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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4

    겁화 가문을 나온 직후 지체할 것 없이 목적지로 향했다.

    목적지는 옛 중국 땅으로, 한반도에 위치한 겁화 가문의 본가와 비교적 가까웠다.

    그 과정에서 워프게이트는 사용하지 않았다.

    애당초 대표적인 회색지대에 해당하는 중국 땅이다.

    그 땅에 게이트가 몇 뚫려있지도 않았다. 또 이하율의 신분은 사용하지 않는 만큼 그냥 자력으로 향했다.

    물론 그냥 두 발로 걸어가기에는 시간이 좀 소요됐을 테지만, 나름 방법이 있었던 지라 곧장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중국… 여기가 어디쯤일까? 옛 지명으로 따지면 내몽골 자치구와 랴오닝 성의 사이쯤 될까.

    관측으로 천천히 사방을 훑었다.

    관측의 범위를 잠시 무리해가며 쭉 넓혔다.

    물밀듯 들어오는 정보의 파도.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 누르며 정보를 잠시 정리해 봤다.

    ‘낙후됐네.’

    가장 먼저 떠오른 감상은 낙후됐다는 것.

    슬쩍 발끝으로 땅을 해집었다.

    아스팔트가 벗겨진 땅에서 어둑어둑한 흙이 파헤쳐졌다. 척 보아도 질 나빠 보이는 토양이다.

    그냥 주변의 기반 시설이 모두 상태가 별로다.

    회색 콘크리트 건물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이곳저곳에 금이 쩍쩍 그어져있다.

    시설의 벽면에는 잡다한 낙서와 거무죽죽한 때가 눌어붙어있고, 멀쩡한 유리창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건물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한쪽에서는 콘크리트는 무슨, 대충 나무나 천을 엮어 만들어둔 판자촌이 무성했다.

    이러한 장소에서 거주하는 이들도 건강과는 거리가 멀어 빼빼 마르고 수척한 모양새였다.

    지난 몇 개월간 느껴온 세상의 시설과는 자못 달랐다.

    평화롭다고 느낄 법한 도시와 현대적인 아름다움은 전혀 없다.

    하다못해 변방의 소도시 취급받던 시프나하도 투박하지만 나름 발전한 도시의 모습인데 반해, 이곳은 소도시나 시골만도 못한 폐가로 보였다.

    ‘중국은 대부분 이런 상태라던가.’

    대격변 이후 중국은 제대로 된 껍데기도 남기지 못한 채 망해버린 국가 중 하나다.

    국토가 크면 지킬 것이 많아진다

    중국은 국토가 광활하여 지킬 것이 많다.

    외부의 적을 저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발생하는 던전과 몬스터를 처리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

    그렇기에 대격변 이후, 광활한 영토의 국가 대부분이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작은 여러 집단으로 쪼개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중 중국은 나름 괜찮은 상황이었다.

    초인이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인적자원이 어느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중국은 땅이 넓은 만큼 인구도 많았고, 그만큼 초인으로 각성하는 이들도 많았다.

    각성한 초인들의 성향이나 품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쁘든 착하든 그들은 인간이다.

    결국 생존을 위해서는 몬스터를 토벌하고 던전을 공략해야 했다.

    국가가 수십으로 쪼개지고, 수많은 사람이 죽고 사라졌다.

    인구가 많은 만큼 희생자도 많았지만, 현실적으로 말해 멸망할 수준은 아니었다.

    현대에 들어서 중국은 망했다. 수십으로 쪼개진 집단도 거의 다 망했다. 그냥 이 영토의 상당수가 못 써먹을 땅이 되었다.

    그건 일개 몬스터의 소행이었다.

    ‘쌍두독룡.’

    개체명은 쌍두독룡(雙頭毒龍).

    협회 측정 위계로는 3위계의 알파.

    3위계쯤 되면 어지간한 최상급 영웅도 단일 토벌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최상급 영웅 다수와 그들을 도울 지원부대를 이끌고 토벌을 진행해야 한다.

    그만한 위상의 3위계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을 홀로 재기불능으로 처박은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대표적으로는 쌍두독룡의 질병과 독성 덕분이다.

    쌍두독룡이라는 이름답게, 해당 개체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동양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쪽 머리에서는 독을, 다른 머리에서는 질병 덩어리의 숨결을 뱉어낸다.

    그 살상력이 무척 괴랄하여, 독이든 질병의 숨결이든 최상급 영웅도 직격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사실상 절명하는 수준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러한 독과 질병의 확장성이 어마무시했다는 것이다.

    독은 사람뿐 아니라 지형 자체에도 영향을 끼쳤다. 덕분에 주변 일대를 독에 절어버린 죽음의 땅으로 변모시켰다.

    질병은 전염성이 극히 강력했다. 처음 쌍두독룡이 출몰하여 수십만이 학살당하고,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로부터 질병이 확산되어, 피해가 터무니없이 확산됐다.

    쌍두독룡은 본연의 신체능력 등은 3위계의 평균보다 떨어졌지만,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는 데 특화된 개체였다.

    때문에 중국이라는 영토가 완전히 개박살나버린 것이다.

    이곳 같은 비교적 외곽은 몰라도, 쌍두독룡이 출몰했던 사천을 중심으로 한 심부는 여전히 독에 절여져 방치되는 실정이다.

    덕분에 옛 중국 땅의 상당수가 몬스터와 인간이 두루두루 살아가는 회색지대가 된 지 오래.

    허구한 날 몬스터가 출몰해 사람이 잡아먹히고, 사람이 사는 곳은 협회에서 정한 국제법을 밥 먹듯이 위반하는 초인들이 있다.

    이렇게 낙후되어 버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쯧.’

    마음이 편치 못한 상황이었다.

    괜히 혀를 한번 찬 뒤 걸음을 옮겨 도로 외곽에 설치된 기둥으로 다가갔다.

    길쭉한 회색 기둥의 꼭대기에서 뻗어있는 가지. 그곳에 난잡하게 걸쳐져있는 검은색 전선.

    ‘오랜만이네…’

    전봇대다.

    이전 세계에서는 흔히 보이는 시설인데 반해, 이쪽 세상에서는 옛적에 사라진 과거의 시설이다.

    지금은 전기가 아닌 마력을 사용한다.

    또한 중거리적인 마력의 공급은 바닥에 케이블을 묻어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전봇대 같은 시설이 굳이 들어설 이유가 없었다.

    나는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전봇대를 툭툭 두드렸다.

    쩍쩍 갈라진 금이 만연한 전봇대 기둥에는 온갖 전단지가 덕지덕지 달라붙어있었다.

    대충 살피니 장기매매, 불법 약물, 현상금 목록 등등… 음지에서 볼법한 전단물이 그득하다.

    ‘여기도 붙어있구나.’

    나는 주렁주렁 매달린 전단지 중 하나를 툭 뜯어냈다.

    여기저기 뜯기고 해지는 등 오래된 전단지 사이에서, 나름 최근에 붙은 전단지였다.

    내용은 그다지 특이할 것 없었다.

    신을 따르라. 그분이 곧 강림하시니, 자신을 따르는 미천한 신도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리라… 어쩌고저쩌고.

    길고 복잡한 문장이 만연한 종교 홍보 문구였다.

    당연하게도 제대로 된 종교가 아니라 사이비 따위로 취급될법한 사조직이다.

    회색지대가 된지 오래인 중국.

    그만큼 삶이 피폐하고 희망이 없는 사람이 가득한지라, 이런 사이비 따위가 날뛰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다.

    대충 신을 따르면 구원받으니, 닥치고 따르라는 내용이 정상적일 리가 없다.

    ‘…죽음의 신이라.’

    죽음을 극복하여 신위에 오르셨으니, 곧 죽음 그 자체가 되셨노라.

    하여 그분은 곧 사령(死靈)을 구원하시는 죽음의 신이시다…

    해당 전단지 속 종교에서 일컫는 신은 죽음의 신이라고 칭하고 있다.

    온갖 미사여구 범벅되어 죽음의 신을 찬양하는 종교적인 문구도 함께였다.

    표지에는 낫을 들고 있는 검은 로브 차림의 무언가가 그려져 있었고.

    심드렁하니 전단지에 새겨진 술식을 살핀 뒤 품속에 구겨 넣었다.

    ‘…신이라기엔 거대한 뱀이던데.’

    사령의 탑주.

    어찌 된지 모를 일이지만, 아직 침공을 시작하지도 않은 녀석을 추종하는 세력이 꽤나 존재했다.

    이 세력은 추후 쌍두독룡의 사령을 찾아 부활시켜, 중국에서 다시금 깽판을 부려버리는 참사를 일으킨다.

    해당 참사로 그나마 남아있던 인간마저 깡그리 몰살해 중국은 회색지대에서 흑색지대… 마경으로 변모해버리고 만다.

    ‘그건 안 돼.’

    일어나선 안될 좆같은 일이다.

    시프나하 사건도 충분히 큰일이었지만, 해당 참사가 벌어진다면 사상자의 자릿수가 다를 거다.

    무엇보다 중국에 밀접한 삼대 가문도 피해를 본다.

    창해 가문의 백아린도, 겁화 가문의 홍연화도 피해를 봐버린다.

    ‘미리 싹을 뽑아둬야지.’

    물론 스펙업을 우선 이룰 필요가 있었다.

    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마력의 호수의 입구를 찾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관측의 권능이 있다면 금방 끝낼 수 있다.

    입장 조건은… 공간의 권능으로 비비면 가능하겠지.

    던전을 탐색하며 겸사겸사 사이비 교도도 찾는다.

    이번에 완전히 박멸하지는 못해도, 피해를 입혀둘 필요가 있다.

    혹여 중간에 위험해질 경우를 대비하며 비상탈출 버튼도 있다.

    한숨을 푹 내쉬며 걸음을 멈췄다.

    나는 어느새 한 낡아빠진 건물을 앞두고 있었다.

    입구 옆에는 험악한 인상의 남성 하나가 의자를 가져다 앉아있었다.

    체내의 마력으로 보아하니 초인이었다.

    남성의 시선이 터벅터벅 걸어온 내게 향해졌다.

    나는 펑퍼짐한 로브를 착용한 상태다.

    로브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쓰고, 눈구멍도 없는 까만색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수상한 모양새.

    “외부인은 출입 금지다. 관심 가지지 말고 냉큼 꺼져.”

    말도 붙이기 전에 내려지는 싸늘한 축객령.

    남성은 허리에 걸치고 있는 검을 툭툭 두드리며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내 차림을 생각하면 조금 이해가 가는 반응이다.

    ‘……’

    “귀머거리 새낀가. 왜 안 꺼져.”

    나는 그를 무시하고 혹시나 싶어 다시 한번 건물을 관측했다.

    층수는 지상 2층에 지하 2층.

    1층은 널찍한 로비였고, 2층에는 거주를 위한 몇 개의 방이 있었다.

    유지 보수는 물론 간단한 청소조차 되어있지 않아 돼지우리 같은 장소였지만, 별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지하에는.

    짐승을 가두는 철제 우리에 갇힌 사람들과, 지하 중앙에 놓인 제단에서 공양 절차를 밟고 있는 사제 비슷한 놈이 있었다.

    투박한 석재 제단에는 배가 갈린 사람의 시체가 놓여있었다.

    꿀렁꿀렁 나오는 핏물이 석재 제단을 타고 흘러, 바닥에 새겨진 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시체의 얼굴이 끔찍하게 일그러져있는 것을 보아하니 산 채로 배를 찢으며 진행한 모양이다.

    “쯧, 말로 하면 꺼질 것이지.”

    남성이 삐걱대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허리춤에 껴둔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더니 터벅터벅 다가왔다.

    “요즘따라 쥐새끼가 자꾸 기웃대고 지랄이야.”

    쓰르륵…

    검이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뽑혀 나왔다. 그 모양새가 참 어설펐다. 뽑혀 나오는 소리도 잡음이 많았다.

    사람이 없다고는 하지만 대놓고 사람을 죽이려 드는 모습에 이곳 치안이 어떤 꼴인지는 잘 알겠다.

    치안이 이 모양이니 제물 수급이 꽤 수월하겠지.

    남성이 검을 그어왔다.

    강기조차 두르지 않은 모습에 나는 발을 뻗었다.

    – 꽈앙!

    남성의 미간 정중앙에 발등이 꽂혔다.

    우두둑! 목이 뒤로 꺾인 남성의 신형이 쏘아져 건물의 문짝에 처박혔다.

    목재 문짝이 남성과 충돌해 뜯겨나갔다.

    손을 대지 않았음에도 문이 저절로 활짝 열렸다.

    그 모습에 슬쩍 시야의 구석을 확인했다.

    또 상태창(추정)의 문자가 바뀐 듯했다.

    ‘…보정은 작동하는 게 맞나?’

    몸이 좀 가벼워지긴 했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뭉게뭉게 먼지가 피어오르는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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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아카데미 장애인 전형 생도가 되었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created a game character.
Instead of taking several perks, I added restrictions.

▶Restriction (I): “Curse of Sensory Seal”
─Permanently seals a chosen sense.
─Choice: Sight, Taste, Smell

▶Restriction (II): “Curse of Short Life”
─You are born with a body doomed to a short life.

▶Restriction (III): “Curse of Silence”
─Speaking causes you pain.

When the next day came, I couldn’t se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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