
    “아 -… 지금 떠나려…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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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말을 잇던 중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입을 살짝 벌린 채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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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 어디로? 나도 금방 짐 챙겨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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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곁이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였기에 아이리스는 리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제 짐을 챙기고자 방을 빠져나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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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리안이 허겁지겁 아이리스의 팔을 붙잡아 돌려세운 후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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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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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러운 스킨쉽에 아이리스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볼을 옅게 붉혔다. 아이리스의 시점에선 핑크빛 꽃송이가 흩날릴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리안의 시점에선 박진감 넘치는 음악이 머릿속을 관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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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했다! 아이리스한테 너와 난 남매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과, 아이리스가 공작의 핏줄이라는 걸 말해줬어야 했는데 깜빡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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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얼굴 위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앞에 공작에게 목이 댕강 당하는 제 모습이 아른거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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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공작이 돌아오기 전이니까 지, 지금 말해도 늦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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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에 행복회로를 열심히 돌리며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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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너와 난 남매 사이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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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목소리가 침묵이 내려앉은 방안에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조금 전과 다른 의미로 커진 눈동자를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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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넌 공작님의 하나밖에 없는 핏줄이야.”
    “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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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말에 집사가 헛숨을 삼키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연속으로 이어진 탓에 집사의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아침 드라마에 몰입한 아줌마의 모습과 비슷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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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리안의 말을 듣고도 한참 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입을 살짝 벌린 채 상대의 말이 마치 외국어처럼 들려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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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게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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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얼굴 위로 선명한 의문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리안이 제 오빠인 건 너무나 당연한 명제였기 때문에 말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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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입술을 바라보며 말의 의미를 파악하려 하지만, 머릿속에 에러가 발생한 것처럼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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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너의 오빠가 아니야. 같은 핏줄도 아니고. 그냥… 그냥 머리색이나 눈 색이 비슷한 사람일 뿐이야.”
    “아니,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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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아이리스의 모습에 리안은 입술을 짓씹다가 결국 꺼내고 싶지 않았던 말을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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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우린 가족이 아니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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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말에 아이리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남매가 아니니까 가능이네? 이라는 이성적인 생각(?)을 이어가기엔 아이리스의 상태가 불안정합니다.

아이리스 시점에서 남매가 아니라는 말은 두사람 사이에만 존재했던 특별한 관계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질 뿐이죠.

뭣보다… 남매를 유지했어도 어느 순간… 타인이랑 이어지는 것보단 진?짜 가족이랑 이어지는 게 진짜 사랑 아닐까?
같은 소리를 하며 납?치결?혼 했을 것이기 때문에… 밝히든 안 밝히는 결과는 똑..같..습니다(흐린눈)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그로부터 며칠 동안 그들은 정말 귀한 대우를 받았다. 기사들은 직접 나서서 검을 알려주려 했으며, 도서관 일부를 개방하기도 했다. 매 끼니 상다리가 부러질 것처럼 식사가 차려졌고 달콤한 후식까지 먹을 수 있었다.

아무리 독한 사람도 편안한 삶을 살게 되면 몸과 마음이 풀어지게 되어있었다. 일행 또한 다르지 않았다.

결국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함을 알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달콤한 말이 들려왔다.

“생각보다 재능이 뛰어난데? 혹시 시종으로 일해볼 생각 있어? 따로 고향이 없다면 여기에 정착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야.”

시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는 사람의 추천이나 가문 대대로 시종을 이어가기도 한다. 고향조차 없는 이들에겐 시종이란 자리는 매력적이었다.

“후.. 자네 꽤 재능이 있군. 제국군에 들어가 보는 건 어떤가? 군에 들어간다고 해서 꼭 전쟁터에서 검을 휘두르는 건 아니다. 도시 내의 치안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는 이들도 있고 취사를 담당하는 이들도 있지.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고, 안정적인데다가 큰 도시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아서 삶의 질도 꽤 만족스럽다더군. 원한다면 추천서를 써주겠네.”

안정적인 직장, 커다란 도시. 난민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이들에겐 달콤한 제안이었다.

“기본적인 셈은 물론 글 까지 떼었단 말이야? 혹시 조금 더 공부해볼 생각 없니? 행정 쪽 인원은 항상 부족하거든.”

더욱 많은 걸 배우고 싶던 이들은 이들의 말에 홀딱 넘어갔다.

낙원 같은 이곳에 계속 머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더 눈부신 미래가 날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이 눈앞에 아른거리자 일행은 푸딩처럼 말랑해져 갔다.

호감이 깊어져 감에 따라 입술이 가벼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맞아요. 형처럼 새하얀 머리색은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관리하는 걸까요? 머리색이요? 어렸을 때부터 함께했지만 한 번도 바뀐 건 본 적 없어요.”

“제가 정말 존경하는 사람이에요! 언젠가 저도 리안님처럼..”

“아아 -. 리안님의 생 명 의 빛을 알고 싶으신 거죠? 어어? 어디 가세요?”

“오빠가 없었다면 다 같이 함께 하는 식사가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을 거예요. 그런 사소한 행복을 몰랐다면 전 지금 이곳에 있지도 못했을 거예요.”

중간에 이상한 사이비가 섞여 있는 것 같긴 하지만 호평이 쏟아졌다. 동경으로 흠뻑 젖은 눈동자는 마치 ‘용사’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집사는 몸을 흠칫 떨 수밖에 없었다.

가문 내에서도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으니, 바로 공작의 남편이 실종된 용사라는 사실이었다.

‘피는 못 속이는 -… 아니, 아니야.’

그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냈지만 한번 생긴 의심은 크기를 계속 불려 나갔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그 하나가 아니었다.

범의 자식은 새끼 범이라고. 공작의 핏줄이라면 조금이라도 검술에 재능이 보일 터였다. 마침 리안과 아이리스의 실력이 출중하다는 말이 많이 거론되었기에 분위기를 잘 살려 검을 맞대게 되었다.

“허어어…”

기사단장은 그날의 느꼈던 전율은 잊지 못할 것이다. 과거 각하를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아득한 격이 이제 성년이 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청년에게서 느껴졌다.

‘이분은 각하의 핏줄이 맞다!’

그가 그렇게 단정 짓기 무섭게 아이리스가 놀라운 검술 실력을 선보였다. 어떠한 감정의 기복도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이나 접근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공작이 검을 들었을 때 분위기가 똑 닮아있었다.

기사단장은 혼란에 빠졌다!

‘부,분명 각하의 자식은 한… 분이실 텐데?’

그는 그제야 판톤이 어째서 각하의 자식이 두 명이라 말했는지 이해했다. 마법 단장은 다정한 리안의 모습에 각하의 자식이 아닐 거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다가 이내 굳은 표정을 지었다.

‘용사…. 그 사람의 핏줄이라면 말이 될지도 몰라.’

따스한 햇살 같은 용사와 설산 꼭대기 빙하보다 더 차가운 공작. 두 사람 사이에서 낳은 아이이니 쉽사리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용사와 닮은 사람을 찾기엔 용사나 리안, 아이리스 모두 공통으로 순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 구분하기 힘들었다.

용사와 오랜 시간을 보낸 공작이라면 모를까 지나가듯 한번 밖에 본 적 없었던 마법 단장은 두 사람 중 누가 더 용사와 닮았는지 결론 내릴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혼란은 잦아들고 어느 순간부터 리안이 각하의 자식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순백에 가까운 하얀 머리카락과 귀족처럼 매끈한 피부, 영롱한 금안.

(마검에 의해) 몸에 녹아든 품위나 예의는 평민들 사이에서 살았음에도 숨기지 못한 품위처럼 보였다. 부드럽고 정중한 태도 속에서 잘 배우고 자란 귀족의 모습이 보였다.

리안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그들을 위축시키고, 신성력이 마음을 녹여버렸다.

두려움은 곧 경외가 되었고 공작이 성을 비운 지 이 주째 되는 날 성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리안을 각하의 핏줄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집사와 시녀장은 이성을 꽉 붙잡고 한쪽으로 기울여는 마음을 붙잡았다.

만약 잘못 생각한 거라면 -… 그들이 마왕쪽 세력에게 놀아나거나 사기꾼에게 놀아난 거라면 그보다 끔찍한 결말은 없었기 때문이다.

눈을 매섭게 뜬 채 리안의 일과를 샅샅이 살펴보던 어느 날.

대형 사고가 터졌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래 머무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아! 떠나는 건 저 혼자에요.”

집사의 뇌가 정지했다. 사기꾼이나 마왕 쪽 끄나풀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해봤어도… 설마 당사자가 먼저 떠나겠다는 말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리안은 집사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한 채 채비를 이어갔다.

“다른 분들은 여기나… 아니면 다른 곳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저 혼자 먼저 떠나려구요. 어디 가서 객사할 실력은 아니니까 식량만 조금 챙겨주시면 바로 떠날게요. 읏차…”

짐을 챙겨 한쪽에 내려놓았다. 아공간 가방이라 무겁진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기합이 입가를 맴돌았다.

“어…아,아직 가… 각하께서 금방 돌아오실 테니 인사라도..!”

“에이, 이렇게 오래 머문 거 아시면 화나실 거예요.”

“그, 그렇지 않습니다!”

“빈말이라도 감사드려요. 나중에 기회 되면 인사드리죠. 뭐.”

리안의 얼굴 위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라는 생각이 선명하게 떠오르자 집사는 자신도 모르게 비틀거렸다.

‘저, 정말 각하의 핏줄이라면 이대로… 이대로 보낼 순 없어!’

‘어떤 의도를 가졌든 공작가에 남으려 할 것이다!’라는 전제가 무너지자 이성이 마비되었다. 집사가 식은땀으로 등 뒤가 축축하게 젖는 걸 느끼며 말을 고르는 사이 그를 도와줄 아군이 나타났다. 혈중리안부족으로 인해 리안을 찾아온 아이리스였다.

아이리스는 곧바로 오빠의 품에 안기고자 후다닥 방안으로 들어왔다가,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떠나려는 듯한 리안의 행색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뚝 멈춰섰다.

“오빠 뭐해?”

“아 -… 지금 떠나려…엇?”

리안은 말을 잇던 중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입을 살짝 벌린 채 굳었다.

“떠나? 어디로? 나도 금방 짐 챙겨올게.”

리안의 곁이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였기에 아이리스는 리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제 짐을 챙기고자 방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 순간, 리안이 허겁지겁 아이리스의 팔을 붙잡아 돌려세운 후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아이리스!”

“으응?”

갑작스러운 스킨쉽에 아이리스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볼을 옅게 붉혔다. 아이리스의 시점에선 핑크빛 꽃송이가 흩날릴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리안의 시점에선 박진감 넘치는 음악이 머릿속을 관통하고 있었다.

‘망했다! 아이리스한테 너와 난 남매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과, 아이리스가 공작의 핏줄이라는 걸 말해줬어야 했는데 깜빡했어.’

리안의 얼굴 위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앞에 공작에게 목이 댕강 당하는 제 모습이 아른거린 탓이다.

‘아직 공작이 돌아오기 전이니까 지, 지금 말해도 늦지 않을 거야!’

머릿속에 행복회로를 열심히 돌리며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이리스 너와 난 남매 사이가 아니야.”

리안의 목소리가 침묵이 내려앉은 방안에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조금 전과 다른 의미로 커진 눈동자를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넌 공작님의 하나밖에 없는 핏줄이야.”

“헙…!”

리안의 말에 집사가 헛숨을 삼키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연속으로 이어진 탓에 집사의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아침 드라마에 몰입한 아줌마의 모습과 비슷했다.

아이리스는 리안의 말을 듣고도 한참 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입을 살짝 벌린 채 상대의 말이 마치 외국어처럼 들려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게 무슨 소리야?”

그녀의 얼굴 위로 선명한 의문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리안이 제 오빠인 건 너무나 당연한 명제였기 때문에 말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리안의 입술을 바라보며 말의 의미를 파악하려 하지만, 머릿속에 에러가 발생한 것처럼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난 너의 오빠가 아니야. 같은 핏줄도 아니고. 그냥… 그냥 머리색이나 눈 색이 비슷한 사람일 뿐이야.”

“아니, 아니야.”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아이리스의 모습에 리안은 입술을 짓씹다가 결국 꺼내고 싶지 않았던 말을 입에 담았다.

“…아이리스, 우린 가족이 아니야.”

“…!”

그 말에 아이리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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