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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4

     

    아셀라의 예상대로 회의는 그날 밤에 긴급하게 소집됐다.

     

    황제는 집무실에 엄숙하게 앉아 서류를 확인했다. 그의 뒤에서 앰브로시아가 살짝 피곤했는지 눈을 부릅뜨고 자리를 지켰다.

     

    늦은 시간에도 황궁의 거물이 모두 자리에 집합했다.

     

    황제의 양측으로 나란히 일렬로 늘어선 신하들. 그의 오른팔인 비서관과 시종장관은 물론 대법관, 재무장관, 수석 재판관, 친위대장인 소드마스터, 기사단 연대장.

     

    어느 누구나 서민은 평생 한 번 얼굴 볼 수도 없는 거물이다.

     

    물론 승계권자도 모두 참여했다. 헤이케와 라우가, 아셀라도 근엄하게 자리를 지켰다.

     

    주치의인 나와 알베리치, 보이슈 및 호위기사는 조금 떨어진 2열에 자리했다.

     

    황제가 신호하니 비서관이 회의 개최 신호를 알렸다.

     

    “오늘 여기서 발언된 이야기는 한 글자도 외부로 새어나가선 안 된다는 황명이오. 기아스의 맹약에 동의하시오.”

     

    궁정마법사가 기아스를 발동하여 보안을 거친다. 방음 마법 및 녹음 수정구 탐지까지 이뤄지고 나서야 황제가 입을 뗐다.

     

    “모레, 용사가 황궁에 도착할 예정이다.”

     

    황제의 앞이라 전원이 자세를 유지했지만 많은 이가 마른 침을 삼키느라 목젖을 꼴딱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알고 있는 건 이 자리의 인간, 그리고 정보 제공자인 자작이 전부다. 틀림없느냐, 아셀라 3황녀.”

     

    “틀림없습니다.”

     

    아셀라가 또박또박 대답했다. 황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비서관, 이어 설명하라.”

     

    황제는 오래 말하기 힘들었는지 바톤을 넘겼다. 비서관이 안경을 고쳐 쓰며 문서를 읽었다.

     

    “해당 용사는 최소 1년 전, 볼펜뷔테르 자작령의 한 시골 마을에서 발생했다고 추정됩니다. 자작은 그녀의 존재를 그간 비밀로 숨겨왔습니다.”

     

    “실례합니다. 혹시 용사가 여성입니까?”

     

    소드마스터 지그문트가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19세. 자작령 현지인으로 가족은 없습니다.”

     

    19세, 막 성인이 된 나이로 나보다는 한 살 아래다.

     

    “용사임을 확인할 수 있는 징표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미 사제의 검증도 끝냈습니다. 확실합니다.”

     

    장내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마왕이 이미 나타난 다음 용사가 발견되었다면 모르겠지만, 용사가 먼저 나타났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황제가 짧게 선언했다. 비서관이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대륙의 모든 국가는 여신의 이름 아래 반드시 지켜야 하는 평화조약이 있습니다. 마계와의 전쟁이 발발할 경우 즉시 분쟁을 일시 중단하고 연합군을 결성해야 한다는 조항입니다. 이를 어긴 국가는 종전 후 전 국가의 적국이 됩니다.”

     

    “마족과의 전쟁은 연합군이 진행하더라도, 마왕을 토벌하는 건 결국 용사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역사적으로 기동성을 위해 용사의 부대는 5인에서 6인으로 구성했으며, 이는 용사 파티로 불렀습니다.”

     

    “꼭 전쟁이 일어나는지요? 혹시 마족이 얌전히 있을지도….”

     

    “그런 일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2천 년 전 고대로부터의 기록이 말해줍니다. 마왕과 용사가 탄생한 시기에는 반드시 인족과 마족의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으음.”

     

    황제가 눈을 부라렸다. 어느 때보다도 진중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었다.

     

    “즉시 국경의 제국 기사단을 전부 소집하라. 타국과의 협상이 끝나는 대로 재편성에 들어가겠다. 용사가 도착하면 기량을 평가하고 지원이 가능한 인재를 대륙 전역에서 찾아 최고의 파티를 구성하라.”

     

    마치 정복전쟁을 펼치던 현역 시절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그 앞에만 서도 열기로 피가 증발해버리는 느낌이다.

     

    “각 관료는 발생 가능한 경우의 수와 대응책을 제시해보라.”

     

    신하들이 황제에게 한 마디씩 의견을 올렸다. 분야의 우두머리들답게 갑작스런 상황에도 경제, 사회, 학문별로 분석과 함께 대응책을 내놓았다.

     

    “추가로 실전 병력 운용 전략의 의견을 듣고 싶군. 연합군이 편성되었다는 전제하에, 보다 효과적인 전략 전술은 없겠는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헤이케가 기회를 잡아 앞으로 나섰다.

     

    아셀라가 들리지 않게 혀를 차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어찌 보면 능력을 표출할 기회이니 승계권자 간의 자그마한 대결이다.

     

    “연합군 운용 방향성 설정이 마족과의 전투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 아룁니다. 현재 대륙의 최중요전력은 저희 제국 기사단과 왕국군입니다.”

     

    “그러하다.”

     

    “마왕은 마계의 마왕성에 있을 테니 용사파티와 그곳까지 함께할 원정군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인간계를 방어할 방위군이 없으면 마왕을 토벌하는 동안 국가가 멸망한다는 웃지 못할 일이 생깁니다.”

     

    “옳은 지적이다.”

     

    “이 전력 배분이 승리를 쟁취하기에 가장 중요하다 아룁니다. 제국 기사단과 왕국군은 성향이 다르기에, 이를 고려하면…”

     

    헤이케의 의견을 들은 황제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순식간에 전쟁 시나리오를 여럿 만들어 대처법을 짜온 헤이케였다.

    확실히 그녀의 전략 감각은 황제를 진하게 물려받았다.

     

    “원정군과 방위군의 편성 시나리오는 필요하겠군. 타국과 협상과 조율도 들어가야 한다. 그 외 추가 의견은 없는가.”

     

    “소녀가 말씀 올리겠습니다.”

     

    헤이케의 발언이 끝나고, 아니나다를까 바로 아셀라가 나섰다.

     

    “폐하, 지난 제국을 위대하게 만든 전쟁에서는 마법사 부대가 크게 활약했습니다.”

     

    “사실이다.”

     

    “전력을 올리면 편성의 폭도 늘어납니다. 마도국의 마법사를 수급받아 기사단과 혼용 편성하면 전력을 3할 이상 상승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훈련은…”

     

    마법의 이해도가 높은 아셀라이기에 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

    그녀의 설명을 들은 황제가 납득이 갔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라.”

     

    그 역시 마법사 부대의 강력함은 잘 알고 있었다.

     

    “적은 마족이다. 인정사정 봐줄 때가 아니지. 18년 만에 마법사 부대를 부활시킬 때가 되겠군.”

     

    본래 역사와 다르게 아직 황제가 생존해 있으니 단 하루의 회의만으로도 굉장히 많은 내용이 진전했다.

     

    전쟁영웅의 칭호는 거저 얻은 게 아니었다.

     

    “허나 강한 병력과 정석만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대전쟁은 정석만으로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승리를 위한 강력한 한 수를 제안해볼 자는 없는가.”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황제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장소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뒤에 있는 자들도 자유롭게 발언해 보라.”

     

    내가 있는 쪽이었다.

     

    아셀라가 슬쩍 나를 향해 눈동자를 돌렸다.

     

    지금인가.

     

    “폐하, 아셀라 3황녀 전하의 주치의, 고트베르크입니다. 외람되오나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허가하마.”

     

    “물론 강한 병력과 적절한 전략으로 인간계를 지키며 마계를 공략하는 전쟁의 본질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다만 전쟁의 목표인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한 가지 핵심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핵심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내가 힘을 주어 강조했다.

     

    “마계와의 전쟁에서 언제 승리가 정해지는가, 하는 점입니다.”

     

    황제는 내 말을 바로 이해했다.

     

    “마왕을 토벌했을 때로군.”

     

    “그렇습니다. 용사가 성검으로 마왕의 목을 베지 않는 한, 마족은 기세를 멈추지 않을 것이며 전쟁은 백 년이고 지속될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마왕만 토벌한다면 전쟁은 순식간에 끝납니다.”

     

    “맞는 말이다만, 고트베르크. 마왕은 마계에 있는 마왕성에 있지 않은가. 그 때문에 원정군에 얼마나 병력을 배분하는가 하는 전략의 설정이 필요하다.”

     

    “더욱 효율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병력을 방위군으로 사용해 제국을 확실하게 지켜내며 동시에 마왕 토벌도 진행할 전략입니다.”

     

    내 말에 황제가 흥미를 보였다.

     

    “그게 무엇인가?”

     

    “폐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저희 제국에는 어느 국가보다 빠른 발이 있습니다.”

     

    “텔레포트 게이트로군.”

     

    “바로 그렇습니다.”

     

    내가 긍정했다.

     

    “마도국의 고위계 마법사, 이들은 마도사라고 부릅니다. 마도사들을 선행 부대로 편성해 마계로 잠입시켜 텔레포트 게이트를 설치하게 합니다.”

     

    “과연. 방위군이 제국을 방어하는 동안 용사 파티만이 마왕성으로 이동해 마왕을 토벌하는 게로군.”

     

    황제가 전략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담한 작전에 다른 인사들이 놀라는 눈치였다.

     

    아셀라는 마음에 든 모양이었는데, 나를 슬쩍 돌아보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당연히 마음에 드시겠지. 미래에서 당신이 고안한 전략이었으니까.

     

    실제로 텔레포트 게이트라는 장점을 이용한 제국에게만 가능한 방식이었다.

     

    다만 미래에서는 작전의 시작이 늦었다.

     

    선행 부대가 한 번 전멸하기도 해서 왕국까지 괴멸하기도 했고, 과정에서 제국도 무지하게 침략당했다.

     

    거기엔 후딱 용사 파티를 제국에서 떨어트려 음모를 꾸미려는 아셀라의 의도도 어느 정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돌아보면 맞는 전략이란 말이야.’

     

    무리해서 원정군을 훈련할 필요도 없고 이쪽을 비워서 털릴 걱정도 없어진다.

     

    “고트베르크.”

     

    하지만 헤이케는 내 작전에 의문을 품은 모양이었다.

     

    “제국을 미끼로 쓰겠다는 의미인가.”

     

    “따지고 보면 그렇군요. 하지만 텔레포트만 제때 이뤄진다면 전쟁은 한 달도 안 가 끝날 겁니다.”

     

    “장담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음, 나야 결과를 잘 알지만 장담한다고 대답할 수도 없고.

     

    “아셀라 3황녀.”

     

    “예, 폐하.”

     

    “마계에 텔레포트 게이트를 설치하는 건 가능하다 보느냐.”

     

    황제의 질문에 아셀라가 잠시 생각을 되짚는 척 턱가에 손을 가져갔다.

     

    연기가 수준급이다. 이미 아셀라의 안에서 진작 결론을 나왔을 터였다.

     

    “전쟁 발발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2년 이상 이후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판단합니다, 폐하.”

     

    “좋다. 채용 가능한 전략 중 하나로 가능성을 열어두겠다. 기발한 발상이었다, 고트베르크.”

     

    황제는 마음에 들었는지 칭찬을 하사했다.

     

    “다만 그에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용사가 마왕을 쓰러트린다는 전제다. 용사의 기량을 성장시키고 최적의 파티가 주어져야 하리라.”

     

    이어 황제는 명령을 내렸다.

     

    “당분간 용사는 월광궁에서 맡아라. 최초로 발견하기도 했고, 기량을 평가할 소드마스터도 있다. 타국과의 협상, 병력 편성은 목휘궁에서 진행하라.”

     

    헤이케와 아셀라가 황명을 받들며 예를 표했다.

     

    그 후에 황제가 나를 따로 지목했다.

     

    “고트베르크.”

     

    “예, 폐하.”

     

    “그대에게도 임무를 내리겠다. 용사의 신체는 그대가 직속으로 담당, 관리하라. 내의원의 주치의들과도 적극적으로 협조하라.”

     

    “건강은 중요하지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황제의 명령이니 거부권은 없다. 나는 예를 표했다.

     

    “…아니, 그는 제 주치의…”

     

    다만 아셀라가 뭐라고 투덜대려다 소리를 속으로 삼키고는 입술을 비죽 내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나리야물어님 1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작은 금액이 아닌데요..?! 혹 전하시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댓글은 항상 보고 있으므로… 비밀인 마공을 하나 알려드리자면, 쓰시고 바로 삭제하셔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재밌게 읽으셨다는 뜻이시겠죠?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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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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