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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3

   EP.143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언제부턴가 달이 떠올라 있었다.

     

   아직 지지 않은 해와 그 푸름에 물들어 있는 반달.

     

   그리고 나에게 날아들던 거대한 점은 점차 그 크기를 키워나가며 나의 어깨를 밀친 붉은 머리의 여인을 향해 거침없이 비행하고 있었다.

     

   질끈!

     

   꼭 감아진 진 하트의 눈꺼풀이 그녀의 붉은 눈동자를 부자연스럽게 가린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눈이 감기기 전에 그 눈에 담긴 다양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

   이름 : 진 하트

   나이 : 25세

   능력치 : [근력 Lv.21], [민첩 Lv.35], [체력 Lv.24], [마력 Lv.44]

   스킬 : [눈썰미(C+)] [중급 단검술(B)], [유연한 판단(B)], [요리(B+)], [거짓 간파(B)], [매혹(A)]

   특성 : [민첩한 몸놀림(B)], [침착함(B)], [매력(B+)], [행운(B+)], [전설적인 통솔자(A+)], [목사기사目使氣使(S+)]

     

   현재 상태 : 용기, 후회, 자책, 희생, 분노, 공포, 슬픔

     

   종합 평가

   – 한 때 도둑 길드 흑영(黑影)의 간부였던 뛰어난 통솔력을 지니고 있다.

   – 은혜는 2배로 복수는 10배로 갚는 계산적인 성향을 유지하지만 가끔 트라우마가 발동되면 냉정함을 잃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

     

   그녀의 복잡한 감정들이 눈에 들어온다.

     

   후회와 자책.

     

   나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용기, 희생의 감정도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녀의 눈빛을 통해 내가 가장 깊게 본 것은 다른 어떤 감정도 아닌 ‘슬픔’이었다.

     

   스윽.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녀의 감정이나 그 아래에 적힌 트라우마라는 글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화살. 나에게 달려들던 위험이 진 하트의 머리를 꿰뚫기 위해 맹렬하게 날아들고 있었으니까.

     

   스윽.

     

   나는 검을 꺼내 들었다.

   언제부턴가 마력을 펼치고 감각을 극대화하면 차근차근 초 단위로 흐르는 시간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는 개념이 되어 버렸다.

     

   화살은 빨랐다.

     

   하지만 나는 더 빨랐다.

     

   카아아아앙!!!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짜릿한 굉음이 사람들이 몰려 들어가던 마법 벙커를 메아리쳤다.

     

   날카로운 파공음이 그 뒤를 이었고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진 하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 어어?”

     

   이윽고 눈을 뜬 그녀가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며 자신의 생존 사실을 확인했다.

     

   날아가지 않은 머리통과 관통상은 찾을 수 없는 육체.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고 이내 화살촉이 완파된 채 바닥을 굴러다니는 거대한 나무 화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괜찮습니까?”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아직도 두려움과 슬픔에 사로잡힌 듯한 눈빛이다.

   허나 침착함이라는 B급 특성을 가진 덕분이었는지 그 혼란스러운 감정은 세차게 털어낸 두어 번의 고갯짓으로 금방 사라졌다.

     

   “당신 뭐야?”

     

   그런데 금방 침착해진다는 사실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분명 자신이 구하겠다고 뛰어든 사람이 자신을 구한 상황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상식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벌어진 것이기에 경계심이 짙어진 것이다.

     

   갑작스런 소리에 귀를 막았던 사람들이 고개를 든다.

   몸을 움츠리며 검으로 손을 가져갔던 소대장들 또한 언제부턴가 두려운 눈으로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그걸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는데…… 일단 잠시만.”

     

   나의 첫 번째 목적은 진 하트를 만나 화신으로서 쓸 만한 인재인지 확인하는 것.

   능력치를 보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 같았기에 이제는 다음으로 진행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위대한 지략가 ‘진 하트’를 화신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아니오]

     

   [경고]

   [당신은 해당 임무에서 단 5명의 화신을 휘하에 둘 수 있습니다.]

   [화신을 해임하기 위해서는 해당 화신이 사망해야 합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지겨워진 문장.

   이번에는 매번 누르던 ‘아니오’가 아닌 ‘예’를 누를 차례였기에 약간의 신선함이 가미된 상태였다.

     

   [‘예’를 선택합니다.]

   [6층 ‘좌표, 아우트라나 대륙’에서 만날 수 있는 7명의 히든 영웅 중 한 명을 발견하셨습니다.]

     

   이어진 메시지를 보니 뭔가 내가 옳은 판단을 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7명의 히든 영웅.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 방법은 없었지만 대충 떠올려 봐도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그 누구보다 화신으로 둘 이유가 있는 사람을 찾는 격이었다.

     

   하지만 뛰어난 인재는 쉽게 얻을 수 없는 법.

   삼국지의 유비가 그의 군사 제갈량을 포섭하기 위해 삼고초려를 했듯 나에게도 진 하트라는 인재를 얻기 위한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띠링.

     

   [그녀를 화신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녀의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당신에게 새로운 임무가 부여됩니다.]

     

   —

   『숙명 그리고 복수 – 진 하트』

     

   주제 : 도움

   난이도 : A+

     

   설명 : 진 하트는 어두운 과거를 지니고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며 그 비밀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입니다. 그녀의 부탁을 들어 주고 신뢰를 얻으십시오. 그녀를 화신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당신이 부족한 점을 채워줄 든든한 우군을 얻게 될 것입니다.

     

   임무 : 진 하트의 세 가지 소원을 이루어주기

   제한 : 진 하트의 목숨을 구한 자

     

   보상 : 화신

   실패 페널티 : 진 하트가 당신을 적대합니다.

     

   – 그녀의 부탁을 한 번이라도 거절할 시, 실패로 간주됩니다.

   – 진 하트가 사망 시, 실패로 간주됩니다.

   —

     

   그녀의 소원을 세 가지나 이루어주라는 임무.

     

   화신을 얻기 위한 특정 조건이 있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램프의 요정이 되는 것은 예상 밖의 전개였다.

     

   진 하트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예상이 가는 부탁이라면 도둑 길드를 빠져나온 만큼 그것과 관련된 임무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일단 나랑 같이 좀 갑시다.”

   “당신…… 길드에서 보냈어?”

     

   그녀의 물음에 나는 잽싸게 머리를 굴렸다.

     

   이걸 곧이곧대로 말하자니 왠지 도망칠 것 같고 나중에 밝혀질 사실을 굳이 숨겨봐야 좋을 것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

     

   “뭐… 반쯤은?”

     

   하지만 나는 솔직하게 떠오르는 생각을 털어놨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거짓 간파라는 스킬까지 가지고 있는 그녀를 말로 속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내가 무슨 전문가나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이런 쪽으로 타고난 사람에게 승부를 걸어 봐야 좋을 것이 하등 없었으니까.

     

   “길드 사람이라면 내가 따라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알죠. 근데 거짓말해 봐야 금방 알아챌 것 같아서 굳이 입씨름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세상도 각박한데 서로서로 솔직한 게 좋잖아요?”

     

   그녀가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어지간하면 말이나 행동으로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모양인데 도저히 그 의도를 알 수가 없으니 혼란스러운 것이다.

     

   “저는 길드에 소속된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뭐 복수나 보상을 바라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뭐, 진짜 까놓고 다 말하자면 당신을 돕고 싶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나의 말에 그녀의 눈빛이 순간 누그러졌다.

   도대체 어떤 대목이었는지 어떤 이유로 그녀의 마음이 풀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녀의 대답이 나름 나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나를 도와? 어떻게?”

     

   그녀의 물음.

   사실 임무를 받고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사람을 돕는다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이 어떤 위기에 봉착했을 때나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 어려움을 벗어나도록 힘을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그녀가 가장 걱정하고 신경 쓰고 있는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도둑 길드… 거슬리시면 절대 당신을 추적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가능해?”

   “저는 가능합니다.”

     

   나의 말에 그녀가 언제부턴가 뒤로 숨겨놨던 손을 앞으로 꺼낸다.

   언제든 나를 공격하기 위해 단검을 꽉 쥐고 있었던 듯, 그녀의 손에 단검 손잡이 모양으로 눌린 자국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믿지? 갑자기 뭔 짓을 할 줄 알고? 잡아다가 길드에 팔아넘기려는 속셈 아니야?”

   “뭐, 믿거나 말거나는 자유인데 확실한 사실 하나를 알려드리자면 제가 당신보다 훨씬, 훠어어어얼씬 강하다는 겁니다.”

     

   언제든 납치를 원했다면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의미.

   그리고 조금 전 나의 무위를 코앞에서 직접 경험한 그녀였기에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쯤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일단 자리를 벗어나죠. 보는 눈이 너무 많아요.”

     

   몬스터를 피해 벙커로 대피하고 있던 사람들은 이제 우리의 대화에 신경을 끄고 자리를 벗어난 상태였다.

     

   하지만 이곳에 남은 서른에 달하는 기사들과 마법사들.

   수도를 지키라 명을 받은 수비대원들은 당장에라도 나를 붙잡아 심문할 것처럼 창과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겠어. 일단 자리를 피하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 방법이 있어? 이미 관심을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은데.”

   나는 주변에 있던 병사들과 마법사들을 짧게 훑었다.

   민첩성이나 체력적인 능력치만 보면 진 하트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

     

   게다가 마법사들 중에 신체가 약해지는 저주를 걸 수 있는 자들이 있다면 진 하트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일 것 같았다.

     

   “다 방법이 있죠.”

     

   하지만 뭐……

     

   나한테는 별일이 아니었다.

     

   “꽉 잡아요.”

   “응?”

     

   나는 곧장 뛰어 진 하트의 허리를 붙잡았다.

   과거에 한가민을 이렇게 붙잡고 달렸던 기억이 문득 떠올라서 괜히 찔리는 기분도 들었지만 일단은 탈출에 집중하기로 했다.

     

   타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땅에 작은 균열이 생겨났다.

   그 뒤로 들려오는 진 하트의 비명 소리.

     

   한 번의 도약으로 하늘 높이 뛰어오른 나는 지체하지 않고 몬스터가 몰려 있는 남문을 향해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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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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