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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4

       게임의 설정집에는 아주 많은 이야기가 쓰여 있었지만, 그렇다고 무슨 역사서나 인물에 대한 평전이 통째로 쓰여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게임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배경 설정은 일부러 빼먹기도 했고. 당연한 이야기다. 스포일러니까.

        

       하지만, 황제와 검성 두 사람의 과거는 좀 써두는 게 어땠을까? 원작에서 검성은 자기 오두막에서 죽고, 황제와는 다시 만날 일도 없었으니 서로에 대해서 뭔가 할 대사도 없었다. 심지어 두 캐릭터 모두 게임 내내 등장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검성은 주인공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퇴장하는 캐릭터고, 황제는 최종 보스였으니까.

        

       특히 검성은 숨겨진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으면 1편에서는 만날 수도 없는 캐릭터고.

        

       “좋군. 어차피 오늘은 더 훈련할 기분도 아니었으니까.”

        

       검성은 황제에게 그렇게 말하며 제이든을 흘겨보았다. 제이든은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선을 움직여, 이번에는 나를 보았다.

        

       “…….”

        

       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럴 만도 하지. 내 기이한 재능을 보고 나를 따라왔는데, 막상 황궁에 왔더니 보이는 것은 그냥 ‘평범하게 재능 없는 인간’이라면 실망할 만도 했다. 얼핏 보면 그 정도의 시선은 아니었지만, 검성은 자기 생각을 숨길 줄도 알 테니까.

        

       “오랜만에 보았으니, 술이라도 마시며 회포나 풀도록 하지.”

        

       “노인네가 낮술을 버틸 수 있겠는가?”

        

       “그러는 그대야말로 황궁에 앉아 정치질만 하지 않았던가? 남들 앞에서 취하지도 못했을 텐데, 간 하나는 깨끗해졌겠군.”

        

       검성은 황제한테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답한 뒤, 우리 쪽으로 몸을 돌리고 말했다.

        

       “훈련은 내일 계속하겠다. 내가 없다고 게으름 피우지 말고. 다 티가 나는 법이니까.”

        

       “예!”

        

       제이든이 힘차게 대답했다. 오늘 있었던 추태를 만회하기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 그래. 제이든.”

        

       황제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보고를 듣고 싶군. 준비되는 대로 알현실로 와라. 우리 둘 다 거기 있을 테니.”

        

       황제는 그렇게 말하더니 나를 한차례 바라보고는 몸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제이든은 그렇게 힘차게 대답하고는,

        

       “그럼 실비아, 내일 또 보도록 하지.”

        

       내 쪽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

        

       앨리스나 클레어 두 사람 다 내가 오늘따라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앨리스는 아침에 내 방을 찾아오는 순간부터, 그리고 클레어는 나와 훈련하는 내내 느꼈던 모양이었다. 레오도 마찬가지였고.

        

       세 사람 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나한테 ‘괜찮냐’고 물어보았지만,

        

       “괜찮습니다. 다만…… 조금 쉬고 싶네요.”

        

       자세한 상황을 말할 수 없었던 나는 그냥 그렇게 대답하고는 방으로 향했다.

        

       지쳤다.

        

       전부 내가 벌인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아까 생각했듯, 내 안전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검성이나 황제와 붙어있어야 하는 것도.

        

       하지만 이쯤 되니 그냥 다 귀찮았다.

        

       그냥…… 푹 자고 싶었다.

        

       걱정하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리고, 명상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머릿속이 마구 뒤엉켰다.

        

       주변의 걱정을 죄다 뿌리치고 방으로 도망친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 뛰어들었다.

        

       루카스…… 아, 그래, 혼자 있으면 곤란한데…….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마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걱정해야 할 것은 나의 몸이 아니었다.

        

       *

        

       “실비아!”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 직후에 들린 목소리는 두 사람의 것이 겹쳐 있었다.

        

       겨우 눈을 떴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클레어와 앨리스가 보였다.

        

       “다친 곳은!?”

        

       클레어가 그렇게 물었다.

        

       “아냐, 여기 누가 들어왔던 흔적은 없어.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대로야.”

        

       앨리스가 내 방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클레어는 안심했다는 듯 숨을 내쉬었다.

        

       눈을 몇 차례 깜빡이고 나니, 그제야 시야가 좀 트였다. 문 앞에서는 레오가 이쪽을 향해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검을 꽉 쥐고 있는 것을 보면 앨리스와 클레어가 들어온 사이에 경계를 서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무슨……?”

        

       “습격이야.”

        

       내가 질문을 다 마치기도 전에 앨리스가 먼저 대답했다.

        

       “습격?”

        

       “루카스라고 했던가?”

        

       클레어의 말에 앨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루카스야. 한동안 모습을 감췄던.”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몸을 확 일으켰다.

        

       “목표는 누구입니까?”

        

       검성? 황제? 적어도 앨리스와 클레어가 올 때까지 내가 멀쩡했던 것을 보면 내가 목표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심문소.”

        

       하지만 앨리스의 대답은 내 예상과는 완전히 빗겨나간 것이었다.

        

       검성도, 황제도 아닌 심문소.

        

       거기 대체 누가 있어서— 아.

        

       “맞아.”

        

       내 얼굴에 이해의 빛이 떠오른 것을 보고, 앨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아직 키아라 베라티가 잡혀있으니까.”

        

       노스우드 영지에서 생포한 성당 기사.

        

       “루카스가 어째서?”

        

       “나도 잘 모르겠어.”

        

       앨리스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가야 합니다.”

        

       내가 곧장 방 한구석에 세워두었던 총을 향해 다가가자, 앨리스가 내 팔을 잡았다.

        

       “잠깐, 실비아.”

        

       고개를 돌린 나와 눈이 마주친 앨리스는 잠깐 주저하더니 말했다.

        

       “너, 몸 상태가…….”

        

       앨리스의 말에 클레어도 내 눈치를 보았다. 저기 서있는 레오를 포함해 세 사람 다 오늘 내 컨디션이 최악이라는 것을 보았으니까.

        

       하지만…….

        

       만약 루카스가 굳이 ‘법국의 포로’를 찾아갔다면, 나는 무조건 그 상황을 알아야 했다. 내가 물어보고자 했던 것보다 훨씬 더한 무언가가 있을지 모르니까.

        

       게다가, 아직도 내 주변에 숨어있을 그 가면녀.

        

       몇 개가 빠져있어서 전부 자리를 맞추더라도 그림이 제대로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몇 조각 없는 퍼즐이 내 머릿속에서 맞춰지며 윤곽이 조금 보였다.

        

       “가야 합니다.”

        

       내가 다시 한번 목소리에 힘을 줘 말하자, 앨리스는 잠깐 나를 보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우리도 같이 가.”

        

       마음 같아서는 나 혼자 가고 싶었지만, 그러겠다고 해도 세 사람은 절대 나를 그냥 보내주지 않을 거다.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없는 나는 세 사람을 뚫고 가지 못하겠지.

        

       “…….”

        

       그리고, 그런 능력 없이는, 나는 세 사람을 다 보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좋습니다. 대신, 절대로 무리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 할 소리를.”

        

       내 말에 앨리스는 기가 찬다는 듯 대답했다.

        

       나 때문에 전부 틀어진 이야기다.

        

       무조건 내가 그 상황을 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조금은 믿는 바도 있었고.

        

       이 황궁 안에는 루카스라는 존재를 보고 그냥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두 사람이나 있었으니까.

        

       *

        

       “……당신,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야?”

        

       “이유야 여럿 있지.”

        

       눈앞에 있는 붉은 머리의 남성을 두고, 베라티는 뒤로 최대한 물러났다. 벽에 등이 닿았다.

        

       영광스러운 법국의 기사로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체면이 서지 않는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베라티에게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임무가 있었으니까.

        

       적어도, 죽을 수는 없었다.

        

       “뭐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검을 휙 휘둘렀다. 날에 묻어있던 피가 아래로 촥 튀었다. 검신은 그것만으로도 깨끗해졌다. 마치 그렇게 더러워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 그 깨끗해진 검신을 본 베라티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제리코의 검.”

        

       “아, 알고 있구나? 역시 성당 기사네.”

        

       루카스는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검신을 세웠다. 극도로 날카로워 무엇을 베어도 베어낼 수 있지만, 동시에 검날이 나가는 것을 본 적 없다는 검이다.

        

       ‘지보’는 아니었지만, 고대의 잃어버린 마법으로 만들어진 검이었기에 보물로 취급되는 검이었다.

        

       “……안토니오는?”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

        

       베라티가 검의 원주인의 이름을 말하자, 루카스가 되물었다.

        

       “적어도 이 검의 주인일 정도로 실력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

        

       뿌득. 베라티는 이를 갈았다.

        

       “사실 내가 법국을 향했을 때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거든? 그냥, 내 미래를 읽는 동생의 정체가 뭘까 고민하다가 법국으로 가면 뭔가 힌트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무작정 갔을 뿐인데.”

        

       루카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의외로 이런저런 힌트가 많더라. 너희들은 상상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그게, 무슨 뜻이지?”

        

       루카스는 그렇게 물어보는 베라티를 가만히 보았다. 그 눈동자를 보고 베라티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죽는다.

        

       지금 눈앞의 이 남자는, 베라티를 살려둘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물어보는 건 내 몫인데.”

        

       루카스는 천천히, 마치 베라티가 한마디라도 못 듣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듯이.

        

       “추기경 몇 명한테 물어봤는데, 너. 여기 잡혀 온 게 어느 정도 의도된 거라던데.”

        

       “…….”

        

       “유적에서 지보를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은 거고, 만약 잡혀서 들어갔다면 황궁 내에서 지보의 위치를 탐색하고. 몸에 마법진을 몇 개나 그려왔다면서?”

        

       “그 사실을, 어떻게…….”

        

       “말했잖아. 물어봤다고.”

        

       루카스는 웃는 얼굴 그대로 말했다.

       

       

       “법국이 비밀스러운 나라라서 참 다행이지, 안 그래? 아니었다면 지금쯤 성당 기사단의 이름에 굉장히 큰 흠이 생겼을 텐데.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말이야.”

       

       

       그리고 한 발자국 베라티에게 가까워졌다.

       

       

       등이 벽에 닿았기에, 베라티는 루카스로부터 더 멀어질 수는 없었다.

        

       “너한테도 똑같이 물어볼 생각인데, 어때?”

        

       “나는…….”

        

       베라티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 추기경들이 입을 열었을 정도의 ‘심문’이라면, 적어도 지금껏 제국에서 베라티에게 보이던 ‘신사적인’ 방식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는 건…….

        

       “뭐, 말할 생각이 없다면—”

        

       루카스가 베라티를 향해 한 발자국 내딛으려는 때,

        

       “—어이쿠.”

        

       루카스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까지 루카스의 머리가 있던 곳을 검이 훑고 지나갔다. 검기는 그대로 앞으로 날아가, 그대로 베라티의 머리 위쪽의 천장을 긁었다.

        

       정수리 위로 후두둑 돌조각이 몇 개 떨어졌다.

        

       루카스는 펄쩍 뛰어서 뒤쪽에 서있는 존재와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그쪽을 향해 몸을 돌리고는,

        

       “오?”

        

       흥미롭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곳에는 검은 로브를 입고 눈구멍 두 개만 뚫린 밋밋한 하얀 가면을 쓴 여자가 서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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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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