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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4

    업무를 마치고 세희 연구소 부소장실을 나와 수면실로 향했다.

    수면실로 들어서자, 방 정중앙에 강화 유리로 둘러싸인 튼튼한 격리실이 보였다.

    새싹이 전용 격리실이었다.

    내 추측이 맞았는지, 수면실로 옮겨진 새싹이는 날이 갈수록 싱그러워지고 있었다.

    새싹이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도중, 이상한 것이 보였다.

    ‘뭐지?’

    강화 유리를 열고 화분을 꺼내서 확인해 보자, 새싹이의 잎사귀 옆으로 조그마한 남색 열매가 하나 맺히기 시작한 것이다.

    남색 보석처럼 예쁜 색깔의 열매를 관찰하고 있으니, 시선이 느껴졌다.

    깜박깜박. 

    “!”

    깜짝 놀랐다.

    새싹이가 눈을 뜨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졸린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하던 새싹이는 애교스러운 얼굴로 히히 웃더니 자기 열매를 뜯어서 나에게 건네줬다.

    “먹으라고?”

    내가 열매를 받아 들자, 새싹이는 입으로 넣는 시늉을 반복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고 잠들었다.

    오브젝트가 준 열매라….

    당연히 먹으면 안 되겠지만, 사신이 시리즈가 준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라고 오예린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마구 흔들어서 떨쳐냈다.

    그러면 이 열매를 어떻게 해야 할까?

    ***

    게이트를 들어서자, 현대식 조명의 은은한 불빛 아래 반짝이는 광활한 공항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세련된 디자인과 미니멀리즘의 우아함이 돋보이는 터미널은 여러 개의 게이트로 이어지는 넓고 깨끗한 복도와 함께 펼쳐져 있었다.

    체크인 구역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키오스크가 배치되어 공항의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계획적으로 설계된 것으로 보이는 넓고 효율적인 공간이 무색하게 이용객의 숫자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전부 관계자처럼 보이는 사람들뿐이었다.

    아마 연구소를 끼고 새롭게 만들어진 공항이라서 그런 거겠지.

    새롭고 흥미로운 풍경이었지만 내 기분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이유는….

    타오르던 서울숲이 생각나게 만드는 향기로운 탄내.

    공항 전체에 은은하게 퍼져있는 맛있는 탄내 때문이었다.

    아무튼 절대로 장난에 실패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표정을 구기고 있어서 그런지, 평소라면 내 머리 위로 올라가서 더듬이랑 놀고 있었을 황금 사신이 내 어깨 위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나를 위로하듯이 볼을 쓰다듬고 있었다.

    어깨 위에 올라간 황금 사신을 손으로 집어서 들어 올려 보니, 황금 사신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나를 향해 손을 뻗고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까 왠지 웃음이 나와서 황금 사신의 머리를 통통 두들겨 준 뒤, 공항을 빠져나가는 예린이의 손을 잡고 따라나섰다.

    공항 앞에는 미리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제임스 연구소 마크를 달고 있는 커다란 리무진이 있었다.

    예린이와 같이 차량 내부로 들어서자, 내부 인테리어는 그 외부만큼이나 넓고 화려했다.

    “와, 의자도 푹신하고 좋네.”

    예린이는 나를 품에 안고, 내 손을 붙잡고 흔들면서 말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반짝반짝한 차량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 도중 맞은 편에 앉은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차량이 부드러운 진동음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거의 텅 비어 있는 공항 주차장을 지나 공항을 빠져나가자, 출구 근처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영어로 적힌 종이를 들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었다.

    <저주받은 장벽을 해체해라!>

    <운명을 받아들여라!>

    <종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예린이도 저 사람들이 신경 쓰였는지, 손가락으로 사람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사람들은 뭐죠?”

    “멸망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오브젝트가 신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죠.”

    예린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있을 법한 사람들이기는 했지만, 이상하게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타입의 사람들이었다.

    대도시에서 좀 멀리 벗어나기만 하면 ‘신의 사도’인 오브젝트를 쉽게 영접할 수 있어서 그런 걸까?

    한국은 민간인의 오브젝트 접근성이 워낙 좋으니까 말이다.

    오브젝트 관리가 철저한 걸로 유명한 미국에서 저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이 조금 신선하게 느껴졌다.

    예린이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말소리에 의아함이 약간 섞여 있었다.

    “저런 신기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가요?”

    “아뇨, 절대 많지는 않습니다. 물론 가시적인 집단행동이 보이지 않는 한국에 비하면, 많은 편이긴 합니다.”

    예린은 비서의 말을 듣고는 대화를 이어 나갔다.

    “미국이 특이한 게 아니라, 한국에 없는 게 특이한 거였군요?”

    “그렇습니다. 한국의 협회에선 종말론자들을 아귀 먹이로 줬던 정황이 있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적은 편입니다.”

    종말론자들을 아귀 먹이로 줬다는 이야기가 스리슬쩍 튀어나왔네.

    예린이도 처음들은 이야기 같았지만, 협회는 그럴법하다는 식으로 넘겨버렸다.

    하긴 우리나라 협회가 조금 특이하긴 하지.

    우리들의 리무진을 보며 목소리를 높이는 시위대의 모습이 보였다.

    비서는 저 사람들을 ‘종말론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저 사람들에게서 맛있는 탄내가 진하게 나.

    ***

    연구소 간의 교류가 잦아서 그런지, 마련된 숙소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특히 볼풀!

    사신이도 숙소가 마음에 들었는지, 뚱한 표정을 풀고 볼풀 안에서 헤엄쳐 다녔다.

    볼풀 안으로 뛰어들면 황금 사신이들이 마구 달라붙어 와서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침이 되자, 비서는 우리를 호텔 옥상에 위치한 헬리콥터 착륙장으로 안내했다.

    옥상에서 본 헬기는 평소에 보이던 헬기와는 조금 다른 게 생긴 헬기가 보였다.

    얼핏 보기에는 나무로 된 것처럼 생긴 헬기가 있었다.

    “나무를 헬기 위에 붙여둔 건가요? 신기하네요.”

    “영체를 막는 나무입니다. 지금부터 가는 곳에는 필수적이죠.”

    비서는 담담한 표정으로 내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이게 그 유명한 영체 장벽의 재료라는 나무구나. 

    헬기를 자세히 살펴보자, 나무로 된 장갑을 편집증적으로 세심하게 붙여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어디를 가기에? 

    “로키산맥에 오면 꼭 봐야 하는 풍경을 보러 갈 겁니다. 여기 처음 근무하게 된 연구원들에게도 보여주는 풍경이죠.”

    헬기가 하늘 높이 떠오르면서, 나와 사신이를 태우고 높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거대한 벽, 영체 방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신이도 신기한지, 창문에 붙어서 밑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헬기는 장벽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방벽을 넘어서, 출입이 금지된 깊숙한 곳까지.

    그리고 거기서 기묘한 풍경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아찔할 정도로 높이 떠오른 헬리콥터에서 내려다본 아래 풍경은 확실히 이질적이었다.

    이 높이에서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구덩이가 땅속에서 그 입을 벌리고 있었다.

    구덩이 주변에는 누군가가 강제로 찢어버린 것처럼 상흔이 남아 있었다.

    불길한 검은색이 마구 뒤섞인 거대한 소용돌이 형상의 구멍이 빛을 빨아들이며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아무리 밑을 노려봐도 그 중심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고, 아무리 멀리 보려고 해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미국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뭔가 이상했다.

    이렇게 거대한 구덩이가 존재할 수 있는 건가?

    “눈치채셨군요. 저 구덩이는 공간을 끊임없이 왜곡하고 있습니다. 구덩이의 중심부로 다가갈수록 점점 왜곡이 심해져서, 도저히 중심부에는 도달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시간을 뒤트는 신비로운 나무도 신기했지만, 두 눈으로 그 크기를 확인할 수 있는 구덩이가 주는 장엄함은 그 차원이 달랐다.

    “로키산맥에 부임하게 된 연구원들은 이 광경을 보고 겸손함을 배우게 됩니다. 현재 평화로워 보이는 지구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도 말이죠.”

    “확실히 그러네요….”

    나는 살짝 질린 목소리로 작게 대답했다.

    너무나 대단한 규모의 오브젝트라서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지 절실히 느꼈다.

    인간은 정말 괜찮은 걸까?

    하지만 옆에 앉아 있는 지루해 보이는 사신이의 얼굴을 보니까, 순식간에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마음속을 가득 메웠다.

    사신이는 무적이니까, 어떻게든 해주겠지?

    “오브젝트의 위험을 제외하고 보면, 굉장히 멋진 풍경이기도 해서 꽤 인기 있는 풍경이기도 합니다.”

    소용돌이치는 구덩이를 계속 바라보니,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과 함께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쾌한 기름 냄새가 감도는 것만 같았다.

    ***

    미로 같은 거리의 번잡한 도시 아래, 비밀스러운 깊은 곳으로 잠입해 들어가는 한 명의 남자가 있었다.

    그는 현재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오브젝트 마약’의 수사를 위해서 몇 달이나 잠복근무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드디어 그 실체를 눈앞에 두었다.

    <불타는 강철 돼지상.>

    한국에서 발견되었던 오브젝트가 이 지하 깊숙한 곳에 존재했던 것이었다.

    남자의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이제, 여기서 탈출해서 보고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 종말론자들의 소굴에서의 집회가 끝나기만 하면 되었다.

    종교적인 색채를 띤 이 집단의 기도가 끝나자,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겠어.’

    하지만 남자의 소원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나타난 친절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 그에게 위스키 잔을 건넸다.

    “한잔 어떠세요?”

    평소와는 다른 전개에 남자는 침을 삼키고, 위스키 잔을 받아들였다.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는 높은 도수의 위스키. 

    남자가 잔을 들어 올리자, 술과는 어울리지 않는 굉장히 맛있는 냄새가 확 밀어닥쳤다.

    오브젝트가 분명했다!

    그것을 확인해 주는 것처럼 그의 손목에 매달린 오브젝트 측정 장비에도 붉은 불이 들어왔다. 

    붉은빛이 나타내는 것은 정신 오염 1급, 자각할 수 없는 완벽한 세뇌.

    그 순간 긴장으로 남자의 시간이 한없이 느려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들킨 거지?

    “우리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나?”

    그는 그 말을 듣고 재빠른 동작으로 유리잔을 벽에 던져버리고 뒤를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몇 발짝 떼지도 못하고 그대로 총성과 함께 땅바닥을 굴렀다.

    옆구리에서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좀 더 조심했어야지, 요원님.”

    “괜찮아. 죽지 않을 거야. 너는 살아서 우리의 일원이 되어줘야 하거든.”

    점점 어두워지는 그의 시야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위스키 잔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보라색을 남색으로 수정했습니다.
    혼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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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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