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44

        

         

       “차기 신관이라.”

         

       산지로 박사는 책상에 올려놓은 서류를 들어 차기 신관에 관한 내용을 재차 확인해보았다.

         

       “보자. 마약 딜러…신관을 꾀어 지위를 획득한 것으로 추정됨…. 허허.”

         

       그리고는 헛웃음을 흘리며 집어던지듯 서류를 책상 위에 내던지곤 부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살짝 찡그리며 그에게 물었다.

         

       “이거 자네가 생각한겐가?”

       “예. 그렇습니다.

       “이런 드라마나 싸구려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보고가, 자네가 생각한 것이다?”

         

       산지로 박사는 박하기 짝이 없는 평가를 던지곤 부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말도 안 되는 내용이지만 하버드 출신의 부하이니만큼 무언가 생각이 있으리라 믿고, 그의 이어질 부연설명을 듣기 위한 것이었다.

         

       “저 서류에 적힌 추측은 얼마 되지 않는 정보를 너무 단편적으로 해석한 결과입니다. 대국적이고 거시적인 시야로 바라보지 못하는 미숙하기 짝이 없는 보고서지만, 제 나름의 최선을 다한 것이니 너무 노여워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쯧쯧. 그래. 내가 아무리 허황한 말이라도 믿어보겠다고 했으니 들어보겠네.”

       “일단 보고서에 적힌 대로 이 ‘차기 신관’이라는 존재는 범죄자로 추정됩니다. 그것도 그냥 범죄자가 아닌, 마약과 깊은 관계가 있는 범죄자입니다.”

         

       부하는 공손하기 짝이 없는 말투로 말했다.

         

       “공안조사청과 경시청의 자료를 대조해본 결과 특정 조직과 관련된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됩니다. 밀수나 외국에서 건너온 범죄 조직과 얽혀있을 가능성도 생각해보았으나 내각정보조사실의 자료를 확인해본 결과 그 역시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확실히 개인인가?”

       “확실합니다. 개인입니다. 두 명 이상이 움직였다면 그것을 포착하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산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봐.”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 ‘차기 신관’이라는 알 수 없는 존재는 모종의 계기를 통해 마약을 입수했습니다….”

         

       부하는 천천히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차기 신관이라는 존재가 ‘어떤 수단’을 이용해서 마약을 제조하거나 발견하였고, 그것을 이용해서 흉심을 품었다는 것.

       마약을 팔아 돈을 얻는 것이 아닌, 권력자를 중독시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려 했다는 것.

       하지만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알법한 권력자나 화족같은 이들에게는 접근하기도 어렵고 마약을 팔아넘기기도 힘드니, 가장 만만한 상대를 골랐고 그것이 바로 ‘사이고 켄지’였다는 것.

         

       “마침 사이고 켄지는 자신의 부인을 잃고 크나큰 상실감에 빠져있었지요. 그 상실감을 메우기 위해 화류계에 들락거리기도 하였고, 도박에도 손을 대었습니다. 하지만 둘 다 그를 만족하게 하지 못했고,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접근을 했군?”

       “네. 말씀대로입니다. 아마 이 범죄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이고 켄지에게 약을 먹였을 겁니다. 방법은 많습니다. 신력으로 보호받고 있으니 강제로는 투약하지 못했겠지만, 음식이나 음료에 섞어서 준다거나 향수나 꽃에 묻혀놓고 가루를 흡입하게 할 수도 있었겠죠. 그리고 그렇게 사이고 켄지는 약의 효과를 체험했고, 채워지지 않던 빈 곳이 채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마약에 손을 대는 일이 꽤 있었지. 미국에서도 그랬어….”

       “그렇습니다. 삶이 힘든 사람이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서 손을 대었다가, 마약의 늪에 빠져서 결국엔 마약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곤 했지요. 사이고 켄지 역시 그와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처음에는 상실감 대신 충족감을 가득 채우기 위해 약을 원했겠지만…. 그게 점차 심해지며 중독이 되고, 금단현상과 더불어 찾아오는 쾌락에 대한 갈망이 그를 서서히 망가뜨렸을 겁니다.”

       “흠. 일리가 있긴 하군. 근거는?”

       “작년 풍속점(風俗店)에 방문했던 사이고 켄지의 모발과 최근 사이고 켄지의 모발을 입수해서 마약 검사를 진행해보았습니다. 가스 크로마토그래피 질량분석기로 분석을 해본 결과 양성으로 판명되었으며, 메스암페타민을 포함한 3종의 마약의 성분이 검출되었습니다.”

       “성분이 검출되었다…. 그래. 하지만 그걸로는 근거가 좀 부족한데….”

       “근거는 또 있습니다.”

         

       부하는 가지고 온 사진을 산지로에게 내밀었다.

         

       “흠. 남자는 사이고 켄지고, 이 여자는 누구인고?”

       “사이고 켄지의 딸, 사이고 리세입니다.”

       “흠. 과연.”

         

       산지로는 사진을 바라보며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고 켄지의 사진이 참…. 마약 중독자 그 자체로구나.”

       “그것도 그냥 마약 중독자가 아니라, 골수까지 마약에 미쳐버리기 직전 중독자의 모습입니다. 치아와 턱이 망가지진 않았습니다만 여기 퀭해진 인상과 눈 아래에 가득 내려온 다크서클, 그리고 얼굴에 흐르는 저 음침한 미소와 광기만 보더라도….”

       “그래. 누가 봐도 중독자로군. 하하하.”

       “얼굴 말고도 몸 곳곳에 마약 중독자들에게 생기는 상처들이 보입니다.”

         

       산지로는 사진을 보며 크게 웃었다.

         

       사진에 찍혀 있는 사이고 켄지의 사진이 마치, 미국에서 ‘마약 중독자의 Before & After’ 사진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끔하고 건실해 보이는 마약 복용 전의 사진.

       노숙자보다도 추레하고 음산해 보이는 마약 복용 후의 사진.

         

       “다른 놈들은 몰라도 자네와 나는 알 수 있을 거야. 유학을 갔을 때 저런 몰골을 하고 다니는 놈을 종종 보곤 했었지. 이상한 음악인지 뭔지를 한다면서 약을 잔뜩 빨고 들어와서는, 노래 같지도 않은 소음을 꽥꽥 내지르는 꼴이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저 때도 그랬습니다. 약을 빨고 들어와서 전도하려는 종교인부터, 약을 먹어야 작곡이 잘된다면서 해롱해롱 취해있는 사람도 보았죠.”

       “그래. 유학 물을 먹었으면 이 사진만 보고도 알지. 딱 봐도 마약과 얽혀있고. 그래, 마약이 있으면 마약 딜러가 있는 법이지. 자네의 추측이 일리가 있어….”

         

       산지로 박사는 슬쩍 리세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이 여아의 모습도 참으로 음산해진 게야. 하지만 크게 외모가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하니…. 혹시 이 아이도 그런가?”

       “안타깝게도 사이고 리세의 모발은 입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추정컨대 마약에 중독되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두 번은 몰라도 그 이상은 복용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 마약으로 돈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 상승을 얻으려고 하는 놈이면, 자기를 위로 끌어올려 줄 소중한 여자를 망가뜨리지는 않겠지.”

         

       산지로 박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사진을 책상에 놓고 중얼거렸다.

         

       “하나는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어도 둘이 된다면 필연으로 여기는 법이지. 그리고 둘이 되었다는 것은 셋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니, 당연히 의심의 화살이 자신에게 날아올 것을 알고 있을 게야.”

       “네. 사이고 켄지만 중독자라면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있으니 빠져나갈 수 있으리란 계산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뭐…. 한두 번은 사이고 리세를 길들이는 용도로 사용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메스암페타민은 사용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 메스암페타민은 잘못 쓰면 끝장이거든. 부작용도 심하고, 중독성도 심하고. 게다가 남녀관계를 할 때 사용하면…. 절대로 헤어나오지 못하고 망가졌겠지.”

         

       산지로 박사는 만족스럽다는 듯 부하를 바라보았다.

         

       “그래. 아주 훌륭하군, 훌륭해!”

       “감사합니다.”

       “계속 설명해보게.”

       “이 범죄자는 그렇게 사이고 켄지를 마약의 늪에 빠뜨리고, 나중에는 마약을 미끼로 자신에게 성을 요구했을 겁니다. 아마 범죄자의 출생은 보잘것없었을 테니까요.”

       “그래. 혹 부라쿠민 출신이었을 수도 있고…. 외지 쪽 녀석이었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가문의 그늘에 들어가 가문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곧 신분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 그는 마약을 미끼로 그렇게 신분이 상승하였고, 사이고 리세를 휘어잡으며 그곳을 기반으로 삼았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유물이 되어버린 신사를 둘러보던 중 아주 기이한 주물을 발견을 했을 겁니다.”

       “주물이라….”

       “중국에서는 귀신을 사고파는 용도로 이용하기 위한 주물이 있었지요.”

       “그래. 귀시(鬼市)라는 곳에서 귀신을 노리개로 사용하기 위해 봉인시켜놓고 팔았지.”

       “과거 일본이 세계를 호령했을 때 중국 역시 점령했습니다. 그때 귀신을 봉인한 중국의 주물이 신사로 흘러 들어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범죄자, 이제는 차기 신관으로 신분을 바꿔버린 놈이 그것을 보고 나쁜 마음을 품은 겁니다.”

         

       부하의 설명은 막힘없이 이어졌다.

         

       사이고 켄지의 인맥을 이용해 색에 미쳐있던 무라타 류노스케에게 접근해서 주물을 제공했으리라는 것, 자기 관리가 철저하기는 했지만, 색에 관한 호기심도 만만치 않았던 원로가 결국 그 제안을 승낙했으리라는 것, 주물의 효과를 이용해 인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쾌락을 느끼게 해줬으리라는 것, 그리고 그 대가로 무라타 류노스케 원로의 비호를 받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그래. 있을법한 이야기이기는 해…. 그래. 그렇게 되었다면 원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귀접을 권유했을 것이고….”

       “내키든 내키지 않던 원로의 말을 거부할 수는 없었을 테지요. 그리고 한 번 맛보면 계속 맛보고 싶은 것이 쾌락이니, 쉬이 그것에 빠져들었을 겁니다.”

         

       부하는 잠시 말을 쉬었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 견고해 보이는 쾌락의 동맹에서 구멍이 하나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치카와 료스케입니다.”

       “흠. 우치카와 료스케도 상당한 속물인 데다가 쾌락을 탐하는 성질이 있는데, 어찌 귀접에 빠져들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우치카와 료스케가 영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지로 박사는 영안이라는 단어에 무릎을 ‘탁’ 쳤다.

         

       “옳거니!”

       “조사 결과 우치카와 료스케가 최근 영안을 얻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렇지. 다른 놈들이야 귀신의 원래 모습을 못 보니 거리낌이 없겠지만, 우치카와 료스케는 그 본 모습을 보았을 테니 치를 떨었겠구먼!”

         

       하하하하하-!

         

       산지로 박사는 호쾌하게 웃었다.

         

       “귀시에서 노리개용으로 팔려고 만든 것이라면 미색 자체는 뛰어나기는 했겠지만, 그것도 보통 사람의 눈에 그런 것이지! 강한 영안을 가진 사람이라면 죽었을 때의 모습을 보았을 터이니 성욕이 솟지 않을 법도 하지!”

       “분명 학을 뗐겠지요. 온몸에 피 칠갑이 되어있거나 몸이 반쯤 썩어버린 귀신과 몸을 섞는 장면을 보았을 테니 말입니다.”

       “흐. 그래, 그러면 모든 게 이해가 가지.”

         

       산지로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치카와 료스케는 경시청의 증거품 보관소에서 호신용 식신부와 음양서적을 훔쳤지. 그래서 우리의 눈에 들었고. 그것이 귀신에게서 몸을 지키는 용도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은밀하게 어떤 신호를 보낸 것이라면…. 그래, 이용할 수 있겠구먼.”

       “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래, 한번 접촉을 해보게. 대신에 이 귀접이라는 것이 무라타 류노스케 원로의 역린이 되어있을 터이니….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을 터. 괜히 우리에게 불똥이 튀지 않도록 아주 은밀하게, 신중하게 접근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 * *

         

         

         

       『 차기 신관님께서 우치카와 료스케님이 주신 주물에 흥미를 느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긴히 이야기를 나눌 것이 있으니 금일 밤 신사로 오셨으면 합니다. 』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