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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4

    <144 – 사탕주머니>

     

    “교관은 왜 안 끼어들고 있는 거야!”

    “다치지 않게 제압할 자신이 없어서 그럴 겁니다.”

     

    암흑마나는 파괴적인 힘.

    강한 것도 강한거지만 어설프게 몰아붙였다간 자쿠가 자멸할지도 모른다.

    학생의 생사가 걸린 위기에 교관이 선뜻 나서지 못한 것과 달리, 오크노디는 솔선수범해서 나서며 교관이 해야 할 제압을 대신 시도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오크노디를 빼내자.”

    “안 됩니다. 지금 끼어들면 표적만 분산되어서 일이 더 어렵게 됩니다.”

    “샌님의 말이 맞다. 저 하급반 녀석, 아까부터 주변의 소리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

     

    의식이 날아간 상태에서 외부의 자극에만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괜히 자신들이 개입해서 반응이 튀어 예상치 못한 움직임을 취하면 오크노디도, 자신들도, 저 하급반 학생도 모두 위험해진다.

     

    “오크노디는 괜찮은 거야? 그렇게 위험한 힘을 마주 꺼내서 쓰고 있는데.”

    “출력을 보십시오.”

     

    지젤은 오크노디의 검에 맺힌 암흑마나를 가리켰다.

    순간적으로 암흑마나를 불사르며 이목을 끌었을 때의 출력은 훨씬 우위였지만, 그 뒤로는 검 끝에 코팅이라도 하듯이 얇게 두르고 있다.

     

    “우리 꼬마숙녀는 통제가 극도로 어려운 암흑마나의 출력마저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모양입니다. 저 까다로운 힘을 검에 한 겹만 씌우듯이 줄여낸 것을 보아서는 말입니다.”

    “좋아해도 될 소식이야?”

    “당연히 희소식입니다. 꼬마숙녀가 하급반 학생처럼 통제력을 상실하고 정신줄을 놓을 걱정은 덜었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당장 겉으로 보이는 힘의 출력은 자쿠가 우위를 점했지만 실제로는 낮은 출력을 유지하고 있는 오크노디가 보이는 모습이 훨씬 대단한 것이었다.

     

    ‘저는 이 뒤가 더 걱정되지만 말입니다.’

     

    지젤은 걱정되었다.

    가뜩이나 좋지 않던 오크노디의 소문에 기름을 끼얹듯이 결정타를 입힐 이번 소동이.

    전부 저 학생 때문이다.

    기사학부 지망생 자쿠.

    그를 보는 지젤의 눈이 겨울바람보다 차갑게 가라앉았다.

     

     

    * *

     

     

    모브가 저렇게나 강해졌다.

    친구의 성장이다.

    기쁜 마음이 들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도 기쁘지가 않았다.

    기쁠 수가 없었다.

    모브의 성공에는 그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인부터 알고 있다.

    이 시험에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마나검증시험.

    마나를 다루는 능력을 묻는 시험이다.

     

    -마나를 다루지 못한다면 네 칼은 괴물이 아닌 사람의 피를 먹고 살 것이다.

    -그리하다보면 너 또한 괴물이 되겠지. 단지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괴물.

    -마나를 다룰 줄 모르는 용병이란 그런 족속들이다.

     

    스승님은 말했다.

    넌 나처럼 되지 말라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목숨을 걸라고.

     

    그의 목숨이 품 안에 든 약병에 걸려있다.

    물 한 컵도 안 될 적은 양의 약.

     

    마시면 죽는다.

    십중팔구 죽는다.

    살더라도 전과 같은 삶은 살 수 없을 것이다.

    부작용이 없는 것은 극히 드문 일.

    기적같은 확률에 달렸다.

    그런데도 스승은 건넸다.

    이 약을 먹는 것이 먹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조직의 개가 되어 살아갈 남은 세월이 그만큼 가혹한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가 곧잘 이야기했던 ‘괴물의 삶’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자비롭다고 여겼기에.

    그럼에도 그는 각오를 했었다.

     

    ‘모브가 함께 아카데미를 나간다면 그때는 기꺼이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다.’

     

    친우와 함께 세계제일의 아카데미에 들어가 인생역전을 꿈꾸었다가 실패했다고.

    둘이 들어가서 함께 나왔다고.

    그때 그 시절은 좋았다고.

    평생 그렇게 추억하며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브는 합격했다.

    그는 이제 낙제권에서 벗어났다.

    여기서 떨어지면 자신만 혼자다.

    사회의 이면, 남들은 바라보지도 못할 어두운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10년의 수련으로 겨우 나란히 섰다. 잠깐이나마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시 네가 앞서나간다면, 여기서 나 혼자만 돌아간다면.’

     

    그때는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한가.

    20년? 30년?

    어쩌면 남은 평생을 걸어도 두 번 다시 그가 모브를 따라잡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모브의 발목을 붙잡고 싶지는 않다.

    기회야 많았다.

    함께 먹는 식사에 손장난을 치거나.

    수련 도중 사고를 유발하거나.

    온갖 더러운 방법이 떠올랐고, 모브를 자신과 같은 위치로 추락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하지 않았다.

     

    ‘모브. 우리는 지옥 같은 어린 시절을 함께 극복한 사이다. 언젠가 우리 같은 녀석들을 구하는 기사가 되자고 약속했지.’

     

    그런 널 배신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느냐.

    그러니 그는 결정했다.

    모브가 아닌 스스로를 배신하기로.

     

    꿀꺽.

     

    약병을 비우고 대기줄에 선다.

    교관은 약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도 막지 않았다.

    포션도핑.

    그조차도 학생의 실력이라고 보는 아카데미니까.

    어차피 매번 같은 수준의 도핑을 유지할 수 없다면, 도핑의 후유증을 이겨낼 수 없다면 언젠가 도태되어 나가떨어지기 마련이니까.

    실제로도 그렇다.

    이 시험을 이겨낼지도 의문일뿐더러, 이겨내더라도 몇 번이나 버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도핑에 의미는 없다.

    그저 순간의 연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가 물러서지 않은 이유는.

    정정당당한 기사의 꿈을 배신하면서까지 나선 이유는.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네 옆에 나란히 설 수 있다고.

    10년 전과는 다르다고.

    지난 10년의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고.

     

    ‘증명하겠다. 나의 10년을!’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감각이 일그러졌다.

    검 끝에서 피어오르는 암흑마나.

    새카만 검기가 불꽃처럼 일렁거리며 거칠게 솟았다.

     

    콰앙!

     

    바위에 균열을 만든다.

    돌 부스러기를 튕겨낸다.

    평상시보다 더한 파괴력에 전율을 느낄 새도 없다.

     

    -명심해라. 만일 약을 복용했다면 심장이 옥죄여드는 고통이 느껴들 때 기운방출을 멈춰야 한다.

    -암흑마나는 사용자에게 길들여지지 않는 힘. 통제력을 잃고 통제한계점을 넘기는 순간, 네 안전은 장담할 수 없다.

     

    멈출 수 없다.

    약을 먹고도 시험에서 떨어진다면 어차피 언젠가 암흑마나에 의한 발작으로 쓰러지게 된다.

    그 뒤에 다시 눈을 뜰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처지.

     

    ‘스승님. 이미 약을 먹기로 했을 때 안전 같은 건 포기했습니다. 저에게는 끝까지 달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단 말입니다.’

     

    더 큰 힘이 필요했다.

    재능의 부족함을 좁히려면.

    노력의 미천함을 속이려면.

    시시각각 조여드는 심장을.

    매 순간 아득해지는 의식을.

    좀 더 붙잡고, 이 검을 거듭 휘둘러야만 했다.

     

    콰아앙!

     

    부서졌다.

    해낼 리 없었던 시험에 성공했다.

    동급생들이 자신을 우러러보는 시선이, 모두가 열광하는 외침이, 모브가 대단하다며 박수를 치는 소리가 먹먹하게 들린다.

    물속에 잠긴 채로 그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어쩐지 멀게 느껴지는 세상과의 거리감.

     

    ‘그런가.’

     

    그는 이미 통제한계점을 넘겼다.

    이 짧은 성취를 누리는 대가로 일생의 전부를 상실했다.

    스승은 그 한 순간의 성취를 이루지 못한 것을 언제나 후회하였다.

    자신은 어떤가.

    스승처럼 되지 않은 것을 만족하는가.

    생을 놓아버린 것을 후회하는가.

    자쿠가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그의 시야가 닫히며 의식이 증발했다.

     

     

    * *

     

     

    암흑마나의 출력과 건재한 신체만 봐도 알 수 있다.

    고생을 많이 하며 산 친구구나!

     

    암흑마나를 지닌 NPC들은 탐험단의 복수 같은 이사벨이 살아가던 동기보다는 훨씬 짙고 어두운 복수를 품고 살기 마련이다.

    이 정도면 못해도 만 명 이상의 죽음을 보며 자란 사람이어야 한다.

     

    예사롭지 않은 사건과 조우한 과거를 지닌 인물.

    일개 엑스트라로 남기엔 커다란 백스토리를 지니고 있겠지.

    잘만 하면 단역이 아니라 네임드 악역으로도 거듭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봤자 광화포션과 쌍벽을 이루는 암흑포션을 마셔버렸으니, 이제는 넘쳐나는 암흑마나를 주체하지 못하고 자멸해버릴 운명에 처했다.

     

    “나랑 마주치다니, 서로 운이 좋았네!”

     

    나한테 걸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실 암흑마나에는 재밌는 기믹이 숨어있다.

    암흑마나의 순도와 양을 곱한 절대값이 작은 쪽은 큰 쪽의 기운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강한 영향을 받는다.

    마물들이 괜히 마족의 부림을 받는 것이 아니고, 마인들이 마족들에게 껌뻑 죽는 것이 아니다.

    마왕이 마족들을 부리는 것도 같은 이치.

    암흑마나의 절대값이 압도적으로 높아버리니 격하의 존재들은 절대복종을 하며 무한한 충성심과 동경, 연모의 감정 따위를 품게 된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도록 만드는지에 따라 해당 개체의 아이덴티티, 개성이 부여된다.

     

    ‘이번 회차의 아이덴티티는 뭘로 할까?’

     

    움찔거리며 눈치를 보는 자쿠.

    그를 보며 고민했다.

    고인물인 나야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다.

    개성도 내 맘대로 연기할 수 있다는 뜻!

    그렇다고 맘대로 할 수 있다고 키가 230cm인 근육떡대가 “우웅?” 이지랄 하면서 몸을 베베 꼬는 컨셉은 잘못된 컨셉이다.

    세상에는 TPO라는 말이 있다.

    T : Time(시간).

    P : Place(장소).

    O : Occasion(상황).

    때와 장소, 상황에 맞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컨셉에도 TPO는 중요했다.

     

    133cm의 11살 여자아이.

    1학년 공동수석.

    귀여운 여자아이의 캐릭터에 빙의되자마자 어린아이에게 맞는 말투와 행동을 취해왔던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이 TPO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암흑마나 기믹컨셉도 이를 벗어나지는 말아야 한다.

     

    ‘귀여운 게 좋겠네!’

     

    갑자기 근육이 막 부풀어 오르면서 괴력으로 때려잡거나 엄청난 카리스마로 모두를 복종시키는 것은 컨셉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기운을 낮추어 자쿠가 덤비도록 틈을 보이고는 그가 덤비는 즉시 허술했던 자세를 고치며 검을 세웠다.

     

    “?!”

     

    강자의 속임수에 놀아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쿠가 암흑마나의 본능대로 공격을 멈추려 들었지만, 그가 멀어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걸음을 내딛은 나.

     

    “에잇!”

     

    검으로 자쿠를 베어버리는 대신, 그가 들고 있던 검을 힘껏 올려치며 순간적으로 암흑마나의 출력을 끌어올렸다.

    깡 소리와 함께 야구공 날아가듯이 빙글빙글 날아가 시험장 저편에 꽂히는 자쿠의 검.

     

    “나쁜 짓은 하면 안돼요. 이렇게 혼내줄 거야!”

     

    검게 물든 눈자위가 당혹스러움을 드러내며 뒷걸음질 치는 것을 검으로 발을 찍어 지면에 묶어버리며 도망치지 못하게 저지했다.

    신체에 느껴지는 고통에 일어난 짧은 경직.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훌쩍 뛰어올라 검 손잡이 위에 한 발로 우아하게 착지했다.

     

    나풀.

     

    교복 치맛자락이 꽃송이처럼 허벅지 높이까지 부풀어 올랐다가 내려앉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두려움에 덜덜 떨며 꼼짝도 하지 못하는 자쿠.

    무섭니?

    근데 늦었어!

    그의 이마에 대고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이렇게!”

     

    엄청난 근력에 암흑마나의 증강효과까지 더해진 딱밤이 이마를 강타했다.

     

    빠아악!

     

    굉장히 아픈 소리와 함께 휙 뒤로 꺾인 자쿠의 몸.

    풀썩.

    뇌를 흔드는 강한 타격에 암흑마나로도 몸을 일으킬 수 없게 되자 자쿠가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아니, 암흑마나를 다루는 사람을 기절시켜버리면 기운이 더 크게 폭주를…!”

    “아, 그건 괜찮아요.”

     

    입을 벌리고 쓰러진 자쿠의 입 속에 손가락을 푹 집어넣었다.

     

    <블러디 마리아의 마나연공법>

    <흡공 – 마리아의 우아한 식사>

     

    더 큰 암흑마나의 기운에 이끌려 줄줄이 딸려 나오는 자쿠의 암흑마나.

    손끝에 맺힌 검고 불길한 기운이 너무 많아서 무언가 다른 물질의 형태를 빌려 보관을 하고 싶었던 찰나에 때마침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다.

    허리춤에 찬 사탕주머니였다.

     

    ‘이왕 먹을 거면 맛있게 생긴 편이 먹기 좋겠지!’

     

    암흑마나가 빙글빙글 돌며 뭉치더니 검은 구슬의 형태를 취했다.

     

    “이렇게 간식으로 만들면 되거든요!”

     

    사탕주머니에 암흑마나구슬을 집어넣고 다시 줄을 조여서 주머니를 잠갔다.

    교관의 눈이 두 배는 크게 휘둥그레졌다.

     

    “그 주머니는…”

    “사탕주머니에요!”

    “아, 암흑마나는 함부로 보관하면…”

    “괜찮아요! 제 사탕주머니거든요!”

     

    참사를 막아줬으면 고마워할 줄 알았더니 교관의 눈에 두려움만 더욱 커졌다.

    사탕주머니를 보며 침을 꼴깍 삼키는 모습에 기겁하며 양 손으로 주머니를 가렸다.

     

    “안 먹어!”

    “방금 제 주머니 보면서 침 삼켰잖아요!”

    “먹고 싶어서 삼킨 거 아니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컨셉충이 진지충보다 강한 것은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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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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